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김아영, 지금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예술가와의 단독 인터뷰

MoMA PS1 개인전부터 LG 구겐하임 어워드 수상까지.

프로필 by 손안나 2025.04.25

MANY WORLDS OVER WORLDS OVER WORLDS OVER…


김아영. 지금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아티스트의 이름.


베를린 함부르거 반호프 미술관에서 열리는 김아영의 개인전 «Many Worlds Over» 전시 전경.

베를린 함부르거 반호프 미술관에서 열리는 김아영의 개인전 «Many Worlds Over» 전시 전경.

유례없는 전염병이 세계를 덮쳤을 때, 김아영은 서울의 낙원상가 작업실에 갇혀 매일 배달 음식을 시켜 먹으며 이야기 하나를 떠올렸다. 가상의 서울. ‘딜리버리 댄서’라는 AI 배달 플랫폼에 의해 통제되는 세상에 사는 여성 배달 라이더 에른스트 모(Ernst Mo, ‘Monster’의 철자 바꾸기)와 그녀의 도플갱어 엔 스톰(En Storm, ‘Monster’의 철자 바꾸기)의 서사였다. ‘딜리버리 댄서’ 연작으로 김아영은 2023년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에서 한국인 최초로 최고 상인 ‘골든 니카’를 받았으며, 2024년 제1회 ‘ACC 미래상’과 2025년 ‘LG 구겐하임 어워드’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올가을, 홍콩 M+의 110m 높이 파사드에서는 ‘딜리버리 댄서’ 연작의 신작이 상영된다. 겨울에는 뉴욕 MoMA PS1에서 대규모 개인전이 열릴 것이다. 지난 2월, 베를린의 함부르거 반호프 미술관에서 김아영을 만났다. “코스믹 에너지가 작동하듯이 집중 포화를 맞은 기분이에요. 흔히 인생에서 운의 총량이 있다고 하는데, 저는 그 운을 지금 다 끌어다 쓰고 있나 봐요.” 그녀의 독일 첫 미술관 개인전 «Many Worlds Over»가 막 대중에게 공개된 날이었고, 엄청난 인파에 나조차 살짝 혼이 나가 있는 상태였다. 김아영은 얼떨떨한 얼굴로 이 모든 게 초현실적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커피 테이블에 놓인 카푸치노의 크레마 자국이 말라 붙을 때까지 기나긴 대화를 나누고서, 나는 지금의 상황이 현실 법칙에 기반한 지극히 필연적인 서사임을 깨달았다. “이럴 때일수록 지속적으로 낙원상가에 붙어 있어야겠다는 다짐 같은 걸 하게 되네요.” 그녀가 무수한 꽃다발을 뒤로하고 말미에 남긴 말이 그러했으니까. 다음은 김아영이라는 성실한 이야기꾼과 나눈 문답의 일부다.


강화유리와 헬멧, 마네킹, LED 마스크 등으로 이루어진 설치 작업 <고스트 댄서 B>와 웹툰 작가 1172와 협업한 월페이퍼 작업 <다시 돌아온 저녁 피크 타임>이 어우러져 있다.

강화유리와 헬멧, 마네킹, LED 마스크 등으로 이루어진 설치 작업 <고스트 댄서 B>와 웹툰 작가 1172와 협업한 월페이퍼 작업 <다시 돌아온 저녁 피크 타임>이 어우러져 있다.

