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오의 파자마와 독특한 모자, 모두 이 사람의 생각에서 시작됐다
혁오의 스타일링 디렉터 김예영이 말하는 무대 위 실루엣과 옷보다 사람이 먼저 보이는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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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영은 팀에서 시각적 감각이 가장 예민한 사람이다. 내가 보지 못하는 아주 작은 디테일을 볼 수 있고 특히 색감에 아주 예민하다. 과해지거나 난해해질 수 있는 주제나 스타일이 예영의 예민한 감각과 클래식한 취향을 통하면 늘 좋은 밸런스를 갖게 된다.
-오혁-
사진/@yeyoungkim9
2023년 베이스레인지 전시를 위해 촬영한 예영의 셀피
비주얼 디렉터 김예영은 이렇게 말한다. “패션은 옷을 입히는 일에서 끝나지 않아요. 사람의 고유한 매력을 발견하고, 프로젝트가 가진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과정이기도 하죠.” 혁오의 스타일 디렉터이자 82메이저의 비주얼 디렉터 김예영. 과감한 컬러와 독특한 실루엣 속에서도 사람의 매력을 놓치지 않는 그에게 좋은 스타일링의 조건을 물었다.
2022년 밀라노에서, 예영의 셀피
Q1. 패션 스타일링을 시작한 계기와 현재 하고 계신 작업을 소개해 주세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유학하던 중 친구들의 졸업 작품에 모델로 참여하는 등 여러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포토그래퍼와 스타일리스트, 헤어·메이크업 아티스트가 함께 작업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스타일링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특히 스타일리스트가 의상뿐 아니라 전반적인 비주얼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현재는 혁오의 스타일링 디렉터와 82메이저의 비주얼 디렉터로 활동하며, 프로젝트의 전체적인 방향을 설정하고 비주얼을 완성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직접 스타일링하기보다는 프로젝트 전반의 비주얼을 디렉팅하거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참여하는 일이 많습니다. 스타일링을 할 때와 작업의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제가 직접 옷을 입히기보다 전체적인 방향을 설정하고 비주얼을 완성해 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어요.
Q2. 비주얼을 만들고 스타일링을 구상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본인만의 철학이나 기준은 무엇인가요?
」먼저 주어진 프로젝트와 대상을 제 나름대로 면밀하게 살펴보고 공부합니다. 그렇게 파악한 대상이 저라는 사람을 거쳐 결과물로 나오는 것이 저의 작업 방식이에요. 예전에는 늘 새로운 것, 저에게 없는 것을 추구했다면 이제는 제가 좋아하고 가장 저다운 것들을 활용해 풀어내려고 합니다. 작업을 하다 보면 스튜디오에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 헤어와 메이크업, 스타일링을 마친 뒤에 오히려 그 사람 본연의 아름다움이 사라지는 경우를 종종 봤어요. 사람마다 자신만이 가진 매력이 있는데, 프로젝트의 시안이나 정해진 이미지, 값비싼 옷에 얽매이다 보면 정작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것을 놓치게 되더라고요.
그렇다고 늘 무난한 옷을 입혀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아주 과감한 아방가르드 룩이나 강한 메이크업도 자연스럽게 소화하면서 오히려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죠. 결국 중요한 건 각자가 가진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그 사람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아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journal.wiingwiing
Q3. 과감한 컬러 조합부터 빈티지 아이템까지, 작업에서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색감과 소재, 형태, 그리고 자연스러움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특히 색을 조합하는 일을 좋아해요. 점점 미니멀한 디테일에 끌리면서 오히려 컬러의 조합을 더 중요하게 보게 됐고, 자연스럽게 소재에도 관심이 깊어졌습니다. 빈티지 역시 좋아하는데, 새 상품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시간의 흔적과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디테일이 있기 때문이에요. 서로 대립하는 요소를 조합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클래식한 스타일을 그대로 구현하기보다는 그와 상충하는 무언가를 더해 예상하지 못한 균형을 만드는 식이죠.
Q4. 스타일링을 구상할 때 주로 어디에서 영감을 얻으시나요?
」저는 먼저 이야기가 정해지고, 스타일링할 대상의 캐릭터가 만들어져야 작업을 시작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패션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거나 패션 자체를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저에게는 옷 자체보다 그 옷이 어떤 이야기와 캐릭터에 어울리는지가 더 중요해요. 무엇을 입힐지 고민하기 전에 누구의 이야기인지부터 이해하려고 합니다.
Q5. 좋은 스타일링을 완성하기 위해 스타일리스트가 반드시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는 감각이나 태도가 있다면요?
」좋은 브랜드의 옷을 가져와 입히는 것이 스타일링의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스타일링할 대상뿐 아니라 프로젝트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해요. 개별적인 아이템이 얼마나 멋진지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사람과 프로젝트 안에서 어떻게 어우러지는지를 함께 살펴야 하니까요.
