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바자와 화가 이광호가 함께한 초상 프로젝트 'Faces', 선우정아

<바자>와 이광호가 함께한 프로젝트<Faces>의 면면을 공개한다.

프로필 by 고영진 2026.09.28

BEING PORTRAIT


김민하, 김성령, 김신록, 선우정아, 홍진경이 작가 이광호의 초상화 모델이 되었다. <바자>와 이광호가 함께한 프로젝트<Faces>의 면면을 공개한다.


드레스, 벨벳 글러브는 MaxMara. 레더 앵클부츠 힐은 Lemaire.


스트라이프 셔츠는 Vivienne Westwood. 레더 스커트는 Daily Mirror. 벨트는 Self Portrait. 펌프스는 Jimmy Choo.


선우정아

겹을 벗은 자리에


두 달 전 초상 작업이 시작된 날. 작가 이광호의 작업실에서 선우정아를 처음 만났다. 씩씩한 목소리는 내가 알던 그대로였는데 분위기는 많이 달랐다. 흰 티에 낙낙한 와이드 팬츠를 입고, 메이크업은 한 듯 하지 않은 듯 무척 자연스러웠다. “오늘은 그냥 완전 나 같은 모습으로 오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게 전부인 작업 같기도 하고요.” 사전에 전달한 이번 프로젝트의 기획서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상태에서 시선이 고정되기 전, 순간의 표정을 포착한다.’ 선우정아는 이 문장을 그렇게 해석했나 보다.

내가 나인 상태. 사실 그건 좀 모호하다. 옷 갈아입듯 여러 콘셉트로 자기를 꾸미는 일에 익숙한 아티스트에게는 더욱 그럴 것이다. 게다가 이곳은 그의 일터다. 초상화의 재료가 될 핀홀 사진 촬영 외에도 과정을 기록하기 위한 스케치 촬영 팀과 영상 팀까지, 지금껏 수없이 드나들었을 촬영 현장과 다를 바 없으며, 이런 곳에서 힘을 빼고 겹을 벗긴 어렵다. 차라리 두 시간 동안 메이크업을 받고 세트장에서 갖춰진 의상을 입은 채 하는 촬영이 몸은 무거워도 마음은 더 가벼울지도 모른다. 선우정아는 수많은 나 중에 어떤 나를 취하려 했을까. 갈피를 잡은 건 촬영 전 나눈 이광호 작가와의 대화에서였다. “작가님과 마주 앉아 그간의 작업을 훑어보는 시간이 참 좋았어요. 작가님은 어떻게 생각하셨을지 모르겠지만, 짧은 시간 영혼의 교감이 있었다고 생각할 정도로요.” 세밀화를 그리다 지금과 같은 스타일을 정립하게 된 데에는 눈의 노화가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는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선우정아는 자꾸만 상상을 했다.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가 자신의 신체 변화를 그대로 캔버스에 옮겨오는 사이 어떤 세월이 함께였을까. “그 시간을 감히 가늠할 수는 없지만, 이야기를 듣는 순간 피부로 확 느껴지는 것이 있었어요. 40대가 된 저는 지금 작가님이 지나온 어느 순간 안에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아마 그때였을 것이다. 오늘 처음 작가와 피사체로 만난 두 사람이 사람 대 사람으로서 마음을 활짝 열고 하나의 작업을 만들어가기 시작한 것은.

짧지만 밀도 높은 대화를 마친 뒤, 카메라 앞에 앉은 선우정아는 모든 것을 보여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일할 때는 보여주지 않으려 했던 얼굴”까지도. “작가님은 거기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아내주실 것 같았거든요. 실제로 그날 찍힌 사진들이 그랬어요. 평소에는 조금 숨기고 싶던 각도인데, 이상하게 사진에서는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화가와 피사체의 진정한 교감이 만들어낸 특별한 순간이 아니었을까. 선우정아는 찍힌 사진을 볼수록 더 과감해졌다. 과감하다는 건, 카메라를 정말 의식하지 않는 듯한 모습을 뜻한다. 내내 작업실에 흐르던 아르보 패르트의 ‘거울 속의 거울’에 기대어 말 없이 살랑살랑 몸을 움직였다. 소리 내어 흥얼거리기도 할 땐 다 같이 숨을 죽였다. 이 집중을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이건 그 어떤 화면에서도 볼 수 없는 선우정아다.