흔히 독일 미술 하면 떠오르는 무겁고 아카데믹한 이미지와는 달리, 이곳 베를린의 함부르거 반호프는 자유롭고 대중 친화적인 기조의 미술관으로 보여요. 10여 년 전 쿤스틀러하우스 베타니엔 레지던시부터 베를린영화제까지 여기는 언제나 당신에게 좋은 기억을 선사한 도시입니다. 요 며칠 베를린에서 만난 미술인, 언론인, 관람객의 반응을 보면서 무엇을 느꼈나요? 국립 미술관 중 하나라서 고전적인 전시가 꽤 오랫동안 이어져온 것 같은데 약 2년 전에 샘 바더웰로 관장이 바뀌면서 젊은 세대를 포용할 수 있는 미술을 보여주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해요. 저에게 흥미로운 건, 이곳에서 제 전시를 최첨단으로 여긴다는 점이에요. 사실 제 작업은 산업이나 기술 그 자체로 보았을 때 최첨단과 거리가 있죠. 확실히 유럽은 미술에 대한 기술 수용이 한국보다 다소 더디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미술관이 제 전시를 미디어 친화적이며 새로운 기술의 문을 여는, 앞으로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방점으로 삼는 것 같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작품의 물리적 감각이 연상되는 시노그래피가 인상적이었어요. 끝없이 깔린 푸른색 카펫과 사방에 위치한 거울이 미로 같았달까요. 마치 제가 ‘딜리버리 댄서’ 일원이라도 된 기분이었죠. 이전까지의 전시가 넓은 공간 하나를 활용하는 방식이었다면, 이번 전시는 마치 미로에서 길을 잃고 방향성을 완전히 상실한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마침 기획자가 거울을 활용하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는데 그야말로 적절했어요. ‘딜리버리 댄서’ 연작에 등장하는 에른스트 모와 엔 스톰은 서로를 비추는 존재이자 복제되는 존재이니까요. 물류센터에 있을 법한 푸른색 비계를 입구를 비롯한 전시 공간에 도입한 것도 관객에게 작품 속 세계로 진입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앞으로도 공간 자체를 픽션으로 만드는 방법에 대해 지속적으로 탐구하게 될 것 같아요.

«Many Worlds Over». 전시 제목이 간결합니다. 전시 공간뿐만 아니라 제 작품 속 시간 역시 과거, 현재, 미래를 넘나들며 뒤죽박죽 섞여 있잖아요? 여러 차례 반복된다는 의미의 ‘Many Times Over’에서 ‘Many Worlds Over’로 살짝 비틀었죠. 여러 세계에 걸쳐 있다는 느낌을 가미했어요.

이 전시의 내러티브를 이끄는 ‘딜리버리 댄서’ 연작은 AI 배달 플랫폼 ‘딜리버리 댄서’에 의해 통제되는 세상에 사는 배달 라이더 에른스트 모를 둘러싼 이야기입니다. 팬데믹 이후, 유럽을 포함한 전 세계에 한국에선 이미 익숙했던 오토바이 배달 문화가 보편화되었죠. 한국 너머의 관객들은 이 작업을 어떤 시선으로 보는지 궁금해요. ‘음식을 어떻게 배달해서 먹어?’ 류의 엄숙함이 있던 이탈리아 같은 나라도 팬데믹 기간 동안 배달 문화가 급격히 활성화되었죠. 2023년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에서 <딜리버리 댄서의 구>를 상영했는데, 실제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외국인 관객이 이 작품에 완벽하게 몰입했다고 소감을 들려준 적 있어요. 다만 유럽에서는 오토바이보다 자전거 배달이 더 흔한 편이므로 속도감은 다소 다르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요. 얼마 전 아랍에미리트와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중동 국가에도 가보았는데, 땀이 비 오듯 흐르고 기온이 40℃에 육박하는 더운 날씨 속에서도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노동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어요. 모두 외국인 노동자였고요.

