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트레이시 에민이 런던 개인전에서 보여주는 날 것의 삶

암 투병과 팬데믹을 겪으며 두 번째 삶이 시작되었다. 테이트 모던 관장과 트레이시 에민이 나눈 대화.

프로필 by 정지윤 2026.06.05

Art in her Blood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의 창의력은 본능에 가깝다. 내밀한 영역을 날것으로 드러내는 삶을 살아온 그의 개인전이 런던 테이트 모던에서 열리고 있다. 에민의 친구이자 테이트 모던 관장 마리아 발쇼(Maria Balshaw)가 그와 나눈 대화.


Tracey Emin, <The End of Love>, 2024, Tate © Tracey Emin. All rights reserved, DACS 2026.

Tracey Emin, <The End of Love>, 2024, Tate © Tracey Emin. All rights reserved, DACS 2026.

트레이시 에민의 작품은 예술의 경계를 넘어서는 힘이 있다. 1990년대 중반, 그는 여성의 개인사가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주장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런던의 젊은 예술가 중 한 명으로 떠올랐다. 대다수는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20대 여성의 일상적이고 혼돈한 삶을 담은 <My Bed>에는 ‘이것이 어떻게 예술인가?’ 하는 비난이 따라붙었다. 지금보다 여성 혐오가 훨씬 더 심했던 시대에 자유분방한 삶을 공개적으로 펼쳐 보인 트레이시 에민이 유명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다.

나는 트레이시보다 일곱 살 어리다. 예술계에서 롤모델을 찾던 어린 시절, 1997년 영국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서 열린 단체전 «Sensation»을 보고 느낀 설렘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곳에는 <Everyone I Have Ever Slept With 1963-1995>가 전시되어 있었다. 작품을 보며 처음으로 그런 공간에 발을 들여놓고 싶다고 생각했다. <My Bed>는 1999년 테이트 브리튼에서 열린 터너상 전시 출품작이다. 섹스, 음주, 월경과 같은 경험을 여과 없이 고상한 미술관에 놓아둔 그 작품은, 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전시작 중 가장 크게 주목받았다. 그때는 스타가 아닌 친구로 트레이시를 알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 우리가 처음 만난 건 2007년, 트레이시가 영국 대표로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가한 해였다. 당시 맨체스터 휘트워스 미술관 관장이었던 나는 동료 큐레이터인 메리 그리피스와 함께 에민의 집에 방문했다. 그의 모노 프린트 연작을 확보하기 위해 예산을 마련해둔 상태였다. 내밀한 주제를 종이 위에 거칠게 표현한 이 연작은 트레이시 작업의 본질을 담고 있는 작품들이다. 우린 그 연작을 반드시 대중에게 선보이고 싶었다. 이때 시작된 우정은 10년 후 내가 테이트 모던에 부임하며 더욱 깊어졌다. 트레이시는 미술관이 예술가들에게 무엇을 제공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려주었다. 그들은 공공 미술관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며, 작가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다는 느낌을 받고 싶어 한다고 말이다. 트레이시가 고향인 잉글랜드 마게이트로 이사하고 나서 우리는 더 가까워졌다. 나 역시 그와 같은 켄트 주에 사는 데다 둘 다 바다 수영을 즐기기 때문이다. 트레이시의 삶은 2020년 방광암을 겪으며 크게 바뀌었다. 죽음의 문턱까지 이끈 그 병으로 인해 배변 주머니까지 달게 되었지만 강인한 의지와 직업 정신은 사라지지 않았다. 특히 마게이트의 예술가 생태계를 후원하며 많은 일을 해내는 모습에 나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 전시 «Tracey Emin: A Second Life»를 열기까지 트레이시를 오랜 기간 설득해야 했다. 우선 그는 회고전에 매우 회의적이었다. 첫 마디가 “그런 건 내가 죽으면 그때나 해”였다. 하지만 트레이시는 100세까지 살 것 같은 사람이기에 그때쯤이면 내가 관장을 하고 있지 않을 거라고 대답했다. 이후 몇 번이고 작업실을 찾아가고, 함께 수영을 하고, 좋아하는 식당에서 점심도 먹은 뒤에야 승낙받을 수 있었다. 이번 전시는 트레이시의 작업 전반에 걸쳐 다채로운 작품을 아우른다. 요즘 세대는 앞서 이야기한 <My Bed> 같은 초기 대표작들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현시점에서 그의 1990년대 작품들을 돌아보면 트레이시가 얼마나 미래를 내다봤는지 느껴진다. 전시 초반에는 <Why I Never Became A Dancer>가 상영된다. 여성 혐오와 학대에 대한 이중 잣대를 호명하는 이 작품은 ‘미투’ 이후 시대에 강력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트레이시의 말을 빌리면 이 영화는 첫 번째 인생을 살 때 만든 것이다. 트레이시 에민으로 사는 것이 곧 사람들 앞에서 퍼포먼스를 하는 것이었던 때 말이다. 그가 미술관에서 여는 전시는 2011년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 이후 15년 만이다. 그간 회화뿐만 아니라 비디오, 글, 바느질, 조각, 사진 등 다양한 매체로 작업을 펼쳤다. 우리는 이 작품 세계를 ‘두 번째 삶’이라는 관점에서 탐구한다. 전시 제목이기도 한 두 번째 삶은 트레이시의 변화와 더불어 테이트 모던을 비롯한 예술계의 변화를 의미한다. 세상은 여전히 변화가 필요하다.

