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미술계에서 가장 화두, 접근성에 관한 생각들
가능한 많은 사용자가 제품이나 서비스 등에 쉽게 접근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정도. 지금 국내 미술계에서는 ‘접근성’이라는 주제를 예술로 변환하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 기획자, 작가, 관람객의 관점에서 이를 바라보는 시각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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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ACCESSIBILITY
가능한 많은 사용자가 제품이나 서비스 등에 쉽게 접근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정도. 지금 국내 미술계에서는 ‘접근성’이라는 주제를 예술로 변환하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 기획자, 작가, 관람객의 관점에서 이를 바라보는 시각을 살폈다.
기술은 어떻게 타인을 감각하게 만드는가?
미디어 아티스트 송예슬

송예슬, <아슬아슬>, 2025, 인터랙티브 설치, 가변크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제작 지원.
송예슬은 인터랙티브 기술을 활용해 작업하는 뉴미디어 아티스트이자 뉴욕대 티시 예술대학에서 이를 가르치는 교육자다. 비가시적인 매체로 타인을 감각할 수 있도록 참여자를 끌어들이는 작업을 이어온 작가는, 올해 ACC에서 열린 전시 «우리의 몸에는 타인이 깃든다»에서 신작 <아슬아슬>을 공개했다. 두 명의 참여자는 긴 막대의 끝을 잡고 오르락내리락 장애물을 건넌다. 둘 사이 수평이 완벽히 맞아떨어질 때, 감지된 빛 센서가 환히 켜지며 작품이 완성된다.
작업을 만들며
나의 작업의 중심은 오브제 자체가 아니라 작업을 경험하는 사람들이다. 기술이라는 재료는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머릿속 인식에서 나아가 체화하기 좋은 도구이고, 신체적인 교류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예술은 결국 소통이라 믿기 때문이다. 많은 미디어 아티스트들이 압도적인 시각 경험에 집중하는 반면, 내 관심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비시각 매체를 탐구하는 데 있다. 초음파 파장을 활용해 손동작에 따라 조각을 만질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조각들: 공기조각> 같은 작업이나, 센서를 장착한 망토를 입은 두 사람이 가까워질 때 그 사이 공간에 소리와 떨림이 발생하는 <귀를 기울이면> 같은 작업에서 알 수 있듯이. 신작 <아슬아슬>을 만들 때에는 감각의 상대성은 물론 평등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두세 평 남짓한 플랫폼을 걷는 두 사람은 작업에 참여하는 순간만은 장대를 잡는다는 조건 앞에 동등하다. 각자의 신장, 움직이는 속도, 휠체어 사용 유무, 활동 보조인 유무, 몸짓의 크기, 장애 유형 차이 등 서로 간 몸의 조건 차이가 클수록 두 참여자의 긴밀한 관찰이 일어난다.
미국과 한국의 차이 리움 미술관의 접근성 프로그램 ‘감각 너머’와 접근성 예술을 위한 예술 공간인 ‘모두미술공간’에서 전시에 참여하며, 최근 몇 해간 한국에서 장애 예술과 참여 예술에 관한 인식이 해마다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 하나의 기조 아래 어젠다를 삼은 기관들의 반응이 기민하게 이루어진다. 접근성 예술이 장르화가 되는 인상이랄까. 미국 예술계에서는 개별적인 커뮤니티나 신에서 목소리를 내고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느낀다. 스미소니언 허시혼 미술관에서 해마다 개최하는 «사운드신» 전시의 심사 커미티에 참여해왔는데, 심사 기준에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작품을 경험할 수 있는가, 만약 어렵다면 전시 디자인 측면에서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는가”와 같은 작품의 접근성 분야를 반영한다. 이는 기관의 지침이 아니라 기획자 및 커미티 구성원들 간의 대화를 통해 결정한 사안이다.
작업의 가능성
장애를 주제 삼고 작업을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신체가 맞닿는 접점을 만들다 보니 내 작업이 점점 더 많은 참여자를 포용하고 있다고 느낀다. 의외의 순간, 참여자들의 반응에서 내 인식이 확장되는 경험을 겪는다. 언젠가 촉수화를 사용하는 시청각장애인 부부가 <귀를 기울이면> 작업의 일부인 망토를 평소 일상생활에서도 사용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을 때, <보이지 않는 조각들> 작업 과정을 플레이테스팅하며 촉각으로 느낀 시각장애인 참여자가 훨씬 섬세하고 정확한 형상을 재현할 때, 이를 목격하며 느낀 전율은 색달랐다. 몰입의 순간, 사람들이 자기만의 움직임을 발견하는 순간이 내게는 큰 기쁨이고 각자만의 창의성을 발현할 수 있는 순간을 만드는 것이 내 예술의 지표와 같다. 나아가 한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 태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 자신의 예술성을 발견하는 순간을 갖게 하기 위해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김은설, <잔상 덩어리>, 2025년 접착제, 진동 스피커, 앰프. 사진: 부산현대미술관
감각이 조각이 될 때
청각장애인 작가 김은설은 손바닥에 물풀을 바르고 두 손을 붙였다 떼기를 반복하여 풀실을 뽑으며 <잔상 덩어리>를 완성했다. 조각 내부에는 진동 스피커가 장착되어, 소리와 진동이 울리며 명확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무언가를 드러낸다.
