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엮임의 언어, 서울에서 직조되다

인트레치아토 50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전시는 한국 동시대 작가 9인의 시선을 통해, 수공예의 언어를 다시 직조해낸다. 엮임이라는 개념이 각기 다른 감각과 재료를 타고 새롭게 흐른다.

프로필 by 김성재 2025.06.20

보테가 베네타의 상징적 수공예 기법, 인트레치아토(Intrecciato)의 탄생 5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 <세계를 엮다 : 인트레치아토의 언어>는 단순한 장인 정신의 헌사가 아닌, 동시대 예술과 공예가 어떻게 이어지고, 교차하며, 재구성되는지를 탐색하는 실천의 장이다.


인트레치아토는 더 이상 가죽을 교차시키는 수공예 기법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시간을 축적하는 감각의 과정이자, 형태를 매개로 한 관계의 구조이며, 과거의 기억과 동시대의 사유를 엮어내는 하나의 언어로 기능한다. 각 작가들은 직조라는 물리적 개념을 넘어서, 자신만의 재료와 형식으로 인트레치아토의 정신을 번역해낸다.



이광호 <Obsession> Series 2025. 로프, 전선

이광호 <Obsession> Series 2025. 로프, 전선

보테가 베네타 크리에이션 브릭 아 브락(Bric à Brac) / 이규홍 240210 2024. 글라스, 우드 / 강서경 둥근 유랑 – 얼굴, 자리, 배 #22-01 2021-2022. 조합된 구조물 : 철에 도색, 실, 세탁망, 나무 프레임, 볼트, 가죽 조각, 바퀴, 나무 둥치

보테가 베네타 크리에이션 브릭 아 브락(Bric à Brac) / 이규홍 240210 2024. 글라스, 우드 / 강서경 둥근 유랑 – 얼굴, 자리, 배 #22-01 2021-2022. 조합된 구조물 : 철에 도색, 실, 세탁망, 나무 프레임, 볼트, 가죽 조각, 바퀴, 나무 둥치

외벽을 감싼 이광호 작가의 설치는 로프와 전선을 엮어 구성되었고, 그 자체로 하나의 공간적 직조물로 기능한다. 실용성과 조형성 사이에서 유기적으로 진동하는 이 작업은, 인트레치아토의 구조적 원리를 스케일과 재료의 실험으로 확장시킨다. 또 이규홍 작가의 유리 스크린은 선과 반사, 투명성과 중첩을 통해 빛과 기억의 흐름을 조형화하며, 감각의 직조라는 비가시적 언어를 시적으로 끌어낸다



강서경 둥근 유랑 – 얼굴, 자리, 배 #22-01 2021-2022. 조합된 구조물 : 철에 도색, 실, 세탁망, 나무 프레임, 볼트, 가죽 조각, 바퀴, 나무 둥치 & Mat 120 x 165 #23-60 2022-2023. 철에 도색, 화문석, 나일론 실, 실, 나무 프레임, 볼트, 가죽 조각 & Mat #24-06 2023-2024. 철에 도색, 화문석, 실, 나무 프레임, 볼트, 가죽 조각 & 따뜻한 무게 610 #21-02 2021. 철에 도색, 실

강서경 둥근 유랑 – 얼굴, 자리, 배 #22-01 2021-2022. 조합된 구조물 : 철에 도색, 실, 세탁망, 나무 프레임, 볼트, 가죽 조각, 바퀴, 나무 둥치 & Mat 120 x 165 #23-60 2022-2023. 철에 도색, 화문석, 나일론 실, 실, 나무 프레임, 볼트, 가죽 조각 & Mat #24-06 2023-2024. 철에 도색, 화문석, 실, 나무 프레임, 볼트, 가죽 조각 & 따뜻한 무게 610 #21-02 2021. 철에 도색, 실

박종진 Artistic Stratum_Wall_B4B4/1 2025. 종이, 백자 슬립, 고화도 안료 & Artistic Stratum_Patch_BYRBG 2025. 종이, 백자 슬립, 반투명유, 고화도 안료 & Collapsed Form_WBWYWBWRWG 2023. 종이, 백자 슬립, 투명유, 고화도 안료 & Artistic Stratum_Knot_O4Y4G4/1 2025. 종이, 백자 슬립, 반투명유, 고화도 안료 & Artistic Stratum_O4/1B4/1 2025. 종이, 백자 슬립, 반투명유, 고화도 안료

박종진 Artistic Stratum_Wall_B4B4/1 2025. 종이, 백자 슬립, 고화도 안료 & Artistic Stratum_Patch_BYRBG 2025. 종이, 백자 슬립, 반투명유, 고화도 안료 & Collapsed Form_WBWYWBWRWG 2023. 종이, 백자 슬립, 투명유, 고화도 안료 & Artistic Stratum_Knot_O4Y4G4/1 2025. 종이, 백자 슬립, 반투명유, 고화도 안료 & Artistic Stratum_O4/1B4/1 2025. 종이, 백자 슬립, 반투명유, 고화도 안료

리움미술관 개인전 '버들 북 꾀꼬리' 후원에 이어 보테가 베네타와 두 번째 만남을 가진 강서경 작가는 전통 기보법에서 파생된 격자 형식을 공간 구조로 풀어낸 인트레치아토를 사회적·신체적 위치성과 연결된 구조적 언어로 치환한다. 반복과 균형, 그리고 섬세한 조형은 직조의 의미를 단순한 패턴이 아닌 하나의 사유로 제시한다. 작가 박종진은 점토와 종이를 겹겹이 적층하고 고화도 안료로 마감한 세라믹 조각을 통해 직조의 리듬과 반복을 조각적 언어로 구현한다. 이 압축된 시간의 물성은 손의 흔적을 응축한 하나의 층위로 존재하며, 인트레치아토가 담고 있는 정교함과 농도를 시각화한다.




