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셸 오토니엘과 사랑 안의 미로를 걸었다
지금 부산 F1963에서는 장 미셸 오토니엘의 전시 ‘사랑 안의 미로’가 열리고 있다. 전시장을 가득 채운 유리 벽돌과 꽃, 물과 별자리를 따라가다 보면 그가 말하는 아름다움의 새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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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QUEST OF BEAUTY
인간의 본능은 아름다움을 숭상하고 그 근원과 본질을 찾아 고뇌도 하였다 기쁨을 느꼈다 변절을 하기도 한다. 장-미셸 오토니엘(Jean-Michel Othoniel)은 예술가로서 그 누구보다 이 여정에 깊이 속해 있으며 세상의 변화에 자취를 바꾸는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한다.
이번 전시는 야외 정원 달빛가든에서 시작된다.
2025년 6월 프랑스 아비뇽 전역에서 개최한 대규모 전시 «오토니엘 코스모스 혹은 사랑의 유령들(OTHONIEL COSMOS or the Ghosts of Love)»은 교황청, 다리, 예배당 등 도시의 주요 장소를 전시 무대로 만들었습니다. 이번 «사랑 안의 미로» 또한 부산 F1963의 야외 달빛가든부터 석천홀 내부 공간 모두를 아우릅니다. 한 편의 시나리오로 생각한다면 이번 전시를 어떻게 써 내려갔나요?
시나리오로 대입했을 때 제 전시의 출발점은 아름다움입니다. 아름다움이 변화하는 세상에 어떻게 적응하는지를 보는 것이죠. 저에게 이 아이디어는 하나의 질문에 가깝습니다. 제가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는 질문은 ‘우리가 속한 세계가 변화할 때 아름다움은 무엇이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름다움은 오랫동안 제 작업의 중요한 부분이었지만, 제가 한국에서 마지막 전시를 했을 때와 프랑스에서 마지막 전시를 했을 때 이후로 세계는 계속해서 많은 것이 격변하고 다툼도 늘어나면서 지금은 더욱 긴장감 넘치고 어려워졌어요. 그렇다면 이러한 새로운 상황 속에서의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전시를 여는 것은 그것을 찾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F1963은 와이어 공장으로 오래도록 사용되었고 그 모습의 일부를 지닌 채 오늘날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작업에서 시대와 장소는 중요하죠. F1963을 방문했을 때 어떤 곳이라 느꼈나요?
건축과 노동, 노동자의 역사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제 작업 역시 노동력이 많이 들어갑니다. 부산의 산업 현장과 연결되는 느낌을 받았고, 유리라는 재료가 불순물, 즉 상처를 담고 있는 것처럼 여기 F1963도 예전의 공간과 현재 사이의 완벽하지 않은 지점을 지니고 있다는 면에서 또 다른 연결점을 느꼈어요. 풍경과 식물, 그리고 중심이 되는 정원을 다시 되살려 건축 안으로 자연을 끌어들였다는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파리의 제 작업실 역시 철강 공장이었거든요. 그 공간을 보존하고 복원하기 위해 도시와 여러 협의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건축은 저에게 매우 중요한 관심사 중 하나입니다. 저는 과거를 보존하는 동시에 강렬한 환경을 활용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고 싶습니다. 공간을 통해 현실과 연결되고 과거의 흔적과 상처를 단순히 남겨두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 작업을 이런 공간과 연결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기쁩니다.
전시를 관람하는 시작점이 보통 때와는 반대편에 있더군요. 원래 일자로 된 통로형의 석천홀이 조금 더 복잡한 구성이 되어 있어서 왜 전시 제목에 ‘미로’라는 단어가 붙었는지 수긍이 갔어요. 그렇다면 ‘사랑’의 쓰임은 무엇인가요?
사랑은 정말 복잡한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각자 사랑하는 방식에 있어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에게 사랑은 직선적이거나 단순한 것이 아니라 훨씬 복잡한 것입니다. 수년의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때로는 여러 사람을 만나야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랑은 여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전시는 하나의 동일한 생각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변모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전시 각각의 방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펼쳐집니다. 그래서 저는 공간을 바라보고 경험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었습니다. 공간을 보다 복합적으로 구성한 것이죠. 정면의 입구로 바로 들어오는 대신 건물 뒤편을 돌아서 들어와야 하고 가장 먼저 정원에 머무르게 됩니다. 사랑을 찾아가는 길을 좀 더 구불구불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여정을 더욱 강조할 수 있도록 말이죠.
신작 페인팅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만든 벚꽃 조각과 장-미셸 오토니엘.
