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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싹 속았수다'의 아이유 첫사랑, 이준영 전성시대

이준영이 대세인 이유.

프로필 by 손안나 2025.04.30

A GOLDEN ERA


이준영의 인생에는 몇 차례 알을 깨는 순간이 있었다. 비로소 자유롭다. 이제 날개를 펼칠 것이다.


입체적인 장식이 돋보이는 메시 탱크톱은 Kenzo. 티셔츠는 Acne Studios. 데님 팬츠는 Wooyoungmi.


“왜 그랬어요?” 농담 삼아 물었더니 이준영은 바로 질문의 의도를 눈치챘다. “그러게요. 왜 숭늉을 안 떠줬을까요? 요새 만나는 분들마다 여쭤보시는데 저도 답답합니다.(웃음)”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이야기다. 이 드라마에서 이준영은 금명(아이유)의 우유부단한 첫사랑 영범을 연기하며 이전에는 본 적 없는 새로운 얼굴을 드러냈다. “드라마가 공개된 후 가족여행을 갔어요. 아버지, 어머니와 셋이서 소주 한 잔 하면서 드라마 이야기가 나왔는데, 약간 다짐처럼 (웃음) 그러시더라고요. ‘혹시라도 네가 결혼 생각이 생긴다면 우리는 절대 그러지 않을 거다. 우리 건 우리가 떠 먹겠다.’(웃음) 어머니는 벌써 드라마를 네다섯 번 돌려보셨더라고요. 볼 때마다 우신대요. 가족끼리 제가 출연한 작품에 대해 이렇게 자세히 이야기를 나눈 적이 거의 없는데, <폭싹 속았수다>는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가족애를 다룬 작품이라 그게 가능했던 것 같아요. 전에는 악역 이미지 때문인지 길에서도 마주치는 분들이 수근수근대는 게 느껴졌거든요.(웃음) 요즘은 ‘영범 씨’ 하면서 반갑게 인사해주셔서 그게 참 좋아요.”

<폭싹 속았수다>는 공개 일주일 만에 360만 뷰를 기록하며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었지만, 이준영에게는 거창한 수치보다도 가장 치열했던 한 시기로 남을 것 같다. 그는 동시에 세 개의 작품을 소화하며 하루에 한 시간도 못 잘 정도로 힘든 상황에서 영범을 연기했다. “‘그때로 돌아가면 또 그렇게 할 수 있겠어?’ 만약 누군가 묻는다면 덜컥 겁부터 날 것 같아요.(웃음) 그런데 알고 보니 저뿐만 아니라 아이유 누나를 비롯해 모두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작품에 임했더라고요. 다 같이 고생한 만큼 잘돼서 다행이라는 마음이랄까요. 그때는 그때의 파이팅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최선을 다했고, 일말의 후회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지금의 이준영을 있게 한 동력은 승부욕이다. “저는 제가 흔히 꽃미남 스타라고 불리는 배우들과는 결이 다르다는 것을 빨리 인지한 편이에요. 한 번도 스스로가 잘생겼다고 생각해본 적 없어요. 그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저는 끈질기게 붙잡고 늘어지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지면 잠을 못 잘 정도였죠. 어렸을 때 독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아빠와의 말싸움에서 이기고 싶어서 이를 악물고 책을 읽기 시작한 것처럼요.(웃음) 유키스 뮤직비디오를 찍을 때 저만 촬영 시간이 2배 이상 걸렸어요. 어떤 점이 문제인지 여쭤봤더니 모니터를 보여주셨어요. 화면 속 제 모습이 너무 부자연스럽더라고요. 굉장히 창피했어요. 그때부터 혼자 연습실에 틀어박혀서 음악을 틀어놓고 거울을 보면서 별걸 다 해봤던 것 같아요. 그러던 어느 날, ‘여기에 대사를 넣어서 움직여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스치더라고요. 그때부터 무언가에 씌인 사람처럼 독백을 하거나 어떤 대사를 달달 외우고 그랬죠. 오디션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고요.” 춤이 좋아서 가수가 되고 싶었던 소년의 각성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오디션에서 수도 없이 떨어졌고, 현장에서 욕도 많이 먹었죠. 한번은 ‘다른 배우들에게 피해 주지 말고 나가라’는 말도 들었어요. 아이돌 출신이라는 선입견이 컸던 시기였죠. 그런데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 시절의 저는 제가 봐도 너무 약했어요. 지금도 연기를 결코 잘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래도 정체되지 않고 채워나가는 중이라 힘이 나요. ‘이러다가 언젠가는 연기를 잘한다는 소리를 한번 제대로 듣지 않겠어?’라는 희망을 품고요.(웃음)”


