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예술가, 프랭크 게리를 기억하다
루이 비통이 아트바젤 홍콩에서 프랭크 게리에게 헌사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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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EVER FRANK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Gehry)가 세상을 떠났다. 루이 비통은 아트 바젤 홍콩에서 그의 세계를 다시 불러냈다.
<Formica Fish Lamp>, Sketch Model, 2021, Wood, painted paper, Courtesy of Frank O. Gehry & Gehry Design, LLC.
물고기 연구
프랭크 게리는 1980년대부터 건축, 조각, 가구 디자인 전반에 걸쳐 물고기 모티프를 반복적으로 사용해왔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금요일마다 게필테 피쉬 요리를 만들기 위해 욕조에 풀어놓았던 잉어를 바라보던 기억이 단서로 종종 언급되지만, 게리가 본격적으로 물고기 작업에 천착한 건 하나의 우연한 사건 덕분이었다.
1983년, 게리는 포미카 사(Formica Corporation)의 의뢰로 당시 신소재였던 컬러코어 플라스틱으로 오브제를 제작하던 차였다. 실수로 깨진 컬러코어 플라스틱 조각의 거친 단면이 물고기의 비늘처럼 보였다. 게리는 그 조각들을 철사 골조 위에 하나씩 붙여 최초의 <Fish Lamp>를 만들었다.
내부에서 빛을 발하는 이 물고기 조명은 곧 예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고, 이후 <Fish Lamp>는 다양한 규모와 재료로 확장되며 게리의 대표적인 조각 연작으로 자리 잡았다. 2021년 제작된 이 작품은 찢기고 겹쳐진 비늘의 표면과 그 안에 살아 숨쉬는 정중동의 미학이 게리 특유의 조형 언어를 그대로 드러낸다.
“그는 유리를 캔버스처럼 접고 실루엣처럼 춤추게 하는, 비할 데 없는 재능을 가진 빛과 투명함과 우아함의 천재로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LVMH 회장 베르나르 아르노가 2025년 12월, 96세로 세상을 떠난 건축가 프랭크 게리를 추모하며 한 말이다. 단순한 클라이언트의 애도가 아니었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함께 만들고 부딪혀온 두 사람 사이에서만 나올 수 있는 문장이었다. 그들이 처음 만난 것은 2001년이었다. 세계 최대 럭셔리 그룹의 수장이 한 건축가를 파리 불로뉴 숲 가장자리의 작은 정원으로 데리고 갔다. 베르나르 아르노는 그곳에 문화재단을 짓고 싶었다. 파리에 모두가 현대 예술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을 짓고 싶다는 꿈, 21세기의 아이콘이 될 건물을 파리에 남기고 싶다는 욕망. 그는 그 이야기를 게리에게 했다. 그리고 그날, 게리는 울었다. “처음 그 정원을 방문했을 때, 그 장소의 역사가 온몸으로 느껴졌습니다. 프루스트가 떠올랐어요, 그가 책에서 그곳에 대해 쓴 것처럼요.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의 눈물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었다. 이후 게리는 19세기 철골 유리 건축에서 영감을 끌어왔다. 그는 나무와 플라스틱, 알루미늄으로 수없이 많은 모형을 만들었고, 아르노는 그 모든 검토와 수정 과정에 직접 참여했다. 게리에게 협업이란 처음부터 정해진 답을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부딪히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답을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첫 작품이 완성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허가 분쟁, 법원 판결, 시민 단체의 반발이 잇따랐다. 2001년의 첫 만남에서 개관까지 무려 13년이 걸렸다. 2014년 10월, 불로뉴 숲 위로 유리 돛단배 한 척이 떠올랐다. 3천584장의 유리 패널이 각각 다른 곡률로 구부러지며 만들어낸 루이 비통 재단(Fondation Louis Vuitton). 파리는 새로운 아이콘을 얻었다.
