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대담하게 재탄생한 2026년식 스카프

작은 액세서리 하나에 담긴 끝없는 가능성.

프로필 by 윤혜연 2026.05.03

SEASON OF THE SCARF


여러 세대에 걸쳐 여성들은 작은 실크 스카프를 선택해왔다. 스타일에 정제된 우아함과 세련미를 더하기 위한 필수 액세서리로. 올봄, 이 풀라드(foulard)가 조금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다. 훨씬 더 대담하고 기묘한 모습이다.


Celine

Celine


Kallmeyer Tod’s Lanvin Gucci Hermès Dries Van Noten Versace Conner Ives Chanel Marine Serre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7월의 어느 날, 파리 셀린느 본사 안뜰. 올림픽 수영경기장만큼 거대한 실크 스카프가 펼쳐진 채 빗속에서 부드럽게 일렁였다. 체인과 리본이 뒤섞인 패턴의 이 스카프는 마이클 라이더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데뷔 쇼를 보기 위해 모인 에디터와 바이어, 셀러브리티 위로 드리워졌다. 일종의 천막처럼. 처음에는 그저 SNS용 연출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모델들이 런웨이를 걷기 시작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실크 스카프, 프랑스어로 ‘풀라드(foulard)’가 셀린느의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는 상징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라이더의 첫 컬렉션과 이어진 봄 여성 컬렉션에서 풀라드는 가장 두드러진 모티프로 등장했다. 하우스 시그너처인 승마 모티프 프린트와 모노그램이 들어간 강렬한 색감의 스카프들은 코트 라펠 아래에서 살짝 보이도록 연출됐다. 블레이저 위 목에 느슨하게 묶이기도 하고 어깨 위에 리본처럼 드리워지기도 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트렌치코트 안감, 패치워크 스커트, 셔링 톱 등 의복 자체로 활용됐다. 풀라드 열풍은 결코 단발성 현상이 아니었다. 그해 여름 알렉사 청, 카일리 제너, 린드라 메딘 코헨을 포함한 많은 이들이 팬츠 위에 작은 사롱(sarong, 남녀 구분 없이 허리에 둘러 입는 천)처럼 스카프를 두르는 스타일을 즐겼다. 이어진 다음 해 봄에는 세계 주요 패션 도시 런웨이 곳곳에서도 스카프는 예상치 못한, 때로는 충격적일 만큼 새로운 방식으로 등장했다. 런던에서 코너 아이브스는 밝은 오렌지 컬러 톱에 새 프린트가 들어간 그린 실크 스카프 스커트를 매치했다. 프랑스식 단정함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에르메스는 상징적인 까레(carré, 정사각형 실크 스카프)를 레더 하네스에 도발적으로 끼워 넣었다.

“실크 스카프가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다시 널리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유는 오래된 아이디어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 위에 얼마든지 새로운 개념을 투영할 수 있으니까요.” 지난여름 이 트렌드를 자주 시도했던 작가이자 트렌드세터 린드라 메딘 코헨이 말했다. “익숙하고 이해하기 쉬운 아이템입니다. 사용 방식을 복잡하고 창의적으로 무한히 확장할 수 있죠.” 코헨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에르메스 스카프를 홀터 톱, 브라톱, 헤어 액세서리로 사용했다. 임신했을 때는 열린 바지 지퍼를 가리기 위해 배 아래 묶기도 했다. 그녀에게 풀라드는 스타일링의 핵심 도구다. “실용성을 잠시 내려놓고 순수한 자기 표현을 생각할 때 실크 스카프는 날카로운 스타일에 마지막으로 더하는 세련된 한 방 같은 존재예요.” 사실 나는 스스로 실크 스카프를 즐겨 착용하지 않았다. 이 액세서리는 언제나 단정하고 세련된 모습이었던 엄마와 할머니의 것이었다. 두 분은 세인트 존의 니트 재킷 어깨 위에 살짝 두르듯 착용하곤 했다. 프레피 스타일을 가진 친구들의 세계이기도 했다. 그들은 열다섯 살 무렵이면 이미 에르메스 까레를 목에 어떻게 묶는지 정확히 알고 있을 정도였다. 실크 스카프는 단정하고 여성스러운 감각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반려견과 산책을 하거나 밸모럴(Balmoral)에서 사냥할 때 컬을 정성스럽게 말아 올린 헤어 위에 에르메스 스카프를 묶은 엘리자베스 여왕의 모습을 떠올리면 된다.

