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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태솔로 상호도 포기 못한 토끼, 미피의 모든 것

작은 눈, X자 모양 입. 이름도 귀엽다. ‘미피’라고 불리는 작은 하얀 토끼가 궁금하다면.

프로필 by 최강선우 2025.08.18

10초 안에 보는 요약 기사

✓ 미피, 넷플릭스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로 인기.

✓ 딕 브루너의 단순한 디자인 철학과 아이들을 위한 스토리텔링.

✓ 한국 등 글로벌 시장에서 꾸준히 사랑받는 캐릭터.


화제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프로그램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에서 화제가 된 캐릭터가 있다. 우리에게는 미피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무표정의 하얀 토끼다. 연애 프로그램에 출연해 느닷없이 때아닌 먹방을 보여주고, 연애는 포기한 듯 안경을 쓴 채 자리를 채우는, 참가자 ‘27세 방산연구원 김상호’가 입은 티셔츠가 그 시작이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20만 원대로 알려져 놀라움을 자아낸 제품은 사실 네덜란드 스트리트 브랜드 팝 트레이딩 컴퍼니(Pop Trading Company)의 ‘블랙 미피 풋웨어 티셔츠’로, 10만 원 초반대의 가격이다. ‘잠옷이냐’는 다른 출연자의 농담을 들어도 꿋꿋하게 입는 모습과 미스매치였던 ‘재앙의 반팔티’는 현재 모든 온라인 스토어에서 품절 상태다.

미피는 MZ세대가 최근 들어 가장 주목하고 사랑받는 캐릭터 중 하나다. 알고 보면 긴 역사와 멋진 스토리를 지닌 캐릭터에 대해 알아보자.


미피의 시작은 이야기

미피의 진짜 이름은 나인체 Nijntje. 네덜란드어로 “작은 토끼”를 뜻하는 네덜란드어 'konijn'에 귀엽다는 뉘앙스의 '-tje'를 붙인 애칭에서 유래했다. 미피를 만든 아버지는 그림책 작가이자 그래픽 디자이너 딕 브루너 Dick Bruna 이다. 브루너는 해변 휴가지에서 아들이 작은 토끼를 보고 흥미로워하자 즉석에서 토끼 모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그 후에 이야기를 바탕으로 귀여운 토끼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성별이 없던 토끼 캐릭터는 브루너가 바지를 입히기보다 원피스를 그리는 게 낫겠다고 마음먹으면서 여자아이로 설정되었다. 1955년 첫 그림책 <나인체>가 출판된 이후 시리즈 주인공으로 활약하며, 30권이 넘는 책의 주인공으로 분했다. 전 세계 1억 부 이상의 책이 판매되었고, 50여 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있다. TV 애니메이션과 영화로도 제작되며 세대를 초월한 사랑을 받아왔다. 나인체 보다 우리에게 익숙한 미피 Miffy라는 이름은 1990년대 이후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이름이다. 네덜란드어 발음이 외국인에게 어렵다는 이유였다. 한국에는 1990년대 무렵 처음 소개되었지만,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최근 몇 년 사이다. 특히 MZ세대에게까지 새롭게 주목받으며 캐릭터 굿즈 시장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단순해 보이지만 왠지 모를 따뜻한 매력이 전 연령층을 사로잡고 있다.


단순함 속 큰 울림

딕 브루너는 “단순함 속에 진실이 있다”라는 철학으로 유명하다. 그는 미피를 최대한 단순한 선과 색으로만 표현했다. 그림체는 굵고 깔끔한 검정 테두리 선에, 빨강·노랑·파랑의 원색 3가지와 흰색·검은색 등 제한된 색상만 사용한 것이 특징. 빨강(즐거움), 파랑(불안), 초록(자연), 노랑(따뜻함)으로 감정과 상황을 표현했다. 절제된 디자인 덕분에 미피는 친숙한 모습이 되었고, 질리지 않는 미니멀리즘의 정수가 되었다. 브루너는 "단순함이 상상력을 일으킬 수 있다. 간단한 색과 선으로 이루어진 그림을 보고 아이들이 많은 이야기를 지어낼 수 있을 것이다."고 말하곤 했다. 토끼의 표정은 늘 까만 두 점의 눈과 X자 입으로만 그려지는데, 덕분에 기쁜 일에도 슬픈 일에도 담담한 표정으로 일관한다. 이는 독자인 아이들이 미피의 감정을 자유롭게 상상하도록 여지를 준다는 것이 작가의 설명이다. 또한 브루너는 그림책의 형태에도 남다른 고집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작은 정사각형 판형에 12페이지 분량 정도로 만들어졌다. 어린아이들이 책을 쉽게 잡고 읽을 수 있게 하기 위한 배려였다. 글도 아이들의 일상에서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이야기만 담고, 페이지에는 네 줄의 운율 있는 짧은 시로 내용을 전했다. 명료하고 직관적인 스토리텔링은 수십 년이 지나도 사랑받는 클래식 캐릭터로 남아 있을 수 있는 비결이 아닐까. 어린 독자를 생각하고 존중했던 브루너의 철학은 유아 문학의 교과서처럼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브루너는 2017년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평생 120여 권의 어린이책을 만들며 황금연필상 등 수많은 상을 받았다.


