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배우 박규원이 말하는 대학로 소극장의 힘
초연 창작 뮤지컬 ‘초록’이 진행되고 있는 대학로 링크아트센터드림에서 목도한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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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에서
연습실, 관객석, 무대 위. 우리의 이야기가 우리의 말과 노래로 불릴 때. 한국 창작 뮤지컬이 움트고 자라는 대학로에서 포착한 장면들.
소극장이라서 가능한 것들
오픈 열흘 차가 된 창작 초연 뮤지컬 <초록>의 목요일 오후 8시 공연은 일찌감치 매진이었다. <초록>은 한국 고전 소설 <배따라기>의 틀을 따른다. 질투와 오해로 파괴된 형제 관계가 중심이 된 이야기에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오셀로>도 영향을 주었다. 그날 초록 눈을 가진 형 ‘토마’ 역에 캐스팅된 배우 박규원과 인터뷰가 잡혀 있었다. 한 홍보 관계자는 프리뷰 기간이 지나자마자 반응이 오고 있고, 그가 캐스팅된 회차는 벌써 매진이 되고 있다며 들떠 있었다. 분장을 시작하기 전, 우리는 몇 시간 뒤면 <초록>의 공연을 올릴 링크아트센터드림 2관 객석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이후 두 번에 걸쳐 그의 얼굴을 마주했다. 분장을 마치고 리허설 무대에서 한 번, 본 공연에서 한 번. 일대일로 나란히 마주 보다 무대로부터 9칸 떨어진 좌석까지 멀어졌지만, 나에게 배우 박규원은 200여 명의 관객과 함께 가장 멀리서 본 무대 위 모습으로 각인되어 있다. 배우의 숨소리, 희미한 땀자국, 음악으로 공간이 진동하는 느낌은 무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난생 처음 만난 관객도 기꺼이 설득할 만큼의 힘이 있다.
대학로는 물론이고, 노래하고 연기하는 무대 위는 앞으로도 대체 불가한 유일한 공간이 될 거예요. 그래서 저는 무대에 늘 갈증을 느껴요. 무대에서라면 나 역시 미약하게나마 영향력을 가질 수 있을 테니까요.
박규원
박규원이 대학에 입학했을 땐, 한국에서 대극장 뮤지컬이 막 기세를 펼치던 때였다. 재학중이던 성악과에는 종종 뮤지컬 오디션을 보러 오라는 공문이 날아왔다. 딱히 눈길이 가지 않았던 건, 그의 인생에 성악 외의 선택지는 없었기 때문이다. 중고등학생 때부터 성악을 배웠으니 오페라 가수를 꿈꾸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진 최초의 사건은 배우 홍광호가 출연한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를 본 것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있다니. 박규원은 그때를 성악 외 장르에 처음 눈을 뜬 순간으로 기억한다. 그제서야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오페라 가수가 아닌, 무대에서 노래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나도 노래로 누군가의 마음을 이렇게 흔들어 놓을 수 있을까? 질문은 다짐이 되고, 박규원은 대학로를 대표하는 뮤지컬 배우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하퍼스 바자 지난주 개막한 뮤지컬 <초록>에서 ‘토마’를 연기하고 있죠. 오늘의 공연 시작까지는 3시간 정도를 남겨두고 있고요. 인터뷰가 없었다면 이 시간에 뭘 하고 있었을까요?
박규원 콜 타임 1시간 전쯤이니까, 대학로 한 바퀴를 산책하듯 돌고 있었을 거예요. 근처에 낙산공원 되게 좋잖아요. 그 주변을 좀비처럼. (웃음) 그러다 분장 시간에 맞춰서 극장에 오고, 마이크 테스트 하고, 공연 30분 전까지 배우들이랑 합을 맞추죠. 지난 공연 때 안 맞았던 부분이나 불편한 것들을 이야기하면서요.
하퍼스 바자 저는 <초록>을 김태형 연출가의 작품으로 먼저 알고 있었어요. 재작년 한국 창작 뮤지컬 최초로 웨스트엔드에 진출한 <마리 퀴리>의 연출을 맡은 분이죠. 함께 작업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 알고 있고요.
박규원 <초록>은 김동인의 <배따라기>와 셰익스피어의 <오셀로>에서 영감을 받은 이야기인 만큼 모두가 알고 있는 내용에서 시작해요. 질투와 의심이 인간을 어떻게 파멸로 이끄는지를 보여주죠. 저 역시도 김태형 연출가가 이 이야기를 어떻게 현대적으로 풀어낼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참여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정교하게 그려주신 그림 안에서 신이 나게 연습했던 기억이 많네요. 같은 캐릭터를 세 명의 배우들이 돌아가며 연기하는데, 그중 나는 어떤 토마를 보여드릴 수 있을까 즐겁게 고민하면서 준비했고요.
