FASHION

올 여름 유행하는 패턴은 바로 '이것'!

스트라이프와 체크 패턴이 가진 미학에 대하여.

프로필 by 이진선 2025.08.04

선의 미학


올여름, 스트라이프와 체크 패턴을 다시 들여다보아야 할 이유는 너무도 분명하다.



 (왼쪽에서 부터)Chanel, Proenza Schouler, 브르타뉴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입은 배우 진 세버그, 1965년., Louis Vuitton , Duran Lantink, Schiaparelli, Max Mara , Dior

(왼쪽에서 부터)Chanel, Proenza Schouler, 브르타뉴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입은 배우 진 세버그, 1965년., Louis Vuitton , Duran Lantink, Schiaparelli, Max Mara , Dior

가로, 혹은 가로와 세로 선이 교차해 완성된 단순한 패턴이지만 누구나의 옷장 속에 하나쯤 있는 그것. 바로 스트라이프와 체크다. 흔하고도 친숙한 이 패턴들을 다시금 들여다보아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2025 S/S 시즌 런웨이에 둘의 존재감이 마치 대결 구도를 벌이듯 흥미로웠기 때문. 언뜻 단순해 보이는 이들이지만, 각 하우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은 선의 넓이와 간격, 컬러의 조합을 치밀하게 계산하고 여러 번 시도해 지금의 결과물을 완성해냈으리라. 또한 이번 시즌의 스트라이프와 체크가 특별한 또 한 가지 이유는 각각의 패턴이 상징적인 의미를 지녔던 과거의 순간을 재현했기 때문이다.

먼저 스트라이프부터 들여다보자. 중세 문장학의 대가이자 색채 분야에 관한 최초의 국제적 전문가인 미셸 파스투로(Michel Pastoureau)의 저서 <스트라이프, 혐오와 매혹 사이>를 살펴보면 대중에게 널리 사랑받는 스트라이프가 중세 시대에는 ‘악마의 무늬’로 불렸으며 “불충한 기사, 권력을 찬탈한 집사, 간통한 여성, 아버지에게 반항한 아들, 서약을 위반한 동료 등은 예외 없이 옷에 줄무늬 문장이 달려 있거나 줄무늬 옷을 입고 등장한다”는 대목을 찾아볼 수 있다. 즉 스트라이프가 혼란을 야기하고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부정적인 표식으로 인식되었다는 것. 변화가 찾아온 건 낭만주의 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다. 이때부터 줄무늬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의미하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이데올로기적이고 정치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다. 미국 성조기를 비롯해 여러 국기에 줄무늬가 등장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라고. 그 이후 1858년, 프랑스 해군의 유니폼에 브르타뉴 스트라이프(Breton stripes, 프랑스 대서양 연안의 브르타뉴 해변 지역에서 유래한 이름)라 불리는, 흰 바탕에 파란색 줄무늬 패턴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마린 룩의 시초인 셈이다. 브르타뉴 스트라이프는 코코 샤넬을 비롯해 이브 생 로랑, 장 폴 고티에, 캘빈 클라인과 같은 디자이너들에게도 주요한 영감 중 하나였다. 특히 장 폴 고티에에게 있어 스트라이프는 하나의 문장(紋章)과도 같았다. “그것은 모든 것과 잘 어울리고, 결코 유행을 타지 않으며, 아마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기에 제 페티시 패턴이죠.” 그의 말을 뒷받침하듯 2025년 S/S 런웨이엔 마린풍의 스트라이프 패턴이 강세를 보였는데, 대표적인 예가 랄프 로렌, 프로엔자 스쿨러, 알투자라, 디올, 사카이. 물론 클래식에 변주를 더한, 보다 다채로운 스트라이프도 루이 비통, 스키아파렐리, 프라다 등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왼쪽에서 부터) Acne Studios, Ralph Lauren , Burberry, 1990년 10월, 에스카다의 타탄체크 스커트수트를 입은 다이애나비. , Bottega Veneta , Prada

(왼쪽에서 부터) Acne Studios, Ralph Lauren , Burberry, 1990년 10월, 에스카다의 타탄체크 스커트수트를 입은 다이애나비. , Bottega Veneta , Prada

체크는 또 어떠한가. 올 시즌엔 1990년대 스타일에 체크 패턴이 결합된 룩들이 강세를 보였는데, 특히 플래드(plaid)와 타탄(tartan)이 주목을 받았다. 그야말로 격자무늬가 주인공이 된 아크네를 비롯해 보테가 베네타, 타미 힐피거, 토즈, 랄프 로렌, 버버리에서 인상적인 체크 룩을 선보였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예스러운 감성을 담고 있었다는 것. 이들을 보니 자연스레 1990년대를 풍미한 미국 드라마 <베벌리힐스 아이들(Beverly Hills 90210)>과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체크 스커트수트가 떠올랐다. “이번 시즌의 격자무늬는 전통과 과거 패션 시대와 관련이 있으며, 불확실한 시기에 우리가 갈망하는 친숙함과 편안함을 불러일으키죠. 특히 스코틀랜드 유산에서 온 풍부한 사회문화적 중요성을 가지고 있지만, 클래식하거나 반항적인 느낌을 모두 가진 펑크 록과도 관련이 있어 다양한 스타일링이 가능하고요.” 패션 비즈니스 컨설턴트이자 <패션: 심리학으로 말하다(The Psychology of Fashion)>의 저자인 캐럴린 베어(Carolyn Mair) 박사의 말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체크 패턴은 고대 기원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을 거치며 다양한 문화와 사회에서 발전해온 풍부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원래 직조 공정에서 생긴 무늬를 뜻했으나 날염으로 나타난 것도 포함해 체크라고 부른다. 종류 역시 앞서 언급한 플래드, 타탄 외에도 깅엄, 하운드투스, 윈도 페인, 건 클럽 체크, 글렌 등 꽤나 다양하고.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버버리 코트의 안감에 사용된 것을 시작으로, 크리스찬 디올, 비비안 웨스트우드, 알렉산더 맥퀸과 같은 패션 하우스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매 시즌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주요 트렌드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어디 그뿐인가. 펑크와 프레피를 넘나드는 다재다능함은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었으니.

단순한 선이 서로 대립하고 교차하며 한데 어우러진 이번 시즌의 스트라이프 그리고 체크 패턴에서 우리는 선(線)의 미학을 느낄 수 있다. 패션이라는 거대하고도 매혹적인 캔버스를 도화지 삼아 저마다의 붓으로, 저마다의 색을 입힌 디자이너들. 때문에 올여름, 스트라이프와 체크를 다시 들여다보아야 할 이유는 너무도 분명하다.

Credit

  • 사진/ Launchmetrics(런웨이),Getty Images(이미지)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이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