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저튼’ 작가 숀다 라임스가 젊은 창작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스캔들’ ‘범죄의 재구성’ ‘그레이 아나토미’ 그리고 ‘브리저튼’까지. 숀다 라임스가 걸어온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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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을 존중하되, 관객에게 끌려가서는 안 돼요. 제가 집중해야 하는 건 언제나 이야기예요.
숀다 라임스는 도전할 때 가장 빛나는 사람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읽은 기사에서 영화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로스쿨 입학보다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선택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는 어려운 일일수록 매력적으로 느끼는 사람이다. “전 타고나기를 태평한 사람은 아니에요.”
<스캔들>의 케리 워싱턴.
집요함은 결국 완벽한 결실을 맺었다. 작가이자 프로듀서, 그리고 쇼 러너(시리즈물의 총괄 책임자)인 그는 지금 영상 콘텐츠 시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브리저튼> <스캔들> <범죄의 재구성>,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미국 최장수 의학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까지. 그의 회사 숀다랜드(Shondaland)는 문화적 현상을 만들어낸 작품들을 다수 배출했다. 2025년 에든버러 TV 페스티벌에서 첫 ‘펠로십 어워드(fellowship award)’를 받은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커피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라임스는 다정했고, 조금 수줍어 했지만 내면의 심지가 은근하게 드러나는 사람이었다. 현장에서는 단호하게 결정을 내리고, 회의실에서는 흔들림 없이 팀을 이끄는 모습이 단번에 그려졌다. 그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제가 만든 쇼 중에서 성공하지 않은 건 하나도 없어요.”
라임스의 창작 본능은 일찌감치 깨어 있었다. “저는 항상 이야기를 만들었어요. 대상이 부엌 찬장에 있는 통조림이든 인형이든 상관없었죠.” 그는 어린 시절, 상상으로 지어낸 이야기들을 녹음기에 담던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현실보다 제 머릿속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그레이 아나토미>의 엘렌 폼페오와 패트릭 뎀프시.
라임스는 여섯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줄곧 시카고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교수, 아버지는 대학 행정가로 두 분 모두 교육계에 종사했다. 학창 시절 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했던 경험은 가장 오랫동안 사랑 받은 그의 작품 <그레이 아나토미>의 씨앗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어린 시절을 가득 채운 건 두말할 것 없이 책이다. “유년기 대부분을 책과 함께 보냈어요. 집에 있는 모든 걸 다 읽었죠. 어렸을 때 부모님께서 읽고 싶은 건 무엇이든 읽어도 된다는 규칙을 세워 주셨던 기억이 나요. 그 규칙이 제 안에 어떤 가능성을 키워줬던 것 같아요.” 라임스는 어린 시절 도서관을 드나들던 추억을 떠올리며 웃었다. “도서관 사서가 빌릴 수 없는 책이라며 절 제지했던 기억이 나요. 당연한 반응이었죠. 여덟 살짜리가 <프랑스 중위의 여자>를 빌리려고 했으니까요.”
라임스가 소설가의 꿈을 키운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대사를 다루며 이야기를 움직이는 일에 매료된 건 영화학교에서 TV 대본 쓰기 수업을 듣고부터다. LA에서 수년간 프리랜서 작가로 버티던 라임스는 어느 순간, 모든 걸 포기하고 의대로 진학해 다시 처음부터 공부를 시작할지 고민할 정도로 지쳐 있었다. 그의 첫 대본이 팔린 건 딱 그 무렵이었다.
2024년, 산드라 오와 숀다 라임스.
미국 방송사 ABC가 시즌 중반에 편성할 의학 드라마를 찾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순간, 라임스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어떤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있었다. 대형 방송사에 직접 아이디어를 제안해야 했던 일은 당시 30대 초반이었던 그에게 너무나 큰 두려움이었다. “그땐 그 누구와도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어요. 종이만 바라보며 발표했고, 내내 손을 떨었죠. 누군가 끼어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고요.” 다행히도 그 무렵 평생 친구이자 사업 파트너가 될 프로듀서 벳시 비어스(Betsy Beers)를 만났다. 지금도 라임스가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짝이라 부르는 사람이다. 비어스에게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새 직장 출근을 앞둔 여자가 전날 밤 원 나이트를 할 리 없다”는 발언을 한 어느 방송사의 임원에게 주저하지 않고 맞받아친 것이다. (이 사건은 훗날 <그레이 아나토미> 파일럿 에피소드의 시작이 된다.) 라임스는 그때를 떠올리며 웃음 지었다. “아직도 비어스가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지만, 덕분에 모든 게 바뀌었어요.”