“‘므브프’는 입술의 떨림, 입안에 가득 찬 공기, 전해지는 울림, 그리고 입이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소리를 구분할 때 배우는 말이다. 므-가 입술에 힘을 주지 않고 편안하게 내뱉는 소리라면, 브-는 공기를 한 단계 더 세게 밀어내면서 생성되고, 프-는 온몸을 쥐어짜듯 공기를 더욱 강하게 내뱉을 때 형성된다. 이는 단순한 소리 구분법이 아니라 진동하는 몸으로 변화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는 이러한 감각을 세밀하게 탐구하며 촉각적인 소통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소리를 어떻게 감각할 수 있는지, 말은 어떻게 형성되고 전달되는지를 인식하는 과정은 부모님의 몸과 맞대면서 익혀왔다. 입술 모양, 내뱉는 공기의 세기, 목과 몸통에서 울리는 울림을 시각·청각·촉각적으로 감지하며 소리와 언어를 경험했다. 하지만 이는 명확한 형태를 가진 것이 아니라 잔상처럼 흐릿한 감각들 속에서 소리를 더듬으며 형성된 것이다.
청각장애인으로서 나는 소리가 존재하는 세계와 없는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두 감각 체계를 오가고 있다. 보청기를 착용하면 귀를 통해 들어오는 소리와 함께 그 소리의 형태를 추측할 수 있지만, 보청기를 쓰지 않으면 시각과 촉각이 소리를 대체한다. 소리의 움직임을 눈으로 보고, 피부에 와닿는 진동을 통해 감각하며, 서로 다른 감각들이 새로운 소통의 방식이 된다. 그러나 이 과정은 단순히 대체되는 것이 아니라 지연된 언어와 간격의 언어처럼 시차를 두고 형성된다. 통역의 지연, 해석의 지연, 그리고 소리를 해석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언어가 전해지는 방식 자체를 변화시킨다. 또한, 감각과 인식의 간격 속에서 말은 흩어지기도 하고 다시 연결되기도 하며, 소리의 잔상 속에서 언어는 새로운 결을 만들어낸다.
이 감각들이 하나의 언어가 될 수 있을까? 귀로 들어야만 소리라고 할 수 있을까? 피부로 듣는 소리, 눈으로 보는 소리, 겉도는 덩어리와 잔상들. 손에 잡힐 듯 말 듯한 소리 언어를 사람들에게 가시화하고자 한다.” 작가 노트 中.

사라 헨드렌, 케이트린 린치, <튜빙과 아이라이너>, 2017, 부드럽게 잡히는 튜브, 아이라이너. 조합: 신디 와크 가르니 사진: 마이클 J. 말로니
작은 아이디어가 만든 일상
디자인 연구자 사라 헨드렌과 인류학자 케이트린 린치. 두 사람은 심장마비로 다리와 손가락을 잃은 신디 와크 가르니의 일상을 들여다봤다. 신디는 로봇 손 대신, 스스로 생활하는 데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 사용한다. 실리콘 덩어리에 포크를 붙여 쥐기 쉽도록 만들거나, 아이라이너에 알맞은 튜브를 더하는 식이다. 작가의 섬세한 관찰은 장애인이 사물을 원하는 방식으로 쓸 수 있고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는 데 거창한 장치가 필요하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접근성은 공공미술관의 뉴노멀이 될 것이다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박한나

엄정순, <당신의 눈동자를 보는 망원경>, 2025. 사진: 부산현대미술관
올해 상반기 MMCA 서울관, 광주 ACC 등 국내 미술 기관에서 접근성을 화두로 삼은 전시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렸다. 미술계 내에서 공통된 담론을 공유하는 배경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1960~70년대 소수자 인권에 관한 관심이 예술계에서 등장한 이후, 에코 페미니즘이나 흑인 인권에 대한 운동으로 나아간 움직임들이 축적되어 장애라는 주제로 넘어온 것 같다. 그 기점은 팬데믹이라 생각한다. 물리적 이동이 어려워지고, 격리되고, 접촉하면 안 되는 상황을 맞이하면서 많은 이들이 일시적으로 장애의 삶을 생각하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비대면 통신이 발전하며 장애에 관해 얘기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고. 동시에 ‘생태’에 관한 전시가 활발히 일어나면서 환경의 지속가능성에 관한 논의를 나누게 되었다. 인간의 삶 안에서 지속가능성에 관한 고민을 빗대었을 때, 평등을 떠올리게 되면서 이런 뿌리 안에서 장애와 접근성이 화두가 된 것 같다.