지난여름, 트레이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작업실에는 늘 함께하는 고양이 ‘티컵’과 ‘팬케이크’도 있었다. 나는 이번 전시를 끝으로 테이트 모던에서의 10년을 마무리한다. 어릴 때부터 존경한 예술가와 함께 일할 수 있었던 것은 감격스러운 일이었고, 마지막 프로젝트로도 더없이 뜻깊다. 트레이시는 이번 전시를 두고 ‘삶에 대한 진정한 찬사’라고 말한다. 우리가 어떻게 전시를 준비했는지 그와 솔직한 대화를 나눴다.


Tracey Emin, <Mad Tracey from Margate. Everyone’s been there>, 1997 © Tracey Emin. All rights reserved, DACS 2026.

Tracey Emin, <Mad Tracey from Margate. Everyone’s been there>, 1997 © Tracey Emin. All rights reserved, DACS 2026.

전시 제목을 ‘A Second Life’로 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전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 번째 삶, 그리고 두 번째 삶. 어쩌면 조금 진부할 수도 있지만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제목이다. 바로 그런 제목을 원했다. 소개 글이나 책을 읽어야 이해되는 제목은 바라지 않았다. 전시는 시각적인 것이고, 예술이며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삶은 지금 살고 있는 삶이다. 그 사실을 자각하고 있다는 점이 설레면서도 두렵다. 이십 대 때는 나 자신에 대해 할 말이 많았다. 그러다 ‘내가 어쩌다 여기까지 온 거지?’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많은 작품이 삶에서 겪은 사건들과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의 결과물이다. 이 전시는 나와 가족, 내가 자란 곳, 내 세계관을 만든 경험에서 시작됐다. 1990년대에는 사람들이 내 작품을 두고 자기 고백적 예술이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누구에게도 아무것도 고백한 적이 없다. 고백할 게 없었으니까. 그저 모든 것이 어디서 왔는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알아내려 했을 뿐이다. 예를 들어 동시대에 <My Bed>를 보는 사람들은 충격에서 나오는 “오~”보다 “아…”에 가까운 반응을 보인다. 애틋하고, 슬프고, 그 속에 담긴 사연이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처음 공개됐을 당시 사람들은 혐오감과 충격을 느꼈다. 지금은 그때만큼의 충격을 주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봤고, 작품을 과도하게 해석해 관련 없는 것들을 떠올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건 그저 내 삶, 한때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작은 침대일 뿐이다. 여성은 피를 흘린다. 우리는 피 흘리고, 울고, 배설하고, 토한다. 살아가고, 아이를 낳는다. 온몸에서 무언가가 쏟아져 나온다.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내 안에서 쏟아져 나오기도 하고, 나를 관통해 나오기도 한다. 전시된 작품 중 <Mad Tracey from Margate. Everyone's Been There>라는 담요는 사람들이 나를 미쳤다고 여기던 모든 순간의 표현과 생각을 담은 작품이다. 그들은 내가 남들과 다르다고 그렇게 불렀고, 그건 매우 잔인한 말이었다. 제목에 ‘마게이트’라는 단어를 그대로 쓴 이유는 내가 자란 곳이자 다시 돌아온 곳, 마게이트를 절대 버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 두 번째 삶은 바로 지금이다. 가끔 내가 이미 죽었고, 여기가 천국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 마을에서 만들어가는 놀라운 예술의 세계가 곧 천국이라는 말이다. 멋진 카페와 식당이 있고, 창의적인 사람들로 가득하다. 바다가 있고, 밤 10시가 되어도 어둡지 않다. 아름다운 것들이 이곳에 모두 있다. 넓은 작업실과 고양이들까지. 지난 5년 동안 이전 인생 전체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했다. 이제 술을 마시지 않기 때문에 취하지도, 숙취에 시달리지도 않는다. 그런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그저 웃을 뿐이다. 상황을 바꾸고 행동하는 힘이 중요하다. 두 번째 삶에서 그 힘을 찾았다. 물론 지금이 항상 행복하기만 하다는 뜻은 아니지만 첫 번째 삶은 끔찍하게 불행했다. 그게 내 잘못일 때도, 아닐 때도 있었다.