하퍼스 바자 그렇게 완성한 박규원의 토마가 무대 위에서 정확히 작용하고 있나 봐요. 규원 씨가 캐스팅된 회차는 대부분 매진을 기록했던데요?
박규원 저는 배우이기 전에 플레이어라고 생각해요. 배우들끼리, 연출가와 머리를 맞대 고민하는 시간도 있지만 그 모든 시간의 끝에는 무대에 서서 연기를 하는 저만 남죠. 그게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감상을 불러일으킬지는 장담할 수 없어요. 누군가는 ‘이거다!’ 하고 강렬한 무언가를 느끼겠지만, 반대로 별 감흥이 없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죠. 뮤지컬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순간의 예술인 거예요. 똑같은 장면이 내일은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는.
하퍼스 바자 말하자면 연습실에서든, 무대 위에서든 노래하고 연기하는 지금에만 충실하자는 생각으로 임한다는 거죠?
박규원 맞아요. 공연의 역할에는 내가 살지 않은 삶, 세상의 이면, 주변에는 없지만 어디에선가 일어날 법한 일들을 보여주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배우는 충실히, 성실하게 있는 그대로를 담아내는 그릇이고요.
하퍼스 바자 정확히 2010년, 서울예술단에서 올린 <로미오와 줄리엣> 무대로 데뷔했어요. 지금처럼 인기와 신뢰를 얻는 배우가 된 건 그로부터 10년 뒤쯤의 일이고요. 그 시간은 어떻게 버틸 수 있었나요?
박규원 버티진 않았어요. 자연스럽게 지나갔어요. 스물여덟이 되던 해에 내내 붙잡고 있던 성악을 때려치우고 배우가 되길 택했어요. 처음 6년 정도는 그야말로 완전 무명 배우였죠. 그사이 저는 30대 중반을 향해 가고 있었고요. 불안을 온몸으로 맞으면서 묵묵히 지나왔어요. 하던 것 말고는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요. 그러다 <최후진술>이라는 공연을 만났는데, 사실 저는 그걸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감사하게도 공연이 잘돼서 5개월 뒤 앵콜 공연이 결정됐는데도요. 그때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자면 앵콜 공연에 참여해도 인생이 크게 바뀔 것 같진 않았거든요. 실제로 거절 의사를 표하고 직업 박람회도 다녔어요. 한 달에 50만원을 벌어도 좋으니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겠다, 하면서요.
하퍼스 바자 결국 앵콜 공연에 참여했고, 지금까지도 뮤지컬 무대에 서고 있죠.
박규원 다른 일을 기웃거리다가도 오디션을 보기도 했는데 떨어졌어요. 작은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다 보니 앵콜 공연을 할 때더라고요. 근데 공연 장소가 지금의 예스 24홀인 대명문화공장인 거예요. 대학로 공연의 메카 같은 곳이자 꿈의 무대였죠. 그만할 땐 그만하더라도 이 무대에는 한번 서 보자, 하고 합류했어요. 앵콜 공연이 끝날 때쯤에는 제 손에 대본이 10개 정도 들려 있었고요.
하퍼스 바자 벽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문이었던 거네요.
박규원 <최후진술>의 대표적인 넘버에도 나오는 말인데,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참 좋아해요. 여태 어떻게 살아남았나 복기해 보면 항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했기 때문이더라고요. 가령 공연을 하다 대사를 틀리는 것처럼 심한 실수를 했다고 칩시다. 때로는 그 실수 하나로 공연 전체가 다 망가지는 경우도 있어요. 저는 그런 최악의 상황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요. 그때 역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한 번 무대에 오른 거예요. 가만히 머물러 있지 않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에 착수하자는 마음으로요. 그런데 내려올 때의 상황은 완전히 바뀌어 있었죠. 저라는 사람은 달라진 게 없는데도요. ‘쿠킹런’ 게임 아시죠? 거기에 ‘피버 타임’이라는 게 있어요. 쉽게 말하면 보너스 시간이에요. 열을 확 내서 집중한 다음 점수를 극대화시킬 수 있죠. <최후진술> 다음에 <트레이스 유>를 하게 되었을 때 팬클럽에 글을 하나 남겼어요. “지금부터 나는 피버 타임을 사는 것이다. 그러니 당장 다음 주에 그만두게 되어도 여한이 없다. 피버 타임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주목해 달라.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하퍼스 바자 그 무렵이 8년 전쯤일 텐데, 지금도 피버 타임을 지나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박규원 8년째 피버 타임이죠. 감사하게도 그 다음 <트레이스 유> 공연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그건 제가 노래를 잘하고, 연기를 잘해서가 아니라 몸이 부서져라 열심히 한 결과인 것 같아요. 피버 타임이니까, 매 공연을 오늘 여기서 죽어도 좋다는 생각으로 했거든요. 사실 덤으로 얻은 시간을 살고 있다는 말은 항상 불안하다는 뜻이기도 하거든요. 즐기는 척하고 있는 중인 거예요. 많은 분들이 저를 사랑해 주셔서 제가 하는 공연들이 많이 관심을 받고 있잖아요. 그래서 더 불안한 것 같아요. 이 모든 게 사라질까봐. 하지만 척을 하다 보면 진짜로 즐기게 되는 때도 있더라고요. 노력하고 있어요.
