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올의 수장이 된다는 건?
두 번째 디올 남성 컬렉션과 첫 오트 쿠튀르 쇼가 끝난 뒤 만난 조나단 앤더슨의 이야기.
전체 페이지를 읽으시려면
회원가입 및 로그인을 해주세요!
JONATHAN ANDERSON
얼마 전, 조나단 앤더슨의 두 번째 디올 남성 컬렉션과 첫 오트 쿠튀르 쇼가 공개되었다. 우린 시간을 거슬러 올라 그가 첫 번째 디올 컬렉션을 선보인 그날로 돌아갔다. 그에게 있어 디올의 수장이 된다는 건 어떤 의미였을까?
샹젤리제에서 불과 몇 걸음 떨어진 그의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에서 만난 조나단 앤더슨. 그는 발코니를 서성거리며 시선을 바닥에 고정한 채, 손가락 사이에 끼운 담배를 깊고 집요하게 빨아들였다. 연한 워싱의 리바이스 진, 눈동자 색과 닮은 빛바랜 블루 컬러의 코튼 폴로셔츠, 소박한 스니커즈, 머리는 약간 헝클어져 있다. 이렇듯 조나단의 첫인상은 사춘기 소년 같으면서도 극도로 예민한 분위기를 동시에 풍긴다. 그래서일까? 우리가 동시대의 가장 비전 있고, 왕성하게 활동 중인 디자이너와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게 된 것도.
2008년, 런던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인 JW 앤더슨을 설립한 그는 머지않아 로에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되었다. 이후 11년간 섬세한 장인정신을 기반으로 한 독자적인 스타일의 언어를 구축하며 안목 있는 고객들을 사로잡았다. 그 결과 스페인을 기반으로 한 오랜 전통의 패션 하우스 매출이 15억 유로(한화 약 2조 6천억원)를 넘어섰다. 그리고 2025년, 그는 패션계에서도 손꼽히는 빅 하우스인 디올의 수장 자리에 오르게 된다. LVMH 그룹의 패션 제국을 대표하는 아이콘 격인 디올. 여성과 남성 컬렉션 모두를 총괄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그가 처음이다. 앞으로 그는 매년 10개에 달하는 컬렉션을 구상해야 한다.
2026 S/S 시즌에 선보인 조나단 앤더슨의 첫 디올 여성 컬렉션. 섬세한 레이스 소재와 로맨틱한 실루엣이 돋보인다.
그가 만들어낼 새로운 디올에 대한 호기심이 최고조에 달한 2025년 6월 말, 1984년생 북아일랜드 출신의 디자이너는 2026 S/S 남성 쇼를 통해 자신의 ‘첫’ 디올 컬렉션을 선보였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자신의 스타일에 대한 형식적인 실험이 아닌, 조나단 앤더슨의 DNA가 ‘디올’이라는 교향곡의 주요 화음 위에서 박동하는 듯 느껴졌다. 뉴 룩(New Look)을 상징하는 ‘바(bar)’ 재킷이 도니골(Donegal) 트위드 소재로 변주되었고, 이를 오가닉 코튼 소재의 카고 버뮤다 팬츠 위에 착용했다. 밀푀유같이 주름을 쌓은 실루엣은 무슈 디올이 1948년에 선보인 ‘델프트(delft)’ 드레스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부드러운 회색 벨벳 소재 테일 코트를 맨살에 착용했다. 또 하우스 창립자가 사랑한 장미 모티프를 수놓은 니트와 그 위에 라일락 컬러의 모아레 실크 베스트를 레이어드한 것, 금속 실로 3천 시간에 걸쳐 자수를 놓아 완성한 하운드투스 코트, 17세기에서 프레피 무드에 이르기까지, 엄선된 디올의 코드들이 쇼 베뉴인 생제르맹데프레(Saint-Germain-des-Pres Quarter)에 축제처럼 펼쳐졌다. 마치 ‘청춘에 바치는 송가’와도 같았던 이 데뷔 무대는 업계와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이것이 창작을 삶의 이유로 여기는 조나단 앤더슨의 내면에 깃든 불안을 잠재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아직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다.
