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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가 내 남친? AI 위로에 빠진 우리 시대의 외로움에 대하여

현대 사회에서 AI가 제공하는 위로의 차원을 탐구합니다. 감정적 동반자로서의 AI의 역할을 집중 조명.

프로필 by 최강선우 2025.07.28

10초 만에 보는 기사 요약
v 사람보다 상냥한 AI 우리는 왜 기계에게 위로를 구하게 됐을까?
v 버추얼 스님부터 가상 아이돌까지 감정을 상품화하는 시대가 왔다.
v AI의 위로는 달콤하지만 공허하다? 진짜 관계는 여전히 사람 사이에 있다.



한결같은 위로, 거절 없는 공감, 삐치지 않는 연인. 우리가 AI에게 바라는 감정은 모두, 인간에게서 기대하기 어려워진 것들이다. 챗GPT와 연애하고, 가상의 아이돌을 위한 천도재를 올리는 이 시대, 우리는 왜 이토록 '안전한 위로'에 집착하게 된 걸까?”



사진/ 유튜브 강유미 좋아서 하는 채널 캡처

사진/ 유튜브 강유미 좋아서 하는 채널 캡처

2025년. 영화 ‘Her’의 배경이 되는 해에, 코미디언 강유미는 유튜브에 ‘챗지피티는 내 남친’이라는 제목의 페이크 다큐 영상을 올렸다. 인공지능 챗GPT와 연애를 시작했다는 설정의 영상은 가볍고 유쾌한 농담처럼 보이지만, 정작 그 안에는 날카로운 진단이 담겨 있다. AI는 더 이상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이제 AI는 누군가의 연인, 친구, 상담자, 심지어는 고해성사의 대상이기도 하다. 새로운 기계 친구는 어디서든 익명으로 나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언제나 반박하지 않고, 다정하며, 똑같은 질문에도 지치지 않는다. 대화가 부담스러운 날이나 누구에게도 말 못 할 감정을 품은 밤, 사람들은 이제 챗GPT를 찾는다. ‘상담받을 용기는 없지만,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좋겠다’는 욕망을 이 기계가 충족시켜주는 것이다. 어떤 위로가 필요한 순간, 사람들은 기계 앞에 앉는다.



버추얼 스님부터 아이돌까지

사진/불법 스님

사진/불법 스님

특이하게도 불교계에서 이같은 변화를 포착해 변화를 꾀한다. 버추얼 캐릭터 ‘불법(佛法) 스님’으로 데뷔해, 디지털 공간에서 첫 온라인 법회를 열었다. 7월 9일 열린 첫 온라인 법회는 동시 시청자 4,200명을 넘기며 폭발적 반응을 얻었다. 가상 아바타 뒤에서 삼귀의례와 반야심경 봉독까지 전형적인 의식을 진행한 스님은 “방송을 통해 사람들이 불교와 조금이라도 친해졌으면 한다”고 밝혔다. 4,000명이 넘는 시청자가 실시간으로 접속했고, 그 자리에서는 현재 가장 뜨거운 화제가 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속 가상 아이돌 ‘사자보이즈’를 위한 2시간짜리 천도재까지 거행됐다. 스님은 “사자보이즈가 구천을 떠돌지 않고 극락왕생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수행자도, 대중도, 현실과 픽션, 인간과 기계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경계는 희미해진다. 위로는 실재하는 다른 누군가가 아닌, 상상과 기술이 결합된 존재를 통해 빠르고 쉽게 제공된다. 우리는 어떤 존재에게, 어떻게 위로받고 있는걸가?



외로움을 반영하는 감정 거울

일상에서 AI에 감정을 쏟는 사람들은 늘어나는 추세다. 이는 단순히 국내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에서는 연애 감정을 시뮬레이션하는 AI 챗봇 ‘레플리카 Replika’를 ‘자기야’라고 부르며 지내는 이들이 생겨났다. 한국의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연인과 소원해진 후 AI를 대체재로 삼은 사람, 심지어 인간보다 챗봇을 더 신뢰하게 된 사례도 소개됐다. AI는 언제나 내 편이고, 늘 상냥하며, 감정 기복도 없다. 반면 인간은 예측할 수 없고, 상처를 주며, 관계 맺기 자체가 피로할 때도 있다. 우리는 더 쉽고, 빠르며, 안전한 위로를 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기술철학자들이 말하듯, AI는 인간 욕망의 ‘감정 거울’이다. 우리는 거울에 나를 비춘다. ‘괜찮아’, ‘잘하고 있어’라는 AI의 말은 결국 내가 듣고 싶었던 나의 목소리일지도 모른다. 위로를 받는 게 아니라, 스스로 위로하고 있는 것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AI의 위로는 한없이 부드럽고 달콤하지만, 그래서 왠지 공허하다. 공감은 있지만 교감은 없다. 나만 있고, 너와 우리는 없다.