2005년 첫 방송 이후 폭발적인 성공을 거둔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는 숀다 라임스를 단숨에 히트메이커 반열에 올려놓았다. 2007년 스핀오프 시리즈 <프라이빗 프랙티스>가 공개됐고, 2012년에는 워싱턴 DC를 배경으로 한 정치 드라마 <스캔들>이 뒤를 이었다. 세 작품 모두 열렬한 팬층을 형성했다. 인기 캐릭터가 죽을 때마다 라임스에게는 살해 협박이 날아왔다.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관객을 존중하되, 관객에게 끌려가서는 안 되거든요. 팬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캐릭터가 행복하길 바라죠. 하지만 그것만이 작품의 핵심은 아니에요. 제가 집중해야 하는 건 언제나 이야기예요.”
성공이란 궤도 위에 안착한 듯 보였지만, 라임스는 또 한 번 새로운 도전을 갈망했다. 2017년, 그는 넷플릭스와 약 1억 달러 규모의 초대형 독점 계약을 체결했다. 이 선택으로 그는 지상파를 떠나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옮긴 초기 세대의 톱 쇼 러너 중 한 명이 되었다. 이는 단번에 업계의 흐름을 바꿔 놓은 상징적인 사건이기도 했다. 2021년에는 계약 범위가 장편 영화, 리얼리티 TV, 라이브 이벤트까지 확장되면서 숀다랜드는 명실상부한 미디어 제국으로 성장했다. 확정된 계약 규모만 약 3억 달러. 투자와 대중의 시선에서 오는 압박이 벅차게 느껴질 법도 하지만, 라임스는 그러한 압박조차 창작의 원동력으로 삼았다.
“우리 팀은 이미 지상파 드라마 제작의 달인이 되었음을 깨달았어요. 그렇다면 어디에서 도전거리를 찾을 수 있을까요?” 라임스가 말한다. 그는 한꺼번에 모든 에피소드를 공개하는 방식과, 불문율처럼 정해진 지상파 방송의 에피소드 길이에 얽매이지 않은 점이 숀다랜드의 제작 시스템을 완전히 바꿨다고 강조했다. “이제 이곳은 창작을 하기에 훨씬 유연한 공간이 된 느낌이에요.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어떤 것이 캐릭터에게 가장 좋은 선택일지, 곰곰이 고민할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이 생긴 거죠.”
“재밌는 건, 저는 어떤 일이든 이야기로 바꿔낼 수 있다는 거예요. 누군가 두 여자가 말다툼하는 장면을 봤다고 하면, 저는 곧바로 두 사람이 스파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죠.” 그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은 건, 내가 만들고 싶은 이야기가 곧 내가 보고 싶은 이야기라는 점이에요.”
<샬럿 왕비: 브리저튼 외전>의 인디아 아마르테이피오와 샘 클레메트.
<브리저튼> 시즌 4.
라임스가 만든 넷플릭스 드라마 중 하나인 <브리저튼>은 엄청난 성공을 거뒀고, 곧 시즌 4가 방영된다. 몸이 아파 호텔 방에 누워 있던 어느 날, 그는 우연히 줄리아 퀸(Julia Quinn)의 컬트 소설을 접했다. 그 방에서 읽을 수 있는 책은 그것뿐이었다. “사람들이 제가 그 책에서 봤을 것이라 생각하는 부분은 아마 실제와 다를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꽂힌 건 뜨겁고 요염한 로맨스 같은 게 아니라는 거죠. 제 눈에 <브리저튼>은 직장 드라마예요. 여성들이 자신의 운명을 통제할 권력이 전혀 없는 세계, 그들의 가치는 누구와 결혼하느냐에 달려 있죠. 결혼 시장이 곧 사무실이 되고, 모든 어머니들은 동료가 돼요.”
