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40주년을 맞아 프로젝트 전시를 연, 배우 틸다스윈튼과의 인터뷰
동료 창작자들과 함께해온 틸다스윈튼의 배우 여정부터 삶까지 모두 담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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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급진주의자, 틸다 스윈튼
현기증이 날 정도로 매혹적인 배우 틸다 스윈튼. 그가 데뷔 40주년을 맞이하여 암스테르담에서 전시 «ONGOING»을 열고 동명의 사진집을 출간했다. 끊임없이 예술을 재창조하는 천재적 미학자를 만나볼 기회다.
2024년 사진가 뤼디거 글라츠가 촬영한 틸다 스윈튼의 초상. Photo: Ruediger Glatz
지난해 2월, 제75회 베를린 국제영화제는 “영화라는 매체에 인간성, 연민, 지성, 유머와 스타일을 가득 담아낸” 틸다 스윈튼의 ‘경이로운’ 작품 세계를 기리며 공로상인 명예황금곰상을 수여하였다. 40여 년 동안 장르와 세대를 초월하며 할리우드에 팽배한 틀에 박힌 여성상을 전복시킨 그에게, 경이롭다는 수식은 역부족인 듯하다. 우아한 실루엣, 상아처럼 새하얀 피부에 커다란 녹색 눈. 카멜레온 같은 배우 틸다 스윈튼은 영감의 원천이자 판타지의 대상으로서, 대중을 매료시키고 자신도 모르게 패션 아이콘이 되었다. 감독 샐리 포터가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을 각색한 영화 <올란도>는 그의 초기 작품 중 하나로 1992년 배우로서 틸다 스윈튼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올란도>에서 그는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트랜스젠더 귀족으로 분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이 비범한 퍼포머를 보고 있으면 변신에 대한 깊은 환희, 원형을 포용하는 동시에 은밀히 전복하려는 열정을 엿볼 수 있다.
틸다 스윈튼의 새로운 프로젝트 «ONGOING»은 이를 명백히 증명한다. 2월 8일까지 암스테르담 아이 필름뮤지엄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다채로운 삶의 윤곽을 재구성한다. 그는 지나치게 단순하다고 여기는 ‘경력’이라는 용어 대신 ‘삶’이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이번 전시에는 영화, 예술, 패션 사이를 오가는 행보를 선보이며, 루카 구아다니노, 짐 자무시, 조애나 호그 등 감독들과의 깊은 우정을 드러내는 미공개 사진이 전시된다. 또한 회고전을 맞아 출판사 리졸리와 함께 기획한 서적이 출간되었다. 친구인 데릭 저먼의 독립영화를 통한 데뷔부터 영화의 고전과도 같은 감독들(데이비드 핀처, 코언 형제, 페드로 알모도바르, 웨스 앤더슨 등)과 협업하는 과정, 할리우드로의 일탈로 오스카상을 수상하는 데 이르기까지(<마이클 클레이튼>, 2007). 틸다 스윈튼은 자신의 능력을 예술적 헌신으로 표현해낼 뿐만 아니라 정치적, 개인적 신념을 관철하는 데에 활용할 줄 아는 배우다. 이를테면 도널드 트럼프를 신랄하게 비판한다거나 <The Maybe>라는 현대미술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식으로 말이다. 2013년 그는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일주일간 유리 큐브 안에서 하루 8시간씩 누워 지내며 세상을 떠난 친구들을 그만의 방식으로 추모한 적이 있다. 다음 인터뷰에서 틸다 스윈튼은 신중하게 선택한 언어로 예술, 아름다움, 삶에 대해 자유로운 대화를 이어간다.
2023년 덴마크 영상감독이자 사진가 캐스퍼 세예르센이 담은 틸다 스윈튼. Photo: Casper Sejersen
하퍼스 바자 데뷔 40주년을 맞아 암스테르담에서 회고전 «ONGOING»을 열며 동명의 책을 출간했습니다. ‘진행중’ 혹은 ‘지속적인’을 뜻하는 이 단어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틸다 스윈튼 ‘Ongoing’은 이번 프로젝트의 정신을 완벽하게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수십 년 동안 커리어를 통해 맺은 인연에 대한 제 나름의 찬사랄까요. 시간과 프로젝트의 흐름을 따라 변화하는 대화만큼 제게 생동감 가득하고 많은 영감을 주는 건 없습니다. 함께하는 모험에서 비롯한 신뢰와 기쁨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죠.
