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키아프 서울이 남긴 것
프리즈 서울과 최초로 공동 개최된 21번째 키아프 서울은 여러 가지 과제를 남기며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국제적인 아트페어로서의 아쉬움과 가능성이 숨 가쁘게 교차되었던 페어에서의 순간들을 되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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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레스프로젝트에서 만난 애드 미놀리티(Ad Minoliti)의 조각작품 <Celeste>(2022)와 회화작품 <Native Daisies 1>(2022).
전화로 들은 것처럼 코엑스 3층 ‘프리즈 서울’ 입구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같은 시각 1층 ‘키아프 서울’은 상대적으로 한산했다. 사실 그와 같은 현상을 예상하지 못했던 바는 아니다. 페어 개막 열흘 전에 열린 키아프, 프리즈 공동 기자간담회에서 사실상 아트 바젤과 함께 세계 양대 아트페어인 프리즈와의 공동 개최에 따른 부담감은 없냐는 질문에 황달성 한국화랑협회장은 “층을 달리해 같은 기간에 치르는 만큼 체급 차가 나겠지만 더 멀리 내다봤을 때 공동 개최의 선택이 국제 아트페어로서 키아프의 업그레이드를 견인할 것”이라는 취지의 대답을 내놓았다. 그 말대로 이집트 목조 석관, 마지막 위대한 플랑드르 세밀화 작가 사이먼 베닝이 제작한 채식필사본 기도서 낱장, 피카소 그림과 에곤 실레의 드로잉 수십 점을 본 후 리히터의 대형 회화를 바라보며 루이나 샴페인을 마실 수 있는 프리즈 서울에 비하면 키아프가 조금 민숭맨숭하게 느껴진 건 사실이었다. 썰렁하다 싶은 입구를 보자 한껏 부풀었던 기대감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하지만 공동 개최가 국내 화랑들에게 위협이 될 거란 우려를 의식해서 참가 갤러리 심사 기준을 한층 높이고 쾌적한 관람 환경을 위해 수익 감소를 각오하며 부스와 휴게 장소를 넓히는 등 다양한 시도를 아끼지 않은 키아프에서는 확실히 호젓한 감상이란 게 가능했다. “프리즈에서 수억 원대의 작품들과 인파에 치여 다니다가 여기 내려오니 ‘살’맛이 난다”는 한 컬렉터의 말에 수긍이 갔다.
페레스프로젝트에 연달아 걸린 파올로 살바도르와 도나 후앙카의 대형 회화작품.
아트페어는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미술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갤러리들의 절묘한 전략이 맞부딪치는 전쟁터나 다름없다.
악셀 베르부르트 솔로 부스를 통해 예외적으로 아트페어에 참가한 김수자 작가. 이번 페어를 위해 제작한 <연역적 오브제> 곁에서 포즈를 취했다.
김수자 작가는 이 작업을 통해 브라만다 돌과 보따리를 통합하면서 우리가 지구에 태어나 하나의 독자적인 우주로서 육신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되는 삶과 죽음의 여정을 시적으로 은유합니다.
백아트에서 선보인 아트레이유 모니아의 수채화 작품 <Stressfest Wasteland>(2022)와 <Awry Fantasy>(2022).
아트페어는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미술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갤러리들의 절묘한 전략이 맞부딪치는 전쟁터나 다름없다. 이번 키아프&프리즈 공동 개최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눈에 띄는 전략으로는 동시 참가를 들고 싶다. 키아프와 프리즈 서울에 동시에 참가한 12개의 갤러리(한국 갤러리 8곳, 외국 갤러리 4곳)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스를 보여준 건 갤러리현대와 악셀 베르부르트였다. 갤러리현대는 그리스 유물부터 피카소 같은 거장의 작품까지 다루는 프리즈 마스터스와 키아프를 선택했는데, 마스터스에서는 정신성을 상징하는 영험한 오브제인 ‘돌’을 재료로 한 박현기, 곽인식, 이승택 3인의 아방가르드 아티스트의 작품을, 키아프에서는 올해 하반기 갤러리현대에서의 개인전과 새로운 프로젝트를 앞둔 김민정, 강익중, 박민준 등의 신작을 프리뷰 형식으로 선보였다. 갤러리현대 강남 스페이스에서 9월 24일까지 개인전 «새로운! 지금! 좋은!»을 통해 새로운 시리즈를 선보이는 케니 샤프의 익살스러운 표정과 몸짓의 조각 연작 6점이 부스 입구에서 친근하게 관람객을 맞았다.
GOP에서 선보인 정윤경 작가의 <Finger Spell> 시리즈.
롭 윈의 유리 조각과 조지 콘도의 회화작품이 어우러진 더페이지갤러리.
9월 5일 월요일, 키아프는 단 하루의 관람일을 남겨두고 있었다. 첫날 흰 벽을 가득 채웠던 갤러리신라의 바나나는 이제 단 한 점도 남아 있지 않다. 2019년 아트바젤 마이애미 비치에서 화제를 모았던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바나나’와 마르셀 뒤샹이 1백 년 전 남성용 소변기를 전시회에 출품하며 제기한 “작품 자체보다 미술가의 생각이 더 중요하다”는 문제적 개념을 떠올리게 하는 익명의 아티스트 그룹 엘 그루포 엑스(El Groupo X)의 <Banana is Banana…?>. 이 ‘작품’의 완판은 옆 벽에서 진행한 갤러리신라의 장기 서베이 프로젝트 ‘The Price of Art is…?’와 함께 “예술과 상업성의 좋은 밸런스는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을 요구했다. 과연 그런 것이 존재하기나 한 것일까. 어쨌거나 이번 페어가 한국 미술계에 큰 전환점을 가져다주었고 앞으로도 그 변화는 계속 될 것이라는 점만은 확실하다. 돌이킬 수 없는 변화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어떤 비전을 추구해야 할까?
갤러리신라에서 익명의 아티스트 그룹 엘 그루포 엑스가 선보인 <Banana is Banana...?>.
안동선은 컨트리뷰팅 에디터다. 방향치로서 사방에 비슷한 크기의 부스가 끝도 없이 펼쳐지는 아트페어에 가면 여지없이 패닉에 빠지지만 돌다 우연히 만난 작품과 사랑에 빠지는 순간의 짜릿한 희열은 또다시 페어를 찾게 만든다.
Credit
- 글/ 안동선
- 사진/ 홍원기, 페레스프로젝트, GOP, 더페이지갤러리, 키아프 제공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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