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디지털미디어의 시대,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에게 물었다
“그림을 그리는 건, 궁극적인 자유의 순간이에요.” 일곱 명의 동시대 여성 작가들이 말하는 회화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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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nna Gribbon, <A Reflection Held>, 2024, Oil on linen, 203.2x162.6x4.4cm. © Jenna Gribbon, Courtesy David Kordansky Gallery.
몇 해 전, 정치적 불안과 그로 인한 깊은 상실감이 사회 전반을 뒤덮고 있던 시기. 멀티미디어 작업으로 알려진 어느 작가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요즘 다시 회화를 그리고 있다고 했다. 왜냐고 묻자 돌아오는 답은 심플했다. “전 그냥 집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많은 작가의 ‘처음’에 회화가 있었다. 회화는 아주 오래된 미술 형식이며, 몸을 전부 쓰는 작업이기도 하다. 손을 움직이고, 물감을 만진다. 그 과정 속에서 의미를 만들어 낸다. 상상은 몸을 움직이게 하고, 몸을 움직일 때 또 다른 상상력이 피어난다. 그림 앞에서 마음 한편이 일렁이는 느낌을 경험해본 적 있다면 알 것이다.
어떤 이에게 회화는 현실로부터의 도피이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언젠가 다시 돌아갈 자리다. AI를 비롯한 각종 디지털 툴이 일상이 된 지금, 예술을 만들고 경험하는 방식은 더욱 비물질적이며, 찰나의 행위처럼 느껴진다. 이런 시대에 회화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지금 여기 존재하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내는 행위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이미지에 노출되어 살아간다. 이미지는 우리의 생각과 감정, 사회 전체에 대한 인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 과정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이미지는 특정 관점을 은근히 주입하기도 하니까. 디지털 세계에서 만들어진 자아는 필연적으로 현실의 나에게 스며든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바꾸기도 한다. 그러므로 회화를 그린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예술 형식을 택하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몸이 흔적 없이 소비되고 사라지는 것을 거부하겠다는 태도이자, 손을 움직여 대상을 감각하는 흔적을 남기겠다는 선언이다.
회화의 역사에서 여성 화가들은 창작자보다 감상의 대상, 뮤즈로 취급되어 왔다. 언제나 제도와 기준에서 배제되었다. 때문에 ‘보여진다는 것’을 향한 여성 화가들의 고집은 예술의 영역을 넘어선 문제로 이해해야 한다. 시몬 드 보부아르가 말한 ‘되어감’의 과정, 획일화된 정체성에 갇히지 않고 자기 존재를 분명한 흔적으로 남기려는 시도인 것이다. 서로 다른 배경과 경험, 시선을 지닌 일곱 명의 여성 작가를 만났다. 이들은 회화라는 언어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 젠더, 표현의 문제를 다루며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펼쳐 보인다.
사진/ PHOEBE D’HEURLE. 브루클린 스튜디오에서의 제나 그리본. 뒤에는 그의 작품 <Projecting Myself onto M>이 놓여 있다.
“누군가를 매일 보다 보면, 오히려 많은 것을 놓치게 돼요.” - 제나 그리본(Jenna Gribbon)
46세의 화가 제나 그리본(Jenna Gribbon)은 자신의 브루클린의 스튜디오에서 아내이자 뮤지션인 매켄지 스콧의 대형 초상화를 그리고 있었다. 그림에 쓰인 푸른 색조는 관능적인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본은 우리가 보는 법을 잊어버렸다고 말했다. 스크린에 지친 눈은 아름다움을 깊이 바라보기보다 훑듯 지나칠 뿐이라는 것이다. 스스로를 기록자로 여기는 그는 영화감독 아녜스 바르다에게 깊은 영향을 받아 대상과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 사이의 관계에 관심이 많다.
그리본의 작업은 아이폰 카메라로 스콧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는 것에서 시작된다. 스콧은 어떤 그림 앞에서는 “자신과 이토록 닮은 그림은 처음”이라고 말하지만, 또 어떤 그림 앞에서는 “전혀 누군지 모르겠다”며 갸우뚱한다. 그리본은 8년째 스콧을 그리고 있지만, 이 작업을 끝내려면 아직 한참 남았다고 말한다. 함께 나이 들어가는 동안, 가능한 오래 스콧을 그리고 싶다. 어쩌면 사랑에는 목격자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그리본은 말한다. “매일 보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많은 걸 놓치게 돼요.”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보이기를 원하지만 동시에 그 대가를 두려워하는 법이니까.
사진/ © Sasha Gordon, courtesy the artist and David Zwirner, New York. <Whores in the Attic> 앞에 서 있는 사샤 고든.