정명택 <Creating a Void> Series 2025. 호두나무, 단풍 나무 / 홍영인 Woven and Echoed 2021. 패브릭 / 이헌정 Island 2021. 클레이 & Untitled, Box Series 2021. 클레이, 콘크리트 / 이광호 <Obsession> Series 2025. 전선, PVC

정명택 <Creating a Void> Series 2025. 호두나무, 단풍 나무 / 홍영인 Woven and Echoed 2021. 패브릭 / 이헌정 Island 2021. 클레이 & Untitled, Box Series 2021. 클레이, 콘크리트 / 이광호 <Obsession> Series 2025. 전선, PVC

이광호 <Obsession> Series 2025. 폼, 동파이프, 우레탄 코팅 / 온지음 집공방 취렴(翠簾) 2024. 대나무, 금속, 실크

이광호 <Obsession> Series 2025. 폼, 동파이프, 우레탄 코팅 / 온지음 집공방 취렴(翠簾) 2024. 대나무, 금속, 실크

공간과 오브제의 접점에서 인트레치아토를 풀어낸 이헌정 작가의 작업은 도자와 철, 콘크리트가 결합된 격자 구조를 통해 ‘쌓음’과 ‘비움’의 미학을 구현한다. 반면 작가 정명택은 비어 있는 사각 구조를 중심으로 구성된 목재 작품을 통해, 존재와 부재, 형태와 여백 사이의 관계를 직조 개념으로 끌어올린다. 두 작가의 작업은 손의 흔적을 보이지 않는 구조와 연결함으로써, 직조를 감각의 건축으로 승화시킨다.


한편, 홍영인 작가의 대형 태피스트리는 섬유 공장에서 일했던 여성들의 목소리를 단절된 언어와 텍스타일로 재조합하며, 직조 행위를 저항과 기억의 언어로 전환한다. 이 작업은 인트레치아토의 상징성을 물리적 구조를 넘어 사회적 맥락으로 확장시키는 강렬한 시도다.


이러한 ‘엮임’의 물리성과 철학은 온지음 집공방의 작업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전통 대나무 발 제작 기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이 설치는 2층 전시장에 배치되어, 손의 기술과 협업의 정밀함을 통해 인트레치아토가 지닌 ‘만듦’의 본질을 드러낸다.



강서경 둥근 유랑 – 얼굴, 자리, 배 #22-01 2021-2022. 조합된 구조물 : 철에 도색, 실, 세탁망, 나무 프레임, 볼트, 가죽 조각, 바퀴, 나무 둥치 & Mat #24-06 2023-2024. 철에 도색, 화문석, 실, 나무 프레임, 볼트, 가죽 조각 & 따뜻한 무게 610 #21-02 2021. 철에 도색, 실 / 홍영인 Woven and Echoed 2021. 패브릭 / 이헌정 Island 2021. 클레이 / Untitled, Box Series 2021. 클레이 / 이광호 <Obsession> Series 2025. 전선, PVC

강서경 둥근 유랑 – 얼굴, 자리, 배 #22-01 2021-2022. 조합된 구조물 : 철에 도색, 실, 세탁망, 나무 프레임, 볼트, 가죽 조각, 바퀴, 나무 둥치 & Mat #24-06 2023-2024. 철에 도색, 화문석, 실, 나무 프레임, 볼트, 가죽 조각 & 따뜻한 무게 610 #21-02 2021. 철에 도색, 실 / 홍영인 Woven and Echoed 2021. 패브릭 / 이헌정 Island 2021. 클레이 / Untitled, Box Series 2021. 클레이 / 이광호 <Obsession> Series 2025. 전선, PVC

이처럼 작가들은 각자의 작업을 통해, 인트레치아토라는 기법을 단지 반복적인 엮음이 아닌, 시간, 기억, 몸, 언어, 구조, 물성의 복합적인 접점으로 풀어낸다. 이번 전시는 물성과 감각, 인간성과 예술성 사이의 섬세한 결을 직조하며, 동시대 예술과 수공예가 어떻게 새롭게 교차할 수 있는지를 섬세하게 증명한다. 그리고 그 결은 지금,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정제된 감각의 언어로 펼쳐지고 있다.


각기 다른 장르와 세대에서 출발했지만, 이들의 작업은 모두 인트레치아토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 반복과 연결, 물성과 상징을 엮어내는 이 전시는 결국, 손으로 이어온 시간의 미학이 동시대의 언어로 다시 엮여지는 과정이다.

전시<세계를 엮다 : 인트레치아토의 언어>는 6월 21일부터 22일까지, 종로구 아름지기 문화재단에서 무료로 공개된다. 카카오톡에서 사전 예약 가능하며, 현장 접수 시 대기 시간이 발생할 수 있다.

Credit

  • 에디터 김성재(미디어랩)
  • 사진 보테가 베네타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