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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서관 투어 떠나볼까?

청운문학도서관, 구립구산동도서관마을, 서대문구립이진아기념도서관, 오동숲속도서관

프로필 by 안서경 2025.09.02

도서관은 매일 자란다


도서관에는 분명 보이지 않는 호흡기관이 있다. 도서는 수많은 타인의 손을 거쳐 지식을 퍼트리고 관은 그 자리에 있으나 매 순간, 매 계절 같은 모습을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조용한 숨을 불어넣는 것은 책과 그 공간을 찾는 우리다.




청운문학도서관

인왕산 자락 산책길에 유려한 기와집이 가지런하게 모여 있다. 숭례문 복원에 사용된 지붕 기와와 같은 방식으로 제작된 수제 기와, 돈의문 뉴타운 지역에서 철거된 한옥 기와 3천여 장을 재사용해 지은 종로구 최초의 한옥공공도서관 청운문학도서관이다. 여름을 지나 가을로 가는 계절을 상징하듯 선명하게 꽃을 맺은 배롱나무가 익숙한 한옥의 풍경에 색채를 더한다. 서서히 단풍과 은행이 산책로를 물들이다가 겨울이 되면 눈 덮인 고요함이, 봄이 되돌아오면 벚꽃과 튤립이 도서관 입구를 화려하게 장식한다. 사계절의 그림체가 다른 만큼 이곳의 하루도 변화무쌍하다. 이른 아침에는 주변 산책을 마친 중장년층이 커피 한 잔과 함께 창밖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고, 낮이 되면 어린이 열람실에 활기가 돈다. 해 질 무렵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자리를 채우고 나면 도서관의 하루가 차분하게 마무리된다. 또한 시원하게 떨어지는 폭포를 바라보며 독서를 즐길 수 있는 외떨어진 정자는 만인이 사랑하는 공간으로 밤낮없이 인파가 오간다. 청운문학도서관은 독서를 넘어 사색과 휴식을 누릴 수 있는 장소다.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 36길 40



구립구산동도서관마을

도서관에 ‘마을’이 붙는다. 도심과는 동떨어진 곳에 있을 것 같은 이름이지만 구립구산동도서관마을은 구산동의 수많은 주택 중 하나로 보일 정도로 주택가 정중앙에 위치한다. 그도 그럴 것이 8개의 필지 안에서 오래된 구옥은 철거하고 남은 3채의 빌라를 살려 이어 만든 도서관이다. 이곳은 자리만큼이나 은평구 주민의 삶과도 밀접하다. 주민 2천 명이 서명을 통해 도서관의 건립을 요구했고 주민참여예산 제도를 통해 예산을 모았다. 주민들이 직접 발표를 준비하고 열띤 경쟁을 거쳐 기반을 마련해 개관한 지 올해로 10년째. 도서관을 채운 모든 구성 요소에도 주민들의 의견이 철저하게 반영되어 있다. 공간은 빌라 세 개를 이어 만든 만큼 마치 놀이공원의 테마존 ‘도서의 집’을 체험하는 느낌이다. 방의 모양도 그대로 보존해 만화, 독립 서적 등 특수한 도서를 채워 놓았다. 집과 집 사이의 공간을 복도 형식으로 활용해 책을 진열한 대신 별개의 열람실은 없다. 새로운 건축물 사이로 보이는 빨간 벽돌과 회색 벽돌이 시간의 간극을 메우는 묘한 매개체가 된다. 모든 층을 둘러보고 나면 짧은 에세이를 읽은 것처럼 시간과 공간을 읽은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서울시 은평구 연서로13길 29-23


서대문구립이진아기념도서관

이진아는 누구일까? 위인의 이름이 붙은 기념관이나 문학관은 여럿 있지만 민간인의 이름으로 지어진 도서관은 이곳이 처음이다. 2003년 불의의 사고로 숨진 딸을 기리기 위해 아버지는 딸이 평소에 책을 좋아하던 것을 떠올리며 50억원을 기부해 도서관을 지었다. 건물을 짓는 데 사재를 보탰을 뿐 운영은 서대문구가 맡아 올해로 개관 20주년을 맞을 때까지 순항해오고 있다. 더 많은 자녀들이 책을 읽었으면 했던 바람은 하루 이용자 2천~3천 명을 웃도는 숫자로 이뤄졌다. 개관 이후 서서히 수립한 독서 동아리와 인문학 강의는 이곳을 대표하는 프로그램. 내실 있는 큐레이션과 그에 못지않은 외관 또한 이용객을 모으는 이유 중 하나다. 서대문형무소 옆 독립공원 안에 자리한 붉은 벽돌 건물이 주변과 조화롭다. 눈에 익은 회색빛 건물이 아닌 자연 안에 거리낌 없이 속한 몸체가 편안한 인상을 준다. 기둥으로 세워진 시원한 진입로, 건물 내부 천장의 창을 통해 쏟아져 내리는 빛, 통창으로 둘러싸인 열람실 너머로 보이는 푸른 전경이 이곳만의 무드를 이룬다. 기업인의 이름을 딴 최초의 기부형 공공도서관이 논란을 일으키는 시점에 서대문구립이진아기념도서관은 더욱 소중한 공간으로 다가온다.

서울시 서대문구 독립문공원길 80


오동숲속도서관

오동숲속도서관은 마치 산속 대피소처럼 있다. 근린공원 안 목재들을 돌보던 파쇄장이 도서관으로 변모했다. 철마다 베어낸 나무와 철거한 기물들을 방치하던 위험한 공간이 책을 읽고 쉬어 갈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해 의미가 깊다. 산행이나 산책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산속의 일부가 되기 위한 노력이 곳곳에 자리한다. 월곡산 정상을 바라보며 자연스럽게 이어진 회랑, 산세를 닮은 삼각 지붕을 얹은 단층 건물과 새가 부딪히지 않도록 붙인 조류충돌방지필름의 도트가 이 도서관의 특성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덕분에 자연 1열 뷰가 펼쳐진다. 편안한 1인 소파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독서할 수 있는 공간은 아침부터 이용객으로 붐빈다. 높은 천장으로부터 바닥까지 이어진 책장에는 얼기설기 책이 놓여 있고 그 사이를 빛이 통과한다. 책은 1만 권이 넘지 않도록 유지한다. 장서를 넘치게 가진 도서관은 이미 너무 많으므로. 대신 최신 도서와 보편적으로 널리 읽히는 도서는 잊지 않고 챙긴다. 누구나 편안하게 스치듯 지나치며 책을 마주할 수 있도록. 오동숲속도서관에서는 지식의 탐독보다는 공간의 가치를 찾는 일이 조금 더 어울린다.

서울시 성북구 화랑로13가길 110-10

Credit

  • 프리랜서 에디터/ 박의령
  • 사진/ 표기식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