미술관 관계자에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을 물었더니 <다시 돌아온 저녁 피크 타임>을 꼽더라고요. 웹툰 작가 1172의 그림으로 벽면을 뒤덮은 월페이퍼 작업인데요. 웹툰 자체가 한국에서 탄생한 서브 컬처이고 그중에서도 GL(Girl’s Love)은 가장 마이너한 장르입니다. 심지어 GL 문화는 한국의 주류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도 거의 소개된 적 없어요. 퀴어 신조차도 헤게모니가 존재하는 것이 확실해요. 남성 퀴어에 비해, 여성 퀴어는 종종 누락됩니다. 그래서 2022년 갤러리 현대에서 «문법과 마법» 전시를 준비할 때도 반드시 GL 웹툰 작가와 협업하리라는 열망이 있었던 것이고요. 나중에 이 월페이퍼 작품이 테이트 모던에 소장되면서 저에겐 한층 더 의미 있는 작업이 되었죠. 이번 전시의 기획 회의에서도 GL이 유럽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장르인 만큼 보다 주목해보자는 의견이 있었어요. 전시 카탈로그에 웹툰 작가 1172와 코스모스의 작품을 풍부하게 싣게 된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인터뷰어가 아닌, 밤을 새워가며 웹툰과 웹소설을 탐독하던 자연인의 정체성으로 고백하자면, 저는 ‘딜리버리 댄서’ 연작이 영원히 완결되지 않길 바랍니다.(웃음) 두 사람의 이야기는 계속되나요? 마침 11월 뉴욕에서 열리는 ‘퍼포마 비엔날레’에 새로운 작업으로 참여합니다. 역시 스턴트 배우들을 섭외하여 라이브 모션 캡처 퍼포먼스를 진행할 계획이에요. 이번 프로젝트는 <오징어 게임>의 스턴트 우먼이자 무술 감독인 김차이 씨와 함께해요. 한국에서 여성의 액션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것에 갈증이 있었고, 이번 기회에 여성 대 여성의 폭력과 액션을 한계까지 밀어붙여보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어요. ‘딜리버리 댄서’ 자체가 퀴어 로맨스이고 여성과 여성 간의 유대이자 반목인, 명확하게 정의될 수 없는 복합적 감정을 담고 있는 만큼 그 액션은 폭력적이면서도 분명히 섹슈얼해야 해요. 사람들은 확실한 것을 선호하고, 어쩌면 두 사람을 위계적으로 해석을 할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결코 그렇지 않아요. 이들은 뒤섞여 있습니다. 굴러다니며 격투를 하고 서로를 끌어안고 뒤집는 동작은 애무일 수도 있고 격투일 수도 있고 혹은 두 가지 모두를 포함할 수 있어요.

‘도플갱어를 만나면 죽는다’는 미신이 그렇듯, 대개 창작물에서 도플갱어는 불길한 전조로 여겨지죠. 그러나 당신이 말한 대로 에른스트 모와 도플갱어 엔 스톰의 관계는 ‘뒤섞여’ 있어요. 서브 컬처의 용어로 치면 ‘혐관’인데요. ‘혐관’이라는 용어를 언급해줘서 기쁩니다.(웃음) GL이 무엇이고 혐관은 무엇인지, 심지어 작품을 보고 난 뒤에도 이 작품이 퀴어물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더군요. 특히 한국에서는요. 우리의 에른스트 모와 엔 스톰은 끊임없이 서로를 염원하며, 만났다 헤어집니다. 웹툰 혹은 웹소설의 장르 공학 중 하나는 인물들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순간에 엔딩을 맞이해야 한다는 점이에요. 인물들의 갈등이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엔진이 되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두 사람이 만날 수 없는 것 또한 이 연작의 핵심 요소일 수 있어요.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어요.

‘딜리버리 댄서’ 세계관은 팬데믹 시기에 작가가 겪은 미시적 경험에서 확장된 것이긴 하지만 그 핵심은 아주 오래되었을 거라 짐작해요. 2013년 기획전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에 이미 이중성의 개념이 등장합니다. 1980년대에 피터 정이라는 재미교포 만화가의 애니메이션 <이온 플럭스> 이야기를 하고 싶군요. 사이버펑크 세계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로, 아시아계 여성 ‘이온 플럭스’가 암살자로 등장하는 작품이었어요. 당시에는 없었던 안티 히어로 여성 주인공이어서 어린 시절 그녀에게 매료되었죠. 그녀는 독재자 트레버를 죽여야 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어요. 트레버는 이온 플럭스를 사랑하지만, 그녀가 지속적으로 도망가자 결국 그녀의 복제인간을 만들어버려요. 원본 이온 플럭스와 복제인간 이온 플럭스가 등장하는 에피소드가 있는데요. 이 둘이 서로 공모하며 사랑하고 마치 쌍둥이처럼 집착하는 관계를 형성하는, 그 알 수 없는 감정의 고리가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그 에피소드에 완전히 빠져들었어요. 그때 이미 깨달은 것 같아요. 내가 듀얼리티 서사를 정말 좋아하는구나. 인간이 갖는 가장 기본적인 욕망은 유일한 개별자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나는 오직 하나여야만 하는 것이죠. 그런데 나의 세계가 무너짐에도 불구하고 나는 과연 나와 같은 개체를 사랑할 수 있을까요? ‘딜리버리 댄서’ 연작에는 <이온 플럭스>의 영향이 충만하게 담겨 있어요.


