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호시노야 도쿄에서 럭셔리 료칸을 경험하다

도심 속 온천 제대로 즐기는 법!

프로필 by 손안나 2026.09.22

몇 년 만의 여름 휴가란 말인가. 온전히 쉬기 위해 떠나온 일본 여행이었다. 캐리어엔 노트북 대신 얇은 티셔츠 두어 벌과 책 한 권만 챙겼다. 오테마치의 마천루 사이, 나무숲이 드리워진 좁은 골목을 지나니 커다란 히노키 문이 나타났다. 문을 통과하며 신발을 벗는 순간, 이곳이 '게스트'가 아니라 '손님'을 맞는 공간이라는 걸 깨닫는다. 서양식 호텔과는 다른 감각이다. 신발을 맡기고 그 집 식구처럼 맨발로 마음 편히 시간을 보내는 것, 일본 료칸이 오래전부터 지켜온 환대의 방식이다. 슬리퍼가 준비되어 있지 않은 건 골풀 향과 다다미의 촉감을 그대로 느끼게 하기 위한 이곳의 디테일이다. 호시노야 도쿄가 얼마나 집요하게 '료칸다움'을 고수하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로비에 들어서면 특히 눈에 띄는 스팟이 있다. 중정에 놓인 커다란 도자 항아리 하나. 마른 유목 가지 위로 주황빛 참나리가 점점이 피어 있다. 호텔 스태프의 말론 2주에 한 번씩 다른 식물로 교체되는데, 현재의 계절감을 가장 잘 드러내는 식물로 엄선된다. 말하자면 호시노야 도쿄는 매번 다른 얼굴로 손님을 맞이하는 것이다.

지하 2층, 지상 17층. 다다미가 깔린 현관에서 시작해 최상층 온천으로 끝나는 수직의 동선은 '타워형 일본 료칸'이라는 콘셉트를 그대로 드러낸다. 14개 층으로 이루어진 객실 동은 각 층이 6개의 객실과 공용 공간 '오차노마 라운지'를 하나씩을 품고 있다. 오차노마는 일본어로 차를 마시는 공간이란 의미로, 말그대로 투숙객을 위한 응접실이다. 그 층에 묵는 투숙객만 드나들 수 있는 세미 프라이빗 구조로 복도에서 낯선 얼굴과 마주칠 일 없이, 24시간 라운지를 내 방처럼 오갈 수 있다. 계절 다과와 음료가 놓인 라운지, 선반엔 호시노야 도쿄 스태프가 일본 각지에서 골라온 공예가들의 작품이 진열돼 있다. 눈으로만 보라고 놓아둔 게 아니다. 그 찻잔을 집어 직접 차를 우려 마셔도 되고, 그릇에 다과를 덜어 먹어도 된다. 체크인이 진행되는 동안, 그곳 창가 쪽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말차와 곁들여 나온 수박 양갱 한 조각을 오물오물 씹었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그제야 창밖으로 시선이 간다. 맞은 편 오피스 건물에서 분주하게 업무 중인 증권맨들이 보였다.

호시노야 도쿄가 자리한 오테마치는 도쿄역과 고쿄(황거) 사이, 대기업 본사와 관공서가 빽빽하게 들어선 업무지구다. 서울로 치면 여의도에 가까운 동네. 신주쿠나 긴자, 롯폰기처럼 호텔이 즐비한 관광 동네와는 결이 다른 곳에 이 료칸이 자리 잡았다는 사실 자체가, 이곳에서의 체류를 좀 더 특별하게 만든다. 호시노야 도쿄 스스로도 이 동네를 '400년 넘게 일본의 심장이었던 곳'이라 소개하는데, 에도성 시절부터 이어진 오테마치의 위상을 생각하면 과장만은 아니다. 도심 한복판이지만 관광지의 소음에서 한 발 비켜선 정적. 낮엔 정장 차림의 직장인들로 붐비다가도 퇴근 시간 이후엔 순식간에 인적이 드물어진다. 그말인즉슨 밤이 되면, 동네 전체를 전세 낸 것처럼 한가롭게 야간 산책을 즐길 수 있다는 얘기다.

내가 묵은 객실의 이름은 '국화'를 뜻하는 '키쿠'. 호시노야 도쿄에서 가장 넓은 코너룸으로, 다이닝 테이블과 워크인 클로짓을 갖춰 연박에도 지루할 틈이 없다. 스테이용 기모노는 사이토 조타로가 디자인한 것으로, 허리끈으로 헐렁하게 여미는 실루엣에 트레이닝 복 같은 저지 소재라서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도 살에 감기지 않아 착용이 편안했다. 창호지 창문을 열면 객실은 물론 호텔 외관 전체를 뒤덮은 에도 시대 전통 문양 '아사노하쿠즈시(삼잎무늬를 변형한 격자무늬)'가 드러난다. 밤에는 존재감이 없지만, 햇빛이 쏟아지는 아침이 되면 비로소 그 존재를 드러내는 무늬다. 객실의 디테일도 이와 닮았다. 대나무로 짠 옷장은 무늬 하나 없이도 결만으로 존재감을 낸다. 벽과 조명갓엔 일본 종이가 발려 빛을 한 겹 부드럽게 거르고, 다다미 바닥 위에 놓인 가구들은 하나같이 낮은 중심을 잡아 앉으면 자연스레 바닥과 가까워진다. 요란한 장식 하나 없이도, 이 방이 최고급 료칸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미감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17층 대욕장이다. 지하 1,500미터에서 끌어올린 천연 온천수는 요오드와 염분을 짙게 머금은 해수. 살짝 맛을 보면 정말로 짭짤하다. 아주 오랜 옛날 오테마치 일대는 바다였다고 한다. 흔한 호텔이라면 이 루프탑 자리에 레스토랑이나 바를 두었을 테지만, 호시노야 도쿄는 그 자리에 온천을 앉혔다. 도쿄의 바람과 소리가 격자 사이로 스며들고, 밤이면 별이 보이는 노천탕. 백 년 넘게 산속이나 온천가에 머물던 료칸이, 처음으로 도심 마천루 사이에 끼어 앉았다. 도심 한 가운데 자리 잡은 온천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이게 참 기가막힌 시도였다는 걸 알게 된다.


