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25살 이스라엘계 패션 디자이너의 삶

보트레이트 요나단 카멜의 비전과 철학

프로필 by 서동범 2025.03.12

THE PHILOSOPHER


25살의 이스라엘계 디자이너는 삶과 패션은 명확한 답을 찾기보단 질문을 탐구하는 과정이라 말한다. 왜 전통을 유지해야 하는지, 특정 시대에 얽매이지 않는 무언가를 만드는 게 어떤 의미인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보트레이트(Vautrait)의 디자이너 요나단 카멜(Yonathan Carmel). 그의 비전과 철학을 마주하다.


텔아비브의 아틀리에에서 작업 중인 보트레이트의 요나단 카멜.

텔아비브의 아틀리에에서 작업 중인 보트레이트의 요나단 카멜.

하퍼스 바자 브랜드명 보트레이트는 어떤 의미인가?

요나단 카멜 보트레이트는 우리 가족의 역사와 관련된 옛 성(姓)을 뜻한다. 과거 유대인들은 해외로 이주하거나 홀로코스트(The Holocaust, 유대인 대학살)와 같은 사건 이후 원래의 성을 히브리식으로 바꾸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가족의 잃어버린 이름 즉 과거를 찾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하퍼스 바자 2021년 보트레이트를 론칭했다. 당신의 이력과 브랜드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요나단 카멜 군 복무 중 기회가 닿아 패턴 기술 과정을 배웠다. 디자인 분야는 아니었고 옷을 만드는 법과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방법에 집중된 수업이었다. 이것이 패션의 전문적인 부분을 처음 접한 계기다. 전역 후 런던으로 옮겨 다양한 경험을 쌓고 책을 읽으며 패션 분야의 기술과 개념을 탐구했다. 그 시기는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내가 원하는 방향을 찾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런던 특유의 우울하고 낮은 기온은 내가 자란 따뜻하고 햇살 많은 지중해의 환경과는 완전히 달라 생활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런던 생활을 마무리하고 텔아비브로 돌아와 패션과 고대 공예, 철학을 배우며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특정 시대나 트렌드에 얽매이지 않고 시간을 초월한 작업을 원하게 되었다. 그렇게 보트레이트의 비전이 시작됐다.

하퍼스 바자 처음 패션을 접한 곳이 군대인 게 흥미롭다. 이스라엘은 징병제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 남성 역시 의무적으로 군 복무를 한다. 군 생활이 당신의 삶과 작업에 끼친 영향은 무엇인가?

요나단 카멜 군대는 특수한 조직이며 상황이기에 군 복무의 시간이 쉽지만은 않았다. 심하게 표현하면 스스로가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단지 번호에 불과한 느낌이었다. 사실 군대에서 패턴 수업 과정을 배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밤이면 몰래 나와 수업을 듣곤 했다.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고, 그만큼 성숙해진 부분이 많다. 어린 나이에 이런 경험은 스스로를 더욱 독립적이게 하고 삶의 다양한 면을 이해하게 만든다.

하퍼스 바자 보트레이트 컬렉션이 완성되는 과정이 궁금하다. 어디에서 어떻게 영감을 받고, 현실화되는가. 또 대부분의 작업 시간을 이스라엘에서 보내는지?

요나단 카멜 나의 컬렉션은 전통과 작업, 그리고 삶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다. 시작은 어떤 형상들로부터 영감을 받는다. 한 가지 예로 영화 속 인물이 도트 패턴의 드레스를 입고 있고, 그 뒤로 날아가는 오브제가 보이면 이런 순간을 결합해 하나의 이미지로 만든다. 그리고 이런 요소를 차곡차곡 쌓아 이야기로 엮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하나의 형태나 이미지에 국한되지 않는다. 나는 작업하는 시간과 삶의 대부분을 텔아비브에서 보내지만 컬렉션을 위해 파리를 오가며 모델 캐스팅이나 사진 촬영, 장소 섭외와 같은 일을 한다. 언젠가 일의 중심을 파리로 옮길 수도 있지만 확실히 결정된 건 없다. 파리는 런던처럼 춥지 않고 사람들이 따뜻해 매력적인 도시지만 신중하게 생각해볼 참이다.