: <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스틸 이미지), 2024, 3채널 영상, 컬러, 2채널 사운드, 조명 설치, 무작위 영상 재생 및 조명 동기화 제어 프로그램, 해시계 조형물, 그래픽 시트, 원형 스크린, 약 27분, 가변 크기. ACC 미래상 제작지원. 작가 및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제공.

: <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스틸 이미지), 2024, 3채널 영상, 컬러, 2채널 사운드, 조명 설치, 무작위 영상 재생 및 조명 동기화 제어 프로그램, 해시계 조형물, 그래픽 시트, 원형 스크린, 약 27분, 가변 크기. ACC 미래상 제작지원. 작가 및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제공.

서브 컬처 이야기를 더 하자면, 2019년 출시한 코지마 히데오가 제작한 콘솔 게임 <데스 스트랜딩>에도 배달 기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그들은 고립된 세계의 유일한 물리적 연결망으로 도시의 인프라를 재건하기 위한 물품을 옮기는 신성한 존재죠. 딜리버리 댄서들은 어떤가요? 저는 줄곧 이들이 무엇을 운반하는지가 궁금했어요. ‘딜리버리 댄서’ 연작의 시작이었던 <딜리버리 댄서의 구>에서 에른스트 모가 더 이상 배달 일을 하지 못하게 될까봐 엔 스톰에게 거세게 화를 내는 장면에서 단순히 돈벌이가 끊기는 사건 이상의 초조함, 공포감 그리고 사명감이 엿보이기도 했어요. 거기까지는 생각 안 해봤는데 역시 해석이 중요합니다.(웃음) 다른 이야기의 층위가 있겠구나 짐작하면서 감상하면 될 것 같아요. 한 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딜리버리 댄서가 단순히 음식을 배달하는 건 아니라는 거예요.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시공간을 왜곡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한 무언가 때문이겠죠.

에른스트 모와 엔 스톰은 두 번째 작품 <딜리버리 댄서의 선: 0°의 리시버>와 세 번째 작품 <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를 거치면서 가상의 서울을 벗어나 시공간을 넘나들고 있습니다. 그곳이 어디든 그들은 여전히 오토바이를 타고 아주 빠르게 달리죠. 바퀴는 문명입니다. 바퀴가 없는 곳에서 이들은 어떻게 움직일까요? 원시 혹은 고대로 간 댄서들의 움직임이 아주 느려지는 세계관도 상상해봤어요. 흥미로워요! 웹툰에 ‘외전’이라는 개념이 있듯 ‘딜리버리 댄서’ 연작 안에도 외전의 개념이 풍부하게 담길 수 있겠어요. 서로가 서로의 외전이 되는 거죠.

‘퍼포마 비엔날레’가 열리는 11월, MoMA PS1에서 대규모 개인전도 예정되어 있습니다. 작년 ACC(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도 선보이나요? 3채널 비디오와 해시계 조형물, 대형 슬로프 등이 어우러진 대작으로 당신의 작업 중 가장 규모가 큽니다. 이번 함부르거 반호프 전시에는 공간의 한계 때문에 출품하지 못했고요. 같이 갑니다. PS1이 ACC만큼 거대하지는 않아서 축소한 규모로 가져갈 것 같아요. PS1은 옛 학교 건물을 보존한 공간이라 구조를 완전히 바꿀 수는 없어요. 그 방들로부터 어떻게 미로를 창출할 것인지가 당분간 저의 숙제예요.