식사 역시 이곳의 정체성을 또렷하게 드러낸다. 첫날 저녁 메인 다이닝에서 만난 코스는 'Lost Flavors of Japanese Home Recipes(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는 일본의 가정요리)'라는 콘셉트로 새롭게 선보인 메뉴다. 총주방장 오카 료스케는 편리함 속에 사라져가는 가정의 맛을 프랑스 요리 기법과 독자적인 해석으로 재구성한다. 호텔 측 설명을 빌리면 '그리운 동시에 새로운,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미식 경험'. 전복과 성게 리조토는 아오모리 어부들이 끓여 먹던 '이치고니'에서 왔다는데, 우유빛 국물에 뜬 성게가 아침 안개 속 산딸기처럼 보인다고 붙은 이름이라 했다. 소고기에 은어와 발효 갓 소스를 곁들인 접시의 원형은 뜻밖에도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스시로 꼽히는 시가현의 붕어 발효초밥 '후나즈시'. 망고에 흑설탕 브리오슈를 곁들인 디저트는 가고시마의 옛 과자 '게탄하'에서 착안했는데, 진흙 묻은 나막신 밑창을 닮았다고 붙은 이름이라고. 식사를 하고 나니 사라져가는 시골 부엌의 옛 이야기를 한 보따리 들은 기분이었다.

이튿날 저녁엔 지하 1층 카운터 8석 규모의 스시 카운터 '스시 오테몬'에서 '일본 료칸의 에도마에 스시'를 맛봤다. 셰프가 성인 남성 팔뚝보다 큰 칼을 꺼내 참치를 써는 모습부터가 하나의 퍼포먼스였다. 한 점씩 쥐어주는 초밥도 훌륭했지만, 더 인상 깊었던 건 음식을 내는 방식이었다. 꽃송이를 벌리면 그 안에 애피타이저가 담겨 있고, 나뭇잎으로 감싼 포장을 풀어헤치면 초밥 한 점이 나오는 식. 파인다이닝에서나 겪을 법한, 음식 하나하나에 '경험'을 설계해 넣은 접근이었다. 온천을 마치고 노곤한 상태 그대로 맛보는 스시 한 점과 맥주 한 잔. 이곳이 료칸이기에 누릴 수 있는 호사였다.

다음 날 아침엔 지상 160미터 옥상에서 열리는 'Sky-high Morning Kenjutsu'엔 바르셀로나와 벨기에에서 왔다는 낯선 두 청년과 나란히 섰다. 검술 동작과 심호흡을 결합한 오리지널 수련을 마치고 나니, 땀이 주르륵 흘렀다. 탁 트인 도쿄의 스카이라인이 하루를 시작하는 가장 사치스러운 배경이 되어주었다. 곳곳에서 한국어를 하는 스태프와 마주쳤다는 사실도 짚어둘 만하다. 사소해 보이지만 의사소통의 부담을 덜어주는 디테일. 호시노 리조트 대표 호시노 요시하루가 말한 '일본에 왔으니 일본 료칸에 묵는 것이 아닌, 쾌적하고 서비스가 훌륭하니 일본 료칸에 묵는다'는 지향과 맞닿아 있다.

여행의 마지막은 체크아웃 전 2층 다다미 라운지에서의 다도였다. 스타벅스만 가도 말차라떼를 맛볼 수 있는 시대. 다도라는 의식은 한국에서 더 이상 신기할 것도 없다. 다도를 시연해준 스태프는 그런 속내를 읽었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형식보다 중요한 건 대화예요.' 그 말대로 말차를 우려내는 손끝의 순서를 따라가는 사이, 그녀와 이런저런 세상사를 나눴다. 다도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행위라는 걸, 실감했다. 우리 삶에 필수적이진 않아도 우리 삶을 조금 더 낫게 만들어줄 수 있는 즐거움들에 대해 생각했다. 어쩌면 호시노야 도쿄라는 료칸 자체가 그런 존재인 것처럼.



INFO

주소 : 〒100-0004 東京都千代田区大手町1-9-1. 체크인 15:00 · 체크아웃 12:00. 요금 1박 228,000엔~(1실 기준, 세금·서비스료 포함, 식사 별도).


Editor’s TIP

호텔에서 도보 5분 거리엔 고쿄 히가시교엔이 있다. 에도성 터에 조성된 무료 정원으로, 9월엔 억새풀이 낭만적인 풍경을 조성한다.

주소 : 東京都千代田区千代田1-1. 개방시간 : 9:00~17:00(계절에 따라 다름, 월·금요일 휴원, 무료입장).



Credit

  • 사진/ 호시노 리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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