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자극에 끌리는가! 전시 '도파민 하이프'가 묻는 자유의지
정소영, 업체, 무진형제, 다페르튜토 스튜디오. 네 명의 작가가 도파민을 주제로 예술 작품을 만들고, 사족을 붙여 만든 전시 <도파민 하이프>를 관람하고 떠올린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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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파민'을 주제로 예술가와 과학자가 협업해 만든 전시
- 설치, 드로잉, 비디오 등. 다양한 매체로 표현한 도파민 작동 메커니즘
- 일상에서 도파민을 능동적으로 활용하려면?
어떤 행동이 가치 있다고 판단하게 만들어 다시금 그 행동을 선택하게 만드는 신경전달물질. 욕망을 느껴 어떤 행동을 추진하도록 만드는 동력이자, 때로는 중독을 야기하는 원인. 해가 바뀌어도 ‘도파민’ 중독에서 벗어날 뾰족한 수는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잠들기 전 두어 시간은 릴스 알고리즘에 갇혀 있고, 영화나 드라마를 고를 땐 웬만큼 자극적인 소재가 아니면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도파민에게 지배당한 것이나 다름없는 스스로를 볼 때 자연스레 떠오르는 질문. 대체 나의 이성은 언제 작용하는가? 내 모든 선택과 행동이 오직 도파민이라는 신경 물질의 작용에 의한 결과라면, 인간의 자유 의지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같은 질문을 품어본 적 있다면 지금 김희수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도파민 하이프>가 흥미롭게 읽힐 것이다. 다양한 매체를 다루는 네 명의 작가는 과학자와 협업하거나, 스스로 터득한 과학적 지식을 접목시켜 각자의 방식으로 도파민에 접근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을 보고 듣고 만지고 읽으며 자연스레 일어나는 도파민 작용을 따라가자 질문에 대한 답이 보인다.
시각 예술가 정소영 X 뇌과학자 장재선, 도파민 메커니즘 눈으로 따라가기
도파민에 가장 직관적으로 접근한 작품이 전시 동선 가장 첫 번째에 자리 잡았다. 안내에 따라 설치 작품의 스위치를 당기면 여러 개의 조명 중 단 하나에만 불이 들어온다. 어떤 순서로 켜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결핍, 욕망, 기대, 보상을 따르는 도파민의 메커니즘 기저에는 불확실성, 즉 ‘예측할 수 없음’이 전제되어 있다는 점을 1차원적으로 보여준다.
정소영, <We Predict into Existence>, 2025, 월페인팅, 조명, 스위치, 스테인리스 스틸 판, 파이프, 가변 크기. 인간은 고채도의 원색을 동시에 볼 때 시각적으로 부하와 혼란을 느끼기 쉽다. 작가는 인식의 혼란을 틈타 불예측성과 예외성을 보여주고자 빨강, 파랑, 노랑 3원색을 사용했다. 사진: 고영진
정소영, <Warm and Blue>, 2025, 물 순환 장치, 아크릴, 레진, 철, 분채 도장, 100 x 45 x 45 cm. 사진: 김희수 아트센터
뒤이어 전시된 설치 작품 <Warm and Blue>은 도파민 메커니즘이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점에 방점을 찍었다. 물이 가득 차올랐다 빠지기를 반복하는 컵은 물멍하듯 감상하게 된다.
또 한 번 도파민이 생성되는 순간! 두 사람은 전시가 더 많은 사람에게 이해받길 바라는 마음으로 인스타그램 계정을 개설했다. 작품 속 QR코드를 스캔하면 뇌의 작동 원리부터, 도파민과 자유의지의 문제까지. 장재선 박사가 직접 풀어주는 뇌과학 릴스를 확인할 수 있다.
오디오-비주얼 프로덕션 업체 X 양자물리학자 최상국, 도파민 하이프의 시대, 인간은 둔감해졌다
다음 파트로 넘어오면 도파민 분비가 급속도로 활성화된다. 영상과 웹, 사운드, 퍼포먼스 등 매체의 경계를 넘나드는 업체의 김나희, 오천석, 황휘 작가가 자극적인 시각 요소들을 쇼케이스처럼 펼쳐 놓은 작품 <Gozo>를 선보인다. 각 작가가 만든 이미지는 제3차 세계대전을 상정해 두 번째 전간기(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의 시기)를 맞은 남한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소위 ‘자살 드론’이라 불리는 수만 대의 자폭형 드론이 백병전을 대체했다는 사실은 수많은 사람들의 도파민을 자극한 뉴스였다. 그로부터 출발해 황휘는 활주로 대신 인간의 눈을 뚫고 나오는 드론 이미지를 만들었고, 오천석은 북한의 무인기 게란(Geran)의 탄생 설화를 만화처럼 펼쳐 놓았다.