여러 면에서 <브리저튼>은 또 하나의 <그레이 아나토미>라 할 수 있다. 여성 주인공들에게 사무실 동료 같은 역할이 되어준 중년 여성 인물들이 작품 속에서 가장 입체적이고 사랑받는 캐릭터들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라임스가 이 여성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싶어 한 것도 전혀 놀랍지 않다. 레이디 바이올렛 브리저튼, 레이디 아가사 댄버리, 그리고 군주까지(그녀가 구상한 2023년 미니시리즈 스핀오프 <샬럿 왕비: 브리저튼 외전>의 인물). 그는 특히 이 작품을 두고 “내가 지금까지 쓴 것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고 말한다.
<브리저튼> 시즌 4의 하예린과 루크 톰슨.
<브리저튼>의 세계는 단숨에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출연진은 글로벌 스타가 되었다. 동시에 포용적인 캐스팅이라는 이유로 문화적 담론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라임스는 <브리저튼>을 둘러싼 이와 같은 논의들에 지쳐 있었다. 자신의 작품에 복잡하고 답답한 여성 캐릭터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는 평가를 들을 때와 비슷한 감정이었다. <스캔들>의 올리비아 포프부터, 2022년 공개된 넷플릭스 미니시리즈 <애나 만들기> 속 실제 사기꾼 애나 델비를 각색한 캐릭터까지 말이다. “여성을 있는 그대로 쓰는 것이 왜 저를 매혹시키는지 말로 설명할 수 없어요. 저는 여성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않고서는 쓰지 못하거든요. 이것이 TV에서는 새롭고 낯선 것으로 여겨진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은 솔직히 걱정스럽기까지 해요.” 그래서일까. 그의 다음 프로젝트는 우주를 배경으로 할지도 모른다. “정말, 진심으로 SF 드라마를 만들고 싶어요.” 라임스는 옅은 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
지난 20년 동안, 라임스는 창의적 역량을 인정받는 작가를 넘어, 할리우드에서 손꼽히는 여성 경영자이자 강력한 비즈니스 리더로 자리 잡았다. “집에서 혼자 TV 파일럿 프로그램 각본을 쓰던 제가 갑자기 300명의 팀을 이끌며 무엇을 하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지시하는 위치에 서게 된 거예요.” 사실 예민하고 늘 긴장 속에 살았던 젊은 시절의 라임스에게는 엄청난 도전이었다. 그는 <그레이 아나토미>를 두고 자신을 단단하게 만든 시련의 현장으로 회상한다. “그곳에서 전 리더가 되는 법을 배웠고 무엇이든 해야만 했어요. 능숙해지겠다고 결심해 내린 내 인생의 가장 적극적인 선택이었죠.”
말할 때 느껴지는 자신감과, 세트장에서 팀원들과 소통할 때의 차분한 태도를 볼 때, 라임스는 확실한 리더십을 갖춘 사람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수줍어 하는 태도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커리어 초창기 시절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어린 시절 작은 녹음기에 대고 자기 이야기를 읊던 소녀처럼, 여전히 혼자 글을 쓰고 모든 대사를 직접 연기하며 상상 속 장면을 구현한다.
저는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않고서는 여성에 대해 쓸 수 없어요. 이것이 TV에서는 새롭고 낯선 것으로 여겨진다는 사실이 부끄러울 뿐이죠.
숀다 라임스가 젊은 시절의 자신에게, 혹은 이제 막 발돋움하는 시나리오 작가들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의 핵심은 창작의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는 결국 재능에 달려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해요. 사람들이 당신에게 원하는 건 훌륭한 작품이고, 그걸 해낼 수 있다면 그 재능은 분명 당신을 저 먼 곳까지 데려다 줄 거예요.” <브리저튼> 시즌 4 파트 1은 1월 29일, 파트 2는 2월 26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다.
Credit
- 글/ MARIE-CLAIRE CHAPPET
- 사진/ Liam Daniel,Netflix,Abc/Moviestilldb,Getty Images,PAUL RE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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