하퍼스 바자 처음엔 작가가 되고 싶어했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글을 쓰는 건 매우 고독한 활동이잖아요. 글쓰기에 대한 애정은 어디에서 비롯된 건가요?
틸다 스윈튼 단지 작가가 되고 싶다는 열정만 품은 게 아니라, 제 스스로는 이미 작가라 여겼어요. 제가 쓴 시로 케임브리지대학교에도 합격했고요. 하지만 지나치게 독서만 권장하는 환경 탓인지, 제 목소리를 잃을 만큼 압도되어 어느 순간 글쓰기를 중단했죠. 시는 항상 제 곁에 있는 존재였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고독을 즐기긴 했지만 절대 외롭지는 않았어요, 끊임없이 글을 썼으니까. 여러모로 지금의 저를 만든 건 단어들이라고 생각해요. 분명 이미지가 가진 힘도 있지만, 경험이나 감정을 공유하고 이를 통해 제 존재에 깊이를 더하기 위해 적절한 단어를 찾는 일이 즐거워요. 그 대상이 단순히 나 자신이라고 할지라도 말이죠. 연결과 사고는 그런 경험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글쓰기를 그만두었을 때, 마치 친구 한 명을 잃은 것 같았어요. 상실감을 안고 처음에는 별 감흥 없이 공연예술로 돌아섰죠. 대학 시절 연극인들에게 제안을 받아 함께 일하기 시작했고요. 연극 몇 편의 연출을 맡았고, 무대에도 올랐습니다. 딱히 관심이 가던 분야는 아니었지만, 의도치 않게 연극계에 발을 들인 후 몇 년간 뛰어들었죠. 그러다 데릭 저먼 감독을 만나 첫 영화를 찍고 연극계를 완전히 떠났습니다. 진정으로 제가 머물 곳은 영화라는 걸 깨달았거든요.
하퍼스 바자 하지만 당신은 영화배우로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잖아요?
틸다 스윈튼 맞아요. 스스로를 영화배우로 묘사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듣는 게 너무 어색해요. 배우들이 자신의 직업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저와 완전히 동떨어져 있어요. 제가 하는 일은 그 어떠한 기술이나 해석에도 의지하지 않습니다. 저에게 연기란 글쓰기의 한 형태입니다.
하퍼스 바자 특히 가깝게 느껴지는 예술적 표현방식이 있나요?
틸다 스윈튼 최근 들어 점점 더 춤을 통해 큰 자양분을 얻는다는 사실을 지각합니다. 동작의 강렬함, 침묵 속의 움직임은 제 안의 가장 깊은 곳을 건드려요.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연결이 될 수 있다니…. 빈 공간에서 형태를 만들어내기 위해 움직이는 신체의 순수한 헌신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어요. 말로 형언하기 힘들 정도로 큰 기쁨과 충만함을 주는 예술이라는 분야를 일일이 분리하기는 어렵습니다. 저는 평생 화가들과 어울려 지냈고, 영화는 오래전부터 제가 크나큰 열정을 가진 분야예요. 젊은 날을 함께한 동반자이기도 하고, 지금도 제 세상에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해주는 동시에 더 높은 차원으로 고양시켜 줍니다.
젊은 시절 만든 아티스트 라이선스. © Family Archive of Tilda Swinton
꿈을 꾼다는 것은 우리의 정신을 불편한 영역으로 밀어 넣어 더 강하게 만드는 겁니다.
하퍼스 바자 가장 존경하는 여배우는 누구인가요?
틸다 스윈튼 그레타 가르보와 델핀 세리그. 두 명이 떠오르네요. 이유는 비슷해요. 타고난 품위와 절제된 태도에서 우러나온, 자연스러운 진정성을 지니고 있어요. 그들은 본질만을 드러내고, 강렬한 지성을 뿜어내죠.