내게 실크 스카프는 언제나 지나치게 어른스러웠다. 어딘가 보수적인 느낌마저 들었다. 마치 끊임없이 바뀌고 뒤섞이는 내 옷장 속 스타일과는 좀처럼 자연스럽게 어울리지 않는, 반짝이는 한 조각의 화려함 같았다. 그러나 이번 봄 컬렉션이 이 생각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정말로 실크 스카프는 목에 단정하게 묶는 방식으로만 착용해야 할까? 머리에 밴대너처럼 두르면 할머니처럼 보일까? 조금 더 기묘하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스타일링할 수는 없을까? 드리스 반 노튼에서 남성복 데뷔 컬렉션을 선보인 줄리앙 클라우스너는 바지 위에 스카프를 두르는 스타일링을 제안했다. 그 모습은 그야말로 매혹적이었다. 사무실에서 바로 바까지 이어지는 하루를 위한 스타일. 구찌에서는 아이코닉한 플로럴 실크 헤드 스카프에 헤드밴드를 내장해 독특한 구조감을 더했다. 컬렉션 노트에서 뎀나 바잘리아는 플로럴 프린트를 변주한 디자인에 대해 ‘밤의 화신(a nocturnal incarnation)’이라고 표현했다. 베르사체는 1980년대식 화려한 스카프 프린트 블라우스, 샤넬은 꽃잎처럼 퍼지는 스커트 형태의 스카프 드레스를 선보였다. 랑방은 1920년대 플래퍼(flapper, 짧은 드레스와 보브커트 등으로 전통적 성 역할과 관습을 깨뜨린 당대 신여성상을 표현하는 용어) 스타일에서 영감 받은 룩을 공개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실크 스카프로 구성한 룩이었다. 미우미우는 스웨터와 폴로 셔츠 아래에 애스콧(ascot) 매듭 스카프를 더하고, 그 위에 유틸리티 스타일의 레더 에이프런을 레이어드했다. 미국 체인 백화점 그룹 삭스 글로벌(Saks Global)의 패션·라이프스타일 디렉터 클로이 킹은 이렇게 말한다. “요즘 패션에는 부르주아적 감각에 대한 관심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클래식한 실크 스카프가 중요한 요소로 떠오르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죠.” 클로이 킹 역시 스카프를 즐겨 활용한다. “예전에는 스카프를 비교적 전통적인 방식으로 착용했지만, 요즘에는 1970년대 느낌으로 머리에 묶는 스타일을 좋아해요.” 여행을 갈 때도 스카프 몇 개를 항상 챙긴다고. “띠 모양 톱, 홀터 톱, 스커트처럼 묶을 수 있죠. 어디든 조금 더 스타일이 필요할 때 활용할 수 있어요.”


영화 <로마의 휴일> 속 스카프를 두른 채 스쿠터를 타는 오드리 헵번. 1959년, 스카프를 팔 보호대로 활용한 모나코 공주 그레이스 켈리. 스카프를 연상케 하는 실크 드레스를 입은 가수 다이애나 로스.  허리에 두른 스카프로 룩에 강렬한 포인트를 더한 린드라 메딘 코헨. 드리스 반 노튼 드레스를 입은 카이아 거버. 스카프를 머리에 둘러 힙합 스타일을 연출한 리아나 숄더백에 스카프를 묶어 포인트로 스타일링한 아요 어데버리.

