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 Paris 전시 보러 부산 갈래요?
F1963부터 부산 프랑스 문화원, 낙수의 언덕까지. 부산 컬쳐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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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이우환의 예술론을 빌려 표현하자면, 이 도시는 ‘시이며 비평이고 초월적인’ 곳. 부산에서 목격한 마술적/미술적 장면에 관하여.



혹시 부산(釜山)의 어원이 ‘가마솥을 엎어놓은 모양의 산’이라는 걸 알고 있는지. 바다가 먼저 떠오르지만 산이 더 흔한 곳, 동해이면서 남해, 마천루와 공장, 마린시티와 달동네, 누군가에겐 고단한 삶의 터전이고 누군가에겐 일상을 잊게 하는 도피처. 미셸 푸코는 헤테로토피아를 “우리 세계 안에 존재하지만, 이질적인 논리로 작동하는 다른 세계의 조각”이라고 말했다. 이 도시의 복합성과 다층성 덕분에 나 같은 서울 촌놈에게 부산은 일종의 헤테로토피아다. 그러므로 부산에서 프랑스의 크리에이티브 듀오 M/M (Paris)의 개인전이 열린단 소식에 한 점의 고민 없이 기차에 몸을 맡긴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여행이야말로 우리가 일상에서 다른 세계의 조각을 발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니까.
전시가 열리는 F1963은 원래 고려제강의 모태가 되는 첫 번째 공장이었다. 1963년부터 2008년까지 45년 동안 교량용 철제 케이블을 비롯해 다양한 와이어 로프를 생산했다. 양산으로 이전하면서 한동안 죽은 듯 잠자던 공간이 2016년 부산비엔날레 특별 전시장으로 호명되면서 다시 되살아났다. 돈 되는 아파트를 짓는 대신 문화예술공간을 세워 지역사회에 공헌하고자 했던 창업주의 뜻대로 이제 F1963은 부산의 도시재생과 문화분권 담론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설계를 맡은 건축가 조병수는 와이어 공장이었던 이 공간의 역사를 존중하는 태도로서 기존의 구조물에 최소한의 개입만 더해 공간을 연결했다. 철제 트러스, 벽돌 기둥, 기름때에 얼룩진 바닥과 벗겨진 페인트 흔적이 산업유산의 미학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곳에서 M/M (Paris)의 «사랑/마법 ♥/MABEOB M/MAGIE»가 열리고 있다. 7년 전 서울에서 열린 전시 «M/M 사랑/사랑»의 주제가 사랑이었다면 이번엔 마법이다. M/M (Paris)는 지난 1년간 오리지널 타로 카드 세트를 개발하는 작업에 몰두했고 여기서 얻은 영감을 이번 전시의 대형 설치작품과 영상으로 선보인다. 이들은 타로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 사이에서 인간의 불안, 희망, 믿음을 드러내는 시계추처럼 작동해온 사실에 주목했다. 타로가 인간 감정과 시간에 대한 집합적 해석이 담긴 시각 언어라면, 기호와 언어와 상징과 의미에 대한 탐구를 계속해온 이들에게 안성맞춤형 주제였으리란 예측은 어렵지 않다.