올가을엔 M+와 시드니의 파워하우스가 공동으로 커미션한 신작이 공개되고요. 10월 셋째 주부터 두 달 동안 매일 밤 7시부터 두 시간씩 M+ 파사드에서 상영되고, 내년 가을에는 시드니 파워하우스의 새로운 공간 개관전에서 선보일 것 같아요. 이번 전시의 주제가 ‘몰(Mall)’이라서 저도 몰이라는 장소가 가지는 독특한 위상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특히 홍콩의 몰은 혼돈 그 자체인 개미지옥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잖아요. 몇 층인지도 가늠할 수 없고, 건물을 쉽게 빠져나갈 수 없도록 공학적으로 설계되었죠. 알고 보니 동선을 정하는 전문 회사들이 있더군요. 이를테면 몰 안에 사운드 스케이프를 설치하여 사람들의 움직임을 무의식적으로 유도하는 식이죠. 각설하고, 이번 작업은 ‘딜리버리 댄서’의 연작으로서 가상의 쇼핑몰이 여러 개 등장하는데 그 공간 안에서 대여섯 명의 에르스트 모가 가장 빨리 배달하기 위한 각축전을 벌이는 이야기라 할 수 있어요.


김아영 개인전 «Many Worlds Over» 전시 전경 이미지, 함부르거 반호프 미술관, 베를린, 독일, 2025. 작가, 갤러리현대 및 함부르거 반호프 미술관 제공. 사진: 야코포 라포르지아(Jacopo LaForgia)

김아영 개인전 «Many Worlds Over» 전시 전경 이미지, 함부르거 반호프 미술관, 베를린, 독일, 2025. 작가, 갤러리현대 및 함부르거 반호프 미술관 제공. 사진: 야코포 라포르지아(Jacopo LaForgia)

'딜리버리 댄서' 연작 자체가 퀴어 로맨스이고 여성과 여성 간의 유대이자 반목인, 명확하게 정의될 수 없는 복합적 감정을 담고 있는 만큼 그 액션은 폭력적이면서도 분명히 섹슈얼해야 겠죠. 사람들은 확실한 것을 선호하고, 어쩌면 두 사람을 위계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실상은 결코 그렇지 않아요. 이들은 뒤섞여 있습니다.


홍콩 영화 <폴리스 스토리> 같은 스펙터클일까요? 정확해요. 성룡이 에스컬레이터에서 뛰어내리고 아이스링크로 떨어지는 장면처럼, 홍콩 영화를 차용하여 스턴트 배우들과 모션 캡처를 진행했어요. 텅 빈 쇼핑몰이기 때문에 이쪽에서 로프를 던져 저쪽으로 점프하거나, 타잔처럼 벽을 기어오르는 등 에른스트 모들은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경쟁합니다. 건축 구조를 활용하면서 서로를 따돌리기 위해 폭력적이고 극악무도한 행동도 서슴지 않죠. 결국 누가 이기는지를 지켜보는 흡사 게임과 같은 형식을 띠게 될 거예요. M+ 건물 전면부의 파사드는 빅토리아 하버를 내려다보는 110m 높이의 구조물입니다. 기대가 됩니다.

한편, 서울의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열리는 «플롯, 블롭, 플롭»은 전혀 다른 결의 전시인데요. 2014년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 출품한 음악극 <제페트, 그 공중정원의 고래기름을 드립니다, 쉘>을 10년 만에 시각화한 신작 <알 마터 플롯 1991>을 선보입니다. <알 마터 플롯 1991>은 지난 몇 년 동안 작업한 상상에 기반한 픽션과는 달리, 리서치를 기반으로 한 저의 초기 작업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결과물이에요. 10년 전에 ‘제페트’ 작업을 하게 된 계기는 아버지가 1980년대에 10년 동안 중동에서 일하셨기 때문인데요. 당시에 못다한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다시 풀어보고 싶었어요. 그렇게 리서치를 위해 사우디아라비아에 갔다가 완전히 매료된 장소가 하나 있었죠. ‘알 마터 아파트’라는 사우디 최초의 대규모 주택 단지예요. 그러나 완공된 후 걸프전쟁이 발발하면서 쿠웨이트 피난민들의 거주지가 되었던 터라 현지인은 여전히 그곳을 ‘쿠웨이트 아파트’라고 부르죠. 한편 한국 교민들 사이에선 한양건설이 지은 탓에 ‘한양 아파트’로 통했고요. 저는 이 아파트를 둘러싼 중첩된 기억들이 흥미로웠어요. 아버지의 사진첩, 전쟁 지도, <워싱턴 포스트> 신문, 옛 광고 사진 등을 2D 애니메이션으로 변환하고, 아파트 공간을 3D로 스캔하는 방식으로 기억을 소환했어요.