지금 실크 스카프가 왜 이렇게 주목받는지 이야기하려면 그 시작점, 에르메스를 빼놓을 수 없다. 풀라드의 기원은 고대 중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군 계급을 나타내기 위해 자수 장식이 들어간 실크 천을 사용했다. 이 직물은 실크 로드를 통해 유럽으로 전해졌고, 빅토리아 여왕 같은 인물에게 사랑받았다. 현대적인 프린트 실크 스카프를 대중화한 건 에르메스다. 에르메스는 1937년 이 아이템을 출시하며, (당시에도 이미 견고하지만 값비쌌던) 자사의 레더 핸드백을 대신할 수 있는 보다 합리적인 가격의 대체품으로 제안했다. 이는 곧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재키 케네디는 사업가 애리스토틀 오나시스와 함께한 휴가에서 스카프를 착용했고, 그레이스 켈리는 팔을 다쳤을 때 자신의 스카프를 즉석에서 팔 보호대로 활용했다.(정말이지 매우, 매우 시크하다!) 오드리 헵번은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하얀 셔츠에 스카프를 두른 채 베스파를 타는 모습으로 상징적인 이미지를 남겼다. 1979년, 당시 에르메스 회장이던 장-루이 뒤마는 에르메스 까레 스카프를 두른 젊고 세련된 파리지앵이 청바지를 입고 등장하는 캠페인을 선보였다. 이 결정은 에르메스 가문 내부에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나, 비즈니스적 성과는 달랐다. 브랜드의 보수적인 이미지를 완화했고 실크 스카프는 세련된 현대 여성의 옷장으로 들어갔다.

지금, 스카프가 특히 흥미롭게 다가오는 이유가 있다. 많은 패션 디자이너가 숙녀 스타일을 재해석하고 있어서다. 드롭 웨이스트 드레스와 1950년대 스타일 펌프스·스커트수트·브로치·플로럴 패턴이 런웨이를 장식하는 요즘, 젊은 세대는 어른처럼 차려입는 감각을 탐색하고 있다. 방식은 조금 다르다. 클래식 실루엣과 액세서리를 그대로 따르지 않는 것. 살짝 비틀어 새로운 방식으로 연출한다. 스커트수트는 약간 구겨진 편이 오히려 덜 격식 있어 보인다. 브로치는 라펠 대신 바퀘라 청바지에 꽂을 수 있다. 오페라 장갑은 늘어진 실루엣에 강렬한 색감으로 등장한다. 풀라드 역시 셔츠처럼 변형해 입거나 턱시도 팬츠 위에 묶거나 라부부 키 링이 달린 가방 손잡이에 함께 매달 수 있다. 2023년에 출간된 <The Story of the Hermès Scarf(에르메스 스카프의 역사)>의 저자 라이아 파란 그레이브스는 이렇게 설명했다. “지금 패션에서 노스탤지어의 영향력은 특히 강합니다. 실크 스카프는 헤리티지와 전통을 상징하며 진정성을 찾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죠.” 또 그녀는 많은 소비자가 빈티지 아이템을 찾고 구매하는 데 열중하는 현재 분위기 속에서 “많은 에르메스 스카프가 세대를 거쳐 전해지며 감정적 가치와 특별한 의미가 더해진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가진 아이템을 찾고 개성을 표현하려는 흐름 역시 지금 이 스카프들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이러한 흐름은 럭셔리 리세일 플랫폼 리얼리얼(The RealReal)의 판매 데이터에서도 확인된다. 지난해 에르메스 실크 스카프 판매량은 36% 증가했고, 평균 판매가 역시 13% 상승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어거스트 배런의 한 셔츠를 계속 눈여겨보고 있다. 브랜드 웹사이트에서 ‘풀라드 톱’이라 불리는 이 아이템은 두툼한 회색 코튼 셔츠에 프린세스 소매(princess sleeve, 어깨 윗부분이 봉긋하게 부풀고 아래로 갈수록 좁아지는 형태)가 달려 있고 앞쪽에는 구멍 두 개가 뚫린 브이넥 칼라가 특징인데, 흑백 폴카 도트 스카프가 목 위를 가로질러 그 구멍 사이로 끼워지도록 디자인됐다. 이 톱은 튤 장식을 더한 카고 펜슬 스커트, 콤배트 부츠와 리본 장식의 둥근 앞코 펌프스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슈즈와 함께 스타일링돼 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얼마나 달콤하게 기묘한 스타일인가.’ 과거와 현재가 절묘하게 뒤섞인 프랑켄슈타인 같은 패션의 순간, 마치 할머니식 멋과 2026년식 레이디 엘레강스가 만난 장면 같다. 풀라드 스카프는 더 이상 엄마나 할머니의 전유물일 필요가 없다. 묶고 비틀며 우리의 방식으로 즐길 수 있다. 작은 액세서리 하나에 끝없는 가능성이 담겨 있다.


Credit

  • 글/ Brooke Bobb
  • 번역/ 박태원
  • 사진/ Launchmetrics(런웨이), Getty Images(셀러브리티)
  • 디자인/ 한상영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MOST LIKE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