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 바깥에서 찾은 비엔나의 진짜 예술
공예의 미학이 깃든 비엔나 로컬 브랜드에서, 거리의 그래피티 아트와 공원의 시민들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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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 IN VIENNA, WITHIN ART
어느 예술가의 작업실, 로컬 브랜드의 아틀리에와 숍, 주말 오후의 공원과 이름 모를 작은 골목에서 경험한 예술. 미술관과 박물관, 그 밖의 비엔나.

레오폴트 미술관과 무목 갤러리 등이 모여 있는 예술 단지.

매그넘의 사진을 전시 중인 포토 아스널 비엔나. 벽면에는 데니스 스톡이 촬영한 제임스 딘의 사진이 보인다.

포토 아스널 비엔나로 가는 길 만나게 되는 비엔나 3구의 풍경.
슈베르트와 요한 슈트라우스의 도시. 클림트의 <키스>를 볼 수 있는 곳. 그림 같은 벨베데레 궁전과 슈테판 대성당, 호프부르크 왕궁. 역사적 건축의 장. 조합해보자면 향유할 예술로 점철된 도시. 상상으로 그리던 비엔나다. 수요일 오후 6시. 꼬박 12시간을 걸려 도착한 비엔나 시내의 거리는 퇴근길 인파 대신 일요일 저녁 같은 한갓진 여유가 흘렀다. 내가 머무를 ‘호텔 인디고 비엔나’는 비엔나 최대 규모의 재래시장으로도 알려진 나슈마르크트 지역에 위치해 있다. 앞서 언급한 성당, 궁전 같은 주요 명소를 대중교통으로 20분 안에 갈 수 있는, 시내 중심부라 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럼에도 호텔 방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라곤 우렁찬 새소리와 바람에 나무가 부대끼는 소리 정도였으니. 긴 비행 탓이었을까, 보고 들리는 모든 것이 비현실적이다.
본격적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한 다음 날부터는 머릿속 비엔나의 면면을 하나씩 확인해볼 심산이었다.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비엔나 박물관. 고대 제국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비엔나의 역사를 다룬다. 방대한 역사에 정신이 아득해질 때쯤 클림트와 에곤 실레의 회화가 등장하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관람하게 된다. 카를 성당과 붙어 있는 데다 무료 입장이다.

스튜디오에서 회화 작업 중인 작가 아누크 람 아누크.
개관한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사진 전시관 포토 아스널 비엔나(Foto Arsenal Wien)의 분위기는 좀 달랐다. 과거 군사 시설로 이용되었던 단지를 레노베이션한 건물은 시내 중심부와는 거리가 있어 고요하다. 전시관까지 가기 위해 작은 공원들을 몇 개나 지나쳐야 했는지 모른다. 지금 이곳은 세계적인 사진 에이전시 매그넘의 70년 역사를 담은 3백여 점의 사진과 물건을 전시 중이다. 로버트 카파, 잉게 모라스 등 전설적인 매그넘 사진가들의 작업물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 흥미롭다.(전시는 6월 1일까지 계속된다.)
에곤 실레의 세계 최대 컬렉션을 소장한 레오폴트 미술관, 현대미술관 무목, 오페라 하우스 옆 알베르티나 미술관 등 여행 내내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일정은 미술관과 박물관, 갤러리였지만 비엔나의 예술을 어느 곳보다 직관적으로 이해한 것은 그 밖에서였다. 지금 비엔나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다는 작가 아누크 람 아누크(Anouk Lamm Anouk)의 스튜디오에서는 비엔나 미술에 대한 첫인상이랄 것을 만든 것 같다. “저는 어떤 의미에서 하이브리드적인 존재에 대해 작업하는 것을 좋아해요.” 미지의 차원으로 통하는 포털을 연상케 하는 추상화 시리즈부터 공중과 바닥, 어디에나 있는 투명 말 조각, 실재하는 새끼돼지의 모양을 고스란히 재현한 설치 작업, 개와 양 같은 동물로부터 수호신을 표현한 회화까지. 2023년 4월, 쾨닉 서울에서 개인전을 연 이력이 있는 작가는 올해 7월 서울 탕 컨템포러리에서 또 한 번의 개인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나슈마르크트 지역. 주말에는 플리마켓이 열린다.

로자 모사의 숍 내부에는 신발과 가방, 액세서리를 손수 제작하는 스튜디오가 마련되어 있다.
동양, 특히 일본의 장인정신을 적극 수용해 자국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제품이 주를 이루는 로컬 패션 브랜드의 숍에서는 실용성과 미학이 맞닿은 예술을 보았다. 일본인과 크로아티아인이 함께 만든 가죽 브랜드 사간 비엔나(Sagan Vienna), 숙련된 장인들로 구성된 다국적 인력 풀로 독특한 고유 스타일을 구축한 로자 모사(Rosa Mosa), 오직 폴란드와 헝가리의 가족 사업체와 협력해 고품질의 의류를 생산하는 야나 빌랜드(Jana Wieland)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 손으로 완성한 이들의 물건에서 그 어떤 전시보다 비엔나 예술의 태도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하루에 열 개의 가구를 생산하는 것보다 열흘 동안 공들여 하나의 가구를 완성하는 편이 더 낫다.” 20세기 예술공예운동 ‘비엔나 워크숍(Wiener Werkstiltte)’의 철학은 지금도 이 도시 안에 살아 있다.
모처럼 맑게 갠 일요일 낮이다. 여행의 마지막 날. 하나라도 더 보고 담아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고 포토 아스널 비엔나 근처 공원에서 넋 놓고 시간을 보내길 택했다. 다시 말해 끝까지 비엔나의 중심부인 링 슈트라세를 따라 돌며 주요 관광 명소를 둘러보는 여행은 하지 못했다. 비엔나를 배경으로 한, (비엔나 관광청 직원 마티아스의 말에 따르면) 오스트리아인보다 한국인이 더 사랑하는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자취를 밟지도 못했다. 하지만 비엔나에서 보고 듣고 마주한 모든 것은 과연 향유할 예술이었다. 전시장의 그림과 조각뿐 아니라, 장인정신의 결과로 탄생한 물건과 거리의 그라피티 아트, 느긋하게 일상을 누리는 시민들의 풍경까지도. 나는 비엔나를 충분히, 어쩌면 가장 제대로 경험한 것일지도 모른다. 소란할 것 없는 적당함을 갖춘 이 도시의 속도에 맞추어 한 걸음씩 제대로.
Credit
- 사진/ 비엔나 관광청, Michael Seirer, Evelyn Dragan, Gregor Hofbauer, Mira Loeve
- Julius Hirtzberger, Elsa Okazaki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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