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교토에서 히비키와 함께한 4박 5일의 여정

야마자키 양조장부터, 일본 전통 다도와 향도, 명상 체험까지. 히비키로부터 시작된 여행의 끝에서 비로소 알게 된 일본 위스키의 맛과 멋.

프로필 by 고영진 2026.05.19

시작은 향도 체험이었다. 영어로는 Incense Ceremony. 고도(こうどう)라고도 부른다. 따뜻하게 덥힌 향목의 향을 음미하는 이 의식은, 여느 일본 전통문화가 그렇듯 수백 년에 걸쳐 전승되어온 예술이다. 체험을 인도한 장인 역시 향도에 대한 가르침은 물론 각종 도구를 올려두는 종이부터 작은 향목 조각까지 자신의 할머니로부터 받았다고 했다. 이 의식에서 향은 맡는 것보다 듣는 것에 가깝다. 눈을 감고 온도와 여운을 가만히 느껴야 한다. 침향, 백단, 라코쿠. 엄지손톱만 한 크기에 8만엔(약 76만원)을 웃돈다는 귀한 향목 세 가지를 코로 한 번, 귀로 한 번 음미했다. 백단에서는 히비키를 숙성하는 미즈나라 캐스크에서 날 법한 은은한 나무 향이 났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기모노를 필두로 교토의 염직 문화와 공예, 현대미술을 함께 보여주는 아카이브 공간 ‘치소 갤러리’다. 히비키의 글로벌 브랜드 앰배서더 안나 사와이가 최근 캠페인에서 착용한 기모노를 제작한 곳이다. 치소 갤러리는 히비키가 자연의 산물이라는 점에 착안해 방대한 기모노 아카이브 중 꽃과 식물이 만개한 피스를 협업 대상으로 골랐다. 18세기 에도 시대 중반 무렵의 기모노는 디자인 기획부터 염색, 제작까지 꼬박 1년이 걸려 현대 장인들의 시각에서 재해석됐다.


다실 안에서 향도를 진행하는 모습.

다실 안에서 향도를 진행하는 모습.

히비키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볼 수 있는 야마자키 증류소에 간 건 교토에 도착한 지 3일째가 되어서였다. 1924년 본격적으로 운영이 시작된 이곳은 오사카와 교토 사이쯤 되는 곳에 위치해 있다.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가쓰라, 우지, 기즈, 세 개의 강이 만나 요도강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물은 위스키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일본 다도의 대가 센노 리큐도 이곳에서 차를 내리기 위한 물을 길었다고 전해질 만큼 수질이 좋다. 습도가 높아 나무 통에서 위스키를 숙성시키기에게도 알맞다. 이곳에서 곡물의 당을 추출하고, 효모를 넣어 발효시키고, 증류한 뒤 캐스크에서 숙성하기까지의 과정을 오감으로 경험했다. 위스키 숙성고는 와인 저장고처럼 일정 온도를 유지하지 않고,계절에 따른 기온과 습도의 변화를 고스란히 흡수하며 자연 환기까지 숙성 과정의 일부로 여긴다. 2~3년 된 캐스크부터 50년을 훌쩍 넘긴 캐스크까지 빼곡히 늘어선 숙성고는 무척 서늘했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던 바깥의 영향을 그대로 받은 탓이다. 푹푹 찌는 일본의 여름을 생각하니 아찔하다. 캐스크 안에서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맛이 완성되기까지는 한 인간의 생애에 맞먹는 시간이 흐른다. 야마자키, 하쿠슈, 치타 증류소에서 생산한 원주를 조합해 만드는 히비키는 이렇게 완성된 원액에서 정교한 블렌딩 과정까지 거쳐야 한다. 인간의 감각과 자연이 함께 만든 결과물인 셈이다. 물, 나무, 기온, 습도, 풍량 같은 자연 요소와 장인정신에 의지해 유일무이한 피스를 만드는 것. 앞서 경험한 향도와 치소 갤러리의 기모노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방식이다.

치소 갤러리가 히비키와의 협업을 기념해 제작한 기모노.

치소 갤러리가 히비키와의 협업을 기념해 제작한 기모노.

와시 장인 에리코 호리키의 스튜디오에서 만든 종이.

와시 장인 에리코 호리키의 스튜디오에서 만든 종이.


히비키는 장인의 예술과 맥을 함께하고 있다. 히비키가 조화와 균형의 산물이라는 말은 비단 제조 방식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수년간 산토리 위스키의 라벨 작업을 치소 갤러리가 히비키와의 협업을 기념해 제작한 기모노. 함께 하고 있는 일본 전통 종이 ‘와시’를 만드는 장인 에리코 호리키를 만났을 때 느낀 것이다. 산토리 40주년 기념 라벨 작업을 계기로 히비키와 인연을 맺은 호리키는 전체의 70%만 계획하고 나머지는 자연의 요소에 맡기는 식으로 작업한다. 그래서 호리키의 작업 현장은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춥다. 땀을 뻘뻘 흘리거나 손이 부르트거나.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한 극한의 환경에서 노하우를 터득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은 히비키와도 닮아 있다.


차선으로 말차를 고르게 풀어내는 과정.

차선으로 말차를 고르게 풀어내는 과정.

향으로 시작한 일정은 차와 명상으로 마무리됐다. 모든 여행의 마지막이 그러하듯, 집으로 돌아가는 날은 해가 떴다. 내내 쏟아진 봄비로 풀냄새가 짙어진 어느 신사에서 방금 개어낸 말차를 마시며 교토에서 만난 사람들을 떠올렸다. 향과 차를 사람 대하듯 정성스레 대한 장인들, 손으로 터득한 것만을 믿는 와시 장인 에리코 호리키, 치소 갤러리의 최고 브랜드 책임자 다이스케 시바, 야마자키 증류소에 만난 직원들까지도. 이들이 들려준 이야기는 히비키를 일본 예술의 한 갈래로서 조명하도록 만들었다. 나에게 히비키는 보틀 디자인, 맛, 향, 색보다도 이들이 남긴 인상으로 기억될 것 같다. 산토리 스피리츠의 치프 블렌더 후쿠요 신지는 어느 인터뷰에서 내밀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때 값비싼 위스키를 천천히 마신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TV도, 스마트폰도, 대화도 없이 위스키에만 집중하면서 말이다. 올여름에는 책을 읽고 전시를 보듯 위스키를 마셔볼 생각이다. 교토에서 돌아오는 길에 구입한 ‘히비키 재패니즈 하모니’라면 어떤 방식으로든 만족스러운 맛을 낼 수 있을 것이다.

Credit

  • 에디터/ 고영진
  • 사진/ 산토리 스피리츠
  • 디자인/ 이진미

MOST LIKE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