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비엔날레 제대로 감상하는 법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와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가 동시에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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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두 개의 비엔날레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와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건축과 미디어아트 축제가 서울 도심 한복판에 펼쳐지고 있다. 익숙한 서울에서 낯섦을 경험하고 싶다면 다음의 행동수칙을 따를 것.
제5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주제전 <일상의 벽> 이미지. 사진: 최용준
백남준, <TV 부처>, 1989, 청동 조각, TV 모니터, 캠코더, 105x140x70cm.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강령: 영혼의 기술» 전시 전경, 서울시립미술관, 2025. 사진: 홍철기.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제5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주제전 <휴머나이즈 월> 이미지. 사진: 최용준
1. 지루함의 전염병 퇴치하기
“우리 주변 세상이 점점 비슷해지고, 개성이 없어지고, 무미건조해지고 있어요. 모두 평평하고, 직선적이고, 번쩍이고, 익명적이고, 진지합니다. 어느 도시를 가도 다 똑같습니다. 지루함의 전염병이 확산되고 있어요. 멋진 오페라 하우스나 미술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일상의 건축물에 대한 이야기죠. 우리는 건물의 외관, 즉 피부를 오랫동안 방치해 왔습니다. 사실 건물 내부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보다 건물 외부에 있는 사람이 숫자로도 훨씬 더 많습니다.” ‘Cities for Citizens: Building for the Passers-by(시민을 위한 도시, 행인을 위한 건축)’. 제5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의 총감독을 맡은 토마스 헤더윅이 던지는 화두다.
단조로운 도시 건물이 지루함의 전염병이라면 한국은 그 전염병의 소굴과 다름 없다. 한국의 (아주 많은) 건물들은 미적인 고려 없이 공간의 효율성과 비용 절감을 목표로 설계되었다. ‘빨리 빨리’ 문화가 오늘날 한국의 고도 성장에 일조했음을 부정할 수 없지만 헤더윅이 말했듯, 어느 사회가 진정으로 성공했는지 여부는 시민들이 그 공간을 얼마나 아끼고 있는가로 판가름할 수도 있다.
예쁜 건물을 짓는 일이 도대체 나의 삶과 무슨 상관인가? 반문하고 싶다면 다음의 수치에 주의를 기울여보자. 헤더윅은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건물’을 짓는 것이야말로 환경적으로도 더 지속 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한다. “우리는 건물들을 너무 쉽게 철거합니다. 시민들이 아끼지 않는 건물이 철거되면 또다시 지루하고 재미없는 건물이 올라갑니다 영국에서는 1년에 50만 채의 건물을 철거하고, 평균 수명은 40년입니다. 놀라운 건 서울입니다. 서울의 건물 수명은 28년밖에 안 됩니다. 만약 제가 서울의 건물이라면, 저는 27년 전에 죽었을 겁니다.(웃음) 빅맥 햄버거를 만들 때 4kg의 탄소가 배출되고, 로켓을 우주에 발사할 때는 250톤의 탄소가 배출됩니다. 그런데 빌딩을 철거하는 데에는 9만2천210톤의 탄소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항공산업이 탄소 배출의 주범이라고 얘기하지만, 건설산업이 얼마나 나쁜지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습니다.”
헤더윅은 이번 비엔날레의 총감독을 맡으면서 25년 전 런던에서 건축가들끼리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왜 일반 시민들이 건축 전시를 재미없다고 느낄까?’ 그는 건축이란 본질적으로 소통이 어려운 분야임을 인정한다. 건축가의 드로잉이나 렌더링처럼 복잡한 시각 자료는 전문가에게는 흥미로울지 몰라도, 일반 시민들에게는 낯설고 접근하기 어려운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건설산업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건축가들은 언제나 내부의 논의에만 몰두했고, 대중과의 대화는 부족했다. 헤더윅 스튜디오가 지난 30년 동안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깨달은 점은 무엇일까? 하나의 프로젝트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이며, 변화는 오직 공공의 열린 대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대화의 장이 열리기 위해선 일단 일반 시민들의 관심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헤더윅이 건물의 ‘외관’을 그토록 강조하는 것은 이런 이유다.