영상은 필연적으로 선형적인 시간의 흐름을 따라갑니다. 한계를 느끼지는 않나요? 소위 ‘영화적인 시간’이라고 불리는, 일관성과 개연성을 유지하다가 마지막에 퍼즐이 다 맞춰지며 해소로 끝나는 전형적인 서사를 배척합니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그 틀에서 벗어나 감상의 여지를 넓힐 수 있을지 고민하죠. 그래서인지 제 초기 작업들은 구멍이 많고 개연성이 부족해요. 특히 ‘다공성 계곡’ 연작은 제가 아예 “구멍이 많고 개연성이 부족한 계곡”이라는 주석을 달아둘 정도였고요. 저는 그 구멍을 관객의 사유로 채우는 쪽을 선호합니다. <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에서 AI가 만든 영상이 중간중간 등장하는 것처럼, 최근 작업들 또한 3D 영상과 실사 촬영을 자유롭게 충돌시키고 있어요. 그런 꺼끌꺼끌함을 의도적으로 드러내며 이 픽션 속 세계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에요. 같은 맥락에서 사람들은 제가 최첨단 영화를 많이 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요.


2023년 출간한 모노그래프 <김아영: 합성의 스토리텔러>를 보면, ‘구멍이 거의 없는’ VR의 강력한 몰입력 역시 당신에겐 그다지 매력적으로 느껴지진 않았던 것 같아요. 2021년에 처음 VR을 접한 후, 세 달 동안 매일 하루 다섯 시간씩 VR 세계에서 살았어요. 처음에는 신세계다 싶었지만, 두세 달이 지나니 금방 지루해지더군요. 오히려 저에게 가장 흥미로웠던 감각은 여름밤에 창문을 열어놓고 VR을 하고 있을 때, 바람이 불어오는 순간 마치 VR 안에서도 바람이 부는 것 같은 그 느낌이었죠. 일종의 공감각적 체험이랄까요. 머리는 VR 세계 안에 있지만, 몸으로도 그 감각을 느낄 수 있는, 현실과 비현실이 얽혀 있는 기이한 경험이었어요. 관객에게도 그 감각을 일깨워주고 싶은 마음에 <수리솔: POVCR>에서 이야기의 전개를 방해하는 스토리텔러의 목소리를 끼워 넣는다든지 예고 없이 암전의 장면을 삽입하는 등 몰입을 흐트러뜨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어요. 역시 균열과 구멍을 내는 시도이죠.

완벽한 세계에 균열을 내고 몰입을 깨뜨려야 엔터테인먼트가 아닌 현대미술로서의 가치를 획득한단 의미인가요? 아무리 잘 만들어도 할리우드 영화를 따라갈 수는 없어요. ‘그렇다면 미술은 무엇이 달라야 하는가’의 문제랄까요.

스마트폰도 텔레비전도 극장도 아닌, 전시장에서 영상을 본다는 것의 의미에 대한 고민도 깊을 듯합니다. 영상 작업의 ‘문법과 마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오늘날은 스마트폰을 통해 끊임없이 ‘피드’되는 영상은 물론이거니와 공항부터 고층 빌딩까지 온갖 미디어가 분열증적으로 우리를 포위하고 있죠. 이런 시대인 만큼 현대미술로서의 영상도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속도감부터 미학까지 우리는 바깥의 많은 것들과 겨뤄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어요. 예전처럼 아주 충성스러운 관객이 오랜 시간 공들여 쓴 감상기만을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견디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보석 같은 순간이 존재한다고도 믿어요. 이를테면 라브 디아스 감독의 7시간짜리 영화를 여러 날에 걸쳐서 보고 난 뒤에 오는 귀한 깨달음 같은 것들 말이죠. 미학적인 것을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저의 ‘문법’은 미학으로 관객을 먼저 포용한 다음 거기에 숨겨진 레이어를 탐구할 수 있도록 관객에게 공간을 열어주는 거예요. 혹여 시각적인 것에만 매혹되었다가 떠나도 괜찮아요. 다만 여유가 생긴다면 더 깊이 들여다보고 거기서, 자신만의 ‘마법’의 순간을 찾을 수도 있겠죠.