※ 이 인터뷰는 그가 2026 S/S 디올 남성 컬렉션을 선보인 뒤 진행되었다.
‘청춘에 바치는 송가’와도 같았던 2026 S/S 남성 컬렉션.
폴 푸아레와 인디 감성이 교차한 2026 F/W 남성 쇼 컬렉션.
2025년 6월, 디올의 이름으로 첫 남성 컬렉션을 선보였습니다. 이 새로운 도전에 어떻게 접근했나요?디올은 패션의 기념비와도 같은 존재이자, 그 규모와 역사에 걸맞은 무게를 지닌 하우스입니다. 저는 가장 먼저 이 언어를 해독하고, 다시 생각하고, 새롭게 코드화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건 남성복의 군더더기를 걷어내는 일이었습니다.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고, 앞으로의 시즌에서 탐구해 나갈 핵심 요소와 코드만을 남기는 것이죠. 이것은 시간을 두고 서서히 축적되는 과정으로, 모든 것이 첫 시도부터 완벽하게 정리되길 요구하는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하나의 도전이기도 했어요. 이번 쇼를 한 권의 책에 비유하자면 에필로그에 해당해요. 스토리텔링의 기초는 이미 놓였고, 시간에 따라 서서히 볼륨을 키워갈 생각입니다.
이처럼 거대한 하우스의 토대를 다루는 일은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어지러울 정도로 깊이 파고들어야 하는 과정입니다. 거의 성역에 가까운 공간을 탐험하면서 외부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은 채 극도로 창의적이어야 하니까요. 로에베와 가장 크게 다른 점도 바로 이 점입니다. 이곳에서는 디올이 무엇이어야 하고 무엇이어서는 안 되는지에 대해 모두가 각자의 의견을 가지고 있었죠. 결국 핵심은 감수성을 잃지 않으면서 멘탈을 단단하게 유지하는 것이었어요. 이런 것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고요.
그렇다면 그런 압박 속에서 창의성과 감각을 어떻게 지켜내나요? 내가 맡은 역할을 해내는 데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자리가 요즘엔 매우 어렵게 느껴집니다. 시스템에 안착하고 발전할 시간을 거의 주지 않기 때문이죠. 비즈니스와 마케팅 모두 긴급하게 돌아갑니다. 그런 점에서 베르나르 아르노(LVMH 회장)를 존경해요. 그는 늘 장기적인 시각을 가져왔고, 지금도 그렇거든요. 물론 현재를 다루는 동시에 3년 뒤 이 이야기가 어디에 와 있을지를 가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속도를 너무 내면 소비자와의 지속적인 대화를 만들어갈 수 없죠. 저 같은 크리에이터에게는 이 부분이 매우 까다롭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에요. 개인적이고 독창적인 비전을 제시하면서 이미 존재하는 고객을 만족시켜야 하고, 새로운 고객을 끌어들여야 하며, 동시에 기대에 부응해야 하니까요. 여기에 더해 오늘날 우리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이라는 전혀 다른 두 현실을 동시에 상대해야 합니다. 부담이 클 수밖에 없죠. 결국에는 본능을 믿되, 현실적인 이해관계를 냉정하게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솔직히 말하면, 저는 이런 상황이 싫지 않습니다.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것을 좋아하니까요.
