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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리, 꽃처럼 피어나다.

올데이프로젝트 베일리의 생애 첫 단독 화보

프로필 by 손안나 2026.02.26

IN BLOOM


춤과 음악과 영감이 있는 여기서 베일리, 피어나다.


팬츠는 Enfants Riches Déprimés. 힐은 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톱은 Balenciaga. 스커트는 Oude Waag.


톱은 Junya Watanabe.


셔츠, 타이는 Grounds. 스타킹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하퍼스 바자 이번 화보의 목표는 안무가, 가수, 아티스트 베일리를 ‘꽃’이라는 오브제에 투영하는 것이었어요. 모델로서 화보 콘셉트를 어떻게 해석했나요?

베일리 어릴 때부터 저는 늘 댄서였고, 언제나 춤과 관련된 것들에 둘러싸여 살았죠. 나이가 들면서 깨달은 것은, 결국 제가 춤을 췄던 이유가 음악을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점이에요. 그래서 콘셉트 자체가 정말이지 저 자신이라고 느껴지더라고요. 꽃을 의인화한 것도 흥미로웠어요. 시각적으로 늘 그런 이미지를 떠올렸거든요. 배우고 성장하고 싶다는 마음이요. 데뷔를 위해 낯선 한국에 발을 디딘 것도 작은 씨앗을 심고 그것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는 일과 비슷한 것 같아요. 이번 화보와 닮았죠.

하퍼스 바자 본인의 정체성을 안무가와 가수 중 무엇이라고 규정하나요?

베일리 춤은 제 일부예요. 음악이 제 일부인 것처럼요. 음악을 듣지 않는 날이 없고, 음악을 들으면 춤을 추지 않을 수 없죠. 그래서 스스로를 댄서다, 가수다, 래퍼다 이렇게 구분해서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냥 한 사람이라고 느껴요. 제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제 이야기, 제 자신을 표현하려는 사람.

하퍼스 바자 춤은 텍스트 없이 움직임, 조명 등이 결합된 매우 시각적인 예술이죠. 그런데 당신은 청각을 다루는 음악가이기도 해요. 모든 감각에 예민할 수밖에 없겠어요.

베일리 춤은 감각을 아우르는 커다란 우산 같아요. 안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제 감각이 전부 열리기 시작한 듯해요. 어릴 때부터 색깔, 형태, 질감, 냄새, 소리 모든 것이 영감이 되었죠. “이 소리를 만지면 어떤 느낌일까?” “이 맛은 어떤 향일까?” 이런 식으로 서로 다른 감각을 춤의 형태로 빚어내고자 했어요. 지금은 그걸 음악의 형태로 옮기고 있는데, 두 개의 감각이 서로 교차하는 지점이 흥미로워요.

하퍼스 바자 요즘엔 어디에서 영감을 받나요?

베일리 요즘은 두려움과 취약함에서 영감을 받고 있어요. 불편한 상태에 스스로를 익숙하게 만드는 것, 그걸 의식적으로 연습하고 있는 중이에요. 일부러 낯선 상황에 저를 던져보기도 하고요.

하퍼스 바자 그 낯섦 안에는 한국 생활도 포함되는 거죠?

베일리 맞아요. 한국에 오기 전까지는 한국어를 거의 못했어요. 맙소사, 그 뿌리는 분명히 제 안에 있었는데 어릴 때 제대로 자라지 못한 거죠. 한국에 온 이유 중 하나는 저 자신을 다시 찾고 싶어서예요. 낯선 나라, 낯선 언어, 낯선 모든 것 속에서 내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 사람인지 찾아보는 과정이라고 할까요. 제 안에 있는 유산을 발견하고 동시에 저 자신에 대해서도 다시 배우는 중이에요.

하퍼스 바자 한국어는 어떻게 습득했어요? 특별한 학습법이 있었나요?

베일리 애니메이션 한국어 더빙판을 수십 번 돌려봤어요. <슈렉> 같은 애니메이션을 반복 시청하면서 대사를 통째로 외우곤 했죠. <슈렉>을 틀어놓고 혼자 집 안을 청소하면서 “폐하” 같은 단어를 연습하고 반복했어요. 돌이켜보니 그리 좋은 학습법은 아니었던 것 같네요.(웃음)

하퍼스 바자 특별히 좋아하는 한국어가 있나요?