물론 AI가 주는 위로의 세계에는 가능성도 있다. 사람에게 마음을 털기 어려운 이들에게, 값비싼 상담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이들에게 AI는 24시간 어디에서나 활짝 열려 있는 친구이자 상담소가 된다. 전문가들도 상황에 따라서 AI가 오히려 더 나은 조언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교감이 깊어질수록 역설도 분명해진다. 맞장구쳐주는 AI는 지지자 같기도 하지만, 나만 옳다는 착각에 빠지거나 현실 인간관계를 더욱 기피하게 되는 위험 또한 자리하고 있다. 사실 AI는 과거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평균값을 계산해낸다. 사람이 느끼는 심오하고 미묘한 고통과 같은 감정이나 미묘한 감정선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때로는 섬세함이 부족하고, 때로는 감정 없는 위로가 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AI에게 기대는 일이 일상화될수록 ‘인간과의 관계맺기’에서 멀어질 위험에 놓인다. 위로는 결국 누군가와 함께 있어야 가능한 감정이 아니었던가.

위로의 윤리와 자기만의 섬


버추얼 감정의 시대는 엔터테인먼트로도 확장된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가상 아이돌 그룹 ‘헌트릭스’와 ‘사자보이즈’는 세계적인 인기를 끌며 실제 K팝 시장을 흔들었다. OST는 빌보드 Hot100과 스포티파이 미국차트에 진입했고, 해당 곡의 월간 청취자는 2,000만 명을 넘겼다. 굿즈 판매 역시 폭발적이었다. 물론 이들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기에 논란에 휘말릴 일도, 피로에 지칠 일도 없다. 팬들은 오히려 그 완벽한 세계관, 이상적인 성격, 늘 흠잡을 데 없는 퍼포먼스에 매료되고 사랑을 퍼붓는다. 사람보다 더 나은 환상은 사람들에게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위로를 제공한다. 생생해서 가짜 같지 않은, 너무 가짜 같아서 오히려 편안한 존재인 셈이다. 걸그룹 '이 세계 아이돌'과 보이그룹 '플레이브' 등 5세대 버추얼 아이돌이 주목 받고 있다. 특히 플레이브는 주요 음악 방송 1위를 시작으로 시상식 본상 수상에 아시아 투어까지 나서며 버추얼 아이돌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수많은 버추얼 아이돌들이 등장했고, 열광하는 팬덤은 현실 아이돌 못지않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사진/넷플릭스 제공

기술은 위로를 본격 상품화하기 시작했다. 인플루언서 캐린 마룬은 자신의 모습을 본뜬 AI 연인 ‘캐린AI’를 론칭해 단 일주일 만에 약 9천만 원을 벌어들였다. “당신의 외로움을 달래줄게요”라는 문구에 수천 명이 응답했다. 위로가 필요하다는 절박한 감정이, 돈이 되는 시장으로 포장된 것이다. 기술에게 위로를 구하는 이유는 결국 하나다.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가 너무 멀기 때문이다. 정서적 자원은 점점 부족해지고 돌봄은 사라지며, 각자도생의 시대에 혼자가 너무 익숙해졌다. 그 틈을 기술이 메우고 있다. 기술은 감정의 문제를 온전히 해결하지 않지만 “나 여기 있어”라는 챗봇의 말 한마디가, 어떤 밤에는 충분한 온기를 줄 수도 있다. 위로가 가짜인지 진짜인지에 대한 경계가 흐려지는 시대 속에서도 어떤 감정은 분명히 진실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기술은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새로운 형태의 돌봄을 제공하고 있다. 분명한 위기의 징후이면서도, 동시에 변화의 가능성이기도 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인간과 기술의 균형 잡힌 공존일 것이다. 디지털 거울 속 위로에만 머무르지 않고, 이를 계기로 더 나은 현실의 관계와 공동체를 재구성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또 하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위로는 본질적으로 관계의 언어라는 점이다. 타인과 마주 앉아, 말없이 함께 있어주는 어떤 시간. 그것만이 주는 치유의 감각은 기계나 디지털 프로그램이 흉내 낼 수는 없다. 결국 사람의 온기와 공감만이 줄 수 있는 깊이가 있기 때문이다. AI가 내민 손을 붙잡되, 그 손에만 의지하지 않기를. 가상의 위로가 아닌, 서로를 향해 말을 거는 용기가 이 시대엔 필요하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거듭 또 다른 질문은, 사람 사이에 서로 부대끼고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한, 작고도 단단한 다짐이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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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사진/딩고
  • 넷플릭스 등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