예영과 밴드 혁오의 첫 만남. 사진/@yeyoungkim9
Q6. 오랜 시간 혁오의 스타일링을 담당해 오셨습니다. 처음 함께 작업하게 된 계기와 당시의 첫인상이 궁금합니다.
」2016년 뉴욕에 살던 때, 매거진 화보 촬영을 위해 서울에 왔다가 오혁을 처음 만났어요. 촬영이 끝난 뒤 혁오의 스타일링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어 고민했지만, 함께 작업해 보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아티스트의 전담 스타일링은 처음이라 멤버들의 첫인상보다 팀의 스타일을 어떻게 만들어갈지에 대한 고민이 더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시험을 앞둔 학생처럼 하나씩 공부하며 시작했어요.
Q7. 지금 혁오의 스타일을 정의한다면요? 각기 다른 멤버들의 스타일을 하나로 연결하는 기준도 궁금합니다.
」지금 혁오의 가장 큰 스타일적 특징은 편안함이라고 생각해요. 멋지고 자극적인 볼거리가 넘쳐나는 시대인 만큼, 오랫동안 입어 온 옷을 무대에서도 자연스럽게 입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여기에 유머러스한 요소와 다양한 컬러로 재미를 더하고요. 밴드는 공연할 때 가장 멋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무대 위 실루엣을 중요하게 봅니다. 개별적인 디테일보다는 각 멤버의 형태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만드는 데 집중해요.
사진/@hyukohofficial
밴드는 공연할 때 가장 멋있다고 생각해요. 혁오가 대중에게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큰 매력도 공연에 있고요. 그래서 무대 위에서 멤버들이 어떻게 하면 가장 멋있어 보일지를 늘 고민합니다. 그중에서도 중요한 건 실루엣이에요. 개별적인 디테일을 강조하기보다 각 멤버의 형태가 무대 위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만드는 데 집중합니다.
사진/@hyukohofficial
사진/@hyukohofficial
Q8. 최근 혁오가 무대에 등장할 때마다 스타일링도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파자마처럼 일반적인 밴드 스타일링에서는 쉽게 보기 어려운 아이템도 눈에 띄는데요. 이런 스타일링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혁오의 모습은 무엇인가요?
」저는 최근의 의상들이 그렇게 어려운 스타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공연할 때 멤버들이 가장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옷을 찾다 보니 파자마를 입히기도 했습니다. 특히 여름 페스티벌은 무척 덥잖아요. 편안하게 연주할 수 있는 옷을 고민하다가 파자마가 좋겠다고 생각한 거죠. 다른 스타일링도 비슷한 맥락에서 출발합니다. 옷을 통해 무언가를 과하게 보여주기보다는, 마치 원래 그 사람의 옷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몸에 밴 스타일에서 멤버들 특유의 아우라가 드러났으면 좋겠어요.
사진/@hyukohofficial
Q9. 기타리스트 현제님의 독특한 실루엣의 모자나 멤버들의 어린 시절 사진을 프린트한 티셔츠, 귀여운 패턴의 파자마 팬츠처럼 아이템 자체가 화제가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아이템을 선택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현제의 모자는 앞서 이야기한 실루엣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어요. 공연할 때는 신발이나 하의보다 머리와 상반신이 관객의 눈에 더 많이 들어오거든요. 그래서 무대 위에서 전체적인 형태를 어떻게 만들어갈지 고민하다가 선택한 아이템입니다.
사진/@journal.wiingwiing
파자마나 멤버들의 어린 시절 사진을 활용한 티셔츠는 제가 예전부터 좋아했던 요소이기도 해요. 혁오 역시 이전부터 이런 아이템들을 입어 왔고요. 사실 특별히 새로운 것을 시도했다기보다는 제가 좋아하고 혁오도 좋아하는 것들을 함께 해 나가는 것에 가깝습니다.
2023년 베이스레인지 전시를 위해 촬영한 예영의 셀피
Q10. ‘옷을 잘 입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단순히 스타일링이 잘된 사람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옷보다 사람이 먼저 보이는 사람이요. 전체적인 균형이 잘 맞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은 아무리 튀는 옷을 입어도 결국 자기만의 방식으로 소화하거든요. 아무리 값비싼 옷을 입더라도 옷과 사람이 따로 노는 듯하면 어색하고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옷차림에는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과 경험이 드러나기도 해요. 나이가 들수록 그런 차이가 더 선명해지는 것 같습니다.
Q11. 마지막 질문인데요. 앞으로 새롭게 시도해 보고 싶은 작업이나 스타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요즘은 사진을 찍는 일에 재미를 느끼고 있어요. 개인 작업부터 패션 프로젝트까지 다양한 방향으로 사진 작업을 시도해 보고 있습니다. 스타일링과 비주얼 디렉팅을 하면서 쌓아 온 경험을 다른 방식으로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아 즐겁게 작업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저만의 시선과 방식으로 다양한 작업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Credit
- 사진/각 크레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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