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질샌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시모네 벨로티의 속내는?

그간 말하지 못했던 솔직한 심경을 <하퍼스 바자>를 통해 말하다.

프로필 by 이진선 2026.04.27

THE QUIET REBEL


질 샌더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시모네 벨로티(Simone Bellotti)가 전하는 내밀한 기록과 차마 밝힐 수 없었던 고백들.


질 샌더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시모네 벨로티.

질 샌더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시모네 벨로티.

창작자와 작품이 항상, 그리고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 사람이 풍기는 오라와 스타일은 그의 진짜 세계와 미학을 유추할 수 있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올해로 48세가 된 시모네 벨로티는 클래식하면서도 어딘가 투박한 신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옷에 대해 잘 알고 있으나 과하게 꾸미지 않는, 복잡하고 정교한 스타일이다. 그는 보통 가죽 재킷에 셰틀랜드 울 스웨터(이너로는 셔츠 대신 티셔츠를 받쳐 입는다)를 입고, 스키니 진이 아닌 다림질된 청바지를 매치한다. 특히 청바지는 하이웨이스트 디자인에 벨트를 더해 마치 정장 바지처럼 착용하는데, 그 때문인지 청바지 특유의 자유분방함은 철저히 배제된 느낌이다. 신발은 가죽으로, 튼튼하지만 청키하지 않은 스타일을 선호한다. 마지막으로 그의 존재감을 더 강하고 깊게 하는 건 약간은 자극적인 시가릴로(cigarillo, 작은 시가) 향. 이는 대화를 유도하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시선을 사로잡는 짧은 스트로베리 블론드(strawberry blonde) 헤어, 같은 컬러의 속눈썹과 눈썹을 가진 그를 보고 있노라면 와이너리의 소유주나 질 좋은 올리브유를 생산하는 농장주가 떠오른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견고함 속에 반란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서두르지 않고, 찬찬히 들여다보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모든 것이 우연인 것처럼 보이고, 내가 입는 옷이 평범해 보이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그 속엔 거의 집착에 가까운 세심한 연구가 있다는 것입니다.” 시모네 벨로티가 말한다. “아르헨티나에서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냈는데 짐이 분실됐었죠. 아무 옷이나 구해서 입어야 했는데, 정말 악몽이었어요.” 시모네 벨로티의 작업물 역시 이와 비슷하다. 의심할 여지 없는 절제미 속에 상당히 비틀린 구석이 있으며, 시간을 들여 가까이서 보아야만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질 샌더와 완벽하게 어울리는 이유다.

2023년 3월 28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선임된 후, 세대교체의 서막이 한창이던 그해 봄, ‘숭고한 절제미의 하우스’라 불리는 질 샌더의 밀라노 본사에 발을 들인 시모네 벨로티가 가장 먼저 물은 것은 “창립자의 방이 어디인가”였다. 과거 질 샌더 여사가 브랜드를 이끌던 시절, 그녀는 모든 것이 시작된 함부르크와 밀라노를 오가며 작업했다. 그녀의 방은 가벨리니 셰퍼드 어소시에이츠(Gabellini Sheppard Associates)가 1990년대 후반에 설계한, 과거 영화관이었던 웅장하고도 기품 있는 건물 내의 작은 사무실이었다.(다른 채광 좋은 방들과 비교하면 거의 창고라 할 만큼 비좁고 난방조차 되지 않는 불규칙한 구조였다.) 참고로 이 건축 프로젝트는 25년이 지난 지금도 현대성을 조금도 잃지 않았는데, 이는 극한의 순수함과 덜어냄의 미학이 시간의 상징적 마모를 어떻게 피해 가는지를 증명한다.

