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문학의 'K'가 묵음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할 점은?
한국문학이 전례 없는 주목을 받고 있는 지금 던져볼 질문 하나, K-문학은 명확한 주관성을 갖고 있는가?
전체 페이지를 읽으시려면
회원가입 및 로그인을 해주세요!
문학 앞에 K가 붙을 때
간명한 명제 하나. “한국문학은 전례 없던 주목을 받고 있다.” 이어질 문장에는 의견이 분분하다. K-문학이라는 현상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평론가와 편집자들은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이어 붙였다.
K는 묵음이야
2025년 6월. 넷플릭스 유튜브 채널에 이런 영상이 올라왔다. 마사 스튜어트가 소파에 앉아 <솔로지옥>을 시청하며 달팽이 마스크팩을 얼굴에 얹고, <오징어 게임>의 명장면을 각색해 쿠키의 아이싱을 피로 물들이는 광고. 마사, 그녀가 누구던가. 감각적인 동시에 창의적인 방식으로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영위하는 미국의 셀러브리티. 싱그러운 정원을 가꾸고, 단정히 테이블 세팅을 매만지는 일상에 자연스레 ‘K’가 스며들다니. <폭싹 속았수다>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그녀에게 매니저가 말한다. “당신은 한국어를 모르잖아요(You don’t speak Korean).” 그러자 마사는 대답한다. “못하죠. 그런데 제 마음을 울려요(I don’t, it speaks to me).”
이 장면은 국내외 시장에서 K문학이 당면한 과제를 여실히 보여준다. 한국문학은 늘 그래왔던 대로 부지런히 생산될 것이고, 한국문학번역원이나 각종 문화재단을 비롯한 사업 인프라는 더욱 단단히 기반을 다질 것이며, 대중문화와 OTT 콘텐츠의 견인에 힘입어 발 빠르게 시장에 수출될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한국문학은 원어의 형태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을 가능성이 크고, 이는 번역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2024년 노벨문학상 심사위원장 앤더스 올슨은 스웨덴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 ‘읽을 수 있는 모든 언어’로 번역된 한강의 작품을 읽었다고 밝혔다. 여기에서 한국어와 한국문학이 처한 소외의 감각을 가벼이 지나치긴 어렵다.
한국어와 한국문학이 처한 지정학적 위치는 그동안 서구권에서 아시아인이 겪어온 인종적이고 문화적인 상황과 겹쳐 보인다. 주류 사회에서 소외되었던 이방인으로서의 정체성, 유색인종으로서 겪은 인종차별, 그로 인해 게토화된 아시아 문화의 내력은 서구권 내에 엄연히 존재했고, 지금도 완벽히 사라졌다고는 볼 수 없다. 영리한 작가들은 이러한 상황을 차별적으로 활용해 포화된 출판시장을 비집고 살아남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미국으로 이주한 중국계 작가 R. F. 쿠앙이 있다. 그는 장편소설 <옐로 페이스>를 통해 아시아인이 출판산업에서 위치한 상황과 문화적 정체성을 풍자적으로 다루었다.

소설에는 성공한 중국계 미국인 작가 ‘아테나’와 그의 명성을 부러워하는 백인 여성 ‘준’이 등장한다. 준과 아테나. 둘만 있는 술자리에서 아테나는 팬케이크를 먹다가 질식해 급사한다. 완전한 사고다. 그러나 죽음의 충격은 잠시뿐. 준은 아테나가 남긴 미발표 원고를 몰래 훔치고 자신의 입맛대로 편집해 출판하며 명성을 얻는다. 아테나가 쓴 원고의 내용이 중국인 노동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기에, 준은 출판 과정에서 이름과 사진을 ‘인종적으로 모호해 보이는’ 것으로 갈아치우며 자신을 전략적으로 포지셔닝한다. 작가로서 성공하고 싶은 욕망과 백인-아시아인 사이에 벌어지는 문화적 전유, 출판시장에서 벌어지는 공공연한 마케팅과 SNS 생태계, 유색인종으로서의 다양성을 어필하고 블루오션을 개척해 독자에게 소구하는 비밀스러운 전략이 버무려진 이 소설은 일견 고상해 보이는 ‘문학판’의 실상을 신랄하게 풍자한다. 아시아인이 가진 민감하고 아픈 역사는 시장에서 ‘먹힐’ 만한 이야깃거리를 생산할 수 있는 경제적 자원이 되고, 백인 여성으로서의 보편성은 오히려 주류 사회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평범함으로 전락한다. 문화적, 인종적, 정치적 배경과 입장이 다양하게 상충하고 예술 재현의 민감한 문제를 질문하는 이 소설은 이른바 K문학이 가진 양날의 검을 거울처럼 선명하게 비춘다. 성과와 두각을 나타내길 좋아하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한국문학은 어떻게 성급해하지 않으면서 예술적으로 설득력 있는 작품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
이쯤에서 나는 2025년 한국 최초로 아더와이즈상을 수상한 돌기민 작가를 이야기해보고 싶다. 수상이 무조건적인 척도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돌기민 작가의 장편소설 <보행 연습>은 젠더, 퀴어, 장애, SF 등의 장르적 교차점을 극단으로 밀고 간 전위적이고 혁신적인 서사로 해당 주제에 매우 끈끈하게 몰입하는 작가의 역량을 보여준다. 식인 외계인 ‘무무’가 성관계 후 상대를 잡아먹으며 생존하는 이 소설은 도발적이고 신선한 문체로 한국문학의 저변을 넓힌 작품이기도 하다. 특히나 돌기민 작가는 한국문학의 전통적인 등단 제도를 거치지 않은 채 작품을 집필하며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데, 이는 더 이상 보수적이고 안전한 시스템을 거치지 않더라도 기발한 신인의 출현이나 기량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한국문학의 품이 넉넉해졌다는 걸 보여주기도 한다.