<딜리버리 댄서의 선: 0°의 리시버> (스틸 이미지), 2024, 3채널 영상, 약 30분. 호주국립영상미술관(ACMI) 제작지원. 작가 및 호주국립영상미술관(ACMI) 제공.

<딜리버리 댄서의 선: 0°의 리시버> (스틸 이미지), 2024, 3채널 영상, 약 30분. 호주국립영상미술관(ACMI) 제작지원. 작가 및 호주국립영상미술관(ACMI) 제공.

균열, 틈새, 글리치, 구멍 같은 사변적인 것들에 대한 당신의 끌림은 타고난 기질 탓일까요? 사회적 이슈에 관심이 있다 보니 항상 문제의식을 가지고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경향이 있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다른 세계에 빠져 있는 것을 좋아했고, 책을 읽느라 밤을 새곤 했죠.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열망을 이제사 트랜스 미디어 서사를 창작하면서 풀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어디서 들은 말인데, “아티스트가 되었다고 해서 너의 재능이나 미감이 뛰어나다고 오만하게 생각하지 말라. 그것은 네가 사회 어떤 곳에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구실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찾은 궁여지책이다.” 동의하는 바입니다.(웃음) 저는 20대 중반까지 시각 디자이너로 일을 하다가 뒤늦게 아티스트가 되었어요. 디자이너로서도 괜찮은 활동을 했지만, 본질적인 것을 만들고 싶다는 갈망 때문에 견딜 수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뒤늦은 나이에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 거죠. 앞날이 불투명했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더 괴로우니까.

“불안정한 상황에서 비록 미래가 불투명하더라도 목숨을 건 여정에 뛰어드는 사람들 이야기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한 적 있는데 어쩌면 당신의 자전적 이야기군요. 그러고 보면 당신의 작품에도 언제나 그런 청춘들이 등장합니다. ‘딜리버리 댄서’ 연작의 여성 배달 라이더들, <다공성 계곡 2: 트릭스터 플롯>의 예멘 출신 난민들처럼요. 요즘 관심 갖고 있는 사람들 이야기가 있나요? 갈 곳 없는 젊음에 대한 애착이랄까요. 불투명한 미래 속으로 기꺼이 뛰어드는 그들의 무모한 대담함을 존경해요. 최근엔 물류센터에서 근무하는 분들을 인터뷰했어요. 물류 노동은 현재 전 세계를 지탱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흐름이죠. 한 분은 쿠팡의 포장 섹션에서 일하는데 4시간 동안 거의 500개의 상품을 포장한다고 하더군요. 그분이 즐거움을 느끼는 순간은 자신의 몸이 마치 하나의 유닛처럼 완벽하게 기능하며 착착 맞아떨어질 때라고 해요. 그 안무적 동작에 엄청난 쾌감이 있다고요. ‘딜리버리 댄서’를 준비하면서 여성 배달 라이더들을 인터뷰할 때도 느낀 거예요. 우리는 이들의 삶이 무조건 힘들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제가 만난 사람들은 저마다의 삶의 방식으로 즐겁게 살고 있었어요. 일종의 연극 치료 혹은 롤플레이가 작용하는 것 같아요. ‘평생 이 일을 하진 않을 거니까’, ‘떠날 거니까’ 같은 마음으로 아주 단순한 삶의 기쁨에 젖어볼 수도 있다는 걸 그들을 만나고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어요.

<딜리버리 댄서의 구>를 준비하면서 리서치를 위해 실제 여성 배달 라이더 뒷좌석에 타고 서울을 달려본 것처럼, 다른 삶 속으로 뛰어드는 경험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자기 세계는 독립된 상태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무언가가 들락날락하는 통로를 마련함으로써 발전한다고 생각해요. 나이가 들수록 자기 삶에 갇히게 되는데, 저에겐 인터뷰가 그걸 벗어나게 해주는 방편이에요. 깨어 있게 해주고 살아 있게 해줍니다. 여성 배달 라이더들, 난민 친구들 모두 마찬가지였죠. 제가 어찌 감히 그들의 인생을 이해하겠어요. 그럼에도 그들을 만나고, 대화하고, 사는 곳에 발을 디뎌보면서 타인의 삶을 상상해보려는 시도 자체가 소중하다고 믿습니다.