디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기 전, 디올은 당신에게 어떤 존재였나요? 사실 저는 디올을 염두에 두고 살아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그것이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할 일도 없었죠. 1년 전에 누군가 제게 이 자리를 맡을 수 있을지 물었다면 “아뇨!”라고 답했을 겁니다. 꿈꾸던 포지션은 아니었어요. 다만 돌이켜보았을 때 패션 역사상 제가 가장 사랑하는 드레스 중 상당수가 디올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리고 지금은 그것들을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행운을 누리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한 시즌에 60벌의 드레스를 선보이면서도, 60개의 완전히 다른 아이디어를 제시했더군요. 지금이라면 그 하나하나로 60번의 쇼를 할 수도 있을거예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하우스가 끊임없이 스스로를 재창조해 왔다는 점입니다. 스스로를 해체하고, 다시 폭발적으로 재탄생시키는 과정을 거쳐왔고 바로 그것이 디올의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변신할 수 있는 힘이 있죠. 또 한 가지, 크리스찬 디올을 떠올리면 저는 ‘공감’이라는 단어가 생각납니다. 그는 여성의 몸과 감정을 이해하는 시선으로 옷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지금의 디올에는 바로 그 공감이 부족해요. 저는 이 지점을 오늘의 시선으로 다시 탐구해 보고 싶습니다.
크리에이터에게 가장 큰 위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자신이 목표에 도달했다고 믿는 순간이에요. ‘이제 됐다,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지금까지 구축한 것을 지키려 들 테고, 하나의 공식에 갇히게 될 겁니다. 그러면 판을 뒤엎을 힘을 잃게 되죠. 저는 제 일을 끝없이 ‘진행 중인 작업(work in progress)’의 상태로 봅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북돋고, 동시에 자만심을 억제하게 하죠.
일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팀과 함께 일하고, 의견을 나누고, 토론하는 순간을 가장 좋아합니다. 제 주변에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 몇몇 이들은 15년을 넘게 함께한 이들이 있어요. 저는 그들을 존경하기 때문에 함께 일합니다. 그리고 가능한 한 자유롭게 창의성을 발휘하도록 독려하고 있어요. 평가받고 있다는 느낌 없이 저에게 도전할 수 있도록 말이죠. 저는 마이크로 매니징을 정말 싫어합니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해야 할 때면 화가 날 정도로요. 누군가를 채용했다는 건 내가 할 수 없는 무언가를 해줄 사람이라고 믿기 때문이에요. ‘예스맨’은 견딜 수 없더군요.
조나단의 디올 오트 쿠튀르 데뷔 쇼 오프닝 룩. ‘미래 고고학(Future Archaeology)’을 테마로 드라마틱한 컬렉션을 완성했다.
크리스찬 디올을 떠올리면 저는 ‘공감’이라는 단어가 생각납니다. 그는 여성의 몸과 감정을 이해하는 시선으로 옷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지금의 디올에는 바로 그 공감이 부족해요. 저는 이 지점을 오늘의 시선으로 다시 탐구해 보고 싶습니다.
패션계의 현 상황을 어떻게 보나요? 패션 산업은 분명 수축하는 국면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2~3년간의 과열된 성장세를 떠올려 보면, 어쩌면 자연스러운 흐름이기도 하죠.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지금이 꽤 재미있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아이디어에 다시 투자해야 할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한꺼번에 400개의 아이디어를 낼 순 없어요. 걸러내고, 분류해야 하죠. 또 하나의 문제는 오늘날 누구나 의견을 말하지만 그 의견의 출처나 무게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가치를 가늠할 수 없는 의견들을 바탕으로 어떻게 건설적인 논의를 할 수 있을까요? 결국 소음만 듣게 될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 저는 프랜 리보위츠(Fran Lebowitz, 작가이자 비평가)의 말이 떠오릅니다.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인물인데, 그녀는 문화에서 예술가만큼이나 중요한 존재가 바로 ‘안목 있는 관객’이며, 그런 관객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고 말합니다. 우리를 흔들고, 맞부딪치게 하면서도 명확하고, 이성적이고, 건설적인 사고로 자극해 주는 목소리가 필요한 때죠.
