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빛의 조각가, 제임스 터렐 독점 인터뷰

17년만의 한국 개인전을 위해 내한한 거장 제임스 터렐을 <바자 아트>가 단독으로 만났다.

프로필 by 손안나 2025.08.27

빛이 거기에 있었다.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과의 대화는 선문답에 가까웠다. 질문은 그림자, 대답은 빛. 그러니 당신 거기에 머물러도 좋다.


1960년대 중반 미국의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시작된 ‘빛과 공간 운동’은 말 그대로 빛과 공간을 예술의 주제로 삼았다. 단순한 형태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일견 미니멀리즘과 비슷해 보일지 모르나, 미니멀리즘이 전통적인 물질의 덩어리감에 주목한다면 빛과 공간은 지각 그 자체에 구두점을 찍는다. 이 운동을 대표하는 제임스 터렐은 관람객이 빛과 공간의 물질성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몰입형 설치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작가는 보는 행위를 조각한다. 빛은 무언가를 비추는 도구가 아닌 빛 그 자체이다.

작가는 이번 방한을 ‘귀향’이라 표현한다. 독실한 퀘이커 집안에서 자란 그는 1960년대 초반 중국에서 티베트의 승려를 위한 구명운동을 펼치다가 총상을 입었고 한국 서울의 미군 병원에 이송되어 치료를 받은 적 있다. 스스로가 현대미술의 선구자가 될 것이라고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던 젊은 날의 작가가 몸과 마음을 회복한 그 병원 터에는 오늘날 국립현대미술관이 들어섰다. 한국전쟁의 상흔이 가시지 않았던 그때의 서울은 이제 거리마다 창의성이 넘쳐흐르는 예술의 도시로 변모했다. 말하자면 작가에게 한국은 치유의 고향이다. 17년 만에 한국에서 개인전을 갖는 거장 예술가를 단독으로 만났다. 이 기묘한 인연을 음미하며.


어떤 장소든 그곳에 걸맞은 고유한 빛의 성질이 있습니다. 당신이 말했듯 같은 장비, 같은 프로그래밍을 사용해도 공간이 다르면 그 빛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빛을 다루는 예술가로서, 한국의 빛은 당신에게 어떤 존재입니까?

제가 한국에 처음 왔던 것은 1961년, 여러분이 태어나기도 전이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추운 겨울이었죠. 저는 당시에 중국에서 티베트 승려를 구하다가 총에 맞았고 서울에 위치한 미군 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았습니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이죠. 거기엔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이 자리 잡았습니다. 그때만 해도 저는 예술에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병원에서 미술관으로 바뀐 풍경과 제 과거와 현재의 변화된 모습을 함께 겹쳐 보는 일이 흥미롭습니다. 빛에 대해서 말하자면, 저는 한국의 빛을 좋아합니다. 한국의 빛은 부드럽거든요. 제가 사는 애리조나는 건조한 기후 탓에 빛이 바스락거리고 딱딱합니다. 덕분에 더 선명하기도 하죠. 한국은 바다와 가깝기 때문에 해양성 공기에서 오는 특유의 부드러움과 유연함이 있습니다. 저는 그 점이 아주 마음에 듭니다.

어쩌면 ‘치유의 빛’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네요. 한국에서 17년만에 갖는 개인전인 만큼 감회가 남다를 듯합니다.

그 부드러운 빛은 우리를 감싸는 온기와도 같은 것이니까요. 1961년 제가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엔 전쟁 직후였고 어딜 가나 슬픔의 정조가 짙게 깔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 특히 서울은 아시아 문화의 정점에 가까운 곳이죠. 이제는 슬픔 대신 활기와 기쁨이 넘쳐흐르는 것 같네요. 게다가 한국 사람들은 음악과 예술을 사랑하죠. 미국인들도 예술을 좋아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예술을 단순히 ‘본다’에 그치지 않고 그 안을 깊이 ‘들여다본다’는 점이 인상 깊습니다. 미국의 작곡가 필립 글래스도 한국의 뮤지션과 작업을 자주 하는데, 단지 음계를 잘 연주해서가 아니라 표현력에 있어서 높은 수준의 ‘소울풀함’을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게다가 저와 30년째 함께 살고 있는 아내 역시 한국인입니다. 그녀는 이곳에서 자랐습니다. 우리 둘 모두에겐 이번 방문이 일종의 부드러운 ‘귀향’인 셈입니다.

