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에 참여하는 작가, 마이클 주

기술이 변모함에 따라 달라지는 인간의 행동과 관습을 추적해온 작가 마이클 주가 제61회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 ≪In Minor Keys≫에서 신작을 선보인다. 우리가 이 행성의 지층 위에 남긴 흔적, 그 두께와 밀도에 대하여.

프로필 by 안서경 2026.05.09

All Too Human, Michael Joo’s Evolving Forms


기술이 변모함에 따라 달라지는 인간의 행동과 관습을 추적해온 작가 마이클 주가 제61회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 ≪In Minor Keys≫에서 신작을 선보인다. 우리가 이 행성의 지층 위에 남긴 흔적, 그 두께와 밀도에 대하여.


Artist portrait of Michael Joo. Photo: Jeon Byeong Cheol, Kukje Gallery

Artist portrait of Michael Joo. Photo: Jeon Byeong Cheol, Kukje Gallery

레이철 쿠시너의 2013년 소설 <화염방사기>에는, 대지미술에 영향을 받고 속도에 사로잡힌 한 젊은 예술가가 유타주 보네빌 소금사막에서 새 모터사이클 발레라를 타고 기록에 도전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에게 레이싱은 일종의 자국 남기기, 두 바퀴로 사막 위에 선을 긋는 행위다. 신기록을 향한 현장에서 그는 다른 참가자가 출발선을 박차고 나가는 것을 지켜본다. 쿠시너는 “몇 분에 한 번씩 엔진이 포효하며 차량이 출발선을 박차고 나갔고, 양쪽 뒷바퀴 아래에서 소금이 수탉 꼬리처럼 뿜어져 올랐다”고 묘사한다. “바이크는 달리기 시작한 지 몇 초 만에 떠오르기 시작했고, 아랫부분이 아른거렸다. 이윽고 전체가 액체처럼 흐물거리더니 수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이곳에선 순전히 속도와 눈부시게 하얀 풍경 때문에, 땅에 붙들린 무거운 물체마저 공중에 떠올라 녹아내리는 듯 보인다. 정교하게 설계된 기술의 힘을 빌려, 인간은 잠시나마 신체성과 중력 그리고 시각의 한계를 초월한다.

한국계 미국인 개념미술가 마이클 주는 퍼포먼스 영상 <Salt Transfer Cycle>(1993–1995)에서 뉴욕 작업실의 MSG 더미 위에서 헤엄치고, 포복하고, 네 발로 뛰어다니다가, 마침내 쿠시너의 주인공을 매혹했던 바로 그 소금사막을 전력으로 내달린다. 측면에서 포착한, 영상 속 마이클 주가 안간힘을 쓰는 모습은 날렵한 이십 대의 몸이 지닌 정밀한 역학을 드러낸다. 힘차지만, 힘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결국 영상에 남는 것은 유선형의 기계가 아니라 공간, 시간, 대지, 공기에 맞서는 벌거벗은 ‘호모 사피엔스’다. 팔다리는 풀려 있고, 바람에 시달리며, 기술의 도움이라곤 없는 데다 신발조차 없다. 카메라 렌즈가 하얀 소금에 뿌옇게 흐려지듯, 마이클 주 또한 저 멀리 녹아 사라진다. 그러나 이것은 우아한 승화가 아니다. 영상은 반복 재생되고, 그의 몸은 남는다.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모습이다.

마이클 주의 작업 가운데 다수는 유기체와 기술 사이의 설계, 기능, 목적상의 간극에 천착한다. 마이클 주는 뉴욕주 이타카에서 과학자 부모 사이에 태어났으며, 성장기에 베트남전쟁과 중동 전쟁, 에이즈 위기를 깊이 각인했다. 현재 뉴욕에 거주하는 그는 부시윅과 맨해튼 코리아타운에 작업실을 두고 있다. 그의 작업은 흔히 인간 지각 자체를 들여다보는 메타적 탐구로 읽힌다. 이전에 상상하지 못한 형태를 들여다보도록 만들고, 익숙한 것을 새롭게 마주하게 한 뒤, 왜 정신이 특정한 시각적 패턴을 구축하거나 특정한 연상적 도약을 하는지 묻기 때문이다. 여기에 덧붙이자면, <Salt Transfer Cycle> 이후의 많은 프로젝트는 신기술과 공학을 활용하여 우리의 정신, 신체, 감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밝혀줄 뿐 아니라, 시공간과 엔트로피 앞에 벌거벗은 인간의 원초적 결핍을 메우고자 한다.

