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치마바지가 다시 유행이라고?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팬츠’가 2025 S/S 런웨이를 뜨겁게 달궜다.

프로필 by 이진선 2025.04.09

SKIRT? PANTS!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팬츠’가 2025 S/S 런웨이를 뜨겁게 달궜다.


2025 S/S 보테가 베네타 쇼에 등장한 원 레그 팬츠.

2025 S/S 보테가 베네타 쇼에 등장한 원 레그 팬츠.

‘모 아니면 도’, 어쩌면 패션계가 가장 싫어하면서도 경계하는 것 중 하나. 바로 틀에 박힌 고정관념에 사로잡히는 것, 혹은 어느 한 가지로 단순히 정의 내려지는 것이다. 때문에 나이(ageless), 성별(genderless)을 불문한 룩들이 매년 쏟아져 나오는 것일 테고. 방대한 아카이브를 우물 삼아 신선한 창조물을 길어 올리는 패션 디자이너들은 새로운 하이브리드(hybrid) 제품을 선보임에 있어 거침이 없다. 가장 최근만 보더라도 성별의 하이브리드를 ‘누드 보디스’라는 파격적인 방식으로 보여준 듀란 랜팅크가 있지 않은가.(가히 2025 F/W 시즌의 핫 이슈라 할 만하다.) 그보다 앞서, 그보다 덜 충격적인 모습(일상에서 충분히 즐길 법한)으로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은 피스도 있다. 지금부터 바로 그에 대해 들여다보려고 한다.

이 제품을 부르는 명칭은 무척이나 다양하다. 대표적인 것이 스칸트(skants) 그리고 스카우저(skousers). 이름에서 느낄 수 있듯 스커트와 팬츠 혹은 트라우저의 합성어다. 말 그대로 스커트의 형태를 띤 팬츠라는 것. 흔히 치마바지라 불리는 하의도 여기에 포함된다. 플레어 팬츠와 롱스커트를 절묘하게 결합한 쿠레주, 한쪽 다리 앞쪽에 슬릿이 들어간 오버사이즈의 팬츠(마치 슬릿이 들어간 드레스처럼 보인)를 선보인 빅토리아 베컴, 아웃도어 소재 팬츠와 집업 스커트의 조합으로 눈길을 끈 요한나 파르브, 클래식한 팬츠 위에 플리츠 스커트를 레이어드한 아미와 몬스 등 그 모양도 가지각색. “지난 10년 동안 팬츠는 격식과 엄격한 테일러링에 중점을 두던 것에서 개개인의 스타일을 반영하는, 보다 편안하고 다재다능한 접근 방식으로 발전했습니다.” 네타포르테의 패션 디렉터 케이 배런의 말이다. 여기에 몇 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조명되고 있는 Y2K 트렌드, 디자이너들의 창작 욕구까지 더해져 팬츠의 경계는 더더욱 확장되었다.

더 나아가 코페르니, 루이 비통, 보테가 베네타, 릭 오웬스, 어웨이크 등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원 레그 팬츠(one-legged pants), 즉 한쪽 다리를 드러낸 팬츠의 등장은 뭐랄까, 2024년의 팬츠리스 트렌드와 견줄 법한 쇼킹함이었다. “이러한 비대칭 트렌드는 지난 몇 시즌 동안 널리 채택된 노 팬츠(no-pants) 드레싱에서 영감을 받은 것 같아요. 의상의 상의가 아닌 하의가 주인공이 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죠. 이것은 비대칭 디자인을 가진 베이식 아이템의 증가와 결합돼 스타일링에 흥미로운 반전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됩니다.” AI 기반의 패션 트렌드 예측 플랫폼 휴리테크(Heuritech)의 패션 애널리스트이자 트렌드 예측가인 프리다 토르닥(Frida Tordhag)이 전했다. 비대칭의 외형이 가진 ‘불편한’ 주목성에 대해 저마다의 의견이 있었지만, 접근조차 꺼려지는 전위적인 패션과는 분명 달랐다. 스타일리스트이자 뉴스레터 작가인 잘릴 존슨(Jalil Johnson)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이것이 이브닝웨어에 대한 흥미로운 해석이라고 본다. 한쪽으로 치우친 팬츠가 ‘거슬리기’ 때문에 흥미롭다”고 말하기도. 에디터 역시 보테가 베네타의 원 레그 팬츠는 기꺼이 도전할 의향이 있다. 블루 컬러의 핀스트라이프 셔츠에 한쪽은 무릎 길이의 쇼츠,

다른 한쪽은 팬츠, 그 위에 언밸런스한 헴라인의 스커트를 결합한 하의를 매치한 룩은 과연 진화된 오피스 웨어라 할 만하니까. 물론 패션계에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 원 레그 팬츠 역시 2019년에 우크라이나 디자이너인 크세니아 슈나이더(Ksenia Schnaider)를 필두로 에크하우스 라타(Eckhaus Latta), 퍼핏츠 앤 퍼핏츠(Puppets and Puppets) 등에서 선보인 바 있으며 우리나라의 푸시버튼 컬렉션에서도 만나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이 다르게 느껴지는 건 거대 패션 하우스들이 이 팬츠를 주목하기 시작했고, 그 존재감이 막 수면 위로 떠올랐기 때문일 것.

“저는 형태에 대한 탐구가 비대칭을 넘어 확장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원 레그 팬츠는 팬츠와 쇼츠의 하이브리드이며, 런웨이 안팎에서 하이브리드 스타일이 계속 성장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트렌드 예측가 아구스 판조니(Agus Panzoni)처럼, 다수의 전문가들은 이 팬츠 트렌드가 일시적인 유행이 아닐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일상에서 시도하기엔 스칸트 혹은 스카우저와 같은 치마바지가 접근하기 좋을 것. 옷장 속 아이템, 가령 스키니한 플레어 팬츠에 같은 컬러의 미니스커트를 조합해도 되고 아예 스칸트 제품을 새로 구매하는 것도 방법이다. 비대칭 헴라인의 스커트가 매치된 디자인부터 한쪽 힙만 가린 마이크로 미니스커트가 달린 디자인까지, 기존에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치마바지 스타일에서 한층 업그레이드된 제품을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다. 자, 이 글을 읽는 당신, 이 새롭고도 매력적인 하이브리드 피스에 도전할 준비가 되었는가?


Ami Louis Vuitton Courrèges

나는 이것이 이브닝웨어에 대한 흥미로운 해석이라고 본다. 한쪽으로 치우친 팬츠가 ‘거슬리기’ 때문에 흥미롭다. - 잘릴 존슨(스타일리스트, 작가)

Credit

  • 사진/ Launchmetrics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