“우리는 개방적이고, 너그럽고, 장식적이고, 유쾌하고 이야기를 담은 도시 환경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지금 종로구 열린송현 녹지광장에서 만나볼 수 있는 대표작 <휴머나이즈 월>은 헤더윅이 고안한 일종의 해법이다. 지나가던 어린아이도 흥미를 가질 만큼 의도적으로 특이한 구조와 형태로 설계된 이 구조물은 가로 90m, 높이 16m의 크기로 1천482개에 달하는 철판이 조각보처럼 연결되어 있다. ‘사람을 위한 건축’ 선언문이 담긴 거대한 잡지인 셈이다. 각각의 조각에 8개국 110명 디자이너가 참여한 400여 개 건축물 이미지와 창작커뮤니티 9개 팀의 아이디어를 모은 1천428장의 스틸 패널이 메시지로 새겨져 있다. “중간이 휘어진 <휴머나이즈 월>은 마치 한국의 비빔밥 같습니다. 다양한 의견들이 혼재되어 있죠. 모든 사람들이 여기에 와서 언제든 이야기할 수 있는, 시민들의 공적 대화가 시작되는 장으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이 구조물은 그 첫 번째 관문입니다.”
2. 잠시, 숨 고르기
건축이 합리성을 기반으로 사람을 향한다면, 예술은 비합리성을 바탕으로 역시 사람을 향한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의 예술감독 팀 안톤 비도클, 할리 에어스, 루카스 브라시스키스는 영적 세계와의 교류를 탐구한다.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 «강령: 영혼의 기술»은 산업화 시대인 19세기 말과 인공지능 시대인 오늘날, 두 개의 시대에서 벌어진 급격한 사회 변화와 그로 인한 일상의 파괴, 인간 소외를 겪는 시민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상상의 탈출구를 제공한다. 이것이 가속주의와 합리주의 논리에 대항하는 일종의 기술로서 기능한다면, 일견 토마스 헤더윅이 천편일률적인 건물에서 ‘피부’를 찾고자 하는 노력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힐마 아프 클린트, <타오르는 불꽃>, 1930, 종이에 수채, 47x31cm.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강령: 영혼의 기술» 전시 전경, 서울시립미술관, 2025. 사진: 홍철기.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ORTA(알렉산드라 모로조바와 루스템 베게노프), <새로운 천재들의 위대한 원자폭탄 반사기 경험>, 2025, 퍼포먼스, 90분.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강령: 영혼의 기술» 퍼포먼스 전경, 청년예술청 그레이홀, 2025. 사진: 홍철기.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3. 강령술로 영혼 불러오기
하퍼스 바자 한국은 전 국민적으로 영성에 관심이 큰 나라입니다. 우리끼린 ‘무속의 나라’라고 자조하곤 하죠. 강령과 영혼이라는 주제를 펼치기에 서울이 얼마나 적절하다고 생각했나요?
안톤 비도클 조사 과정에서 우리는 한국에 100개가 넘는 다양한 종교와 종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나라의 규모와 비교하면 상당한 숫자예요. 특히 지난 세기 동안 특정한 영성 활동이 한국의 격동적인 정치 상황과 어떻게 맞물렸는지 살펴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진보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고, 또 어떤 경우에는 오용되기도 했죠.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한국의 영성 문화가 융합적이며 체험 중심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의 길을 고집하기보다 여러 우주론을 섞어서 일상 속에 포용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때로 조화롭지만, 때로는 긴장을 만들어내기도 하면서요.
하퍼스 바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종교나 강령 혹은 영성 그 자체를 다룬 전시는 흔치 않았습니다. 아마도 비정통하고 비전문적이라는 편견 때문이었겠죠. 그런데 2025년 현재 한국에서는 부산현대미술관의 «힐마 아프 클린트: 적절한 소환»,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상 2025» 임영주 등 이와 관련한 전시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리고 있습니다. 일종의 현상일까요?
안톤 비도클 오랫동안 이런 개념들은 ‘충분히 현대적이지 않다’ ‘구시대적이다’ ‘비과학적이다’라는 인식 속에 있었죠. 1980년대 중반 로스앤젤레스의 «The Spiritual in Art» 전시나 1989년 파리 퐁피두센터의 «Magiciens de la Terre» 같은 프로젝트가 이런 주제를 다뤘지만, 그 이후로는 거의 시도되지 않았습니다. 부산시립미술관의 힐마 아프 클린트 전시는 저도 인상 깊었습니다. 무엇보다 전시 연출이 매우 흥미로웠고, 이전의 순회 버전들보다 훨씬 완성도가 높았죠. 클린트는 자신의 작품을 위한 급진적이고 유토피아적인 전시 공간, 즉 ‘신전(The Temple)’을 구상했으며, 루돌프 슈타이너와 함께 그것을 실현하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봐온 대부분의 전시는 그녀의 이러한 의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전통적인 방식에 머물렀습니다. 그런 점에서 부산 전시는 훨씬 성공적인 해석이었다고 생각해요.
하퍼스 바자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강령: 영혼의 기술»은 산업화 시대인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그리고 인공지능 시대인 현재 이렇게 두 가지 시점을 집중 조명합니다. 두 시대는 어떤 점에서 닮았고 또 다른가요?