석천홀 내 첫 번째 방의 천장에는 <매달린 연인>과 <목걸이> 연작이 바닥에는 약 2000개의 유리 벽돌로 강의 흐름을 형상화한 <푸른 강>이 펼쳐집니다. 외부에서 실내로 들어서는 첫걸음에 그야말로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움이 충만한 분위기를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이 미로의 여정은 야외 달빛가든에서 시작됩니다. 실제 물과 반사가 있는 공간에서 우리는 먼저 현실 세계에 머물게 됩니다. 이곳에서 이미 물과 반사, 그리고 변형이라는 개념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죠. 첫 번째 전시 공간으로 들어가면 물이라는 개념이 이어지지만, 이번에는 바닥에 미러 글라스 벽돌이 놓여 있고 나무와 풀숲 대신 목걸이 형태의 구슬로 이루어진 숲과 같은 설치 작품을 만나게 됩니다. 자연을 직접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환기하는 또 하나의 환상적인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마치 자연이 예술이 된 것처럼 말이죠.
다음 방에는 정직하게 회화 작품들이 걸려 있습니다. 모두 이번 전시를 위한 신작입니다.
시적인 시선에 관한 작업입니다. 꽃의 실제 색을 그대로 그리지 않았어요. 벚꽃은 파랗지 않지만 파란색으로 그렸고 패션플라워도 실제로는 보라색이지만 제 회화 안에서는 노란색이고요. 일종의 꽃에 대한 시적인 환영 같은 것입니다. 원래의 색과는 전혀 다른 황금빛의 조각으로 변하기도 하죠.
꽃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꽃은 자연을 재현하는 대상이 아니라, 익숙한 세상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상징이자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도록 이끄는 중요한 매개체라고 줄곧 이야기해왔습니다. 서울 혹은 부산에서 인상에 남는 꽃이 있었나요?
제가 꽃을 주제로 작업하기 시작하면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꼽자면 연꽃, 특히 검은 연꽃을 작업하기 시작했을 때였습니다. 국제갤러리에서 선보였던 전시(2016년 개인전 «Jean-Michel Othoniel»)였는데, 벌써 10년 전 일이네요. 꽃을 변형해 표현하는 제 작업의 출발점이 한국에서 연꽃과 함께 이루어졌던 거죠. 이번 부산에서는 벚꽃과 패션플라워를 중심으로 전개되고요. 덧붙여 제가 부산을 좋아하는 건 해안 도시라는 점입니다. 물은 이미 이곳에 존재하고 도시의 이미지와도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 물을 가져오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감각을 전시장 안으로 가져오고 싶었습니다.
미로의 중간, 금박으로 장식된 꽃으로 에워싸인 분수 조각에서는 물이 흐르고 벽에는 황금 꽃이 피어난 공간에 다다르게 됩니다. 생명력 있는 물의 흐름과 소리는 자연의 일부를 전시 안에서 느끼도록 해줍니다. 앞서 얘기한 변모의 정점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목걸이 작품이 있는 방을 지나면 회화와 드로잉을 만나게 됩니다. 이 공간에서는 제가 현실을 바라보는 방식, 예를 들어 실제 꽃과 같은 대상을 어떻게 추상화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아주 고요하고 조금은 어두운 공간입니다. 그러고 나면 분수가 있는 또 다른 공간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그곳은 빛으로 가득하고 분수에서 물이 흐르는 소리도 들립니다. 벽에는 이전 방에 걸린 페인팅에서 영감을 받은 벚꽃 조각 작품들이 걸려 있습니다. 제 마음속, 제가 상상하는 자연의 모습이 스며들게 되고 분수까지 더해져 동화 속 공간처럼 변해버리죠. 마치 다른 현실에 들어선 듯한 기분이 들 것입니다. 햇살도 있고 물소리가 흐르고 분홍색 벽돌과 주위를 둘러싼 황금빛 꽃들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색채에 둘러싸여 순수한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이 공간은 전시의 절정(climax)이기도 하며 어쩌면 그 순간, 오늘날의 아름다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아름다움은 정말이지 감정의 정점입니다.
F1963 장-미셸 오토니엘 개인전 «사랑 안의 미로» 설치 전경. 사진: 안천호 이미지 제공: 문화재단1963 ⓒ Jean-Michel Othoniel / ADAGP, Paris - SACK, Seoul, 2026.
아비뇽 교황청 대예배당의 천장을 수놓으며 처음 공개되었던 지름 4미터 크기의 <코스모스(Cosmos)> 연작 중 한 점과 열두 별자리를 추상적으로 형상화한 <황도 십이궁(Zodiac)> 연작이 장대한 우주의 질서를 펼쳐 보입니다. 인간과 자연을 넘어 우주로 확장되는 당신의 시선이 반영된 결과이겠죠.