두 번째 삶에서는 당신을 둘러싼 세상 역시 달라졌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반항아로서의 트레이시가 아니라, 역사 속 화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선구적 예술가로서의 트레이시를 조명한다. 이제 세상이 당신을 따라잡은 걸까?

암 투병을 하면서 정말 중요한 것들을 우선시하는 법을 알게 된 것 같다. 쓸데없는 건 걷어내고, 해야 할 일을 그냥 하게 됐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경제적 여유까지 생겼으니 다행이다. 예술 학교를 열자? 짠, 열었다. 주차장을 정원으로 바꾸자? 그것도 해냈다. 옥상 테라스가 필요하다? 만들었다. 사람들이 살 아파트를 사자? 그것 역시 해냈다. 지금은 또 다른 일을 계획하고 있다. 마게이트에는 수영하고 나서 따뜻한 물로 씻을 수 있는 시설이 없다. 이것도 곧 짠, 하고 만들어질 것이다.

당신이 설립한 TKE 재단은 암 투병과 팬데믹을 겪은 이후 이룬 또 하나의 성과다. 마게이트에서 레지던시 공간을 제공하는 예술 학교를 운영하며 기회가 부족한 청년들을 지원해 다음 세대 예술가들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엘리사 크레이가 교장을 맡고 있지만 당신도 열성적으로 수업을 진행한다고.

레지던시 참여 작가들과 세 시간짜리 세미나를 한 적이 있다. 기억 속 부모님의 모습을 그리게 한 후 그룹 비평을 진행했다. 부모님이 모두 세상을 떠난 사람도, 부모님과 관계가 멀어진 사람도 있었으며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추상 회화를 하는 어느 작가는 부모님을 그리는 게 불가능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가장 서툰 결과물이었지만 과정은 흥미로웠다. 바라보고 있으면 그 사연이 선명하게 느껴져 눈물이 날 것 같은 그림들도 있었다. 우리는 그림에 담긴 정서적 감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떤 면에서는 내가 발을 들여서는 안 될 영역에 들어선 셈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발적으로 참여했으므로 언제든 자리를 떠날 수 있었다. 일부에게는 이 주제를 말로 꺼내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이었고, 몇몇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나는 그들에게 이것이 바로 예술이라고 말했다. 벽에 걸었을 때 보기 좋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밖의 모든 것이라고. 결국 그림을 통해 서로 유대감을 느끼게 만드는 예술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것을 느끼게 할 수 있다면 세상은 더 나은 곳이 될 것이다. 종종 원시인들이 동굴 벽에 그림을 그리던 시기를 예로 든다. 그들도 동굴에 그림을 그리는 동안만큼은 폭력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림을 보는 행위는 잔인함과는 거리가 멀다. 어쩌면 나를 단단히 지탱하고 버티게 하는 것은 감정일지도 모른다. 세상에 나를 아프게 하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 아픔을 느낄 수 있는 감정 말이다. 무감각해지는 것만큼 끔찍한 일은 없다.