과거 와이어 로프를 생산하던 수영 공장의 역사와 정체성이 담긴 복합문화공간 F1963의 전경.
전시명에 포함된 ♥는 자신들의 이니셜인 ‘M’과 발음이 유사한 프랑스어 단어 ‘AIME(사랑)’를 나타내는 기호다. 또한 ‘MAGIE’는 프랑스어로 ‘마법’이란 뜻을 지닌 단어로, 단순히 오락이나 신비로서의 마법이 아닌 이미지를 통해 현실과 상상 세계를 넘나들게 하는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의미한다. “지구촌 어디를 바라보나 우울한 사건, 사고로 가득한 현실 세계에서 잠시라도 머무를 수 있는 시각적 유토피아를 창조하는 셈”이라는 리플릿의 설명처럼 전시의 구성도 그렇다. 부산 해운대 코펜하겐 마법 마지 테베의 순서로 이어지는 전시 공간은 관람객이 자신의 두 발로 직접 유토피아 안으로 걸어 들어가게끔 인도한다. 이들은 알파벳 B, U, S, A, N 스툴로 도시 자체를 상징적으로 바라보고(부산), ‘Agent’와 ‘Elephant’를 결합한 <ElephAgent> 조각을 통해 기존 기호를 재조합하고(해운대), 2021년 덴마크 전시를 재구성한 공간으로서 전환한 다음(코펜하겐), 이번 전시의 키워드인 ‘타로 카드’를 포스터와 액자와 조각으로 흩뿌려서 전시장을 비현실적인 기호 생태계로 바꿔놓고(마법), 바닥에 흩뿌려진 듯한 홀로그램 영상을 거쳐(마지), 마침내 22 분짜리 고전 영화 <안티고네>를 흑백 필름으로 감상할 수 있는 ‘오페라의 방’(테베)으로 관람객을 안내한다. 예술 안에서, 우리는 한국의 현실 도시 부산에서 출발해서 고대 그리스의 도시 테베에 도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한동안 테베에 머물던 나는 혼미한 정신을 다잡으며 10분 거리에 위치한 고은사진미술관 별관 부산 프랑스문화원으로 가는 택시를 잡아탔다. 부산의 도로 위에서 나는 늘 멀미를 달고 산다. 처음엔 카레이서 뺨치는 운전기사의 드리프트 때문이거나 아직 타로의 영향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탓인 줄 알았지만 어지럼증의 원인은 따로 있는 듯했다. 지금 부산 전역에선 스페인 ‘루프 바르셀로나’를 모델로, 미디어 아트의 실험성과 커뮤니티의 연대를 탐색하고자 개막한 ‘루프랩 부산’이 펼쳐지고 있다. 이 축제의 일환으로 고은사진미술관 별관 부산 프랑스문화원은 아시아 현대미술을 선도하는 태국의 대표 작가 아피찻퐁 위라세타쿤과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의 미디어아트 2인전을 개최했다. 1층 전시장에서 만나는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는 <죽음을 위한 노래>를 통해 제주 4·3 사건, 태국 민주화운동, 죽어가는 거북을 위해 노래하는 샤먼의 장면을 보여주며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 서사들을 영적인 차원으로 엮어낸다. 2층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불꽃(아카이브)>은 마치 이에 대한 화답처럼 보인다. 어두운 밤, 태국과 라오스 국경에 위치한 사원 사라케오쿠에서 펼쳐지는 불꽃놀이의 번쩍임이 동물과 신을 형상화한 조각상들을 비춘다. 그러나 내가 화면 너머 상상하게 되는 건 태국 정부의 오랜 정치적 억압과 일상적 현실 너머의 현실이었다.
M/M (Paris)의 멤버 마티아스 오귀스티니악은 이번 전시에 관해 “타로 카드가 흥미로운 것은 단순히 그 신비로움 때문이 아니라,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의 삶과 이야기를 반영해왔기 때문이다. 카드는 마치 또 다른 세계를 비추는 창처럼 작용해서 현실을 살짝 왜곡시켜 보여준다. 그리고 이 왜곡은 오히려 우리가 현실에서 어떤 존재인지 더 깊이 생각하게 한다”고 말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생각했다. 마티아스의 말처럼 왜곡은, 예술은, 여행은 우리가 현실에서 어떤 존재인지 더 깊이 생각하게 한다. 다른 세계의 조각을 찾은 기분을 느꼈다. 멀미 탓인지 마법 탓인지 부산에서 내내 혼미하던 머릿속이 비로소 개운해졌다.

책방 겸 카페 그리고 동네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낙수의 언덕.
ELSE WHERE
낙수의 언덕
부산시 수영구 망미배산로24번길 39 1
이성자의 옛 전시 도록부터 영화 잡지 <키노>까지. 보기 드문 중고 서적을 발견할 수 있는 책방이자 찻집 그리고 동네 사랑방. “저는 소설이라는 건, 문학이라는 건 인간에 대한 탐구, 인간성에 대한 옹호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는 박완서 작가의 방송 인터뷰 장면이 한쪽 벽에 액자로 걸려 있다. 이곳의 사장님도 그런 마음으로 서점을 운영하리라 짐작케 한다. 서적만큼 흥미로운 건 매장 곳곳에 숨은그림찾기처럼 붙어 있는 사장님의 텍스트 스크랩과 메모다.
& MORE
비온후
부산시 수영구 망미번영로63번길 16
‘비온후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독립서점. 책과 예술작품이 함께 어우러지는 방식으로 종종 신진작가의 전시도 개최한다.
초량양곱창
부산시 동구 초량상로 102
곱창 맛집은 남포동에만 있는 게 아니다. 평생 양곱창은 느끼해서 손도 대지 않던 에디터의 입을 트이게 만든 그곳. 알 만한 현지인은 다 안다는 대창 맛집으로 대기가 필수다.
오초량
부산시 동구 초량동 고관로13번나길 22
1925년 일본의 토목건축업자 다나카 후데요시에 의해 지어진 일본식 목조주택을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숲을 옮겨 놓은 듯한 정원을 바라보며 따뜻한 차를 마시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잔향실
부산시 동성로25번길 13
1인석이 마련되어 있어서 나 홀로 방문하기 좋은 소규모 음악감상실. 부산 여행 마지막 날, 생각을 정리하는 코스로 제격이다. 신청곡도 받는다.
인디샷
부산시 수영구 연수로385번길 25
수영사적공원 옆 독립영화 배급사 ‘씨네소파’가 운영하는 카페다. 부산 대저토마토 대회에서 준우승한 토마토 콩피가 일품이다.
Credit
- 사진/ 오준섭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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