저에게 중요한 것은 이 공간이 클라이맥스 바로 다음에 위치한다는 점입니다. 절정을 지나고 나면 우리는 하향하며 다시 현실을 마주하게 되죠. 저에게 이 공간은 우리를 둘러싼 우주를 바라보는 일종의 비전과도 같습니다. 중앙에는 <코스모스>가 자리하고, 그 주변으로 모든 별자리가 펼쳐져 있습니다. 우주(cosmos)는 혼돈(chaos)의 반대 개념입니다. 그래서 이 공간에서는 마치 주변의 모든 것이 혼돈처럼 뒤엉켜 있다가 다시 우주로 돌아가 중앙의 작품에서 잠시 평온을 찾는 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저에게 이 공간은 매우 역동적이고 마치 별들이 우리 주변을 끊임없이 공전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그 별들이 다시 우주로 돌아가기를, 그리고 우리가 지금 있는 혼돈으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유리 벽돌을 모듈화한 작품들은 지금까지 서로 다른 크기와 설치 방식으로 조를 이뤄 전시되어 왔습니다. 이번에는 가장 큰 규모의 <원더 블록(Wonder Blocks)>을 선보이고 벽면에는 관람객의 얼굴과 마주하는 크기의 조각이 서 있죠. 유리가 비추는 것은 곧 자신의 모습일 텐데요. 미로의 끝에서 자화상을 통해 해답을 얻는다고 볼 수 있을까요?
이번에 원더 블록으로 작업한 가장 큰 규모의 설치 작품을 만들었고, 그렇기 때문에 이 건축 속에서 ‘경이(wonder)’라는 개념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어요. 우주의 에너지를 경험한 뒤 우리는 건축적인 공간으로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제가 현재 작업하고 있는 새로운 작품에 대한 열망과도 연결되어 있는데요. 벽돌을 사용해 조각이 건축으로 확장되는 순간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 자체가 하나의 미로와 같은 형태인 거죠. 조각 작품들 사이를 오가며 길을 찾아 전시장을 오가다 보면 이 작품들은 가장 나은 자신을 표현하는 일종의 거울 같은 역할을 합니다. 관람객은 작품 속 반사된 자신을 발견할 수 있고, 원하는 블록의 색을 선택해 자화상처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인도 여행에서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쌓아둔 벽돌을 보고 모티프로 삼아 유리 벽돌을 소재로 취했습니다. 고통과 절망감을 대변하는 왁스와 유황,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지만 취약함과 예민함을 상징하는 유리처럼 당신의 작품과 소재는 밀접한 관계에 있습니다. 유리 벽돌의 세계는 더욱더 넓어질까요?
이 벽돌에 사용하는 소재(mirrored glass & stainless steel)를 정말 좋아하고 앞으로의 신작에도 활용하려고 합니다. 이 소재는 주변 환경을 환기하게 해줘요. 유리의 반사에 대해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태양과 물을 떠올리게 되고, 그것들이 지금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게 됩니다.
이건 정말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2022년 «정원과 정원(Treasure Gardens)» 전시의 일환으로 덕수궁 연못에 설치한 <황금 연꽃>을 보러 간 적이 있어요.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이었고 문 닫기 직전이라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요. 몸은 비에 다 젖고 배까지 고프고 주변은 으스스했어요. 지쳐 있던 그때 <황금 연꽃>을 보는데 순간 모든 힘겨움이 스르륵 풀리면서 작품에 몰두하게 되더군요. ‘위로’의 일종이라고 느꼈습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예술 작품의 ‘위로’는 어떤 형태인가요.
제 작업을 통해 그런 감정을 느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예술 작품이 감정을 실어 나르는 하나의 배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이 관람객의 감정을 다른 곳으로 데려가고, 사람들은 작품 안으로 들어와 그 안에서 자신의 감정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품과 함께 하나의 여정을 떠나는 것과 같기 때문에 작품 안에서 위안을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하죠. 작품은 자신을 발견하고 위안을 찾는 데 도움을 줍니다. 동시에 관람자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다시 인터뷰 처음의 ‘오늘날 아름다움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돌아가보면 작품을 통해 아름다움과 위안에 둘러싸인 경험은 그 자체로 즐거움을 줍니다. 궁극적으로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질문을 던지는 과정을 거쳐 관람객들이 조금 더 단단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 안의 미로»는 부산 F1963에서 12월 31일까지 열린다.
박의령은 컨트리뷰팅 에디터다. 끝도 시작도 철저하게 아름다움으로 이뤄진 이런 미로라면 몇 번이고 매혹당할 수 있다고, 그것이 예술에 마음을 뺏기는 과정 같다는 생각을 했다.
Credit
- 글/ 박의령
- 사진/ 이태광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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