“인물들이 그저 순수한 존재로 남아 있기를 바라요. 사회적 규범에 영향을 받지 않은 상태로, 어딘가 기묘한 분위기를 지닌 채로요.” - 사샤 고든(Sasha Gordon)
2025년 가을, 뉴욕 데이비드 즈위너 갤러리에서 사샤 고든(Sasha Gordon)의 첫 개인전이 열렸다. 그중 한 공간은 혼돈에 빠진 인간의 자화상 연작으로 채워져 있었다. <It Was Still Far Away>는 27세의 고든이 헤드폰을 낀 채 발톱을 깎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뒤에서는 폭발이 일어나고 있다. 집단적 무감각, 자기 몰입을 하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인간을 묘사한다. <Whores in the Attic>에는 앞코가 뾰족한 뮬을 신은 채, 늘어진 셀룰라이트를 다 드러내고 담배를 태우고 있는 여성들이 등장한다.
Sasha Gordon, <It Was Still Far Away>, 2024, Oil on linen, 183.5x244.2cm.
고든은 자신의 모습을 자주 화면에 등장시킨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종종 자기 몸을 긍정하는 ‘바디 포지티브’로 읽히곤 한다. 하지만 고든에게 중요한 것은 몸을 사유하는 방식, 취약함과 힘 사이를 오가는 미묘한 경계다. “이건 해리 상태가 되었다 다시 빠져나오는, 의식의 이동에 관한 그림이에요.” 고든이 덧붙인다. “사회적 규범에 영향을 받지 않는 순수한 인간을 그리고 싶어요.” 그건 순진함이 아니라, 쉽게 오염되지 않는 상태에 가깝다.
폴란드계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고든은 미국 뉴욕주 소머스에서 자랐고, 로드아일랜드 예술대학에서 공부했다. 보는 법을 가르쳐준 건 고든의 어머니다. “모욕처럼 들릴 수도 있는데요, 엄마는 제 친구들이 예쁘지만 전형적인 외모라고 했어요. 대신 나는 더 기억에 남는 무언가를 가졌다고 했죠.” 대중적인 미의 기준을 살짝 비껴간 아름다움은 지금까지도 고든의 작업을 이끄는 핵심이다. “사람에게 기묘한 분위기는 꼭 필요해요.”
사진/ Mark Blower. 런던 스튜디오에서의 제이드 파도유티미.
“회화적 세계란, 그것이 예견된 목적지가 없을 때 스스로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다고 믿어요.” - 제이드 파도유티미(Jadé Fadojutimi)
Jadé Fadojutimi, <Untitled>, 2025, Acrylic, Oil, Oil Pastel, And Oil Bar on Canvas, 250x175cm © Jadé Fadojutimi, Courtesy the Artist
Jadé Fadojutimi, <Untitled>, 2025, Acrylic, Oil, Oil Pastel, And Oil Bar on Canvas, 250x175cm, © Jadé Fadojutimi, Courtesy the Artist.
제이드 파도유티미(Jadé Fadojutimi)의 회화를 보고 있자면 마치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대형 추상 작품들은 색으로 연주되는 교향곡처럼 느껴진다. 그는 런던에서 작업하지만 일본을 자주 찾는다. 어린 시절 섬세한 그림체와 매혹적인 색감의 교토 애니메이션 작품을 보며 자란 기억 덕분이다. “일본에서는 색이 훨씬 더 또렷하게 보이는 것 같아요. 하늘부터 달라요. 영국에서는 여성스럽게만 보일 수 있는 파스텔 톤도 이곳에서는 아주 자연스럽고 보편적으로 느껴지죠.” 영국과 나이지리아 문화가 섞인 환경에서 자란 파도유티미는 회화에서도 하나의 고정된 정체성만을 말하지 않는다. 갈망, 이탈, 정체성의 혼란 같은 불안정한 개념을 다룬다. 이 모든 건 날씨처럼 끊임없이 변하는, 풍부하고 강렬한 색채로 드러난다. 색으로 감정을 먼저 느끼면 된다. 이해는 그 다음이다. 이탈리아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 스타일이랄까. 완벽히 통제하려 들지 않고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끄는 방식 말이다. 파도유티미는 말한다. “색을 다루다 보면 온도와 깊이, 원근감 같은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어떤 세계를 만들어내요. 미리 정해둔 목적지가 있는 것이 아니고, 그리는 과정 속에서 형성되는 세계요.”
사진/ Maris Hutchinson, Owen Con Way. 뉴욕 작업실에서의 안나 웨이언트.