당신은 수십 년간 각 시대의 첨단 테크놀로지를 활용해 빛과 공간의 물질성을 구현해왔습니다. 최근으로 올수록 보다 색상이 다른 색상으로, 그러나 점진적으로 변해가는 표현 방식이 두드러집니다. LED 조명 기술 덕분에 가능했을 텐데요. 기술의 발전이 작업에 구체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합니까?

사람들은 제 작품을 볼 때 기술을 떠올리지 않지만, 사실 대부분의 작품은 기술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처음 작업을 시작했을 당시엔 디지털 시스템이 없어서 색을 섞는 과정이 매우 힘들었습니다. 물리적으로 코일을 감아서 색을 배합해야 했죠. 당시에 제가 사용할 수 있는 빛은 파스텔톤에 가까웠습니다. 네온 조명의 경우 조도가 8% 이하로 내려가면 꺼지기 때문에, 어떤 색을 배합하더라도 8%의 색상은 유지를 해야 했거든요. 세 가지나 네 가지 색을 섞어서 어떤 색을 보여주고 싶어도, 최소 8%씩은 각각의 색이 섞여 들어갔습니다. 빛의 완전하고 풍부한 색을 구현할 수 없었죠. 하지만 지금은 새로운 기술 덕분에 색상을 더욱 정교하게 섞어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보색도 섞을 수 있어요. 이런 기술이 개발될 때까지 살아 있어서 기쁠 따름입니다.(웃음) 사실 LED가 처음 나왔을 때는 아름답지 않았습니다. 빛이 너무 평평했죠. 그래프에서 보면, LED의 빨강은 뾰족한 하나의 ‘스파이크’였지만 네온의 빨강은 양옆으로 더 많은 색을 포함하고 있었죠. 네온의 빛이 더 넓게 퍼지고 더 풍부했단 뜻입니다. LED가 나아진 건 2000년대 초반쯤부터였습니다. 그때부터 놀라운 시도가 가능했죠. 예를 들어 회화에서 파란색과 노란색을 섞으면 녹색이 나오지만, 파란빛과 노란빛을 섞으면 흰빛이 나옵니다. 빛을 얻는다는 건 사실 빛을 나누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건 스펙트럼을 분리시키는 일입니다. 이제는 문화적으로도 그걸 이해하는 시대죠. 이전에는 단지 표면에서 반사되는 빛만 인지했다면, 지금은 스펙트럼을 활용한 색색의 조명들이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제서야 빛 자체를 배우게 된 것입니다.

<Projection Piece Drawings>, 1970-1971, 36 ink on paper drawings from 27.9cmx21.6cm to 21.6cmx27.9cm, 36 drawings, each. © James Turrell, courtesy of the artist and Pace Gallery. Photography by studio_kdkkdk

<Projection Piece Drawings>, 1970-1971, 36 ink on paper drawings from 27.9cmx21.6cm to 21.6cmx27.9cm, 36 drawings, each. © James Turrell, courtesy of the artist and Pace Gallery. Photography by studio_kdkkdk

1960년대, 당신이 미대를 졸업하고 처음 벽에 빛을 쏘기 시작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보겠습니다. 젊은 예술가로서 품은 야망이 있었을 텐데요. 지금의 당신은 그때 상상한 모습과 비슷한가요?

