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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이 아름다운 배우들: 그럼에도 청춘, 강신일

<하퍼스 바자 코리아>의 창간 28주년을 기념하며. 세월이 만들어낸 연륜이 묻어나는 배우들을 만났다.

프로필 by 고영진 2024.07.19

코트는 Songzio. 셔츠는 Songzio Homme.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하퍼스 바자 월요일 아침, 스튜디오에 오기까지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해요. 그 전에 어떤 마음으로 선뜻 이 기획에 함께할 결심을 했는지도요.
강신일 반대로 제가 물어보고 싶네요. 그동안 했던 인터뷰나 화보 촬영은 영화나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과 호기심으로 했었는데, 저는 꽤 오랜 기간 그런 작품을 한 것도 없잖아요. 잊혀져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왜 나 같은 사람한테 화보를 찍자고 할까.(웃음) 그래도 고맙죠. 이유야 어찌 됐건 나를 찾아준 것은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하퍼스 바자 촬영 모니터링을 하며 호응하는 스태프들에게 뭐가 멋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말을 계속 했죠. 입지 않던 옷을 입고 카메라 앞에 서는 건 늘 하던 일인데도요.
강신일 연기를 할 땐 대본에 기반해서 하잖아요. 시나리오 속 인물에 맞게 의상과 분장이 이루어지니 이렇게 어색하지 않죠. 화보 촬영은 그냥 나로서 있는 건데, 어울리지도 않는 의상을 입는다고 생각하니 낯설어서 그런 것 같아요.
하퍼스 바자 오늘 촬영 콘셉트는 ‘필름에 대한 향수’였어요. 필름을 떠올렸을 때 어떤 장면들이 스치나요?
강신일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먼 옛날이죠. 저는 4~5년 정도 필름으로 영화를 찍었는데, 그때 참 따뜻했던 기억이 나요. 지금 영화는 많이 달라졌죠. 너무나 빨라졌고 관련 직종도 더 세분화되었으니 전문성을 갖게 됐고요.
하퍼스 바자 영화에 처음 발을 들인 건 <이재수의 난>이지만 저는 가장 먼저 <공공의 적>이 생각났어요. 강신일이라는 배우가 확실히 각인되었던 작품이 아닐까 해서요. 그때 이후로 강우석 감독과는 무려 8편이 넘는 작품에 함께하기도 했고요.
강신일 강우석 감독은 참 유쾌하고 명쾌해요. 자기가 생각한 것을 확실하게 밀고 나가고, 확실하게 종지부를 찍어주는데 동시에 활기차게 현장을 이끌어가요. 영화를 시작했을 무렵 그런 감독을 만나 아주 신선한 경험을 했지요.
티셔츠, 이너 셔츠는 Paul Smith.