함께라서 더 귀여운 친구들

미피의 세계에는 다채로운 주변 친구들이 등장해 귀여움을 더한다. 엄마와 아빠가 있고, 친구 멜라니, 애그네스, 갈색 곰돌이 ‘보리스’가 있다. 멜라니라는 갈색 토끼 친구도 등장한다. 독립적인 캐릭터지만, 색깔 때문에 종종 ‘태닝을 한 미피’로 혼동되기도 한다. 미피와 가장 절친한 친구는 곰 남매 보리스와 바바라다. 보리스는 장난꾸러기 곰 친구로, 나무 타기와 눈싸움처럼 활발한 놀이를 좋아하는 개구쟁이다. 지난주 미피 스토어 경주점에서는 ‘찰보리’빵을 보리스 형태로 출시한다는 소식이 전해져 또 한 번 큰 기대와 화제를 모았다. 바바라는 조용하고 다정한 여자 곰 친구로, 얼굴에 있는 일곱 개의 주근깨만큼이나 소박하고 사랑스러운 매력을 지녔다.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친구는 강아지 스너피 Snuffy다. 갈색 털을 가진 스너피는 길을 잃은 아이를 찾아주거나 화재를 알리는 등 용감하고 똑똑한 모습을 보여준다.


날로 솟는 인기의 비결?!

미피의 고장인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에는 미피 뮤지엄이 있고 런던 디자인뮤지엄은 미피를 딕 브루너의 미니멀리즘 디자인 철학의 대표 사례로 소개해 이미 한차례 아이와 어른 모두를 위한 좋은 디자인으로 조명한 바 있다. 국내에서는 최근 몇 년 사이, 미피 캐릭터를 활용한 현지화 전략이 크게 성공을 거두며 급물살을 타고 있다. 서울과 부산, 경주, 제주 등지에 미피 테마 카페와 스토어를 열고, 지역만의 특색을 담은 로컬 에디션 굿즈를 선보였던 전략이 ‘빵’하고 터진 것. 제주에서는 제주를 대표하는 한라봉과 잠수복을 입은 해녀를 상징화한 제품이, 부산에서는 ‘부산 자갈치 에디션 키링’이 출시되어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올해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열린 ‘미피와 마법 우체통’ 전시도 인기가 높았다. ‘석굴암 미피 시리즈’로 대박을 친 경주 미피 스토어에서는 며칠 전 경주 명물인 찰보리빵을 모티프로 한 찰(쫄깃) 보리스빵과 인형이 포함한 굿즈 출시를 예고해 화제를 모았다. 말 그대로 보리스 곰 인형을 찰보리빵처럼 만든 한정판이라고. 지금 이 순간에도 거듭하여 진화하는 캐릭터라는 점이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토끼의 변신은 무죄

우리는 한없이 귀여운 존재에 열광하지만 이면에 숨어 있는 미학과 철학에도 반응한다. 미피를 사랑하는 이유는 단지 귀엽기만 한 토끼가 아니어서다. 요즘 세대에게는 ‘감정을 입힐 수 있는 조용한 친구’이자 ‘정서적 수호 부적’처럼 작동한다. 기쁨을 주는 존재를 일상 속에 들여놓는 손쉬운 방식이다. 특히 기분과 맥락에 따라 달리 해석되는 토끼의 무표정한 얼굴은 더 많은 감정을 품는다. 미피는 늘 같은 얼굴을 가진 듯 보이지만, 결코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색을 달리하고, 디자이너와 협업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변신을 거듭한다. 무표정한 얼굴 위 각자의 취향과 기분, 라이프스타일을 투사하며, 미피는 고정된 캐릭터가 아니라 사용자가 완성하는 열린 상징이 된다. 미피는 변하지 않는 얼굴로 시대마다 새롭게 읽히는, 동시대 취향의 거울과도 같다. 이처럼 ‘빈틈 있는 상징성’으로 다양한 세계관에 수월하게 융합되는 모습은 매번 새롭고 궁금하다. 타인의 시선과 해석이 넘쳐나는 시대에, 작은 토끼는 어떤 단어로도 해석되지 않는다. 나인체, 혹은 미피는 지금 우리에게도 유효한 이야기다. 아이 같은 순수함을 간직한 딕 브루너의 철학과, 세대와 문화를 초월해 포용하는 심플한 디자인의 힘이 크다. 70년을 지나 변함없이 우리 곁을 지킬 미피의 변신이 기대되는 이유다.


Credit

  • 사진
  • 미피 공식 인스타그램
  • 사진
  • 넷플릭스 공식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