베일리 ‘사랑’이라는 말이 진짜 너무 신기해요. 영어에서는 ‘I love you’를 가볍게 쓰잖아요. 그런데 한국어로 ‘사랑’은 조금 더 깊은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처음에 ‘Love you guys’의 의미로 “수고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 말하고 다녔어요. ‘제발’도 ‘Please’보다 무겁죠. 패스트푸드점에서 “프렌치프라이 하나 주세요, 제발” 그랬다니까요?(웃음)

하퍼스 바자 한국의 원로 무용가 안은미는 후배들에게 이런 말을 했대요. 무대에서 뭘 보여주려면 ‘모 아니면 도’지 중간은 없다고요. 공감하나요?

베일리 어렸을 때 첫 무대를 하고 내려와서 엄마에게 달려 갔던 것 같아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나 블랙아웃 됐어요.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 말하자면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일은 완전히 다른 무언가예요. 전부를 쏟아붓는 거니까요.

하퍼스 바자 음악도 그런가요?

베일리 랩과 노래를 시작하면서 알게 된 건, 그동안 저는 음악을 완전히 신체로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는 거예요. 그 감각이 여기(목)에서 턱 막혀 있었던 거죠. 그걸 목소리로 풀어내는 법을 배우는 건 전적으로 다른 과정이었어요. 음악을 듣는 법, 소리를 인식하는 법, 심지어 호흡 방식도 다시 배워야 했어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음악이 시작되면… 여전히 매번 블랙아웃이에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를 정도죠.

하퍼스 바자 가장 존경하는 무용가는 누구인가요?

베일리 마이클 잭슨이요. 잭슨 파이브 때부터 쭉. 그 솔직함과 비범함이 정말 존경스러워요. 마이클 잭슨의 다큐멘터리 <디스 이즈 잇>을 아직도 매년 다시 보거든요. 재밌는 건, 매번 감상이 달라요. 제가 댄서였을 때는 마이클 잭슨을 보고 ‘와, 저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움직이지?’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어떻게 저렇게 노래하지?’로 바뀌었더라고요. ‘세상에, 언젠가 나도 무대 위에 설 거야’. 그가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들고 있는 저를 상상하게 해줬어요. 예전엔 댄스 컨벤션에서 춤을 가르치기도 했는데 마이크를 손에 들고 수업을 해야 했죠. 그때마다 ‘이건 내 콘서트야’라며 노래하는 제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요. 비록 머릿속에서지만요.(웃음)


드레스, 힐은 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팬츠는 Enfants Riches Déprimés.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하퍼스 바자 데뷔 전부터 댄서로 유명했기 때문일까요? 가수로 데뷔하기 위해 얼마나 치열한 노력을 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아요. 억울하게 느껴지진 않아요?

베일리 그렇지 않아요. 춤을 춘 지는 20년이 넘었지만 보컬이나 랩 음악 쪽은 아직 아기 수준이거든요. 시차도 다 다르고, 여정도 다르죠. 그래서일까요? 저는 무대에서 보여지는 것 혹은 결과물보다 그걸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더 중요해요.

하퍼스 바자 설사 그 결과가 시원치 않더라도요?

베일리 어릴 때부터 모든 것에 완벽주의자였어요. 그런데 완벽이라는 건 사실 존재하지 않잖아요. 존재하지 않는 걸 향해 달려온 셈이죠. 결과물이 뭐가 됐든 아마 저는 절대 만족하지 못할 거예요. 그래서 제가 생각해낸 건, 저 자신을 끝까지 밀어붙이면서도 그 과정의 순간을 즐기는 거였어요. 저한테는 그게 결과예요. 요새 앤절라 덕워스의 <그릿(Grit)>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결국은 노력이 재능을 이긴다는 내용이에요. 저는 모든 게 한 지점에서 만나는 순간이 있다고 믿어요. 기회가 왔을 때 준비가 되어 있고, 충분히 노력해 왔고, 재능이라는 불꽃이 있을 때, 그 모든 게 맞물리는 순간에 비로소 위대한 사건이 벌어지는 것 같아요.

하퍼스 바자 만약 한국에 오지 않았다면 지금쯤 어떤 삶을 살고 있을 것 같아요?

베일리 연기를 하고 있을 수도 있고, 대학에서 뭔가를 배우고 있거나, 골프를 치고 있을 수도 있겠죠. 모르겠어요. 사실 한국에 오면서 제 마음가짐은 “이게 내 대학 생활이다”였어요. 한국에서의 연습생 생활이 대학에 입학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기숙사에 살고, 수업도 듣죠.