몇 해 전부터 문화 기관들이 점자 설명 등 배리어프리 장치를 도입하거나 접근성을 주제로 한 워크숍을 마련하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흘러 기획전의 형태로 구현된 점이 흥미롭다. 이번 전시 «열 개의 눈»을 기획하게 된 구체적인 계기가 있나?
수어 통역이나 점자 등을 도입하는 시도들이 많았는데, 어떤 담론을 형성하기보다는 “장애인을 위한 전시나 장치가 있다” 정도에서 그치는 것 같더라. 지금 접근성을 주제로 한 전시가 왜 우리 사회에 필요한지, 이런 전시의 형태가 기본 세팅값이 될 수 있을지를 실험해보고 싶었다. 작가를 섭외하고 작품을 선정 혹은 의뢰해 전시를 구성하는 기존 방법을 뒤집어 단계별 과정을 거쳐 최종 전시를 만들어가는 2년간의 프로젝트로 구성했다. 지난해 실시한 사전 워크숍에서 6명의 장애·비장애 작가들과 다양한 시민 참여자들이 함께 창작품을 만들고 이를 전시했다. 그때 모든 시각장애인이 점자를 읽는 건 아니란 걸 확인할 수 있었고, 접근성을 다룬 많은 장치 중 어떤 걸 다뤄야 할지 좁혀갈 수 있었다. 시각, 청각, 촉각. 감각을 공통 언어로 여기고 우리가 언어를 다르게 사용하듯이, 감각이라는 것이 고정되기보다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용한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감각을 유동적인 개념”이라고 여긴다는 걸 이 전시의 좌표로 삼았다.
작품을 직접 만져볼 수 있는 ‘감각스테이션’을 마련하거나 안내견 런던과 몸을 바꾼 모습을 조각과 드로잉으로 그린 에밀리 루이스 고시오의 작업 등 친근하고 다정한 방식으로 전시를 설계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20여 명의 작가, 70여 점의 작품을 선정하는 데 있어 어떤 기준을 따랐나?
작가 군을 세 그룹으로 나누었다. 워크숍을 통해 신작을 만들며 공감각적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만든 6명의 작가들, 또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유머러스하고 일상적으로 풀어낸 8명의 외국인 작가들, 미술 이외 디자인·웹툰·출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접근성에 목소리를 내는 작가들로 나누었다. 에밀리 루이스 고시오 작가의 경우, 청각장애인이었다가 사고로 시각을 잃어 중복 장애인이 된 작가인데 작품이 무척 사랑스럽지만 울림을 준다. 시각장애인 작가 카르멘 파파리아의 퍼포먼스 영상 작업 역시 “제가 보인다면 볼 수 있는 여러분이 저를 피해 가세요!” 하고 당당하게 거리를 걷는 모습을 담는다. 확성기는 악기 연주자들과 만나 악단이 되고, 거리를 걷는 모습은 축제를 연상케 한다. 장애를 어둡고 무거운 메시지로 다루기보다 알지 못했던, 하지만 분명 존재하는 또 다른 삶의 방식을 경험하는 식으로 다름을 즐겁게 소개하고 싶었다.

에밀리 루이스 고시오, <진정한 사랑은 결국 당신을 찾을 것이다>, 2021. 사진: 부산현대미술관
기획자로서 접근성을 주제로 한 전시를 만들 때 가장 어려웠던 지점은 무엇이었나?
장애 예술을 다룬 전시 안에서 장애인 예술가가 당사자로 참여하면, 다른 예술가보다 주목받고 대상화되는 지점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아무리 작가의 예술성을 강조해도, 다양한 작가를 특정 맥락과 의미로 구성해도, 관심을 갖는 건 결국 “누가 장애 예술가야? 몇 명 참여했어?”가 우선시 되더라. 용어의 사용도 섬세해야 한다. “장애를 가지고 있다”라는 표현은 틀린 표현이다. “장애가 있다”라고 해야 한다. 가진다는 건 마치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니까. 또 농인은 비하 발언이 아니지만, 맹인은 부정적인 맥락을 띠기에 사용해선 안 된다. 도슨트 설명을 할 때도 의도치 않게 왜곡될 수 있는 표현에 유의했다.
전시를 만들며 계속해서 떠올린 질문이나 명제가 있다면 무엇인가?