스웨이드 재킷, 시스루 셔츠, 데님 팬츠는 모두 Versace. 노즈 커프, 목걸이는 Tee Ring Jay. 레더 벨트는 Recto. 로퍼는 Burberry.


개인적으로 이준영을 강렬하게 인지한 것은 2021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덕분이었다. 게임 중독에 입에는 욕을 달고 살며 여자친구를 구타해 생활비를 억지로 뜯어내고, 아버지에게는 당신이 자기 인생을 망쳤다면서 막 대하는 탈영병 정현민을 연기한 배우가 아이돌 그룹 유키스의 ‘준’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까지는 약간의 버퍼링이 필요했다. <D.P.>는 이준영 자신에게도 각성의 계기가 되었다.

“담배도 피우고 욕도 해야 하는데, 그전까지는 그런 촬영을 해본 적이 없어서 조심스러웠던 것 같아요. 정제된 움직임 위주로 대본을 분석했거든요. 한준희 감독님이 촬영을 중단하고 ‘바람 좀 쐬자’고 하시더라고요. ‘하고 싶은 대로 해봐’라고 툭 말씀하셔서 저도 ‘그럼 5분만 주세요’라고 했죠. 그렇게 바로 촬영에 들어가고 오케이가 된 거예요. 그때부터 완전히 멘붕 상태였죠. 이게 오케이라고? 처음 해본 건데 이렇게 바로? 이래도 되나? 촬영장이 부산이었는데 서울로 올라오는 내내 차 안에서 혼란스러웠어요. 그런데 결과물을 보고 나서 이래도 되는 거였구나를 깨닫게 되었어요. 동그랗다고만 생각했던 연기가, 사실은 세모나기도 하고 네모나기도 하다는 걸 알게 된 거죠. 그때부터 연기가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보이기 시작했어요.”

<D.P.>의 교훈인지, 실제로 이준영의 연기는 신실한 연구자나 지독한 연습벌레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저는 집중만 열심히 해요. 관찰을 좋아하지만, 관찰한 것들을 연기에 활용하려는 게 아니라 활용하지 않으려고 하는 거예요. 온전히 제 것이 아니니까요. 어떤 작품을 보면서 영감을 받는지, 어떤 인물을 보고 연구하는지 종종 질문을 받는데, 사실 잘 보지 않아요. 일부러 더 안 보려고 해요. 그래서 감독님들이나 스태프 분들이 저를 보고 동물적으로 연기한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한준희 사단과는 ‘가장 고마운 작품 <D.P.>’ 이후 오는 4월 25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되는 <약한영웅 Class 2>로 다시 조우한다. 시즌 2에 새로 등장하는 인물로 ‘속내를 알 수 없는 마이페이스’인 금성제 역할이다. “감독님이 ‘이거 해야 돼, 이건 그냥 너야’라고 말씀하셔서 참여하게 됐어요. 실제로 저와 꽤 닮았어요. 인간 이준영이 가진 낭만주의자의 면모가 금성제에게도 있거든요. 함께 작업한 배우들과 단체 관람을 가졌는데, 저보고 섹시하다고 하더라고요.(웃음) 당시엔 부끄러워서 ‘말 걸지 말아달라’고 답했지만, 그래도 기대해 주세요.(웃음)” 한편, 30일 공개되는 KBS 수목드라마 <24시 헬스클럽>에서는 본격적으로 로맨틱 코미디에 출사표를 던진다. 운동에 미친 ‘헬치광’이 관장 역할로 배우 정은지와 호흡을 맞춘다.