전시를 준비하는 내내 당신은 사람들이 작품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점을 분명하게 강조했다. 이런 태도는 이 시대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현대 사회에는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요소가 너무 많다. 대표적인 것이 스마트폰이다. 소셜미디어는 우리를 역사상 어느 때보다 서로 연결되게 만들지만 현실에서의 소통을 방해하고,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일까지 가로막고 있다. 당신의 두 번째 삶에서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회화를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전에 만들어온 많은 작업들, 이를테면 영화, 사진, 담요 같은 것들은 내 작업 세계의 토대가 됐다. 방대한 아카이브이자 눈에 보이는 박사 학위 같은 것이다. 오랫동안 그런 작업들을 이어오며 마침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됐다. 나는 무엇을 그릴지 전혀 모른 채 작업을 시작한다. 단 한 번도 미리 계획해본 적이 없다. 때로는 물감만으로 시작하기도 한다. 서툰 드로잉을 한 뒤 그 위에 덧칠하다 보면 그림이 꽤 괜찮아질 때도 있다. 지금 전시장에도 그런 작품이 하나 있다. 마치 다리처럼 보이지만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어딘가 더 필요한 상태다. 여기 정확히 들어맞는 무언가가 떠오르기를 기다리고 있다. 때때로 그림을 완성한 뒤 그걸 일부러 망가뜨리기도 한다. 일단 망가뜨리고 나면 새로운 출발점이 된다. 그 감각이 바로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이다. 어느 날 그림을 그리다가 문득 ‘이 그림이 이런 거였구나’ 하고 깨닫는 순간이 있는데 데이비드 도슨과 나는 그걸 ‘그거(the thing)’라고 부른다. 다른 사람의 작업을 보면서도 “그거 있어?”라고 묻곤 한다.

당신은 맹렬하고 타협을 모르며 예술에 몰두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동시에 유쾌하고 감성적이며 가까운 이들에게 헌신적이다. 재치 있고 믿음직한 친구이기도 하다. 트레이시 에민이라는 예술가를 이해하는 데 이런 개인적인 면들이 중요하다는 걸 나도 느꼈다. 그러니 당신의 고양이 밈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고 싶다.

작가이자 큐레이터인 그레고르 뮤어와 나는 거의 매일 서로에게 고양이 밈을 보낸다. 그냥 고양이를 너무 좋아해서 그렇다. 나이가 들수록 고양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아이는 없지만, 고양이들이 있어서 행복하다. 이들에게서 느껴지는 무조건적인 사랑은 정말 특별하다. ‘도켓’도 그랬고, ‘티컵’과 ‘팬케이크’도 마찬가지다. 고양이들은 변함없는 존재다. 첫 번째 삶에도, 두 번째 삶에도 늘 함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전시 제목, 정말 잘 짓지 않았나.


※ «Tracey Emin: A Second Life»는 8월 31일까지 런던 테이트 모던에서 열린다.


Tracey Emin, <My Bed>, 1998 © Tracey Emin. All rights reserved, DACS 2026. Photo: Courtesy The Saatchi Gallery, London / Photograph by Prudence Cuming Associates Ltd

Tracey Emin, <My Bed>, 1998 © Tracey Emin. All rights reserved, DACS 2026. Photo: Courtesy The Saatchi Gallery, London / Photograph by Prudence Cuming Associates Ltd

암 투병을 하면서 정말 중요한 것들을 우선시하는 법을 알게 된 것 같다. 쓸데없는 건 걷어내고, 해야 할 일을 그냥 하게 됐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경제적 여유까지 생겼으니 다행이다. 예술 학교를 열자? 짠, 열었다. 주차장을 정원으로 바꾸자? 그것도 해냈다. 옥상 테라스가 필요하다? 만들었다. 사람들이 살 아파트를 사자? 그것 역시 해냈다. 지금은 또 다른 일을 계획하고 있다. 마게이트에는 수영하고 나서 따뜻한 물로 씻을 수 있는 시설이 없다. 이것도 곧 짠, 하고 만들어질 것이다.


동료와 친구들이 말하는 트레이시 에민이라는 사람.

Portrait of Tracey Emin Tate Modern 2026. Photo © Tate (Sonal Bakrania)

Portrait of Tracey Emin Tate Modern 2026. Photo © Tate (Sonal Bakrania)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 예술가)

여성 예술가들은 수세기 동안 부당한 대우를 받아왔다. 비록 상황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더 개선되어야 한다. 테이트 모던에서 열리는 트레이시 에민의 전시는 고통스러운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중요한 한 걸음이다. 그의 작품은 급진적이고, 타협하지 않으면서 시적이다. 그것들이 내 영혼을 울린다.


엘튼 존(Elton John, 싱어송라이터)

오랫동안 트레이시 에민을 깊이 존경해왔다. 그는 에이즈와의 싸움에 늘 한결같이 지지를 보내왔다. 수십 년 전, 처음으로 작품을 판매한 뒤 그 수익을 엘튼 존 에이즈 재단에 크게 기부했고, 이후로도 꾸준히 우리를 지원하고 있다. 트레이시는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다. 그런 그녀를 사랑한다.


Tracey Emin, <I Followed You to the End>, 2024. Yale Centre for British Art. © Tracey Emin. All rights reserved, DACS 2026.