하퍼스 바자 영화 얘기를 먼저 하긴 했지만 사실 2000년대 스크린에 얼굴을 비추기 전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연극에 몸담아왔어요. 자연스레 영화나 드라마에 대해 갖고 있던 나름의 편견이나 선입견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강신일 연극을 먼저 시작했던 사람으로서 젊었을 땐 연극이 문화예술의 가장 기본이라는 착각과 망상 속에 살았어요. 실험적인 연극 혹은 사회의 모순을 현미경 들여다보듯 풍자하는 작업들을 꾸준히 하면 사회가 더 좋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을까 했어요. 그 목표 의식에서 벗어난 작품은 사실 잘 안 쳐다봤고요. 같이 작업하던 선배들이나 동료들 중에서 영화나 드라마 쪽으로 가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나는 끝까지 남아 이 연극을 지키리라, 했죠.
하퍼스 바자 그토록 공고했던 마음에 금이 간 건 언제였나요?
강신일 창피하고 유치하지만 경제적인 이유가 컸어요. 환경과 상황이 달라지니 저도 변화를 겪게 된 거예요. 제가 자식이 셋인데 <공공의 적>을 찍기 직전에 셋째가 늦둥이로 태어났거든요. 연극만 하면서는 가정을 꾸려가기 힘들더라고요. 그렇다고 연기 외에 다른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연극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영화와 드라마를 하는 일이다 보니 시작하게 된 거예요.
하퍼스 바자 생계와 맞닿아 있는, 아주 현실적인 이유로 시작한 영화에 진짜 애정을 갖게 된 건 언제인가요?
강신일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어요. <공공의 적>에서 처음으로 영화가 굉장히 신성한 작업이라고 느꼈으니까요. 연극에서는 배우가 연습을 통해 캐릭터에 심취하고 녹아들어가다 결국 무대에서 모든 걸 다 발휘해요. 영화 현장은 배우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60~70명 넘는 스태프들이 모든 환경을 만들어놓죠. 감독이 레디, 하면 다들 숨죽이고 집중하는 모습이 저에게는 아주 신선하고 경건하게 느껴졌어요. 연극과 영화, 드라마를 비교할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 거죠. 반성도 했습니다.
하퍼스 바자 본격적으로 스크린에 얼굴을 비추기 시작했을 땐 이미 마흔을 넘긴 뒤였죠. 연극계에서는 베테랑이었을지 몰라도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는 조연 위주의 배역을 맡아야 했어요. 이 간극이 배우에게 슬럼프로 작용하진 않았을까 생각했고요.
강신일 제가 처음 연극을 시작할 때 극단을 찾아가서 한 말들이 있어요. 10년이 넘도록 무대 바닥을 청소하고 뒤에만 있더라도 괜찮다고, 같이 작업하는 것만으로도 좋다고요. 그런데 극단에 들어가자마자 <칠수와 만수>라는 연극의 주인공을 맡게 된 거예요. 그 뒤로도 연극에서는 늘 주인공만 했어요. 그러다 첫 영화 <이재수의 난>을 찍는데, 영화 제작부에 있는 어린 친구들은 당연히 저를 모르죠. 이 사람이 연극계에서 어떻게 알려졌든, 그들에게 스크린 경험이 없는 나는 그냥 초짜 배우일 뿐인 거예요. 그런 대접을 받을 때는 너무 속상해서 다시는 영화를 안 하리란 생각도 했었어요.
하퍼스 바자 결국 시간만이 답이었나요?
강신일 다음 영화였던 <공공의 적> 촬영 초반에도 상황은 비슷했어요. 그런데 강우석 감독이 나랑 같이 찍는 신을 굉장히 좋아하고 신나 했거든요. 현장에서도 저를 치켜세워주니 그때부터 스태프들의 태도가 조금씩 달라지더라고요. 내가 해오던 대로 묵묵하게 하는 수밖에 없었던 거죠.
하퍼스 바자 지난 5월에는 뮤지컬 <아빠의 청춘>에 함께했어요. 이 작품을 두고 “옛날이었으면 소화하지 못했을 것 같은데 지금이라서 달갑게 하게 됐다”는 말을 했던데요. 노래와 연기를 함께 하는 일이 그때가 아닌 지금 달가워진 이유가 있을까요?
강신일 <아빠의 청춘>은 20년도 더 전에 대학로에서 공연했던 작품인데,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어렴풋이 기억은 나요. 같이 하자고 전화를 준 연출가는 저랑 직접적인 대면도 없었던 친구인데 “이 작품은 형님이 딱입니다”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들으니까 꼭 같이 해야 할 것 같은 운명 같은 느낌도 있었어요. 아마 30대 때 하자고 했으면 안 했을 거예요. 애써 외면했겠죠. 분명 그때도 나랑 접점이 있었을 텐데 말이에요.
하퍼스 바자 타고난 본연의 것이 연기를 하는 데 도움이나 제약을 주기도 하겠죠. 이야기를 나눌수록 배우 강신일에게는 그것이 목소리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강신일 사실 예전에는 목소리가 성우처럼 좋다는 말이 별로 듣기 안 좋았어요. 일부러 목소리에 스크래치도 내보고, 탁하게 하려고 소리를 긁고 그랬어요. 하지만 요즘은 안 그래요. 노래가 있는 작업을 하고 싶어서요.
하퍼스 바자 ‘노래가 있는 작업’이라는 말을 뱉을 때 눈빛이 초롱초롱해지네요. 노래는 지금 꾸고 있는 꿈인가요?