팬츠는 Ych. 목걸이는 Tom Wood. 선글라스는 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슬리브리스 톱,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레이어드한 시스루 톱, 이너 톱은 모두 Onitsuka Tiger. 데님 팬츠는 Dior. 브레이슬릿,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준영은 2017년 첫 작품 <부암동 복수자들> 이후로 <굿캐스팅> <D.P> <마스크걸> <로얄로더> <황야> <멜로무비> <폭싹 속았수다> 등 총 22편의 작품에 출연하며 그야말로 거침없이 달리고 있다. 어쩌면 직전에 경험한 매너리즘 덕분에 힘을 낼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도 나를 찾아주지 않으면 어떡하지? 난 이 일이 너무 좋은데. 내가 가진 모든 걸 다 보여줬고 이제 껍데기뿐인데 어떻게 해야 하나? 끝났다.’ 이런 고민이 저를 집어삼킨 시기가 있었어요. 배우로서 절망적이었죠. 아마도 매너리즘이었던 것 같은데,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참 어리석은 걱정을 했구나 싶어요. 작품 속 인물마다 부여받은 서사가 있잖아요. <폭싹 속았수다>의 영범이와 <멜로무비>의 시준이가 똑같이 7년을 사랑하고도 전혀 다른 결로 표현되듯이요. 그리고 그건 제가 잘해서가 아니라 ‘글’에서 오는 거잖아요. 저는 대본에 답이 있다고 생각하고, 대사와 지문을 달달 외울 정도로 분석해요. 결론은 주어진 몫을 얼마나 성실하게 수행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아요. 소진되었다가도 일하다 보면 또 채워지고 그렇게 타오르죠. 그게 제가 이 일을 사랑하는 이유입니다.”

“어렸을 땐 저 자신에게 너무 가혹했어요. 스스로를 돌볼 방법을 몰랐던 것 같아요. 회사에서 받은 상처, 소통의 문제들도 무조건 제가 잘못한 거라고 생각할 정도였죠. 그게 당연한 줄 알고 살다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뒤통수 맞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자책하면 끝나는 건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다들 꽤나 자기 자신을 사랑하네? 그래도 되네?” 어느덧 데뷔 12년 차. 이제 이준영은 꽤나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어른이 되었다.

그는 암흑 같은 슬럼프에 빠져 있던 그때, 단골집 사장님이 보냈다는 문자 메시지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브라더, 네 롤러코스터에 타본 적도 없으면서 이런저런 얘기 하긴 좀 주제넘지만, 경사가 가파를 땐 안전벨트 꼭 붙잡고. 오르막이 있었으니 내리막이 오는 것이고, 다 내려가고 나면 다시 오르막이 있는 거야. 난 아직 끝없는 내리막은 본 적이 없으니까. 힘내라. 따뜻함 챙기고. 피스.”

열일곱 살, 무대에 오른 소년은 번쩍이는 성공을 꿈꿨지만 스물여덟, 이제 그 청년은 인생에 끝없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내년에는 군대에 다녀와야 하고, 그러면 삼십대를 맞이하겠지만, 그 모든 순간을 기꺼이 기다린다. 소년의 황금기가 이제야 찾아온 것이다.


니트 톱, 벨티드 프린트 팬츠, 슈즈는 모두 Prada.


Credit

  • 사진/ 신선혜
  • 헤어/ 강지은(에이치밍)
  • 메이크업/ 김은지(에이치밍)
  • 스타일링/ 김지원
  • 어시스턴트/ 정지윤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