당신에게 ‘남성성’이라는 개념은 어떤 의미인가요? 지금의 남성성은 일종의 안개처럼 느껴져요. 제가 패션 일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젠더의 유동성에 대한 논의는 이미 주류 담론이었고, 거의 자명한 사실처럼 받아들여졌죠. 하지만 현재의 정치적 환경은 이 개념을 다시 위축시키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너무 빠르게 전개됐고, 지금은 일종의 반동을 목격하고 있는 셈이에요. 그렇다고 해서 남성에 대한 모든 제약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핸드백을 보세요. 남자가 버킨 백을 들고 있어도 더 이상 ‘여성용 가방을 든 남자’라는 설명이 붙지 않습니다. 대신 ‘엄청나게 비싼 가방을 든 남자’가 되죠.(웃음) 더 이상 남성 또는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의 문제입니다. 메시지는 분명하죠. 나는 나의 부를 상징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것.
당신의 개인적인 스타일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 젊었을 때는 패션을 소비하는 것을 정말 좋아했고, 과감한 선택도 즐겼죠. 10대 시절엔 장 폴 고티에의 오렌지색 나일론 진과 재킷을 샀던 기억이 나고, 이후에는 미우미우의 첫 남성복 컬렉션에 완전히 빠져 있었거든요.(웃음) 하지만 지금은 사람들을 입히는 일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하루 종일 피팅을 하며 지내다 보니 아침에 일어나서 무엇을 입을지 결정하는 것 자체가 가장 하기 싫은 일이 되어 버렸어요. 그래서 제 옷차림은 아주 중립적입니다. 북아일랜드에서 학교에 다니던 시절처럼, 일종의 유니폼을 입는 셈이죠. 제가 만드는 남성복은 사실 제가 입고 싶다고 상상하는 옷에 대한 판타지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판타지로 남아 있어야 해요.
자신의 성격 중 어떤 점이 가장 두드러져 보이나요? 저는 굉장히 집요한 편입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에너지가 없더라도, 해야 할 일은 끝까지 해냅니다. 하루에 회의를 마흔 개 연달아 해도 괜찮아요. 또 하나의 특징이라면, 집중력이 오래 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금방 지루해하죠. 새로운 것을 배우지 못하거나, 하나의 아이디어로부터 자극을 받지 못하면 그날을 헛되이 보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당신과 함께 사는 사람들은 쉽지 않겠어요.(웃음) 맞아요. 정말 쉽지 않을 겁니다.(웃음)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저는 제가 하는 일을 너무 사랑하니까요.
그렇다면 가장 큰 약점은 무엇인가요? 가끔 너무 예민하다는 점이에요. 모든 것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죠. 예전에는 멘탈이 나름 강해졌다고 생각했고, 거리두기도 잘한다고 느꼈는데 최근에는 생각보다 훨씬 불안정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 새로운 지위가 저를 더 취약하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스스로에게 묻게 되더군요. ‘내가 로봇이 되어야 할까?’ 하고요. 동시에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주변의 소음에 신경 쓸 시간조차 없기도 합니다.
일을 하지 않을 때는 무엇을 하나요? 미술관에 가거나, 루카 구아다니노의 다음 영화에 들어갈 의상을 구상해요. 그 일들이 저에겐 일종의 탈출구처럼 느껴지거든요.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집에 머뭅니다. 하루 종일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혼자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하거든요. 침묵 속에서 아주 기본적인 일을 합니다. 빨래를 하고, 다림질을 하고, 요리를 하고, 정원을 가꾸는 것 같은 일들이요. 그런 일들은 나 자신을 느낄 수 있게 해줍니다. 정상적인 삶으로 통하는 창문을 다시 여는 것 같달까요. 아까 제 일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죠? 반대로, 제가 가장 힘들어 하는 건 ‘디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사회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거예요. 가끔 저를 불편하게 만들거든요. 의외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저는 본래 아주 내성적인 사람입니다.
Credit
- 인터뷰 / Olivier Lalanne
- 번역/ 이승연
- 사진/ David Sims(포트레이트 컷), Launchmetrics(백스테이지 컷)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Celeb's BIG News
#블랙핑크, #스트레이 키즈, #BTS, #NCT, #올데이 프로젝트, #에스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