하퍼스 바자 작가주의 영화에서 이름을 떨친 두 분이네요. 당신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주로 독립영화 감독들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대중영화, 특히 할리우드에 진정한 매력을 느끼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틸다 스윈튼 먼저 저는 할리우드를 비롯해 영화의 다양한 형식적 측면에 항상 흥미를 가졌다는 사실을 명확히 하고 싶어요. 신뢰할 수 있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이들과 몇 차례 할리우드에서 협업한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하지만 맞아요. 제 작업의 핵심은 수많은 중간 매개를 걸치며 걸러지는 일 없이, 작업의 소유권을 온전히 감독이 차지하는 작가주의 영화가 대다수였죠. 제 필모그래피에서 대형 스튜디오가 제작한 ‘실험적인 영화’조차도 프란시스 로렌스, 데이비드 핀처, 앤드류 에이브러햄스, 토니 길로이, 스콧 데릭슨, 조지 밀러나 에드바르트 베르거와 같은 작가주의 성향이 짙은 감독들이 연출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산 규모와는 상관없이 작업의 본질은 동일하다고 볼 수 있죠. «ONGOING»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저는 가까운 이들과 작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안받는 프로젝트에서는 그 무엇보다 신뢰, 상호 존중, 그리고 공통의 호기심에 기반한 유대감을 우선시합니다. 운이 좋으면 그 유대감은 긴 대화로 이어지고, 그 대화는 창작을 통해 계속됩니다. 이를테면 나무 같은 거라고 할 수 있겠네요. 대화라는 줄기로부터 호기심이라는 가지가 뻗어 나가고, 그 에너지에서 영화라는 잎사귀가 피어나는 거죠.
1991년 동료 데릭 저먼이 연출한 영화 <에드워드 2세> 세트장에서 틸다 스윈튼. Photo: Jacqueline Lucas Palmer
하퍼스 바자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무엇인가요?
틸다 스윈튼 너무 많아서 다 말할 수 없어요! 하지만 기분이 안 좋을 때는 항상 위대한 고전을 찾곤 합니다. 오즈, 파솔리니, 루비치, 히치콕, 브레송, 샹탈 아케르만 그리고 친구인 조애나 호그, 페드로 알모도바르와 짐 자무시의 작품들도요. 아처스(마이클 파월과 에메릭 프레스버거)의 작품들도 정말 독특한 매력이 있어요. 그들의 영화는 현대적이며 일상의 삶과 밀접할 뿐 아니라 유머와 정치적 관점도 담고 있는 동시에 우리를 환상과 예술의 세계로 이끕니다. 어릴 적부터 이런 영화에 푹 빠졌었죠. <분홍신>을 처음 봤을 때 저는 8~9살이었어요. 그 이후로 계속 이 세계에 살고 있다고 볼 수 있죠. 낭만과 휴머니즘이 가득하며, 영적이고 아름다운 영화들은 마음과 정신을 모두 어루만져주죠. 제 아들이 같은 나이가 됐을 때, 앞서 말한 감독들의 영화를 보여줬고요.
하퍼스 바자 어느 날 아들에게 “엄마의 역할은 네 머리에서 꿈을 꺼내는 것이란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들었어요. 그러자 아들이 “엄마, 영화가 발명되기 전에 사람들의 꿈은 어떤 모습이었나요?”라고 되물었다죠.
틸다 스윈튼 제가 여태껏 들어본 질문 중, 인간의 삶과 의식을 이어주는 영화의 힘에 대한 가장 훌륭한 물음이었죠.
하퍼스 바자 «ONGOING»을 통해 짐 자무시 감독은 당신이 세상을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편지를 썼죠. 오늘날 세상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틸다 스윈튼 무수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큰 고통을 겪은 이들이 공동체, 공정함, 정의와 진보에 대해 굳건한 믿음을 유지하려는 움직임에서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일지도, 어쩌면 항상 필요한 일이었는지도 모르죠.
하퍼스 바자 당신의 친구이기도 한 데릭 저먼 감독은 “우리는 꿈의 세계에 살고 있으며, 그 세계는 불타는 자동차의 이미지로 점철되어 있는데, 이는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를 상징한다”고 말했죠. 그와 마찬가지로 꿈을 꾸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도 일종의 투쟁이라고 생각하나요?
틸다 스윈튼 꿈을 꾸는 행위는 여러모로 투쟁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성장을 위해 근육을 키우는 일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꿈을 꾼다는 건, 우리의 정신을 불편한 영역으로 밀어 넣어 더 강해지게 만들며, 두려움을 물리치고 고통을 잠재우는 일입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일은 우리의 상상력에 영양분을 공급하고 우리를 진화나 발전의 세계 같은 더욱 밝은 지평으로 이끌죠. 그 과정에서는 우리가 맞서고 이겨내야 할 관문들이 있고, 때로는 이를 불태워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1992년 영화감독 샐리 포터가 연출한 영화 <올란도>의 세트장에서. Photo: Jacqueline Lucas
하퍼스 바자 당신을 아름다움의 탐구로 이끄는 것은 무엇인가요?