Tracey Emin, <I Followed You to the End>, 2024. Yale Centre for British Art. © Tracey Emin. All rights reserved, DACS 2026.

러셀 토비(Russell Tovey, 배우이자 작가)

트레이시는 고민을 털어놓을 때 가장 좋은 대화 상대다. 힘들거나 불안한 이야기를 꺼내면 언제나 날카롭고 정확한 조언을 건넨다. 직설적인 말투는 결국 큰 도움이 된다. 물론 처음에는 그 말들이 조금 아프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에게는 작품에서 드러나는 것과 같은 솔직함이 있다. 그 솔직함으로 인간이라는 존재를 정확히 짚어내고, 깊은 애정을 보여준다. 트레이시는 내가 16살 때부터 늘 같은 자리에 있어 준 사람이다. 그의 친구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스티븐 웹스터(Stephen Webster, 주얼리 디자이너)

나는 학창 시절 DJ 피트 통과 친구였다. 그가 어린 DJ였을 때 마게이트의 ‘아틀란티스’ 클럽에서 음악을 틀었는데, 트레이시는 어린 나이에도 그 클럽을 드나들곤 했다. 그는 투사이면서도 동시에 인간적이다. 까다롭기로 유명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믿음직하고, 매우 똑똑하다. 한번은 호주에 머무는 동안 내게 <The Independent>에 들어갈 칼럼을 대신 써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 그 보답으로 나와 내 고양이를 그린 그림을 선물해줬다. 마게이트에서 해온 일들, 예술을 위해 쏟은 노력을 보면 그는 그야말로 놀라운 사람이고 보물 같은 존재다.


케이티 헤셀(Katy Hessel, 작가)

마게이트에서 수영하러 가면 종종 트레이시를 마주친다. 친구들과 함께 있는 그를 우연히 만났던 날을 결코 잊지 못한다. 우리는 포트 로드 호텔에서 핫 초콜릿을 마신 후 트레이시의 집으로 갔다. 그는 치킨 샐러드를 만들고, 비가 갑자기 쏟아지자 가방으로 모자까지 만들어줬다. 얀 반 에이크의 <남자의 초상>에 나오는 모자 같았다. 지금도 우리 사이에서 종종 꺼내는 에피소드다. 트레이시는 나에게 정말 많은 것을 주었고, 말 그대로 예술을 살아 숨 쉬게 만든 사람이다. 그가 젊은 예술가들을 위해 한 일들이 없었다면 이곳은 지금처럼 흥미롭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10년 뒤, 마게이트가 또 어떻게 변해 있을지 상상해본다.


Tracey Emin, <Is This a Joke>, 2009 © Tracey Emin. All rights reserved, DACS 2026.

Tracey Emin, <Is This a Joke>, 2009 © Tracey Emin. All rights reserved, DACS 2026.

로버트 디아먼트(Robert Diament, 작가이자 갤러리 관장)

트레이시는 자신의 작품과 냉철한 조언을 통해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꿔놓았다. ‘트레이시 에민 아티스트 레지던시’와 ‘TKE 스튜디오’ 단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며 큰 영감을 받았다. 이곳 덕분에 세계적인 수준의 화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트레이시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키워내려는 사람이고, 이 공간이 그 증거다. 그의 관대함에는 끝이 없다.


그웬돌린 크리스티(Gwendoline Christie, 배우)

트레이시는 천둥처럼 세상에 등장했다. 자유로웠고, 주저하지 않았다. 그가 겪어온 트라우마는 많은 여성들이 숨기고 싶어 할 이야기들이지만, 트레이시는 그것을 거리낌없이 드러내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My Bed>와 <Everyone I Have Ever Slept With 1963-1995>의 이미지를 처음 봤을 때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여성의 내밀한 삶을 이토록 직접적이고 대담하게 드러낸 작품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여성의 사적인 경험에도 의미가 있고, 그 혼란조차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그 작품을 통해 깨달았다. 그 솔직함은 나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삶을 더 대담하게 살아가게 되었고, 결점과 고통을 창작의 일부로 끌어안게 됐다. 나 역시 작업 속에 나를 담고 싶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트레이시처럼 예술을 위해 내 내면을 기꺼이 드러낼 것이다.


마리아 발쇼는 테이트 모던 관장이다. 오랜 친구이자 존경하는 작가인 트레이시 에민과의 이번 전시를 끝으로 테이트 모던에서의 10년을 마무리한다.

Credit

  • 글/ Maria Balshaw
  • 번역/ 박수진
  • 어시스턴트 에디터/ 정지윤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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