여사의 이 작은 방은 미니멀했으나, 도시를 내려다볼 수 있는 테라스 덕분에 시야만큼은 최대한으로 열려 있었다. 이 전초기지에 서면 왼쪽으로는 붉고 웅장한 스포르체스코 성(Castello Sforzesco)이 선명하게 보이고, 발아래로는 보행자 전용 거리가 펼쳐진다. 당시에는 CEO가 사용하던 방이었으나 인계 작업은 즉시 이루어졌다. 그는 “스포르체스코 성의 역사성과 쇼룸의 절대적인 현대성이 대조를 이루는 모습에서 내가 가야 할 길을 즉각적으로 발견했다”고 말하며, 그 방을 자신의 모습과 닮게 변모시켰다. 특히 테라스는 그의 ‘생각하는 방’이 되었다. 시가릴로를 태우며 필터 없는 날것의 대화를 나누는 장소 말이다. 그곳에서 나누는 이야기는 모두 ‘오프더레코드’이며, 냉소적이고도 날카로운 통찰이 오간다. 반면 실내는 공식적인 업무를 위한 공간이다. 책과 서류, 메모로 가득하며 두 벽면을 꽉 채운 행어에는 리서치용 샘플과 개인 소장 의상, 그리고 벨로티가 수년간 작업하며 영감과 위안을 얻기 위해 곁에 두는 아카이브로 가득하다. 수많은 우회로를 거쳐온 그의 커리어는 이 물건들 속에 응축되어 있으며, 언제든 새로운 모습으로 재해석될 준비가 된 채 살아 숨 쉬고 있다. 안트베르펜의 A.F. 반더보스트(A.F.Vandevorst)에서 시작된 그의 여정은 프리다 지아니니와 알레산드로 미켈레 시대의 구찌에서 보낸 10년으로 이어졌고, 그 전후로 지안프랑코 페레, 돌체앤가바나, 보테가 베네타를 거쳤다. 그리고 마침내 조력자가 아닌 리더로서 발리(Bally)에서 눈부신 한때를 보냈다. 유서 깊은 스위스 브랜드의 뿌리를 엄격하면서도 독창적으로 해석해낸 당시의 작업은 벨로티가 가진 작가적 역량을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그러나 아주 명징하게 세상에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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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8일, 목요일 늦은 오후. 시모네 벨로티와의 만남은 작은 테라스에서 시작되었는데, 그 자리에서 오고 간 패션 시스템과 특유의 습성에 대한 그의 논평은 씁쓸할 정도로 날카롭고 명쾌했다. 이후의 이야기는 질 샌더 여사가 사용했던 작은 방에서 이루어졌다. 그 방은 이전보다 옷들로 더욱 빽빽하게 들어찬 듯 보였다. 지난번 만남은 그의 데뷔 쇼를 불과 몇 분 앞둔 작년 9월 24일이었다. 당시 그는 질 샌더 본사를 쇼의 무대로 선택하며, 브랜드의 재건 의지를 분명히 드러낸 바 있다. 그는 현재 진행 중인 패션계의 ‘빅뱅’, 즉 너무나 전면적이고 오랫동안 고대해 왔기에 때로는 역설적으로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거대한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 “모든 것이 변하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이 변한다.” 그는 소설 <표범(Il Gattopardo)>의 구절을 인용하며 겸손하게 말했다. “제가 새로운 물결(New Wave)의 일원인지는 모르겠지만, 2022년 발리에서의 첫 쇼와 함께 시작된 개인적인 큰 변화를 체감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 순간 패션계는 눈부신 재능을 가진 이 무명 인사의 등장에 술렁였다. 이것이 바로 패션의 묘미가 아닐까. 온갖 회의론 속에서도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예고 없이 우리를 놀라게 하니 말이다. “항상 남성복 컬렉션과 액세서리 작업을 해왔어요. 발리는 저의 비전을 360도로 펼쳐 보인 첫 시험대였고, 이제 그 경험을 이곳 질 샌더에서 확장해 나가고 있죠. 저는 전설적인 언어, 즉 모두가 저마다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하우스와 마주하고 있습니다. 항상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은 마음속에 큰 불안과 동요를 일으키곤 하지요.” 하지만 그런 내면의 갈등은 겉으로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모든 면에서 발신하는 메시지는 극도의 차분함과 집중력에 가깝다.

더 나아가 시모네 벨로티의 스타일은 단호하고 타협이 없다. 그것은 깊은 사유와 끊임없는 성찰, 그리고 광범위한 탐구에서 비롯되지만, 일단 하나로 응축되면 결코 주저하는 법이 없다. 활기차면서도 명료하다. 그는 적어도 초기에는 질 샌더 여사의 궤적을 따르기로 선택했는데, 지극히 낭만적이고 장식적이었던 최근의 과거와 거리를 두는 대신 브랜드 초기 특유의 건조한 ‘에토스(ethos, 정신)’를 되찾으려 한 것이다. “처음부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개인적인 표식을 더하면서 동시에 덜어내는 것이 가능할까? 덜어내는 것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할까? 솔직함을 택할 것인가 정교함을 택할 것인가, 겹칠 것인가 없앨 것인가, 완벽하게 다듬을 것인가 아니면 미완의 상태로 남길 것인가’와 같은 것들이죠. 아마 저는 너무 정통적인 방식으로 답했을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제가 받은 비판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는 ‘백지상태’가 필요했습니다.” 시모네 벨로티의 질 샌더는 사실상 ‘미니멀리즘’이라 불리는 것(비록 불완전하고 축약적인 표현일지라도)의 재제안이라 할 수 있다. 불필요한 것을 덜어냄으로써 힘을 더하고, 관습적인 장식을 배제하며, 디자인의 완벽함에 집중해 이를 소재의 촉감으로 승화시키는 언어. 북유럽의 윤리가 보편적인 미학으로 변모한 셈이다.