하퍼스 바자 2004년생다운 사소한 고민을 하나 들려 준다면요?

베일리 새 컵이 필요해요. 처음엔 접시며 컵이며 전부 다이소에서 아무거나 샀거든요. 대학 생활 중이니까요. 그런데 최근에 다 깨져버려서…. 엄마한테 전화해서 세상에서 제일 좋은 컵이 뭔지 물어봤죠. 프렌치 스타일? 모던 스타일? 아니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유니크한 디자인도 좋아요. 그렇게 일주일 내내 전 세계의 컵을 찾아보고 있답니다. 제가 원래 하나에 꽂히면 깊이 빠져드는 성격이에요.

하퍼스 바자 가끔 모자도 안 쓰고 돌아다니고 싶다거나 지하철을 타고 싶은 순간이 있나요?

베일리 아무래도 창작자니까 저한테는 그런 일상이 정말 중요하거든요. 카페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는 거요. 세상 속에서 사람들을 관찰하는 거죠. 가끔은 그 속에 숨어들기도 하고요. 한번은 네일을 받으러 갔는데 이름을 물어보시길래 전혀 다른 이름을 댔어요. 손가락을 맡기고 세 시간쯤 지났는데 조심스레 물어보시더라고요. “…아니죠?” 결국 안 통한 거죠.(웃음) 그래도 괜찮아요. 사람은 그냥 사람인 걸요. 저는 줄곧 무대 위든 아래이든 언제 어디에서든 진짜 자기 자신인 아티스트들을 동경해 왔어요. 좋든 나쁘든 그냥 자기 자신인 사람들이요. 저도 언젠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하퍼스 바자 대화 내내 ‘여정(journey)’이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는 걸 알고 있나요? 이 여정의 끝에는 무엇이 있기를 기대하나요?

베일리 끝이라는 게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예전에는 내가 해야 할 것들을 다 해냈고, 체크리스트를 하나씩 지워가며 이건 끝났고 저건 달성했고, 그런 식으로 목표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그 모든 게 저를 여기로 데려오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을 알게 되고, 음악을 배우고, 이 세계로 들어오기 위한 과정이었던 거죠. 그리고 이 여정이 끝나면 또 다른 여정이 시작될 거예요.

하퍼스 바자 어느덧 늦은 밤이네요. 이제 집으로 돌아가면 무얼 할 계획이에요?

베일리 지금이 몇 시죠? 밤 10시네요. 9시만 됐어도 회사에 돌아가서 연습을 좀 했을 텐데 늦었네요. 일단 집에 가서 샤워하고, 네일을 정리하고, 미국에 있는 부모님에게 전화할 거예요. 엄마가 “오늘 기분이 어때?”라고 물어보면, 무엇보다 영감을 많이 받았다고 말할 것 같아요. 그럼 엄마는 웃으시고 아마 이렇게 말씀하시겠죠. “물 많이 마시고. 너무 늦게 잠들지 말고.”(웃음). 저는 감각 기관이 예민한 사람인데, 오늘을 돌아보면 여러 가지 벅찬 감정을 느낀 것 같아요. 저의 첫 번째 단독 화보인 만큼 정말 행복하고 설레는데, 한편으론 무서운 면도 있었고, 긴장되는 순간도 있었어요. 감정의 롤러코스터였죠. 모르겠어요.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워요. 제 답변이 어려웠다면 죄송해요.

하퍼스 바자 언어로 표현할 수 없어서 춤이 있고 음악이 있는 거잖아요. 이 모든 대화를 글로 정리해야 하는 제가 할 말인진 모르겠지만.(웃음)

베일리 그래서 제가 사회적으로 서툰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제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법을 잘 몰랐거든요. 인생에서 큰 일이 생기면 음악을 아주 크게 틀고 춤추거나 소리를 질렀죠. 이런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건 제가 잘하는 일이 아닌 것 같아요. 저는 그냥, 춤을 춰요.


톱, 스커트는 Junya Watanabe. 슈즈는 Gianvito Rossi.


셔츠는 Celine. 스커트는 Courréges. 벨트는 Miu Miu. 스타킹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드레스, 힐은 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드레스, 힐은 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Credit

  • 사진/ 김희준
  • 헤어/ 박소연(우선)
  • 메이크업/ 김이나(우선)
  • 스타일리스트/ 최유미
  • 네일리스트/ 김나현(텐페인츠)
  • 어시스턴트/ 정지윤,신형진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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