정보라 작가의 <저주토끼>도 그러한 축에 속해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2022년 영국 부커상 최종후보작이자 2023년 미국 전미도서상의 최종후보작이었던 이 작품에서 정보라 작가는 특유의 환상적 문체로 현실정치의 문제를 조망한다. 돌기민의 <보행 연습>과 마찬가지로 <저주토끼> 역시 장르적 색채가 강한데, 이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변두리 문학으로서 서구권 독자들에게 가장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있는 보편적 감수성을 가지면서도 문화적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공포나 호러, SF와 같은 장르의 성격에 있기 때문이다. 이들 장르문학은 전후문학이나 분단문학 같은 순문학의 무게감을 가지지 않기에 해외 독자들에게 공감의 외연을 쉽게 얻을 수 있으면서도 한국적 소재를 녹일 수 있는 유연성을 가지며, 서사 속에서 자본주의나 차별의 문제를 건드리며 예술성과 정치성의 깊이 또한 놓치지 않을 수 있다. 돌기민과 정보라에게 쏠린 주목은 비서구 문학을 바라보는 서구권의 관점과 요구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생각해볼 중요한 지점이 있다. 한국문학은 서구의 제도권에서 수입된 각종 문학 이론과 정치학을 발 빠르게 수입하고, 그 시선에 영합하는 작품을 생산해낼 수 있을 만큼 무척이나 기민하고 역동적인 장 안에서 움직인다. 지금의 한국문학은 그야말로 현실정치의 최전선을 급진적이고 진보적으로 넓혀가며 생산되고 있다. 그러나 비서구 문학으로서 한국문학의 지위가 서구가 만들어낸 ‘보편성’의 문제에 손쉽게 부합한다는 것이 무조건적으로 자랑스러워할 만한 일인지는 생각해볼 일이다. 우리가 서구권의 기존 관념을 재생산하며 세계문학에 편입된다는 사실은 제국주의 문학이 여전히 중심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그러므로 K문학의 성과와 유산은 전적으로 우리 문학이 어떻게 제국주의 문학의 요구로부터 자립해 탈식민적인 정체성을 확립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번역, 권력의 문제로부터 더 나아가 민족적 정체성과 역사의 문제까지 함축하는 이 여정에서 한강 작가는 완벽한 주관성만으로도 세계와 공명했다.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 위대함과 근사함을 여전히 상찬하고 싶다. 그리고 이 성취를 되비춰줄 작품이자 앞으로 한국문학이 나아갈 길을 예견할 하나의 텍스트로서 최근 출간된 수반캄 탐마봉사의 작품 <나이프를 발음하는 법>을 잠시 소개하고 싶다. 이 소설집에 수록된 동명의 표제작에서 이민자 주인공은 ‘나이프(knife)’의 k를 묵음으로 처리하지 않은 채 “카-나-아이-프으, 카나이프”라고 발음한다. 그가 되살리고 싶었던 k. 이 한 글자에 몸으로 겪은 차별, 내밀한 불안과 혼란이 소수자로서 자긍심과 함께 입체적으로 뒤엉켜 있다. 이 강렬하고 섬세한 은유를 되짚어보며, K문학의 K가 어떻게 묵음이 되지 않을 수 있을지 고민을 거듭해보아야 할 것이다.
Credit
- 사진/ 김래영
- 글/전청림(문화평론가)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이주은
Celeb's BIG News
#스트레이 키즈, #BTS, #엔믹스, #블랙핑크, #에스파, #세븐틴, #올데이 프로젝트, #지 프룩 파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