강신일 2007년에 간암 수술을 받고 한 달도 채 안 돼서 촬영을 했던 적이 있어요. 영화와 드라마를 다 끝내고 나서 8개월간 괴산에서 요양을 했어요. 사랑하는 친구, 정원중이라는 배우가 그곳 시골에 집을 짓고 살고 있었을 때 방 한 칸을 내줬거든요. 그때 <낭독의 발견>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연예인들이 좋아하는 책을 읽어주는 거예요. 출연 제의가 왔길래 난 희곡을 고르면 안 되겠냐고 했죠. 제가 했던 연극 중에 황지우 시인의 <변>이라는 작품이 있어요. 그 작품을 연기식으로 낭독하고, 노래도 했어요. 그때의 기억이 참 좋게 남아 있네요. 언젠가 무대에서 노래와 함께하는 작업을 하고 싶고, 그런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꼭 참여하고 싶어요.
하퍼스 바자 이 일을 지속한 지도 40년 가까이 흘렀습니다. 지금까지 한눈 팔지 않고 한 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강신일 모자라서 그런 것 같아요. 연기가 아니면 내가 살 방법이 없어요. 우리가 지금 인터뷰하는 이곳은 은은한 주광등이 켜져 있지만, 옛날에는 대부분의 조명이 아주 환한 형광등이었어요. 하얀 벽과 하얀 천장에 긴 형광등… 온통 환한 곳에서 연습을 하다 보면 너무 부끄러웠어요. 연출, 작가, 스태프들이 모두 앉아서 저만 바라보고 있잖아요. 20대 초반의 저에겐 그게 견디기 힘들었어요.
팬츠는 Songzio. 셔츠, 슈즈, 타이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하퍼스 바자 부끄러움 역시 시간이 해결해주던가요?
강신일 약간 뻔뻔해진 거죠. 10여 년 전에 대학에서 학생들이랑 같이 생활했는데, 자꾸 질문하는 거예요. 연기는 어떻게 해야 하고, 어떤 걸 준비해야 하는지. 자기 연기도 봐달라고 그랬죠. 그럴 때 저는 아무것도 가르칠 게 없다고 얘기했어요. 연기는 가르치는 게 아니라고요. 사람마다 처한 환경도 다르고 생긴 것도, 생각도, 느끼는 감정도 다른데 이 감정을 가르쳐줄 수가 없어요. 그냥 느껴야 하는 거니까요.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해봐라. 그래서 네 마음이 후련한지 보고. 결국은 자기가 터트리고 자기가 찾아가는 거야”라고 했죠. 제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그뿐이라고 생각했어요.
하퍼스 바자 강신일과 뻔뻔함. 두 단어 사이 접점이 그려지지 않는데요.
강신일 연기는 솔직해야 하지만 동시에 뻔뻔해야 하는 것 같아요. 잘못할 수도, 틀릴 수도 있지만 그게 두려우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니까요. 잘못한 건 깨닫고 다음에는 그렇게 안 하면 되는 거죠. 뻔뻔하려면 막 내지르고 틀린 건 웃으면서 받아들이면 되는 것 아니겠어요?(웃음)
하퍼스 바자 뻔뻔해질지언정, 꼭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자세가 있다면요?
강신일 안정만을 추구하는 것이죠. 젊을 때 열성적으로 사회운동 했던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서는 보수 지향적으로 변해가는 경우를 꽤 많이 보거든요. 보수가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우리 삶은 당연히 안정적이어야 하지만, 그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변화를 막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요즘 운동을 하고 있어요. 크로스핏이랑 복싱이요. 젊을 때 가졌던, 진보적으로 변화를 추구하던 열정을 나이가 들어 평안을 유지하는 동시에 잃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하는 거예요.
하퍼스 바자 배우로서 나이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 있나요?
강신일 음… 한 번도 없어요. 예를 들어 머리가 빠지는 걸 되돌릴 수도, 막을 수도 없잖아요. 막으면 좀 이상해질 것 같아요. 얼굴의 주름? 생기는 것이야 어쩔 수 없죠. 작품에 따라 주름이 방해가 된다고 하면 분장으로 가릴 수도 있겠고요. 캐릭터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네요. 그런 생각뿐입니다.
하퍼스 바자 연륜, 주름, 어른, 완성…. 나이 듦을 어떤 말로 설명하고 싶나요?
강신일 <아빠의 청춘> 할 때 한 후배가 그런 표현을 썼어요. “오늘도 힘내세요 선배님. 백발의 청춘 파이팅!” 저는 백발의 청춘이라는 표현이 참 좋더라고요. 나이 먹었으면 나이에 맞게, 나잇값을 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글쎄요. 저는 그게 뭔지 잘 모르겠네요.

Credit

  • 헤어/ 안미연
  • 메이크업/ 유혜수
  • 스타일리스트/ 김지원
  • 프롭 스타일리스트/ 권도형
  • 어시스턴트/ 허지수, 정지윤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