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디 2026 가을 겨울 컬렉션,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가 다시 쓴 첫 문장
펜디로 귀환한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 왜 모두가 이 복귀에 주목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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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S I, MORE US”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가 펜디에 도착했다는 건 단순히 디렉터가 바뀌었다는 뜻이 아니다. 한 하우스가 새로운 언어로 다시 말을 걸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그리고 그 언어는, 예상대로, 아름다웠다.
현대의 패션 디자이너는 큐레이터에 가깝다. 하늘 아래 새로운 창조란 없을지도 모르지만, 새로운 조합과 의미 있는 선택은 있다. 그 일련의 감각을 에디팅하는 것이 현대 패션 디자이너의 역할일지도 모른다.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가 펜디에서 첫 쇼를 열었다. 첫 쇼라고는 했지만, 정확히는 귀환이다. 그녀는 1989년 스물네 살의 나이로 이 하우스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펜디 다섯 자매 곁에서 10년을 보내며 바게트 백을 함께 만들었고, 이후 발렌티노와 디올을 거쳐 37년 만에 이 집으로 돌아왔다. 떠났던 사람이 돌아올 때, 그것도 자신이 처음 손을 익힌 집으로 돌아올 때, 그 무게는 다르다. 그 차이가 이번 쇼 전체에 흘렀다. 이제 브랜드는 하우스의 이름을 넘어, 그 하우스를 움직이는 새로운 스타 디자이너에게 더 큰 파워가 실린다. 큐레이터처럼 그 하우스의 아카이브와 컬러와 능력치를 디자이너의 안목에 따라 다시 에디팅해서 그만의 버전으로 다시 입혀내는 것, 그리고 그것을 보는 것은 우리의 기쁨이다. 펜디의 2026 가을/겨울 쇼는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라는 이 시대 감각의 보고가 보여준 새로운 방식의 펜디였다. 펜디 가문과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의 팬들을 모두 감동시킬 만한 무대였다.
쇼는 “Less I, More Us”라는 문장으로 시작됐다. 런웨이 바닥에, 가방의 그물망에 스텐실로 새겨진 그 문장은 선언이자 태도였다. 그것은 곧 키우리가 피날레 인사를 마칠 때쯤엔 단순한 슬로건 이상의 무언가로 번져 있었다. 남성과 여성이 나란히 런웨이를 걸었다. 더블 브레스트 노치 칼라 재킷, 스트랩으로 여미는 싱글 브레스트, 더블 데님, 워크 웨어풍 톱 코트가 남녀 모두의 몸 위에서 반복됐다. 같은 옷이, 다른 몸을 입고 다른 의미가 됐다. 화이트 코튼과 블랙 레더, 블랙 퍼로 만든 탈착식 칼라는 남녀 공동 쇼임에도 여성에게만 입혀졌다. 칼 라거펠트의 트레이드마크였던 맞춤 셔츠 칼라를 떠올리게 하는 그 디테일은 헌사처럼 읽혔다. 키우리가 쇼 전부터 반복해서 말했던 건 실루엣이었다. 그리고 그 실루엣은 몸을 덮는 대신 몸과 대화했다. V넥이 열어둔 여백, 그 아래로 좁아졌다 다시 퍼지는 선. 옷이 몸의 언어를 따라 움직이는 형태였다. 쇼를 보는 내내 느껴지는 것은 절제된 풍요로움이었다. 많지 않았지만, 충분했다. 화려하지 않았지만, 강렬했다.
키우리의 큐레이팅 실력은 아티스트를 보는 눈에서도 드러난다. 이번 컬렉션에 초대된 두 아티스트, 미렐라 벤티볼리오와 SAGG 나폴리는 얼핏 전혀 다른 세계의 인물들이지만 키우리와 결정적인 지점에서 만난다. 언어로 정체성을 묻고, 집단 안에서도 개인을 잃지 않으려는 태도. 벤티볼리오는 단어를 해체해 의미의 지층을 드러내는 예술가다. 그녀에게 언어는 소통 도구가 아니라 역사이자 정치였고, 그 역사 안에서 여성의 자리를 끊임없이 되물었다. 이번 협업으로 1970년대 초 그녀가 구상한 주얼리가 한정판으로 되살아났다. 귀 모양의 귀고리, 손 모양의 반지처럼, 형태 자체가 언어인 작업이다. ‘NOIa(우리이자 권태)’, ‘Senza senso(난센스)’, ‘foulard’를 ‘fou(광기)’로 분절한 스카프까지 그녀의 유산은 티셔츠와 액세서리 위에서 지금의 언어로 다시 발화됐다. SAGG 나폴리는 다른 결로 합류했다. 그가 쓴 문구들, “Rooted but not stuck(뿌리를 두되 고착되지 않기)”, “Present but not dependent(함께하되 의존하지 않기)”, “Loyal but not obedient(충성하되 복종하지 않기)”, “Committed but not consumed(헌신하되 소모되지 않기)”는 모피로 만든, 축구 서포터들이 목에 두르는 그 긴 줄무늬 스카프와 티셔츠에 새겨졌다. 이 문장들은 키우리가 1989년부터 1999년까지 몸담았던 펜디 다섯 자매 시절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했다.
이번 쇼의 가장 과감한 선택은 모피였다. 펜디의 근간이지만 오랫동안 조용히 뒤로 물러나 있던 그것을, 키우리는 정면으로 꺼내들었다. 트리밍과 칼라, 프린지, 꽃 모양 조각을 레이스처럼 이어 붙인 롱 가죽 코트. 그리고 가장 화려하고 과시적인 모피는 남성 모델들의 몫이었다. 여우털 레트로 블레이저, 그린으로 물든 롱 헤어 재킷, 패치워크로 뒤섞인 텁수룩한 코트. 이 모피들의 배경엔 ‘에코 오브 러브(Echo of Love)’라는 프로젝트가 있다. 이미 소장한 모피를 펜디 아틀리에와 함께 새로운 실루엣으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이다. 버리는 대신 다시 입는 것, 이건 소비를 넘어선 기억이다. 키우리는 그것을 ‘정서적 내구성’이라 불렀다. 옷 안에 깃든 시간과 관계, 그 감촉을 지워버리지 않고 오늘의 형태로 이어가는 것. 이건 수선이 아니라 그 옷과 함께한 시간을 놓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패션은 은유다. 그것도 아주 강력한 은유다. 내가 누구인지를 끊임없이 탐구할 때 우리는 그 은유라는 결정체를 뽑아낼 수 있다. 누군가의 말투, 걸음걸이, 옷차림, 심지어 숨을 쉬는 방식에서까지 우린 그 사람을 읽을 수 있는 단서를 발견한다. 그것은 모두 그 사람의 피부 조각이다. 그래서 우린 나를 알고, 나를 무언가에 빗대어, 즉 은유라는 힘을 빌려 이야기해줄 필요가 있다. 그 시작은 언제나 나와 나를 둘러싼 것을 다정하게 보는 눈빛이다. 모든 것을 다정하고 세심한 시선으로 살필 때 우리는 그 은유를 조금이라도 가깝게 완성할 수 있다. 이번 펜디 쇼는 그 이야기를 풀어낸다. 언어를 해체해 새로운 의미를 만드는 벤티볼리오, 팀 안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SAGG 나폴리, 기억을 담은 모피를 오늘의 실루엣으로 되살리는 키우리. 세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나는 나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리고 내가 입는 것은 과연 나를 얼마나 닮아 있는가. 쇼가 끝난 자리에 그 물음만이 조용히 남는다.
Credit
- 글/ 김민정(프리랜스 에디터)
- 사진/ ©️ Fendi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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