하지만 질 샌더나 헬무트 랭, 그리고 그보다 앞선 로메오 질리가 ‘과잉’에 대한 해독제로 ‘덜어냄’을 제안하고, 과도함을 교정하는 백지상태 대신 침묵을 선택했던 1990년대와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지난 30년 동안 미니멀리즘은 조용한 반항에서 하나의 관습이 되었고, 코스(Cos)나 자라(Zara) 같은 접근 가능한 브랜드들을 통해 모두에게 확산되었다. 이러한 피할 수 없는 진화는 사실상 ‘완전한 단순함’이 가졌던 급진성을 무력화시켜 이를 ‘단순지상주의’로 변질시켰다. 순수함은 ‘심플함(basic)’으로 전락했고, 미니멀에 내재된 강력한 도덕적 원칙은 그 힘을 잃고 평범해졌다. 물론 벨로티 역시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군더더기 없는 언어를 선택하는 것은 분명 큰 도전이에요. 하지만 이는 저로 하여금 아이디어와 해결책을 개발하고, 독보적인 소재 및 사유에 대한 탐구를 지속하게 해줍니다. 오늘날 지배적인 빠르고 피상적인 읽기 방식에서는 놓치기 쉬운 작업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저는 매우 단순해 보이는 무언가를 통해 아주 많은 것을 말할 수 있다고 믿어요. 물론 모든 것이 이미 본 것처럼 보여서 그 중요성이 희석될 위험도 분명 존재하죠. 하지만 저는 고집이 셉니다. 시간을 들여 사물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열망을 품으며, 호기심을 찾아내게 만드는 그런 과정을 위해 헌신하고 싶습니다.”

시모네 벨로티의 퓨처리즘은 전율이 흐르듯 강렬하다. 절제된 태도로 감싸여 있지만, 완벽한 표면 아래 억눌린 에로틱한 떨림이 있다. 그의 비전은 엄격함과 가벼움, 우아함과 엄숙함, 통제와 자유라는 상반된 요소의 대화로 채워진다. 신체는 은근히 비치며 슬며시 모습이 드러나고, 압축된 강력한 관능미를 내비친다. “저의 생각은 브랜드를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는 것입니다. 정체성이란 결국 모순들의 조화라는 점을 인정하면서 말이죠.” 그가 말했다. 벨로티가 이러한 대비를 결정적인 요소로 느끼는 것은 단순히 번뜩이는 천재성 때문이 아니라, 질 샌더의 ‘지니어스 로키(Genius Loci, 장소의 혼)’에 내재된 속성으로 보기 때문이다. 질 샌더 정체성의 가장 본질적인 자취는 이야기가 시작된 도시, 함부르크에서 찾을 수 있다. 운하와 귀족의 대저택, 그리고 역사적으로 세계로 통하는 관문이자 국제 무역의 중심지였던 엘베강 항구를 품은 이 도시는 모순적이면서도 조화로운 이중적인 층위 위에 존재한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그 아래나 이면에 감춰진 본질과 일치하지 않는다. 정숙한 태도 안에는 뜨거운 고동이 숨어 있다. 벨로티는 자신만의 질 샌더를 구축하며 함부르크를 깊이 고찰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여정의 첫 행보를 이 도시에서 시작했다. 바로 보훔 벨트(Bochum Welt)의 일렉트로닉 음악이 담긴 EP(Extended Play)를 발표하고,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미국인 친구(L’amico Americano)>를 연상케 하는 영상을 함부르크에서 촬영한 것이다. 이는 일종의 ‘선언문’으로서, 그 정지된 듯한 미학 속에 효과적인 메시지를 담아냈다. “새로운 틀을 만들기 위해 꼭 필요했던 그 프로젝트는 하우스의 기원에 대한 헌사로 시작되었죠. 함부르크는 안트베르펜처럼 전형적인 북유럽의 정서 속에 다층적인 면모와 모순을 압축하고 있습니다. 매우 부르주아적인 우아함과 동시에 산업적이고, 언더그라운드적이며, 어쩌면 조금은 거친 이면이 공존한다는 점이 저를 매료시켰어요. 이는 단순히 도시를 정의하는 범위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덜어내는 것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할까? 솔직함을 택할 것인가 정교함을 택할 것인가, 겹칠 것인가 없앨 것인가, 완벽하게 다듬을 것인가 아니면 미완의 상태로 남길 것인가.