할리 에어스 심령주의, 오컬트, 신비주의, 그리고 다양한 혼합 종교들은 근대주의의 탄생과 거의 동시에 번성했어요. 이는 대중의 상상력뿐 아니라 아방가르드 예술에도 큰 자극이 되었죠. 급격한 산업화와 그로 인한 일상의 파괴와 인간 소외는 사람들에게 감정적, 상상적 탈출구를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디지털화, 알고리즘 자동화, 인공지능 확산으로 인해 다시금 극심한 변화를 겪고 있어요. 이 역시 혼란과 불안, 소외, 스트레스를 불러오죠. 그래서 많은 예술가와 영화인, 문화 실천가들이 인간 너머의 인식과 미학에서 영감을 얻으며 시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사용되는 기술이나 세계화의 양상에선 전혀 다르지만, 우리는 이런 예술의 흐름이 두 시대에 걸쳐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했습니다.
하퍼스 바자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외에도 낙원상가,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등 서울 각지에서 전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각각의 장소는 어떤 의미를 갖나요?
할리 에어스 음악은 단지 영성에 영향을 받은 예술이 아니라, 실제로 의식과 트랜스 상태를 만들어내는 의례의 형태이기도 하죠. 낙원상가와 협업하게 되어 매우 기뻤습니다. 낙원상가는 세계 최대 규모의 악기상가 건물이고 1970~80년대엔 이 지역이 한국의 경제 호황과 함께 활발한 클럽 문화의 중심지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 시절 뮤지션들은 낙원상가에 모여 대타 공연 제안을 기다리곤 했다죠. 이곳에 세 개의 위성 공간을 설치했어요. 하나는 큐레이터 사나 알마제디가 기획한 ‘리스닝 룸’이고, 나머지 두 곳은 음악가 아키 온다와 아밋 두타에게 각각 할애했습니다.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역시 꼭 포함하고 싶었던 장소였습니다. 비엔날레의 주요 프로그램 중 하나로 장편영화들을 상영할 수 있는 극장이 필요했거든요. 영화 관람이라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강령(Seance)’이기도 해요.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빛의 흔적을 통해 다시 나타나는 순간이니까요.
하퍼스 바자 개인적으론 안리 살라의 비디오 <생각의 과잉>을 흥미롭게 감상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점에선 전시 역시 영혼을 불러들이는 행위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안톤 비도클 안리의 작품을 좋아해 주셔서 기쁩니다. 그는 몇 년 전 제가 로스앤젤레스에서 기획한 전시를 위해 이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화가 다비드 알파로 시케이로스는 생전에 잡지에서 오려내거나 다른 사람에게서 얻은 사진을 포함하여 수천 장의 이미지를 수집하고 이를 ‘건축’ ‘인물과 역사적 인물’ ‘사물’ ‘모형’ ‘회화’ ‘조각’ ‘노동자와 산업’ ‘고통’이라는 범주로 꼼꼼하게 정리했습니다. 그의 의도는 1974년 자신이 세상을 떠난 후 다른 예술가들에게 이 아카이브를 공개하는 것이었죠. 안리는 그 안에서 한 장의 사진을 발견했죠. ‘건축’이라는 이미지 폴더에 있던 그 사진은 한 남자가 높은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이이었어요. 그는 그게 자살 장면일지도 모른다고 해석했습니다. 다비드가 왜 이것들을 ‘고통’이나 혹은 전혀 다른 범주로 분류하지 않았는지 의아해했죠. 하지만 아무런 추가 정보도 없었어요. 그래서 그는 반쯤은 농담처럼, 반쯤은 진지하게 실제로 ‘영매’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로스앤젤레스에는 영매가 꽤 많아요. 어쩌면 불안정한 영화산업의 속성 때문이겠죠.
하퍼스 바자 다비드가 남긴 수천 장의 이미지가 “삶에 관한 모든 것이 있는” 아카이브였음을 상기한다면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예술에서 당신들이 믿는 ‘주관적 진실’을 말해주세요.
루카스 브라시스키스 얼마나 주관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몸의 정지가 마음의 정지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앙리 베르그송이 말했듯, 예술은 우리의 감각적 습관을 깨뜨리고 우리를 전혀 다른 리듬으로 만듭니다. 때론 극단적으로 느리고 돌연히 빠른 속도로요. 그리고 그 순간 세상이 새롭게 보이죠. 그래서 저는 예술 작품이나 영화가 진정으로 작동할 때, 그것이 언어적 설득이 아니라 지각의 재구성을 일으킨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당신의 시선이 변하지 않았다면, 그 만남은 아직 진정으로 일어나지 않은 것입니다.
※ 제5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는 11월 18일까지,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는 11월 23일까지 서울 곳곳에서 열린다.
Credit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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