하퍼스 바자 대학에서는 성악을 전공했고 그보다 어린 시절부터 꿈은 오페라 가수였다고 알고 있어요. 스물여덟의 나이에 뮤지컬 배우로 방향을 틀었죠. 노래를 한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사실 전혀 다른 일이잖아요.
박규원 저도 제가 뮤지컬 배우라는 타이틀을 가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여기 길 건너에 유명한 돈가스 집이 있거든요. 일평생 저에게 대학로는 그 집 돈가스 먹으러 가는 곳이었어요. 그 외에는 대학 수업 중에 <세 자매>라는 연극을 보고 레포트를 써야 했는데 그 과제 때문에 한 번 와본 게 전부였을 정도예요. 원래 제 꿈은 성악으로 세계를 재패하는 거였어요. 스리 테너에 제 이름을 올리는 거요. 뮤지컬을 해야겠다 결심했을 때도 단순하게 대극장에서 오페라 대신 뮤지컬을 하게 될 거라고만 생각했죠. 근데 부끄러운 얘기지만 저는 오페라 가수를 꿈꿨으면서 오페라를 보러 가서 단 한 번도 잠들지 않은 적이 없었어요. 그제서야 진짜 오페라를 하고 싶은 게 맞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하기 시작했죠. 그 무렵 <지킬 앤 하이드>를 봤고요. 뮤지컬이라는 엄청난 장르를 목격하고 생각이 완전히 달라진 거예요.
하퍼스 바자 이후로는 대학로로 대표되는 창작 뮤지컬 신 안에서 10년 넘게 활동해 오고 있죠. 특히 <초록>과 같은 초연 경험이 많고요. 뮤지컬에 매료되도록 이끈 <지킬 앤 하이드> 같은 대극장 라이선스 뮤지컬과는 결이 다른 작품을 많이 경험해야 했을 텐데요.
박규원 말씀하신 것처럼 한국에서 대학로 소극장 공연은 특수한 케이스예요. 일단 무대와 관객이 아주 가깝죠. 배우들의 숨소리, 호흡의 떨림, 표정, 땀. 모든 것을 바로 눈앞에서 보고 들을 수 있어요. 배우가 표현하는 진심을 충분히 같이 느낄 수 있는 곳이죠. 같은 거리에서 촬영한 영상을 본대도 실제로 보는 것과 같은 것을 느낄 순 없을 거예요. 이 장소에 와야만 하죠. AI가 모든 것을 대체할 거라지만 종국에 바뀌지 않을 곳이 하나 있다면 무대일 거예요. 공연 예술은 바뀌지 않아요. 무대극은 AI로 대체할 수 없어요. 앞서 말했듯 순간의 예술이니까요. 대학로는 물론이고, 노래하고 연기하는 무대 위는 앞으로도 대체 불가한 유일한 공간이 될 거예요. 그래서 저는 무대에 늘 갈증을 느껴요. 무대에서라면 나 역시 미약하게나마 영향력을 가질 수 있을 테니까요. 제 노래로 누군가에겐 울림을 줄 수 있을 거라 믿고요.
하퍼스 바자 미약하다고 했지만, 대학로에서 어엿한 티켓 파워를 가진 믿고 보는 뮤지컬 배우로 통하고 있죠. 다음으로 내다보는 목표는 무엇인가요?
박규원 그런 배우가 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제 저도 나이를 먹었고, 활동한 지도 꽤 되었으니 마냥 열심히 하는 것 이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죽을 힘을 다해 열심히만 하다가 눈을 들고, 제가 진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봤어요. 낭만이더라고요. 세상에 낭만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사는 건 모두에게 힘들잖아요. 마음에 희망 하나씩은 품어야죠. 아는 게 많아질수록 어려운 것도 많아지고 겁도 늘어요. 낭만이 살아 있다면 사람은 유연해질 수 있어요. 그리고 제 생각에 무대는 그걸 가능하게 해줘요. 대학로라는 공간, 극장의 크기를 떠나 더 많은 사람들이 무대와 공연 예술을 통해 낭만을 잃지 않도록 돕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 뮤지컬 <초록>은 링크아트센터드림에서 3월 29일까지 진행된다.
Credit
- 사진/ 김연제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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