하퍼스 바자 2025 S/S 컬렉션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요나단 카멜 지금의 트렌디한 패션과는 다른 뉘앙스를 원했다. 그래서 현대적인 부분보단 전통적인 것을 강조했다. 즉 시간을 초월한 아름다움을 컬렉션에 담으려 노력했다. 또한 파리라는 도시의 분위기를 컬렉션에 반영했다. 나는 글로벌화 분위기 속 각 도시가 가진 독특한 아이덴티티가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그래서 동시대적 시선에서 살짝 벗어나 나만의 방식으로 파리를 재해석했다. 파리는 내가 자란 곳은 아니지만 언제나 특별하다. 아마도 튀니지계 프랑스인인 아버지의 영향인 듯하다. 그리고 전통적인 기술을 다시 활용해보고 싶었다. 예를 들어, 예전 파리에서 사용되던 클래식한 기법들 말이다.


2025 S/S 컬렉션의 오프닝 룩. 클래식한 디자인이 인상적인 ‘알베르틴(Albertine)’ 백. 파리의 풍경이 담긴 2024 F/W 캠페인.

하퍼스 바자 그렇다면 수공예와 전통적인 방법을 활용하는 작업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

요나단 카멜 최신 기술이 아닌 전통적인 방법으로 옛것을 동시대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은 정말 의미 있는 일이다. 그래서 이 작업이 매우 흥미롭고 감정적으로도 크게 다가왔다. 요즘은 전 세계 어느 상점을 가도 모두 “가장 신상은 뭐죠?”라고 묻는다. 그러나 나에게는 어머니에서 딸에게 대물림되는 퍼 코트 같은 것들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새로운 것보다는 오래된 것이 더욱 가치 있게 느껴지고.

하퍼스 바자 이번 컬렉션 중 특별히 애착이 가는 룩이나 소개하고 싶은 피스는?

요나단 카멜 화이트 드레스와 트렌치코트 룩. 이 의상들은 이전 시즌의 피스를 재해석해 새로운 방식으로 구성했다. 또한 모자는 과거의 클래식한 디자인을 변주한 것이고 드레스나 스카프 등은 이번 시즌이 아닌 이전 시즌의 작업을 한데 뒤섞었다.

하퍼스 바자 액세서리 디자인도 인상적인데 발목을 장식한 손목시계, 칼라와 허리에 단 독특한 파우치, 클래식한 백 등이 눈에 띈다.

요나단 카멜 액세서리는 오래된 그림에서 영감을 받았다. 칼라와 허리에 착용한 파우치 백은 고대 그림 속 전쟁에 참여한 전사들의 소지품을 담던 주머니를 현대적인 아이템으로 재해석한 것. ‘14세기 명화에서 봤던 요소를 현대적으로 적용하면 어떨까, 사람들이 이걸 동시대적이라 생각할까?’ 이런 의구심이 도전과 실험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그것을 동시대적인 아이템으로 받아들였다.

하퍼스 바자 그럼 클래식한 요소를 모던하게 변주하는 과정에서는 어떤 부분이 가장 어려운가? 치즈에서 영감을 받은 ‘부라타(Burrata)’ 백도 인상 깊었다!

요나단 카멜 수백 번의 스케치 과정?(웃음) 부라타 백은 어느 저녁 식사 자리에서 우연히 부라타 치즈를 보고 “아, 이걸로 가방을 만들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때로는 너무 많은 고민을 하기보단 순간적인 영감이 가장 좋은 디자인으로 탄생된다. 부라타 백처럼.


보트레이트의 작업 과정. 보트레이트의 작업 과정. 보트레이트의 작업 과정. 보트레이트의 작업 과정.

하퍼스 바자 보트레이트는 중세시대를 거슬러 1980년대 아방가르드 패션, 1990년대 미니멀리즘 등 다양한 스타일이 혼재되어 있다. 특별히 영향을 받은 디자이너와 아이콘이 있다면?

요나단 카멜 보트레이트의 디자인은 다양한 시대를 아우른다. 영향을 받은 디자이너는 아르마니! 특히 그가 참여한 영화 의상을 좋아한다. 영화 속 패션은 보통의 옷들과는 다른 핏과 실루엣 그리고 현실과 환상이 뒤섞여 매우 흥미롭다. 그리고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정사(L’avventura, 1960)> 속 의상을 매우 좋아한다. 디자이너 토리세주 두미(Torisheju Dumi)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그녀와는 런던에서 처음 만났는데, 패션을 막 시작할 때 그녀에게 배운 것이 많다. 정말 큰 영감을 주는 디자이너다.