그날 우리는 초상화의 밑작업이 되는 사진 한 장을 고르기 위해 총 세 번의 사진 촬영을 진행했다. 뾰족히 정의할 수는 없고, 그저 ‘선우정아 같다’ 표현할 수밖에 없는 그 얼굴을 열심히도 찾았다. 모니터에 띄우는 순간 현장에 있던 모두가 작은 탄성을 뱉게 한 사진을 마침내 만났다. 어딘가 슬프기도, 동시에 무척 편안하고 선한 기운을 주는 얼굴이었다. “왠지 모르게 그 사진으로 가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있었는데, 사실 그건 제가 계속 감추려던 얼굴에 가깝거든요. 선한 얼굴, 순한 심성. 이런 건 세상에서 살아남는 데에는 큰 도움이 안 되잖아요. 좀 더 쉬운 길은 못된 거죠. 하지만 결국 내 뿌리는 그 반대에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그런 얼굴이었어요.”

초상화가 완성되는 사이에는 선우정아의 싱글 앨범 <더 바라지도 않겠어(Peacock)>가 발매됐다. 스스로를 ‘공작새’로 표방한 이 곡의 비주얼은 무척 화려하다. 뮤직비디오를 이렇게 관찰하듯 본 적이 있었던가. 아마도 나는 우리가 처음 만난 날 봤던 그 얼굴을 찾고 있었던 것 같다. “바라지도 않겠어/ 기다리는 건 그만두겠어/ 슬퍼하지 않겠어/ 홀로 고고한 노래를 부르며 Oh/ (중략)/ 날 사랑하러 가요/ 영롱한 내 꿈을 휘날리며.” 선우정아는 선우정아를 향한 구애를 노래했다. 나풀나풀 춤을 추며, 아주 상쾌하고 산뜻하게.

완벽히 설계된 영상 안, 전혀 다른 메이크업과 반짝이는 의상을 입은 선우정아에게서 그 얼굴 대신 다른 것을 보았다. 이 뮤지션이 얼마나 진심으로 노랫말을 뱉고 있는지, 무얼 말하고 싶은지. 사실 그렇게 보였다기보단, 보려 애쓴 것에 가깝다. 노력의 기저엔 애정이 있다. 그날, 그 얼굴을 봤다는 이유로 나는 이 뮤지션에게 전에 없던 친밀함을 느끼고 있었다. 촬영과 인터뷰로 만난 모든 사람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건 아니다. 그 얼굴엔 그런 힘이 있다.

두 달 뒤 우리는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완성된 초상화가 함께였다. 선우정아는 자신의 그림을 보자마자 생각했다. ‘아, 들켰다….’ 분명 봤던 얼굴인데도 오래 쳐다보지 못할 정도로 묘한 기운에 압도당했다고도 했다. “작가님과 함께 사진을 골랐고, 어떤 작업이 나올지 어렴풋이 예상하고 있었는데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나인 거예요. 꼭꼭 숨겨둔 얼굴을 마주해버린 느낌. 작가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거든요. 어떤 시선도 닿지 않은 고요하고 편안할 때의 모습을 찾고 싶으시다고요. 사실 저는 그 때의 제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몰라요. 내가 나를 볼 수 없는, 완벽히 혼자일 때니까요. 그런데 어쩌면, 딱 이런 얼굴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최근 선우정아에게는 초상 프로젝트처럼 자기 자신을 다른 누군가의 시선으로, 전에 없던 필터로 바라볼 수 있는 일들이 몰려 있었다. 커리어가 나이 들어가며 생기는 자연스러운 변화일 터. 그녀는 일련의 시간을 통과하며 다음 앨범의 방향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여느 때보다 제 내면을 있는 그대로 담으려 노력하는 앨범이 될 것 같아요. 그림 앞에 서니 결코 흔들리지 않고 그 방향을 지켜야겠구나 마음먹게 돼요.” 언젠가 앨범이 세상에 나왔을 때, 우리는 한눈에 알아차릴 것이다. 거기엔 어떤 노랫말이 붙을지 상상해본다.


재킷은 Fen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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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사진/ 윤송이
  • 헤어/ 구예영
  • 메이크업/ 안희정
  • 스타일리스트/ 이경은
  • 프롭 스타일리스트/ 김태양
  • 어시스턴트/ 신형진, 이하늘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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