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문학은 K-팝과 K-드라마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한국문학을 향한 관심과 인정. 그 다음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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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앞에 K가 붙을 때
간명한 명제 하나. “한국문학은 전례 없던 주목을 받고 있다.” 이어질 문장에는 의견이 분분하다. K-문학이라는 현상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평론가와 편집자들은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이어 붙였다.

잘 팔리는 문학과 잘 읽는 문화 사이
지난해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가져온 한국 문학장의 환희는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혹자는 한강 작가의 수상으로 한국문학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 말은 얼마나 맞고 또 틀릴까. 아니, 그것이 한국문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기는커녕 특정한 맥락만을 강제하는 것은 아닐까. 세계 문학장으로부터 받은 인정을 눈앞에 두고. 내내 같은 질문이 맴돈다.
세계의 인정은 한국문학 나름의 ‘향상심’에 기초한 것일 수도 있다. 더 높아지거나 나아지고 싶은 마음에 바탕을 두고 좋은 글을 널리 읽힐 수 있다면 그것이 인정 욕망이나 이데올로기 혹은 또 다른 무엇에 기인하든 상관할 바는 아닐 테니. 그러나 K-팝, K-무비, K-드라마 등 흔히 ‘K-OO’으로 불리는 범주에 기입된 ‘K-문학’ 호명의 의의가 무엇인지 따져본다면? 딱히 와닿는 것이 없다. 수많은 ‘K-OO’이 그러하듯, ‘한국’이라는 국가적 속성보다 개별 작품, 혹은 개별 작가의 스타일이나 흥미가 우선시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K-팝만 봐도 그렇다. 한국인이 만드는 팝이 아니라 한국인이 만드는 팝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스타일이 중요하며 그렇기 때문에 한국인이 아니더라도 만들 수 있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문학은 그렇지도 않다. K-문학을 통해 한국문학이 확장되기를 기대하기엔 어쩐지 그 여정이 녹록지 않을 것만 같다. 어째서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것일까.
지난 6월 코엑스에서 닷새간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을 보며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입장객은 대략 15만 명이나 되었다. ‘주식회사 서울국제도서전’이라는 사유화 문제를 차치하고 생각해보자. 인터넷으로만 입장권을 구입해야 하는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도서전은 성황을 이뤘다. 동시에,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발표한 ‘2023년 국민독서실태조사’ 결과가 눈에 밟힌다. 1년에 한 권 이상 책을 읽는 성인 비율은 43%에 불과하다는 사실 말이다. 10명 중 6명은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 쉽게 말해, 국내 독서 시장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국제도서전이 성황을 이뤘을지언정 책은 여전히 ‘읽는 사람만 읽는’ 상태에 머물러 있을지도 모른다. 지난해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직후, 인터넷 서점들은 접속 장애가 발생할 만큼 책 구입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한강 작가의 책을 제외한 다른 작가들의 책이 얼마나 읽혔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2025. 서울국제도서전
이런 상황에서 K-문학의 성과를 이야기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처럼 느껴진다. 한강 작가를 제외하고 천선란, 정유정, 편혜영 작가의 소설이 영화화되거나 영화 판권 계약을 맺고 황석영, 조남주, 손원평, 박상영 작가의 소설이 번역 출간되어 유수의 해외 문학상을 수상하거나 수상 후보가 되는 일은 분명 한국문학의 향상심을 고취하는 데 유의미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K-OO’으로 불리는 것이 온당한지, K-팝과 K-드라마만큼의 시장 경쟁력과 지배적 주도권을 가질 수 있을지 묻는다면 답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들로 인해 외국의 출판 관계자가 다른 한국문학 작가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의 작품들을 번역해 출판하는 일이 조금 더 활발해질 수는 있을 것이다. 한국문학번역원의 자료들을 보면 해마다 해외에 선(先) 저작권 계약 후 번역 지원사업에 공모한 책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 그 증례다. 하지만 국내에서의 독서 인구가 갈수록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문학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토대가 취약함을 증명할 따름이다.
해외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해 역으로 읽히는 작품을 기대하는 것보다, 한국문학 시장 안에서 안정적으로 10만 부 이상 소비되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먼저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문학 생태계가 더 다양해지기 위해 창작 지원을 확대하고 그들이 독자와 만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것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좁혀지는 일도 자연스러운 흐름이 된다. 어떻게든 국내 시장의 뿌리를 단단히 다질 방안을 고민하고 이행할 때 비로소 한국문학 작가들의 역량이 증진될 테니까. 그때서야 비로소 세계문학과의 대등한 위치에서 그 너머를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작년에 출간한 평론집에서 웹 플랫폼 활용을 제언한 적이 있다.(<포기하지 않는 마음> 중 ‘책이 지녀야 할 물음들-문학의 유통에서 문학의 소통으로’에서) 스마트폰이 가져온 콘텐츠 접근 양상의 변화로 문학의 생산과 유통, 소비 방식이 달라지고 있음을 인식하고 적절한 대응 방안을 모색해야 함을 피력한 글이었다. 밀리의 서재와 같은 플랫폼을 비롯한 여러 웹진은 독자가 작품을 보다 쉽게 접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니지만, 그 글을 썼을 때도 지금도, 유통 방식에서 종이책 시장과의 변별점은 마련하지 못한 것 같다. 책의 물성을 웹의 가상성으로 옮겨 놓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이다. 창작, 출판, 유통, 독서의 시스템이 기왕의 수준에 머물러 있게 되면 한국문학은 특정한 작가나 출판사 혹은 국가 지원사업에 의존한 채 파편적인 움직임만을 양산할 것이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강이라는 개인의 특출함에 더해 그동안 축적되어온 한국 문학장에서 발현된 상호 통섭이라는 토대 속에서 가능한 것이었다. 이 성취가 단발성으로 그치리라는 법은 없다. 해외에서 상을 받은 어떤 작가와 판권을 수출한 작품뿐만 아니라, 지금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수많은 작가와 그들의 작품도 세계적인 공감과 사랑을 받을 수 있다. 한국문학이 가장 먼저 읽히고 소비되는 지금 이곳으로 시선을 돌린다면.
Credit
- 사진/ 김래영
- 글/ 이병국(문학평론가)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이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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