조각가라면 손으로 찰흙을 빚거나 돌이나 나무를 깎고 혹은 금속을 용접하는 것처럼 직관적으로 작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빛은 소리와 같습니다. 소리를 다루려면 일단 드럼이든 바이올린이든 악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 당시 저는 빛을 표현하려면 그걸 다룰 수 있는 ‘악기’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막 깨달은 차였죠. 맨 처음 직사각형의 빛을 벽에 투사하고 놀랐던 건, 그것이 벽 위에 걸어놓은 그림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직사각형은 벽 앞에 약간 떠 있거나 마치 벽을 뚫어 구멍을 낸 것처럼 보였죠. 그래서 저는 이 벽을 하나의 화폭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Wedgework> 연작은 그 벽을 날카로운 가장자리로 가르고 물리적인 깊이를 만들어서 사람들이 회화의 표면을 통과하도록 하는 작업입니다. 어떤 작품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주죠. 저는 이 경험을 통해 빛이 ‘가소성(plasticity)’이 있는, 즉 형태를 만들고 바꿀 수 있는 유연한 성질을 가진 매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만약 50년 전으로 돌아가서 저를 바라본다면 글쎄요. ‘빛의 교향곡’을 연주하기 훨씬 전, 아주 초보적인 단계에서 악기 연습을 계속하는 사람처럼 보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때가 결정적 순간이었습니다.

당신의 작품을 사면 빛을 소유하게 되는 걸까요?

예를 들어, 우리는 빛만큼 소리를 아낍니다. 과거에는 레코드, 그 다음엔 테이프와 디스크, 이제는 휴대전화 속 스트리밍으로 소리를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술 속에서 빛을 소유하는 건 여전히 어려운 일입니다. 이는 미술계의 문제점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미술 작품을 사는 사람들은 마치 금이나 다이아몬드 같은 귀금속처럼 형태가 있는 보물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컬렉터는 자신이 무엇을 샀는지 알고 싶어합니다. 누군가 “저는 파란 하늘과 색깔 있는 공기를 팔아 경력을 쌓아왔습니다”라고 말하면, 그들은 “파란 하늘과 색깔 있는 공기를 팔면, 제가 가진 것은 무엇인가요?”라고 되묻는 것과 같습니다. 제가 “당신은 이 공간을 통과하는 빛을 샀습니다”라고 이야기하면, 컬렉터의 입장에서는 충분치 않을 수 있죠.

<The Wedge>, 2025, LED lights, site specific dimensions, Runtime: 20 minutes. © James Turrell, courtesy of the artist and Pace Gallery. Photography by studio_kdkkdk

<The Wedge>, 2025, LED lights, site specific dimensions, Runtime: 20 minutes. © James Turrell, courtesy of the artist and Pace Gallery. Photography by studio_kdkkdk

맨 처음 사각형의 빛을 벽에 투사하고 놀란 건, 그것이 벽 위에 걸어놓은 그림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벽을 하나의 화폭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Wedgework> 연작은 날카로운 가장자리로 벽을 가르고 물리적인 깊이를 만들어서 회화의 표면을 통과하도록 하는 작업입니다. 가까이 다가갈 수록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주죠.


<Wedgework>, <Skyspace> 연작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알려진, 당신의 어린 시절 일화는 마치 동화 같습니다. 퀘이커교 집안에서 신기술과 단절된 채 성장하면서 이웃집 창문을 통해 반사되는 TV 화면에 매료된 기억, 항공기 엔지니어였던 아버지와 첫 비행을 하면서 일출 직전의 하늘을 가로지른 경험 같은 것 말입니다. 모두 빛에 대한 최초의 영감일 텐데요. 그래서인지 당신은 빛을 활용한 작품이 아닌 빛 그 자체에 관심이 있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동양의 경우엔 산수화처럼 원근 속에서 빛과 공간을 다룬 전통이 있습니다. 서양에서도 프리드리히, 윌리엄 터너, 페르메이르, 벨라스케스, 카라바조 등 수많은 화가가 빛을 다뤘죠. 심지어 인상주의는 완전히 빛과의 놀이 같은 것이었고요. 맞습니다. 저는 미술을 떠나서 빛 그 자체에 관심이 있습니다. 어릴 적 꿈이 소방관이기도 했죠. 자라면서 깨닫게 되었어요. 물리학자나 기술자가 아니어도 예술 속에서 빛을 다룰 수 있다는 사실을요. 예술가들은 늘 빛과 함께 사는 사람들이니까요.