마이클 주의 작업에서 되풀이되는 하나의 흐름은 ‘보철적 완성’이라는 관념에 닿아 있다. 예컨대 <Improved Rack>(1997–)은 뿔 한 쌍을 재료로 삼은 연작이다. 무스, 엘크, 수사슴이 야생에서 자연스럽게 떨구고, 인간이 트로피 삼아 실내로 들여오는 그 뿔이다. 그는 이 표본들을 발견하면 여러 부분으로 절단하고, 스테인리스스틸 보강재로 뼈를 관통하여 재조립해서 균형과 대칭을 만든다. 이 작품들은 자연 속 질서를 진지하게 추구하는 동시에 바로 그러한 충동에 대한 비판으로도 읽히며, 단순히 한쪽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 스스로 충족해 보이는 형태에조차 ‘개량’을 원하는 인간의 기이한 취향을 드러낸다. 어떤 의미에서 <Improved Rack>은 미용 시술과 유기체의 경계를 넘어서는(생명공학 기술과 관련된) 미학이라는 동시대적 경향을 예견한다. 충분한 기술만 있다면, 신체는 교체 가능한 부품의 집합이 된다. 신성하지도, 감상적이지도 않은 무엇이다. <Slanty>(1992)에서도 이와 유사한 긴장감이 나타난다. 합성 눈물로 채워진, 속이 빈 아홉 개의 부채꼴 알루미늄 덩어리로 이뤄진 조각이다. 표면에는 유명 인사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새겨져 있다. 배우 율 브리너, 포르노 배우 마릴린 챔버스 등, 인물들의 눈꼬리는 작가 자신의 눈과 동일한 각도로 기울어져 있다. 찢어진 눈은 아시아인을 희화화할 때 단골로 등장하지만, 그의 당돌한 조각은 인종을 차별하는 미세 공격으로 눈물을 흘리는 행위조차 인공의 영역으로 외주화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여기서 마이클 주는, 비록 아이러니하게나마 관상을 문화적·역사적 무게로부터 자유로운 중립적 과학 데이터로 제시하며, 이와 동시에 기계와 수학이라는 금속적이고 금욕적인 영역에 문화와 역사를 다시 주입하고자 한다.

신작 <That Which Evaporates Around Us>의 사운드 테스트를 진행 중인 마이클 주. Courtesy of Michael Joo Studio

신작 <That Which Evaporates Around Us>의 사운드 테스트를 진행 중인 마이클 주. Courtesy of Michael Joo Studio

마이클 주는 제49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큐레이터 박경미가 기획한 2인전 형태로 서도호와 함께 한국관 대표 작가로 참여했다. 출품작인 <Tree>(2001)는 베네치아 수도국에서 사용을 거부한 큰 참나무 줄기를 300조각으로 절단하고 스테인리스스틸 파이프로 다시 조립한 작업이다. 작가는 나무를 보강하는 동시에 마치 과학적으로 해부하려는 듯 내부를 개방했다. 여기서 다시 한번 한계를 밀어붙이며 더 빨리, 더 오래 나아가려는 수영 선수나 달리기 선수의 욕구와 같은 신체의 최적화에 대한 갈망이 감지된다. <Revider for Ganoderms (Yeongjiboseot 1, 3)>(2024)에서도 유사한 논리가 나타나는데, 이 작품은 최근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마이클 주의 개인전에서 공개되었다. 면역 강화와 항염에 효능이 있다고 전해져 동아시아 전통 의학에서 오랫동안 쓰인 약재인 영지버섯 세 개를 탄화시켜 플렉시글라스 판 위와 주변에 놓은 이 작품을 위해, 마이클 주는 수개월간 일본 남부의 전통 숯 장인들과 작업했다. 이 작업은 투박한 미래주의로 환원될 수 없으며, 오염된 현재를 정화하려는 전통적 치유법도 아니다. 그가 아시아의 고대 형상을 다루는 방식은 오히려 해부적이다. 예를 들어, <Visible>(1999)이라는 조각에서 그는 부처의 해부학적 구조를 드러낸다. 머리 없이 앉아 있는 형상으로 묘사된 부처의 내부, 베이지색 갈비뼈, 짙은 갈색 위장, 꼬불꼬불한 내장이 반투명한 우레탄 법의를 통해 빛난다. 깨달은 스승이 마치 하나의 ‘인간-기계’처럼 보이며, 그 작동 원리가 낱낱이 드러난다. 신체를 바라보는 이 달라진 시선은 스텔락이 자기 팔뚝에 인간의 귀를 이식한 것과 같은 연극성으로 자신을 과시하는 것과 구분되며, 아말리아 울만의 파라픽션적 웹 퍼포먼스 <Excellences & Perfections>(2014)와 같은 관음증에 기대지도 않는다.(울만은 이 작품에서 인스타그램을 통해 일련의 미용 수술 과정을 연출했다.) 대신 그는 기존의 형태에 미세한 조정을 가하고, 이미 명백했던 것을 강화하는 작은 개입을 수행한다. 그 결과, 작품들은 특정한 공학적 이상을 구현한 것이라기보다 공학 그 자체를 향한 인류의 막연한 갈망에 대한 환유적 재현으로 읽힌다.