패션 하우스에서 뮤직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것은 언뜻 무모한 도박이나 지나치게 추상적인 시도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벨로티의 결과물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그것이 진심 어린, 즉 깊고 개인적인 동기에서 우러나온 결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모네 벨로티는 하이파이 시스템(Hi-Fi system, 원음에 가깝게 왜곡을 최소화해 고음질로 재생하는 오디오 장비 구성)과 음악에 정통한 열혈 애호가이며, 이를 통해 창조적 열정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많은 철학이 내면의 아이를 돌보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것이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성장하면서 우리는 수만 가지 요인에 오염되고 영향을 받으며,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때 가졌던 그 ‘자유로운 해석의 정신’을 잃어버리곤 하니까요. 그 은총의 상태와 다시 연결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때가 우리 삶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기 때문이죠. 음악에 대한 나의 열정, 그리고 특정한 방식으로 음악을 감상하는 행위는 압박감을 덜어줍니다. 보이지 않는 무형의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강력한 기억과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힘을 가졌다는 점이 가장 좋아요. 마법 같은 구석이 있죠. 우리가 만드는 옷과 달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좋든 나쁘든, 슬프든 기쁘든 우리를 삶의 수많은 순간과 연결해 주니까요.”

벨로티에게 음악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그가 구축 중인 미학적 코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그의 스타일적 원형은 1990년대 이탈리아에서 중요한 사교의 장이었던 클러빙(clubbing) 서브컬처를 통해 형성되었다. 당시 클러버들은 전형적인 하위문화와 달리 매우 유연하고 변화무쌍한 규범을 가졌었다. 유일한 불문율은 전위적인 디자이너들에 대해 해박해야 한다는 것뿐이었고, 나머지는 자유로웠다. “패션에 대한 열정은 볼로냐, 리초네, 그리고 로마냐 해안가 전역의 클럽을 드나들기 시작했던 격동의 청소년기에 시작되었어요. 그곳엔 지극히 흥미롭고 극도로 기괴하면서도 훌륭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들은 장 폴 고티에, 비비안 웨스트우드, 초기 헬무트 랭과 마르지엘라, 돌체앤가바나 그리고 금속 장식이 달린 놀라운 신발을 선보였던 비켐버그(Bikkembergs)를 신고 있었죠. 멋진 점은 휴대폰이나 빠른 통신 수단이 없던 시절임에도 밀라노, 토리노, 베네치아, 나폴리, 로마 등 이탈리아 전역에서 그 문화에 매료되어 동일한 패션 취향을 공유하려 모였다는 사실입니다. 반면 제가 살던 브리안차(Brianza)에서는 셔츠를 입지 않으면 문 앞에서 제지 당하곤 했어요. 저는 제 헬무트 랭 스웨터를 무척 자랑스러워 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고, 그런 일이 생길 때마다 고통스러웠죠. 제가 2001년에 안트베르펜으로 도망치듯 떠난 건 우연이 아닙니다. 그곳에서 나오는 모든 것이 저에겐 아름다웠고, 강한 동질감을 느꼈거든요.” 그 이후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질 샌더의 새로운 역사로 이어지고 있다.

