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무심한 듯 정교한, 흐트러짐의 미학. '메시 걸' 트렌드는?

알고 보면 치밀한 계산이 숨어있다!

프로필 by 윤혜연 2025.08.30

PERFECTLY MESSY


겉으로는 흐트러져 보여도 속은 치밀하게 계산됐다. 무심한 듯 정교한, 새로운 패션 언어.


조니 뎁과 함께 있는 케이트 모스, 1994.

조니 뎁과 함께 있는 케이트 모스, 1994.

메시 걸은 게으른 스타일의 변명이 아니다. 불확실한 시대에 대한 패션적 대응이다. 계산된 무심함은 오히려 치밀한 자기 연출이며, 어지럽지만 중심을 잃지 않는 감각이야말로 이 트렌드의 핵심이다.


Dolce & Gabbana 2025 F/W

Dolce & Gabbana 2025 F/W

머리를 볶았다. 케이트 모스가 조니 뎁과 연애하던 시절, 그 레전드 사진에 또다시 꽂히고 말았다. 부스스한 게 매력이니 컬 크림은 바르지 않는다. 다만 머리를 감고 나서 어떻게 말리느냐가 관건이다.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배배 꼬고 주무르고 털며, 무심한 듯 정성스럽게 공을 들인다. 그렇다, 철저히 계산한 불완전함이다. 흐트러짐의 미학, ‘메시 걸(messy girl)’ 트렌드가 도래했다.


Chloé 2025 F/W

Chloé 2025 F/W

몇 달 전부터 메시 걸은 SNS와 거리에서 점점 존재감을 드러냈다. 미니멀하고 단정한 ‘클린 걸(clean girl)’의 정반대 미감. 이틀 묵은 듯 자연스러운 헤어, 번진 아이라이너, 헐렁한 빈티지 실루엣이 기본 공식이다. 2000년대 초반 인디슬리즈 스타일에 뿌리를 둔 만큼, 그 시절 아이콘 시에나 밀러, 알렉사 청, 클로이 세비니 룩이 오마주 대상이 된다. 오늘날의 아이리스 로, 빌리 아일리시, 찰리 XCX의 스타일 역시 꽤 영향력 있다. 파티가 끝난 다음 날 같은 바이브가 해방적으로 보이지만, 착각은 금물. 이 자유분방함은 완벽히 계산한 결과다. 그래서 ‘스타일화된 번아웃(Stylized Burnout)’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Prada 2025 F/W

Prada 2025 F/W

결국 메시 걸은 단순히 패션이 아니라 태도다. 완벽 대신 결점을 드러낸 솔직함, 그 결점을 스타일로 끌어올리는 전략. 포스트 팬데믹 이후 가속화한 SNS 피로감이 그 배경에 있다. 틱톡과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이 미니멀·심플·글로 업(glow up, 시간이 지나면서 외모나 자신감이 뚜렷하게 향상되는 자기 업그레이드 개념) 콘텐츠를 무차별 주입하자, 반대편의 무질서와 즉흥성이 오히려 차별화 포인트가 됐다. 여기에 세계적으로 이어진 선거, 전쟁 등 정치·경제적 불확실성과 기후 위기, 인플레이션이 빈티지·중고·재활용 패션을 가치 있는 소비로 부상시켰다. 완전하지 않은 스타일이 “언제든 변화를 맞이할 준비가 돼 있다”는 유동적 자아를 시각화하는 장치, 즉 패션적 언어가 된 셈이다. 2025 F/W 런웨이에도 역시 이 흐름이 등장했다. 끌로에, 프라다, 앤 드뮐미스터, 맥퀸은 부스스한 텍스처의 ‘침대 머리(bed-head)’ 스타일로 직관적인 메시 걸 무드를 더했고 코치, 콜리나 스트라다는 데미지드 티셔츠로 그런지한 매력을 살렸다. 겐조, 미우미우는 옷을 걸치다 만 듯한 스타일링을 과감히 제안했고 돌체앤가바나, 마크공은 그런지 티셔츠와 레이스 스커트, 슬립 드레스와 퍼 코트를 겹겹이 레이어드해 서로 다른 질감의 혼란 속에서 균형을 완성했다.


시에나 밀러, 2003.

시에나 밀러, 2003.

메시 걸은 게으른 스타일의 변명이 아니다. 불확실한 시대에 대한 패션적 대응이다. 계산된 무심함은 오히려 치밀한 자기 연출이며, 어지럽지만 중심을 잃지 않는 감각이야말로 이 트렌드의 핵심이다. 혼란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개성에 품을 들여 완성한 자유. 이 스타일은 어쩌면, 변화와 혼란 속에서도 자신을 또렷하게 그려내는 이 세대의 초상일지 모른다

Credit

  • 사진/ Getty Images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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