보존이라는 개념은 오래전부터 마이클 주의 작업과 병행하는 모티프로 자리해왔다. 끊임없는 개량과 최적화의 추동에 맞서는, 현상 유지의 옹호가 아니라, 지속가능성과 생존과 저항으로서의 보존이다. 초기 작품 <Yellow, Yellower, Yellowest>(1991)는 작가의 소변 샘플을 실험용 비커에 담아 보존하는, 반쯤 농담 같은 작업이었다. 반면 최근 작업 <Noospheres: Organic Growth: Crystal Reef (OG:CR)>(2021)는 한층 진지한 접근을 취한다. 이 프로젝트에서 마이클 주와 협력자들은 다시금 보철적 형태를 활용하여 멸종 위기의 산호초를 보호·증강했다. 소유자의 암호화폐 지갑 메타데이터에 따라 NFT 씨앗이 변형되게 만들고, 온라인에서 결정체를 성장시켜 3D 프린팅 결과물을 산호초에 부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를 통해 과학자들이 어류 개체군이 서로 다른 산호 형태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연구할 수 있다. 이 작품은 2024년 PST 아트 기간 중 로스앤젤레스 해머 미술관에 전시되었는데, 천장에 매달린 레진 조각과 영상으로 구성된 극적인 설치였다. 영상에는 빠져들 듯한 수중 영상과 OG:CR 프로젝트 커뮤니티의 활발한 디스코드 화면 녹화본이 뒤섞여 있었다. 작가가 “무한히 분산된 예술 작품”이라 부르는, 이미지와 알고리즘과 네트워크화된 공동체로 이루어진 작업 세계의 단편을 엿보게 하는 전시였다. 작품 제목에 등장하는 ‘누스피어’는 러시아 지구화학자 블라디미르 베르나츠키와 프랑스 예수회 사제 피에르 테야르 드 샤르댕에게서 비롯된 철학적 개념에 대한 유쾌한 오마주다. 이들은 인간의 의식이 진화적 발전의 정점을 이룬다고 주장했다. 어떤 의미에서 마이클 주가 고대 유기체의 유해로 만드는 조각들도 그러한 정점의 한 형태다. 지난 18년간 그는 모로코에서 특정한 GPS 좌표를 찾아 대형 석판을 수집해왔다. 석판에는 4억 년 된 해양 무척추동물인 바다나리(크리노이드)의 화석이 담겨 있는데, 불가사리, 갯고사리, 성게와 같은 계통에 속하는 종이다. 이 표본들은, 마이클 주가 내게 말한 바에 따르면, “퇴적과 균열과 지질학적 시간의 압축된 기록을 품고 있다.” 화석으로 빚은 그의 조각들은 영원한 역설 속에 멈춰 있는 듯하다. 사멸하되 생태적·예술적 수단으로 영속하게 된 존재들이, 우리의 필멸을, 그리고 우리가 이 땅에 남길지도 모를 흔적을 상기한다.

“저는 과거와 현재의 풍경과 삶의 관계에 대해, 이 행성의 지층 위에 우리가 남긴 흔적이 지닌 두께와 밀도와 성격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61회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 ≪In Minor Keys≫에 출품할 작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마이클 주가 내게 한 말이다. 이 전시는 고(故) 코요 쿠오가 기획했다. 기술이 변모함에 따라 마이클 주는 인간의 행동과 관습의 변화를 계속해서 기록하고 질문한다. 때로 자명하게 여겨지는 진실에 적극적으로 도전하기도 하는데, 초기 퍼포먼스 <Circannual Rhythm (pibloktok)>(2003–2005)이 그러한 경우다. 당시 그는 트랜스알래스카 파이프라인을 따라 400마일을 걸어갔는데, 원유의 흐름 방향과 반대로 이동했다. 이 제스처는 산업적 현상 유지에 대한 거부를 암시한다. 자원은 끝없이 뽑아 쓸 수 있고, 미래를 향해 직선으로 내달리면 된다는 전제 말이다. 마이클 주는 베니스 비엔날레에 돌아오기 한참 전부터, 이미 쿠오의 부름, “더 느린 기어로 전환하고 마이너 키의 주파수에 귀를 기울이라”는 부름에 응답한 듯하다. 스피드 트라이얼, 모래 위를 짧고 곧게 내달리는 질주, 탈진이나 파국으로 끝나는 아드레날린의 폭발을 꿈꾸는 대신, 느리고 꾸준한 걸음을 꿈꾸는 것이다. 목적지는 알 수 없는, 인내의 여정을.


제니 우는 뉴욕을 기반해 활동하는 아트 칼럼니스트이다.

Credit

  • 글/ 제니 우(Jenny Wu)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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