시모네 벨로티의 현재는 짧든 길든 매 순간 강렬했던 여러 경험과 머무름의 산물이다. “저는 항상 높은 수준의 자기 표현을 하는 사람들과 일할 수 있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그것이 지금 제가 하는 일에도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고 있죠. 안트베르펜에서는 적기에 적소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것이 제 시작을 도왔습니다. 이후 지안 프랑코 페레와 도메니코 돌체 같은 거장들을 보좌했고, 구찌에서는 프리다 지아니니 및 알레산드로 미켈레와 합을 맞췄습니다. 이토록 강렬한 이들과의 대화는 저의 비전을 정교하게 다듬는 계기가 되었죠.” 이 여정에서 중요한 대목은 ‘이탈리아적 기질(Italianit‵a)’이다. 벨로티는 오늘날에도 이 개념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는다. “우리 이탈리아인들은 무엇보다 퀄리티에 대한 집요함을 가졌습니다. 또한 패션에 대해 개념이나 추상에 매몰되기보다 훨씬 구체적인 방식으로 접근하죠. 많은 이들이 우리를 ‘상업적’이라고 비난하곤 하지만, 사실 그것은 매우 유용한 자질이에요.” 그러나 오늘날 벨로티가 속한 세대는 과거 ‘이탤리언 스타일’의 창립자들처럼 홀로 모험을 떠나기엔 너무나 위험한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게 허용된 유일한 표현의 가능성은 하우스의 기존 코드를 해석하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앞으로 나아가는 것. 이 맥락에서 개인의 시그너처를 개발하는 과정은 질 샌더라는, 무형이기에 더욱 위압적인(이제는 그녀가 디자인에 직접 관여하지 않지만, 그녀가 남긴 유산은 하우스 곳곳에 공기처럼 존재하므로) ‘부모 같은 존재’와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산파술’과도 같다. 즉 산파가 아이의 탄생을 돕듯 질 샌더라는 엄격한 틀 안에서 그 코드와 치열하게 대화 혹은 대결하며, 그 안에서 자신의 진정한 목소리를 찾아내는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이다. “특정한 언어를 가진 브랜드에서 일한다는 것은, 타인을 위해 일하면서도 동시에 나라는 사람을 투영하여 자신만의 방식을 창조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물론 외부 세계의 냉혹한 감시를 받아야 하지만, 그건 또 다른 이야기죠. 오늘날 모두가 브랜드의 코드가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옳은지 다 안다고 믿습니다. 세상 밖에는 수많은 비평가와 사이비 비평가, 전지전능한 논평가들이 줄을 서 있으니까요.”

창작자에게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비평가들의 무자비한 집중 포화, 즉 흔히 개인적인 이유나 권력 과시를 위해 가해지는 반복적인 공격을 견뎌내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작업에 몰두하기 어렵고, 비전의 명료함도 흐려지기 쉽다. 동시대 디자이너들의 기개가 부족하다고 비판하기는 쉽겠지만, 창작 과정에 개입하는 목소리가 지금처럼 많고 소란스러웠던 적은 없었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결국 개인이라는 필터를 거치기에 지극히 주관적이죠. 절대주의자가 되는 것은 늘 위험해요. 저는 지나치게 확신에 찬 성명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대신 깊이 있고 건설적인 비평을 존중하죠. 비평이 그저 슬로건으로 전락하면 본질을 흐리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런 혼돈 속에서 오염되지 않고 자신을 지키며 창조해 나가는 비결은 무엇일까? “모르겠습니다. 때로는 굴복하기도 하고, 때로는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로 맞서기도 하죠. 너무 많은 목소리를 듣는 것은 혼란을 초래하니까요. 어느 시점이 되면 거리를 두고 한 걸음 물러나, 주변에서 소용돌이치는 모든 것과 격리된 채 오직 자신의 작업에만 집중하는 능력이 중요해져요. 나이와 경험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되더군요. 스무 살 때는 공포로 다가왔던 일들이 이제는 일상이 되었지만, 또 다른 불안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압박은 엄청나고, 세상은 즉각적인 성공을 요구하죠. 유일한 구제책은 진정성 있고 확신에 찬 방식으로 묵묵히 일하는 것뿐입니다.”

시모네 벨로티는 자신의 실력과 비전에 대해 누구보다 당당하고 단호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기 생각만 옳다고 우기는 독불장군 스타일은 아니다. 그는 원칙과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를 기꺼이 재검토할 준비가 되어 있다. 자유롭고 절제된 태도는 결국 아이디어를 현실로, 비전을 실체로 바꾸는 데 있어 ‘타협의 기술’이 중요하다는 깨달음과 궤를 같이한다. “타협은 언제나 필요해요. 모든 이의 말을 경청하되, 결국 자기 자신을 믿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밀고 나가야 합니다.” 인터뷰를 시작한 지 정확히 한 시간이 흘렀다. 다시 시가릴로를 입에 물 시간. 그와 테라스에 나가 차마 기록으론 남길 수 없는 내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Credit

  • 글/ Angelo Flaccavento
  • 번역/ 정다희(밀라노 통신원)
  • 사진/ Ned Rogers(포트레이트), Launchmetrics(런웨이)
  • 그루밍/ Kyoko Kishita(at Home)
  • 프로덕션/ AP Studio, Inc.
  • 프로듀서/ Marie Godeau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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