틸다 스윈튼 W. H. 오든이 벤저민 브리튼에게 쓴 서신 중 제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구절이 하나 있어요. “선함과 아름다움은 질서와 혼돈, 보헤미안 정신과 부르주아적 관습 사이의 완벽한 균형의 결과물이다. 보헤미안적 혼돈은 아름다운 파편들의 무질서한 뒤엉킴을 낳을 뿐이며, 부르주아적 관습만으로는 광활하고 무감각한 시체밖에 얻을 수 없다.” 참으로 탁월한 통찰이죠. 한 번 받아들이면 두 번 다시 잊을 수 없어요. 이것이 바로 제가 이 여정을 통해 계속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원동력입니다. 우아함은 어려운 균형을 이룰 때만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내죠.
하퍼스 바자 피터 린드버그, 라이언 맥긴리, 마리오 소렌티, 유르겐 텔러, 파올로 로베르시, 크레이그 맥딘 등 일일이 나열할 수도 없이 많은 패션 사진계의 거장들이 당신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당신의 아름다움, 종종 ‘중성적’이라 묘사되는 본인의 외모의 힘을 언제 깨닫게 되었나요?
틸다 스윈튼 아름다움이 완전히 유동적인 개념이라는 사실을 깨우쳤을 때요. 퀴어함은 성적 지향에 국한되지 않아요. 무엇보다도 감수성과 공동체 의식의 문제죠. 유년 시절, 고립되어 있다고 느꼈던 시기에도 저는 항상 그렇게 스스로를 정의해왔어요.
하퍼스 바자 패션과 당신은 어떤 관계인가요?
틸다 스윈튼 솔직히 말해서 전 패션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어쩌다 보니 그 분야에 뛰어난 재능이 있는 디자이너, 포토그래퍼, 아트 디렉터와 예술가 친구들이 생겼죠. 결국 저와 패션의 관계는 제 친분으로 요약할 수 있겠네요. 어렸을 때 부모님이 저녁 모임에 참석하시던 기억이 나요. 어머니는 우아한 실크 드레스와 진주 주얼리를 갖춰 입으셨지만, 군인이셨던 아버지야말로 진정한 멋을 보여주신다고 생각했어요. 금색 훈장이 달린 정통 군복, 양옆에 빨간 스트라이프가 들어간 멋스러운 검은 바지, 그리고 수많은 훈장들까지. 멋, 그 자체라고 생각했어요. 좀 더 자라 대학생쯤 됐을 때, 수많은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빈티지 스토어에서 옷을 사 입었어요. 그러다 데릭과 함께 예술계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때 저는 26살이었는데, 엄밀히 말하면 성인이 되었지만 제 정체성은 아직 완성되기 전이었어요. 제가 느끼기에 요즘 청년 세대들은 단계를 건너뛰고 너무 빨리 성장하도록 강요받는 것 같아요. 저는 이런 정체성과 행동 방식, 세상에서 자리 잡는 법, 옷을 입고 스스로를 정의하는 단계의 탐구 과정을 순수함과 느림을 바탕으로 접근했어요.
데릭 저먼이 블루벨 숲 인근에서 슈퍼 8 필름으로 촬영한 영상의 스틸컷. © Derek Jarman, James Mackay
하퍼스 바자 일을 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요?
틸다 스윈튼 글을 써요.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동료들의 일을 도와줍니다. 공연 준비도 하고요. 해변가와 언덕을 거닐어요. 책도 읽고, 요리도 하고, 정원에서 채소를 키우고 꽃을 가꾸죠.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연인과 제 아이들, 반려견들을 안아줘요. 영화를 봐요. 수를 놓을 때도 있고요. 제 삶을 삽니다.
하퍼스 바자 그 삶이 꿈꾸던 모습에 부응하나요?
틸다 스윈튼 기대 이상으로요. 모든 상상을 뛰어넘었어요. 더 넓고, 더 높고, 더 길며, 무한히 풍요로운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죠.
하퍼스 바자 마지막 질문입니다. 당신에 대해서 사람들이 상상도 못하는 한 가지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틸다 스윈튼 제가 평행 주차를 얼마나 잘하는지일 것 같네요.
Credit
- 글/ Florine Delcourt
- 번역/ 이진명
- 사진/ Rizzoli 제공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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