<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 (스틸 이미지), 2024, 3채널 영상, 컬러, 2채널 사운드, 조명 설치, 무작위 영상 재생 및 조명 동기화 제어 프로그램, 해시계 조형물, 그래픽 시트, 원형 스크린, 약 27분, 가변 크기. ACC 미래상 제작지원 작가 및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제공.

<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 (스틸 이미지), 2024, 3채널 영상, 컬러, 2채널 사운드, 조명 설치, 무작위 영상 재생 및 조명 동기화 제어 프로그램, 해시계 조형물, 그래픽 시트, 원형 스크린, 약 27분, 가변 크기. ACC 미래상 제작지원 작가 및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제공.

“사변적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골치 아픈 일이다”라고 언급한 적 있어요. 당신을 보면 사변적 존재를 ‘만드는’ 존재로 살아가는 것도 생각보다 피곤한 일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이 동력인가요? 한국의 낙원상가에 베이스 캠프를 마련한 로컬 작가에서 세계가 주목하는 작가로, 요즘의 상승세는 놀라울 정도예요. 제 세계를 이야기하고 싶었고 제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찾고 싶었어요. 그러나 지속적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세상이 그 사람을 아티스트로 인정해주어야 해요. 제 아무리 스스로를 아티스트라고 호명한다고 해도 소용없죠. 그 인정을 기다리는 시간이 꽤 길었던 것 같아요. 상승세라고 말씀해주셔서 감사하지만, 한국 미술계에서 제 작업에 대한 평가가 다소 박하다는 생각도 합니다. 제 작업을 충분히 진지하게 보지 않는 것 같아서 섭섭한 적도 있었고요. 예를 들어, 2022년 개인전 «문법과 마법»은, 한국 미술지 단 한 곳에도 전시 리뷰가 실리지 않았어요. 슬펐죠. 그게 한국의 엘리트 주의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가치 판단의 기준을 해외에 두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어요. 끊임없이 국제 미술계에서 나를 증명해야만 하는 인정 투쟁. 어쩌면 제 인생이 인정 투쟁 그 자체였는지도 모르겠어요. 흔히 인생에 운의 총량이 있다고 하는데 저는 그 운을 지금 다 끌어다 쓰고 있나 봐요. 요즘은 마치 코스믹 에너지가 작동하듯이 집중 포화를 맞은 기분이랄까요. 그리고 이럴 때일수록 바깥보다는 제 속의 바닥까지 침잠해서 자기를 대면하는 시간을 갖는 일이 필요할 것 같아요. 말하자면 지속적으로 낙원상가에 붙어 있어야겠다는 다짐 같은 거예요.

당신의 낙원상가 작업실 화이트 보드엔 이런 문장이 쓰여 있다고 들었어요 “불확실한 것들에 대한 작업, 모호함의 테크놀로지, 잔인성”. 새롭게 추가된 메모가 있나요? 지금도 보르헤스의 구절이 붙어 있어요. 역시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에 나오는 구절이에요. 작가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는 건, 작고 떨릴지라도 자기 확신을 갖고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니까요. “무시무시한 일을 계획하는 사람은 자신이 그 일을 저질렀다고 믿어야만 하고, 되돌릴 수 없는 과거처럼, 피할 수 없는 미래를 스스로에게 부여해야 한다.” 이 경구는 스스로에게 가하는 작가 세뇌인 셈입니다.

김아영을 모르는 익명의 관객에게 당신을 어떻게 설명하고 싶은가요? 이야기 만들기를 아주 좋아하는 사람.


※ «Many Worlds Over»는 베를린의 함부르거 반호프 미술관에서 7월 20일까지 열린다.

※ «플롯 블롭 플롭»은 서울의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6월 1일까지 열린다.


손안나는 <바자>의 피처 디렉터이자 <바자 아트>의 편집장이다. 스스로가 망상과 공상과 상상을 포함하는 모든 종류의 딴생각에 일가견이 있다는 점에 꽤 자부심을 느끼는 편이다.

Credit

  • 사진/전미연
  • 디자인/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