반대로 빛에 관한 가장 최신의 영감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오늘날은 빛이 과잉인 시대니까요.

빛은 사물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리기도 합니다. 태양이 대기를 비추면 우리는 그때를 ‘낮’이라고 부릅니다. 낮 동안 우리는 별을 볼 수 없습니다. 지금의 문제는, 도시의 밤이 너무 밝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빛이 보이지 않습니다. 세상사 모든 일이 그렇듯 중용이 필요하지만, 인간에겐 어려운 일이지요. 저의 또 다른 작업 ‘로덴 크레이터’가 위치한 애리조나 북부의 고원지대 플래그스태프 지역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로웰 천문대의 천체 망원경이 즐비한 곳이죠. 결론적으로 말하면, 저는 ‘다크 스카이 조례’를 제정하는 데 참여했습니다. 어두운 밤하늘을 보존하기 위해 빛 공해를 규제하는 법규입니다. 밤에 인공 조명이 너무 밝으면 망원경으로 별을 볼 수 없게 되고, 관측 시설을 무용지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A Girl’s Best Friend>, Medium Diamond Glass, 2018, LED light, etched glass, shallow space, 137.2cmx137.2cm. © James Turrell, courtesy of the artist and Pace Gallery, Photography by studio_kdkkdk

<A Girl’s Best Friend>, Medium Diamond Glass, 2018, LED light, etched glass, shallow space, 137.2cmx137.2cm. © James Turrell, courtesy of the artist and Pace Gallery, Photography by studio_kdkkdk

빛에 관한 최신의 영감이 어둠이라는 점이 흥미롭군요. 당신에게 빛은 내면을 성찰하게 돕는 어떤 것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퀘이커 교도는 ‘빛의 아이들’이라고도 불린다죠.

저는 인간의 내면에도 빛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빛은 명상을 할 때 느껴지는 어떤 것, 혹은 꿈과 같은 어떤 것입니다. 저는 늘 꿈속에서 본 그 빛을 만들고 싶었어요. 어떤 사람들은 그 빛이 기억이라고 말하지만 제 생각엔 기억 이상의 무언가입니다. 저는 인간이 빛을 나르는 방향으로 진화했다고 생각합니다. 불을 옮겨 음식을 요리하고, 몸을 데우며 인류가 발전했습니다. 물리적으로 빛을 날랐지만, 사실은 우리 자신 안의 빛을 나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미래에는 바로 이 부분에서 기술 이상의 발전이 이루어질 것이라 믿습니다. 마치 텔레파시처럼, 우리는 곧 서로에게 영적인 빛을 전달할 수 있게 될 겁니다. 두 사람이 동시에 같은 꿈을 꾸는 것처럼 말입니다.

네 명의 귀여운 손자가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만약 손자 중 하나가 할아버지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물어본다면 뭐라고 대답하겠습니까?

사실 다섯 명입니다. 최근에 다섯째 아이가 생겼습니다. 음… 어려운 질문입니다. 당신은 <바자 아트>에서 전시에 대한 글을 쓸 때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합니까? 예술에 대해서 무엇을 말해야 할지 결정하는 일은 항상 어렵습니다. 하지만 최고의 내용은 상상력을 발휘할 때 나오는 것 같군요. 만약 제 손녀가 작업에 대해서 묻는다면 이렇게 말할 것 같습니다. “거기 들어가면 빛이 있고… 그렇단다.”

※ «James Turrell:The Return»은 9월 27일까지 페이스갤러리 서울에서 열린다.


손안나는 <바자 아트>의 편집장이다. 언젠가 ‘로덴 크레이터’ 분화구 바닥에 누워서 별을 바라볼 수 있기를 꿈꾼다.

Credit

  • 사진/ 레스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