“그림 속 인물들은 포즈를 취하고 있어요. 저는 이 이미지를 영화의 한 장면이라 여깁니다. 연출된 상태로 잠시 멈춘 순간인 거예요.” - 안나 웨이언트 (Anna Weyant)
안나 웨이언트(Anna Weyant)의 작품 속 인물들은 순수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통찰이 있다. 웨이언트는 특정 시선에는 분명한 힘이 있다고 믿는다. 소셜미디어는 그의 작업 내용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웨이언트의 그림은 인스타그램 사진처럼 프레임화 되어 보이는데, 그는 사실 이러한 플랫폼을 통해 처음 주목 받은 작가다. 그의 그림은 잘라낸 인스타그램 피드 조각 같다. 중립적인 배경과 모호한 표정의 젊은 여성들, 네덜란드 황금기와 바로크 회화를 떠올리게 하는 기법으로 표면과 질감, 정적인 분위기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그 결과는 어느 시대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경계 위의 초상이다. 웨이언트는 말한다.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인물들이 영화의 한 장면이라 생각해요. 연출된 상태로 잠시 멈춘 순간인 거죠.”
Anna Weyant, <Geraldine>, 2024, Oil on Canvas, 121.9x91.4cm © Anna Weyant, Courtesy Gagosian.
Anna Weyant, <Girl in Window>, 2024, Oil on Canvas, 121.9x91.4cm © Anna Weyant, Courtesy Gagosian.
뉴욕에 있는 웨이언트의 스튜디오에서 본 미완성 작품에는 엉덩이를 프레임 가장자리에 걸친 채 테라스를 내려다보는 여성의 하반신이 그려져 있었다. 웨이언트는 종종 프레임 너머에 남성이 존재한다고 상상한다. 그림 속 인물들은 그 존재를 알고 있다. 남성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유머를 더해 뒤흔들어 놓는다. 고정관념과 현실 사이의 틈이 여기서 드러난다. “이건 결국 제 경험을 반영한 거예요. 제게 다른 누군가의 시선으로 그림을 그릴 자격은 없으니까요.”
런던 스튜디오의 사하라 론지.
“내 안을 텅 비우고 무언가 찾아올 때까지 지켜봐요. 그러다 문득, ‘나 뭔가 발견했어!’ 하고 외치고 싶어지는, 복음을 전하는 전도사 같은 열정이 생겨요.” - 사하라 론지 (Sahara Longe)
31세의 작가 사하라 론지(Sahara Longe)는 모든 것에서 영감을 얻는다. 역사적 인물을 다루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스크롤하다가, 공원에서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혹은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미술관에서 우연히 마주친 성서화를 보고. 최근에는 도리스 레싱의 1962년 소설 <황금 노트북>에 깊이 빠져 있다. 전후 영국 사회를 살아가는 한 여성이 경험의 밀도에 비해 점점 얄팍해지기만 하는 언어 능력을 한탄하는 이야기다.
진행 중인 론지의 작업들.
네 자매 중 장녀인 론지는 영국 서퍽의 한 농장에서 자랐고, 지금은 런던을 기반으로 작업한다. 아버지는 영국인, 어머니는 시에라리온 출신이다. 론지의 작품 속 인물들은 감정적으로 매우 친밀해 보인다. 하지만 동시에 관객이 각자의 방식으로 완성할 수 있는 여백도 남겨 두는 편이다. 캐나다 발삼 수지, 농도를 높인 아마인유, 토끼가죽 아교, 젯소, 테레빈유 같은 재료를 사용해 축적된 시간과 역사적 감각을 소환한다. 그의 그림에는 고전 회화 작품에서 자주 보이는 고요함이 느껴진다. 내면으로 깊이 스며드는 고요 말이다. 인물들은 장식물이나 제물처럼 놓이지 않는다. 자신이 서 있는 방식 그대로 화면을 가득 채우며, 자기 방식으로 읽히기를 원한다.
Sahara Longe, <School Girls>, 2025, Oil on linen, 95 x 80 cm, © Sahara Longe, courtesy the artist and Timothy Taylor.
론지는 자신의 회화적 태도가 피렌체의 ‘카를레스 H. 체칠(Charles H. Cecil)’ 스튜디오에서 공부하던 시절 체화된 가치관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학교의 모토는 현실에서 발견한 무언가를 캔버스 위에서 더 아름답게 만들자는 것이었어요. 지금도 그 모토를 지키려 해요.” 새로운 작업의 실마리를 발견했던 순간을 이야기할 땐 아이처럼 들떠 있었다. “스스로를 비워둔 채 지켜보다가, 무언가 찾아올 때까지 지켜보는 거예요.” 론지가 말한다. “나 뭔가 발견했어! 하고 외치고 싶어지는, 복음을 전하는 전도사 같은 열정인 거죠.”
사진/ Christopher Stach. 로스앤젤레스 인근 스튜디오의 루시 불.
