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전 그 수트 한벌, 르 스모킹이 돌아왔다
1966년 이브 생 로랑이 창조한 전설의 르 스모킹이 또 다시 존재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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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OKING HOT
1966년, 이브 생 로랑은 남성의 전유물이던 턱시도를 여성에게 건넸다. 그로부터 60년, 르 스모킹의 문법이 2026 F/W 런웨이를 다시 장악했다. 시대에 따라 모습을 바꾸며 여전히 여성에게 힘을 부여하는 한 벌의 수트에 대해.
2026 F/W Saint Laurent
나이를 먹어갈수록 근사한 옷 한 벌이 필요한 순간이 많아진다. 그래서인지 2026 F/W 생 로랑 쇼를 보면서 오프닝을 장식한 수트 군단이 눈에 들어왔다. 맨살 위로 무심하게 떨어지는 재킷과 느슨한 팬츠, 짙은 스모키 아이, 한쪽으로 매끈하게 넘긴 머리까지. 그야말로 성숙한 멋 그 자체! 그런데 이토록 동시대적으로 보이는 수트도 시작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무려 60년 전, 한 벌의 ‘르 스모킹’에 가닿는다. “여성에게 스모킹은 없어서는 안 될 옷이죠. 유행을 따르는 옷이 아닌 스타일을 지닌 옷이기 때문입니다. 유행은 사라지지만 스타일은 영원하니까요.” 1966년, 이브 생 로랑은 여성에게 드레스 대신 스모킹, 즉 턱시도를 건넸다. 지금이야 대수롭지 않은 선택처럼 보이지만, 당시만 해도 이야기는 달랐다. 1800년 프랑스에서 제정된 이른바 ‘여성의 바지 착용 제한 명령’의 그림자가 남아 있던 시절, 특히 격식을 갖춰야 하는 자리에서 여성이 바지를 입는 것은 여전히 파격이었다.(놀랍게도 프랑스 정부가 이 낡은 명령의 효력 상실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것은 무려 2013년이다.) 그런 시대에 생 로랑은 남성의 권위와 격식을 상징하던 검은 턱시도를 여성의 몸에 맞춰 재단해 런웨이에 올렸다. 이름하여 ‘르 스모킹(Le Smoking)’. 남성에게만 허락됐던 복식의 권위에 균열을 내고, 여성의 옷차림에 새로운 선택지를 제시한 전복적인 시도였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왜 하필 ‘스모킹’일까? 답은 19세기 유럽 상류층 남성들의 저녁 풍경에서 찾을 수 있다. 만찬이 끝나면 남성들은 여성들과 떨어져 흡연실(smoking room)로 자리를 옮겨 담배와 시가를 피웠고, 이때 한결 편안한 재킷을 걸쳤다. 19세기 후반에는 꼬리가 없는 짧은 이브닝 재킷이 등장하면서 영국에서는 ‘디너 재킷’, 미국에서는 ‘턱시도’, 프랑스에서는 ‘스모킹’이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니까 이름부터 철저히 남성의 세계에서 태어난 셈이다. 그리고 약 한 세기 뒤, 이브 생 로랑은 그 이름과 옷을 여성의 것으로 뒤집어놓았다.
하지만 르 스모킹을 향한 첫 반응은 냉담했다. 1966년 오트 쿠튀르 쇼에서 처음 공개됐지만 보수적인 고객들의 반응은 미지근했고, 실제 판매된 것은 단 한 벌뿐이었다. 당시 여성의 팬츠 차림이 얼마나 낯선 것이었는지는 이후 벌어진 일화에서도 드러난다. 1968년, 이브 생 로랑의 뮤즈이자 뉴욕 사교계의 명사 낸 켐프너는 르 스모킹을 입었다는 이유로 레스토랑 르 코트 바스크(Le Côte Basque)의 입장을 거부당했다. 여성이 턱시도를 입는다는 것, 새로운 스타일을 선택하는 것만으로도 기존의 사회적 규범과 충돌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젊은 세대의 반응은 달랐다. 오트 쿠튀르에서 외면받았던 르 스모킹은 이후 기성복 라인 리브 고슈(Rive Gauche) 버전으로 등장해 젊은 여성들을 사로잡았다. “르 스모킹은 여성들을 더욱 강인하게 만들었어요. 여성들이 무언가를 쟁취하는 과정에서 말이죠.” 2005년 <WWD>와의 인터뷰에서 이브 생 로랑은 당시의 파장을 이렇게 회상했다. “프랑수아즈 아르디가 르 스모킹을 입고 파리 오페라 극장에 갔던 때가 떠오르네요. 그야말로 스캔들이었죠.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고 야유했어요. 엄청난 파문이었죠.”