“완전한 인간성을 얻기 위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전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영화 스크리닝을 진행했는데, <실명에 관한 기록>이라는 영화에 나오는 말이다. 국내에 상영된 적 없는 영화라 직접 번역과 자막을 만들어야 했는데, 극 중 시각을 잃게 된 신학자 존 헐이 한 말이 오래 맴돌았다. 왜 서로를 필요할까? 왜 이런 말을 할까? 전시를 만들고 나서 답을 내릴 수 있었다. ‘접근성’은 어쩌면 ‘복잡성의 과학’이라는 개념과 맞닿아 있지 않을까. ‘복잡성의 과학’은 기존 과학에서 벗어나 이변적인 시스템이 나오기 위해선, 개별 요소들의 성격이나 특징과 관계없이 새로운 네트워킹이 필요하고, 그때 기존 질서와 다른 창조가 일어난다는 거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단지 함께 존재하는 게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질서로 만나게 했을 때 어떤 변화나 혁신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관 안에서 접근성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일이 어느 지점까지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나?
접근성은 공공성의 뉴노멀, 새로운 기준이 될 것이라고 본다. 공공미술관의 실천을 평가하는 데 있어 접근성은 또 하나의 지표일 수 있다. 미술관은 본래 시각 중심적인 공간이었지만, 생태계 전반이 변화한다면 미래 미술관이 지금 미술관과 다른 모습을 띨 수 있을 거라 믿는다.
※ «열 개의 눈»은 부산현대미술관에서 9월 7일까지 열린다.

리처드 도허티, <농인공간: 입을 맞추는 의자>, 2025, 철에 도장, 가변 설치. INTG, 국립서울농학교, 다니엘 모레노 제작 협력. 국립현대미술관 제작 지원.
포용의 미술관 디자인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이하 서울관)에서 진행된 전시 «기울인 몸들: 서로의 취약함이 만날 때»에서 수어를 사용하는 건축가 리처드 도허티는 서울관의 입구 계단에 커다란 의자를 배치했다. <농인공간: 입을 맞추는 의자>는 얼굴을 보면서 마주 앉아 대화할 수 있도록 농인문화를 반영한 의자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누구나 입구로 들어가기 위해선 빙 돌아서 경사로를 이용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도허티는 ‘셰이프리스 미술관’을 추구한 서울관의 입구에 대해 “공정하지 못하다”고 딴죽을 걸었다. 한마디로 입을 맞추는 의자는 의도된 불편함이었고, 여유를 갖고 장애인의 입장을 경험하라는 제안이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전시장 중앙에 위치한 도허티의 <농인공간: 이중 원형> 안에 들어가 잠시 앉아보았다. 반투명한 벽과 거울이 설치되어 어디서든 타인을 볼 수 있는 공간이었는데, 농인들이 대화를 위해 모인 모습을 본떠서 만든 원형이 도대체 뭘 의미하는지 궁금해져서 서울박스에서 펼쳐진 도허티의 강연에 참석했다. 농인들은 모이면 수어를 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원형 형태로 대화한다. 즉 농인문화의 사회언어적 패턴은 원형이다. 도허티는 수어가 건축적 성격을 지닌 시각적·공간적·동적 의사소통 방식이라는 것을 시각적 자료를 통해 설명했다. 이 강연 자체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원형 형태로 자연스럽게 모여 앉아 진행되었다. 그의 수어는 영어 수어 통역사, 영한 통역사, 한국어 수어 통역사의 입과 손으로 전해졌다.(더욱이 별도의 모니터에 한글 설명이 지원되었다.) 다소 복잡하지만 여러 명이 호흡을 맞춰 일사불란하게 진행되는 통역 과정을 모두가 집중해 바라보면서 그가 강조한 농인공간이 무엇인지 직접 체험했다.
고백하자면 최근 몇 번의 접근성 전시를 보면서 곧 ‘모두를 위한 디자인, 모두를 위한 미술관’이 펼쳐진다고 혼자 착각에 빠졌다. 올해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개념을 차용하면 포용디자인(Inclusive design)이 코앞에 왔다고 성급하게 판단했다. 서울박스에 함께 모여 공감대를 형성한 것처럼 우리에겐 접근성을 위한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 어쩌면 도허티의 디자인으로부터 작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서울관을 필두로 국공립 미술관의 내외부에는 충분한 공간이 존재한다. 이곳에 누구나 함께하는 원형 농인공간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필요에 따라 바꿀 수 있는 가변 공간이라도 무방하다. 미래의 어느 날, 서울관을 방문한 시각장애인 사진가 시라토리 겐지가 마침 농인공간을 디자인하기 위해 체류하고 있는 리처드 도허티와 함께 작품을 감상하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슬쩍 상상해봤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는 그들의 만남으로부터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이것이 현 시점에서 내가 꿈꾸는 문화적 접근성이다.
Credit
- 글/ 안서경,전종혁(리처드 도허티)
- 사진/ 송예슬,부산현대미술관,국립현대미술관
- 디자인/ 진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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