“색과 마크 메이킹을 시각적인 미끼처럼 사용해 관람자의 시선을 붙잡아 두려 해요. 그림으로 다양한 연상 작용을 불러일으키고 싶어요.”- 루시 불(Lucy Bull)
사진/ Christopher Stach. 로스앤젤레스 인근 스튜디오의 루시 불.
루시 불(Lucy Bull)의 LA 스튜디오는 샌게이브리얼 상업 지구 한가운데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스튜디오 벽에는 완성도가 서로 다른 캔버스들이 겹겹이 놓여 있다. 불은 작업 장소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다. 골목에서도, 집 뒤뜰에서도 그린다. 가능하다면 자연과 가까이서 작업하는 편을 선호한다.
Lucy Bull, <16:55>, 2025, Oil on linen, 121.9x91.4x2.5cm, © Lucy Bull, courtesy David Kordansky Gallery.
불의 회화는 살아 있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다른 차원의 세계를 묘사하는 듯한 리듬감이 느껴진다. 겹겹이 쌓인 붓질에는 그가 쏟아부은 집요한 노동의 흔적이 남아 있다. 화면 하나하나가 숨 쉬는 듯 보인다. 불은 말한다. “저는 색과 마크 메이킹을 시각적인 미끼처럼 사용해요. 관람자의 시선을 붙잡아 두고 싶거든요. 관객이 그 풍경 속으로 끌려 오게끔, 하나의 상황을 만들어 내는 거예요.” 뉴욕에서 자란 불은 시카고 예술대학에서 공부했다. 반복에 기반한, 직관적이고 과정 중심적인 작업을 고수한다. 그의 목표는 관객이 자유롭게 시선을 옮기며 화면 속을 헤매도록 만드는 것이다. “제 그림을 통해 서로 연결되는 감각들을 불러내고 싶어요.”
사진/ Keith Lubow. 로스앤젤레스 스튜디오의 크리스티나 퀄스. 뒤에는 <Magic Hour>가 놓여 있다.
“그림을 그리는 건 의도와 결과물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과정이에요.” - 크리스티나 퀄스(Christina Quarles)
사진/ Keith Lubow. 하우저 앤 워스 전시를 앞두고 작업을 마무리 중인 퀄스.
크리스티나 퀄스(Christina Quarles)는 아내이자 프로듀서, 시나리오 작가인 알리사 폴크(Alyssa Polk), 그리고 딸과 함께 지낸다. 2025년 1월 LA 산불로 집과 작업실을 포함한 모든 것을 잃었지만, 작업 방식과 태도는 흔들리지 않았다. 퀄스의 그림은 말하자면 기술과 영혼이 결합된 구성이다. 역동적이고 미래적인 공간 속에서 몸을 비틀고 휘며 버티는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얽혀 있다가 무너지기도 하면서 입체적인 질감을 만들어 낸다.
Christina Quarles, <Yull Always Be a Part of Me>, 2025, Acrylic on canvas, 218.4 x 182.9 cm, © Christina Quarles, courtesy the artist, Hauser & Wirth, and Pilar Corrias, London. 사진 Jeff McLane.
퀄스는 싱글맘 아래서 자란 외동이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상상이 하나의 피난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는 설명하지 않아도 감각을 흡수해 버리며 말보다 앞서는 직감을 가졌다. “예술을 한다는 건, 결국 기술을 배우는 데서 시작해요. 처음에는 온갖 테크닉을 익혀야 하고, 그 과정에서는 그 생각밖에 못하죠. 그런데 어느 순간 익숙해지면, 오히려 생각하는 뇌를 비켜서 더 깊은 무의식이 흘러나올 수 있어요.”
퀄스는 현재 LA 하우저 앤 워스에서 열릴 전시를 위한 작업을 마무리하고 있다. 완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더 이상 그림에 손대고 싶지 않을 때다. 작가가 아니라 관람자가 되어 그림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지게 되는 순간. “그림을 그리는 건, 말하자면 의도와 실제 결과물 사이를 오가는 과정이에요. 결과를 새로운 의도로 존중하려는 시도죠. 궁극적인 자유의 순간이에요.”
Christina Quarles, <Living in the Wake>, 2025, Acrylic on canvas, 289.56x264.16x5.08cm, © Christina Quarles, courtesy the artist, Hauser & Wirth, and Pilar Corrias, London.
회화는 소속감을 준다. 고통 가운데, 나를 고립시키는 이 감정들도 사실 누군가 이미 겪은 것임을 깨닫게 한다. 인간은 생각보다도 훨씬 더, 서로를 닮아 있다. 화가의 역할은 우리를 다시 집으로 데려가는 일일지도 모른다.
Credit
- 글/ Sasha Bonét
- 디자인/ 한상영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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