르 스모킹의 새로움은 단지 여성이 턱시도를 입었다는 사실에만 있지 않았다. 이브 생 로랑은 남성용 턱시도를 그대로 여성에게 옮겨놓는 대신, 그 문법을 여성의 몸에 맞게 다시 썼다. 턱시도의 엄격한 테일러링은 유지하되 재단과 비례를 조정하고, 흰 오간자 자보(jabot) 블라우스를 더해 한층 유연하고 관능적인 실루엣으로 완성했다. 남성성과 여성성, 엄격함과 관능. 서로 상반된 요소가 한 벌 안에서 팽팽하게 맞섰고, 그 긴장은 곧 생 로랑을 정의하는 미학이 되었다.
그로부터 60년이 흘렀다. “르 스모킹이 등장한 이후, 여성이 남성의 수트를 입는다는 생각은 계속 확산되고 마침내 현대 여성을 상징하게 되었습니다.” 이브 생 로랑의 말처럼 한때 파격 그 자체였던 남성복은 이제 여성의 옷장에 완전히 뿌리내렸다. 그리고 2026 F/W 런웨이에는 다시 한번 그 문법이 짙게 드리웠다. 지방시는 낙낙하게 흐르는 턱시도에 조각하듯 세운 셔츠를 더해 유연함과 구조적인 긴장을 동시에 살렸고, 맥퀸은 라펠을 접고 겹쳐 조형적으로 변주한 뒤 보타이로 클래식한 턱시도의 흔적을 남겼다. 펜디는 맨몸을 깊숙이 드러내는 숄 라펠로, 엘리사베타 프란치는 허리를 과감하게 잘라낸 크롭트 재킷으로 테일러링의 엄격함을 관능으로 전환했다. 톰 포드는 턱시도의 날렵한 선과 맨살을 대담하게 충돌시키며 이브닝 테일러링 특유의 섹슈얼리티를 극대화했다. 쇼 노트에 르 스모킹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포름(Fforme)은 클래식한 코드를 넉넉한 비례와 과장된 어깨, 맨살 위에 걸친 재킷으로 느슨하게 풀어냈다. 강인함은 더 이상 경직된 실루엣과 동의어가 아니다. 때로는 날카롭게, 때로는 길고 유연하게, 때로는 셔츠마저 생략한 채 남성성과 여성성, 엄격함과 관능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는 수트가 새로운 파워 드레싱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다시 생 로랑이 있다. 르 스모킹 탄생 60주년을 맞은 올해는 안토니 바칼레로가 생 로랑을 이끈 지 꼭 1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바자> US의 패션 뉴스 디렉터 브룩 밥(Brooke Bobb)은 르 스모킹이 여성의 옷 입는 방식을 바꿔놓았다고 평하며, 그 힘을 “관능을 통한 힘(Power through seduction)”이라 표현했다. 바칼레로는 바로 그 힘을 동시대의 방식으로 다시 꺼내 들었다. 60년 전의 르 스모킹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대신 그 안에 담긴 힘의 방식을 지금의 여성에게 맞게 다시 쓴 것이다.
“여성에게 힘을 입히다(Giving power to women).” 바칼레로가 이번 컬렉션을 설명한 말이다. 1966년 이브 생 로랑이 르 스모킹을 통해 여성에게 남성복이라는 새로운 선택지를 건넸다면, 2026년의 여성에게 그 옷은 더 이상 남성의 전유물도, 도전의 상징도 아니다. 이제 르 스모킹의 힘은 무엇을 입느냐보다 그것을 어떻게 입느냐에 있다. “유행은 사라지지만 스타일은 영원하다.” 60년 전 생 로랑의 말처럼 르 스모킹은 하나의 형태에 머무르지 않았다. 시대에 따라 실루엣도, 입는 방식도 달라졌지만 그 안에는 언제나 그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의 태도가 있었다. 어쩌면 그것이 르 스모킹이 지금까지 유행이 아닌 스타일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일 것이다.
Credit
- 사진/ Getty Image, launchmetrics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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