하퍼스 바자 단단한 가죽 소재의 블랙 아우터 속 물결처럼 흐르는 화이트 드레스, 구조적인 테일러링과 유연하고 자유로운 드레이핑의 병치, 클래식함 속 섬세함과 대범함이 어우러지며 시대를 초월하는 디자인을 보면 보트레이트의 피스들은 마치 영화와 소설처럼 무언가를 말하고 전달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결국 옷을 만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요나단 카멜 어떤 아이디어를 보존하고 창작할 수 있는 욕구에서 시작된 듯하다. 그리고 의류라는 한 요소를 넘어 다양한 요소가 결합될 수 있는 점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예를 들면 쇼의 경우 단순한 패션쇼를 넘어 하나의 설치미술이며 쇼트필름이 되기도 한다. 또한 소리와 건축, 음식과 같은 다양한 요소들이 패션과 어떻게 어우러지는지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 모든 것들이 옷이라는 매개체로 확장되는 것이다.

하퍼스 바자 2024년 LVMH 프라이즈 세미 파이널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그것은 어떤 의미이며, 어떤 긍정적인 변화를 겪었는가?

요나단 카멜 정말 대단한 경험이었다. 행사에 참여하고 프라이즈에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느꼈다. 비록 준결승에 그쳤지만, 다양한 패션 관계자 특히 바이어들을 만나 항상 원하던 곳에서의 판매를 시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었다. 그것은 마치 “이 브랜드는 흥미로운 브랜드”라는 도장을 쾅 찍어주는 느낌, 쉽게 말해 인정을 받는 기분이었다. 앞으로 나아가는 데 좋은 첫걸음이 된 것 같다.

하퍼스 바자 평소의 모습과 취향도 궁금하다. 요즘 패션 외에 최대 관심사 그리고 당신에게 자극을 주는 것은?

요나단 카멜 지금은 다음 컬렉션을 준비하느라 개인적인 시간이 없다. 솔직히 특별한 취미도 없는 편이다. 아,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최근에는 구글 드라이브가 나의 최대의 관심사다.(웃음) 브랜드와 관련된 모든 일을 관리하는 데 정말 유용하다. 기술적인 부분이긴 하지만, 현재는 모든 걸 잘 정리하는 게 중요한 시점이다.


2025 S/S 컬렉션 치즈에서 영감을 받은 ‘부라타’ 백. 치즈에서 영감을 받은 ‘부라타’ 백.

하퍼스 바자 이스라엘 패션과 텔아비브의 패션 신(Scene)도 궁금하다.

요나단 카멜 이스라엘의 패션 신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한때는 이곳만의 독자적인 패션과 특별함이 있었는데 이제는 모두 트렌드를 따르며 어느 정도 비슷하고 안전한 방향만을 추구한다. 이것이 파리로 옮기고 싶은 한 가지 이유이기도 하다. 이스라엘만의 특별한 부분은 텔아비브 패션 업계 대부분이 웨딩드레스를 제작한다는 점. 보트레이트와 작업하는 장인들도 모두 수작업으로 웨딩드레스를 만드는 분들이다. 모든 디테일과 작업을 오트 쿠튀르 방식의 수공예로 진행한다.

하퍼스 바자 한국 문화와 패션에도 관심이 있는가?

요나단 카멜 한국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지 못하지만, 한국의 디자이너 김해김의 컬렉션을 좋아한다. 진심으로 한국 문화와 패션을 더 알고 배우고 싶다.

하퍼스 바자 앞으로 어떤 프로젝트가 기다리고 있나? 다가올 2025 F/W 컬렉션도 궁금하다.

요나단 카멜 새로운 컬렉션을 구상 중인데 아직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다. 솔직히 말하면, 고민이 되는 부분이 많아 작업 속도가 더딘 편이다. 살짝 귀띔하자면, 지난 시즌까지는 구조적이며 명확한 형태와 선의 실루엣으로 컬렉션이 구성되었는데 새로운 시즌은 조금 더 실험적일 것이다. 몸에 맞지 않게 변형된 조각조각이 유동적인 형태로 변형돼 어우러질 예정이다. 마치 삶에서 이야기가 이어지며 또 다른 변화를 맞이하듯이.

Credit

  • 인터뷰&번역/ 이승연
  • 사진/ ⓒ Guy Haviv
  • Vautrait 디자인/ 이진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