가장 불편한 작품은 ‘부른_배를_감출_필요가_없다!’는 소제를 달고 있는 김나희의 작품이다. ‘전쟁 중 임신을 한 미망인의 패션 에디토리얼’이라는 작품의 콘셉트는 비극조차 자극으로 소비하고 마는 도파민의 작동 방식을 노골적으로 폭로한다. 우리는 타인의 비극을 얼마나 쉽게 이미지로 소비하는가? 참혹한 전장의 풍경과 미망인의 공허한 표정, 만삭 가까이 부른 배. SNS 피드 안에서 이 모든 이미지는 도파민을 유발하는 자극이 되었을 것이다.
무진형제, 뉴 노멀 시대의 ‘긍지’란
무진형제, <긍지의 날>, 2025, 24개의 판넬에 콩테 드로잉, 각 22.7 x 15.8 cm. 사진: 김희수 아트센터
일상 속 낯설고 기이한 감각 혹은 이미지를 포착해 미술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을 선보이는 무진형제의 정무진, 정효영, 정영돈은 반복적인 수행의 움직임에서 도파민을 찾았다.
일직선으로 나열된 24장의 드로잉 <긍지의 날>에서 높은 곳에 올라 수영장으로 다이빙을 하고, 다시 뛰어내리기 위해 높은 곳에 오르는 한 인간의 모습은 스톱 모션처럼 이어진다. 이것은 일종의 수행이다. 계속해서 새로운 욕망과 기대를 양산하는 도파민이 지배하는 도파민 하이프의 시대, 긍지의 인간이란 이와 같은 수행을 기꺼이 반복하는 부류일지도 모른다.
무진형제, <긍지의 날>, 2025, 판넬에 콩테 드로잉, 45.5 x 33.4 cm. 뛰어내리는 인간은 이런 얼굴을 하고 있다. 어딘가 슬픈 새의 얼굴을 한 인간. 사진: 고영진
다페르튜토 스튜디오, 자유자재로 도파민 갖고 놀기
별도의 전시실에 따로 마련된 다페르튜토 스튜디오의 <머리·심장·배꼽·성기>는 관객이 입구에 있는 스위치를 켜야만 작동되는 작품이다. 어떤 번호의 스위치를 누르느냐에 따라 작동되는 작품과, 흐르는 노래, 빛, 풍경이 변하니 관람객은 큐(cue) 타이밍을 선택하는 유일한 연출자가 되는 셈이다. 관람객의 선택에 따라 작품은 무한히 반복될 수도, 즉시 종료될 수도 있다.
이 공간에는 한 명씩만 입장할 수 있다. 예측과 보상 사이 시간 간극을 자유자재로 조율하는 도파민적 경험이 이루어지기에 이보다 좋은 조건은 없다.
네 작가의 작품으로 확실해진 것이 있다. 도파민의 작용이 인간을 이끄는 방향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 “많은 사람들이 도파민을 이야기할 때 중독을 함께 이야기해요. 도파민은 계속해서 우리를 욕망하고 기대하고 갖고 싶게 만드니까요. 그래서 멀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이 전시는 조금 다른 관점을 제시해요. ‘어디에 중독되어 있는가’를 살피는 대신 ‘어떤 자극에 중독될 것인지 선택하자’고 말하는 거죠.” 길수아 큐레이터의 말에서 관람 전 품었던 자유 의지에 대한 의문에 실마리를 찾은 듯하다. 말하자면 ‘능동적으로 수동적이어지기’랄까.
도파민 중독으로부터의 해방을 꿈꾸고 있다면. 도심을 떠나 깊은 산속 절로 향하고, 휴대폰을 멀리하고, SNS 앱을 삭제하는 것처럼 오래가지 못할 목표 대신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 무엇이 나를 움직이게 만들 것인가? 어떤 것에 기꺼이 중독될 것인가?
※ <도파민 하이프>는 김희수아트센터에서 4월 4일까지 이어진다.
Credit
- 사진/브랜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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