건물이 완성되자마자 두 사람의 협업은 새로운 영역으로 번졌다. 같은 해, 게리는 루이 비통 창립 160주년 기념 프로젝트에 참여해 ‘트위스티드 박스’ 백을 선보였다. 루이 비통의 상징인 모노그램 트렁크를 옆으로 비틀어버린 가방. 전통을 해체하는 게리의 건축 언어가 그대로 담긴 오브제였다. 건축가가 핸드백을 만든다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게리에게는 오히려 해방감이었다. “패션 분야는 건축보다 훨씬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탐구할 수 있어요. 건물 스케치는 하나의 생각이 시작되는 것일 뿐, 그걸 건물로 옮기는 데는 몇 달이 걸립니다. 그런데 핸드백은 스케치에서 완성까지 며칠이면 됩니다.” 그는 이 빠른 속도를 즐겼다. 건축에서는 수십 년에 걸쳐 실현되는 것들이, 패션에서는 계절 안에 완성됐다. “핸드백이나 패션 아이템은 그걸 입은 사람의 장식이 됩니다. 그러면서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지죠.” 건물은 도시 안에 고정되지만, 가방은 사람과 함께 세계를 돌아다닌다. 그 움직임 자체가 그를 매혹했다.
이후 협업은 멈추지 않았다. 2019년, 서울 강남 한복판에 메종 루이 비통 서울이 들어섰다. 게리의 첫 번째 리테일 공간이었다. 그는 이 건물이 '거리 위의 등불'처럼 보이기를 원했고, 루이 비통 재단처럼 돛을 연상시키는 곡선형 유리 파사드가 서울의 밤을 밝혔다. 2022년에는 루이 비통 레 젝스트레 향수를 위한 무라노 글라스 블라썸 스토퍼를 디자인했다. 같은 해 루이 비통 창립 200주년을 기념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영감을 받은 트렁크 '루이를 위한 티 파티'를 내놓았다. 2023년 아트 바젤 마이애미에서는 카퓌신 핸드백 10종 컬렉션이 공개됐다. 구겐하임 빌바오의 콘크리트 텍스처를 재현한 카퓌신 MM 콘크리트 포켓, IAC 빌딩의 각진 파사드에 경의를 표한 카퓌신 BB 아날로그, 그리고 그가 평생 사랑해온 물고기 모티프를 담은 카퓌신 MM 플로팅 피시 등 건축가의 손에서 탄탄한 가방들이 지어졌다.
2024년 10월, 파리 그랑 팔레에서 아트 바젤 파리가 열렸다. 파리 루이 비통 재단 개관 10주년을 맞아 루이 비통은 게리의 거대한 물고기 조형을 그랑 팔레의 계단 위에 설치했다. 빛을 머금은 구조물이 기하학적 아치 아래에서 유영하듯 떠오르는 장면은 살아 있는 게리에게 바치는 20년의 헌사였다. 그리고 그는 세상을 떠났다.
게리의 빈자리는 홍콩에서 채워졌다. 2026년 3월, 루이 비통은 아트 바젤 홍콩에 회고 전시를 열었다. 파리 전시가 살아 있는 게리와의 20주년 축하였다면, 홍콩은 달라진 맥락 위에 서 있었다. 건축 모형과 스케치에서 출발해 핸드백, 향수 마개, 땅부르 워치까지 8개의 챕터로 구성된 전시는 한 건축가가 패션이라는 낯선 언어로 자신을 얼마나 확장했는지를 보여주었다. 루이 비통이 보도자료에 인용한 게리의 마지막 말은 이것이었다. “수년 동안 제가 품어온 믿음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면 결국 답을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호기심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두 사람이 같은 정원에 서서 같은 방향을 바라봤던 순간에서 시작됐다. 베르나르 아르노에게는 예술을 모두에게 열린 것으로 만들겠다는 꿈이 있었고, 게리에게는 파리에서 무언가 깊은 것을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다. 그 두 가지가 맞닥뜨리자 눈물이 나왔고, 그 눈물에서 건물이 자랐다. 건물에서 가방이 자랐고, 가방에서 향수가, 향수에서 시계가 자랐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아트 바젤이라는 무대 위에서, 살아 있을 때와 떠난 뒤에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김민정은 패션을 뿌리로 한 모든 행위들을 흥미롭게 관찰하고, 글로 옮기는 프리랜스 에디터다.
Credit
- 글/ 손안나,김민정
- 사진/ 최용준(작품,부스),루이 비통 재단(스케치,재단 전경)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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