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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o the Blue

지난 7월 15일 밤, 툴루즈의 어둠이 내린 운하 위로 불빛을 밝힌 목선들이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이미 한 해를 이끌어온 에르메스의 주제가 물 위에서 그 절정을 맞는 밤이었다.

프로필 by 황인애 2026.08.23

INTO THE BLUE


지난 7월 15일 밤, 툴루즈의 어둠이 내린 운하 위로 불빛을 밝힌 목선들이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이미 한 해를 이끌어온 에르메스의 주제가 물 위에서 그 절정을 맞는 밤이었다.


에르메스는 2026년 한 해를 한 문장 아래 두었다. ‘Venture Beyond’, 프랑스어 원제는 ‘L’appel du large’. 항구를 벗어나야 비로소 열리는 바다의 부름을 뜻하며 한국에서는 ‘미지의 세계로’라 옮겼다. 이 한 문장을 기념하려 에르메스는 툴루즈에 사람들을 불러 모아 가론 극장을 통째로 빌려 무용 공연을 올렸고, 밤이 깊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미디 운하 위에 전통 목선을 띄워 선상 만찬을 열었다. 파두 가수와 재즈 밴드가 물 위에서 노래했다. 도저히 패션 하우스의 행사와는 연결되지 않는, 이 문화로 넘쳐흐르는 밤이 열리는 이유를 알려면 1987년으로 가야 한다. 1987년, 창립 150주년을 맞은 에르메스는 파리 퐁네프 다리 위로 불꽃을 쏘아 올렸다. 그리고 이 불꽃놀이를 그 해 창작의 주제로 삼았다. 같은 이름의 실크 스카프 ‘까레’가 나왔고 여러 창작물이 이 하나의 주제 아래 묶였다. 한 번의 기념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이 시도가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이듬해부터 에르메스는 매년 하나의 주제를 정해 그 아래 모든 창작물을 풀어냈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연간 테마’다. 올해 에르메스가 내놓는 이미지마다 해마와 물과 수평선이 등장하는 것도 여기서 비롯된다.

‘Venture Beyond’. 이 문장은 툴루즈의 밤을 훨씬 앞질러 이미 곳곳에 번져 있었다. 2026년이 열리자마자, 1월 2일 에르메스 공식 웹사이트는 일러스트레이터 린다 메라드가 펜과 먹으로 완성한 12개의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모습을 바꿨다.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뒤집히고 현실과 상상이 뒤섞이는 기묘한 항해의 풍경이었다. 3월 20일부터 22일까지 그랑 팔레에서 열린 ‘소 에르메스(Saut Herm`es)’ 역시 이 테마 아래 펼쳐졌다. 그리고 그 해의 주제를 몸으로 겪게 하는 자리가 7월의 여름 행사다. 행사는 가론 극장에서 시작됐다. 오렐리앙 보리가 연출하고 샹탈라 시발링가파가 공연한 <aSH>는 무용수가 재 위에서 움직이는 작품으로, 창조와 파괴가 끝없이 순환하는 감각을 눈앞의 물성으로 만들어냈다. 밤이 깊자 자리는 미디 운하의 라 플랑크 수문으로 옮겨갔다. 세트(S`ete) 지역의 전통 나무배 바르크 세투아즈가 옥시타니 조정 연맹의 노를 저어 어둠 속을 나아갔고 그 위에서 선상 만찬이 펼쳐졌다. 요리는 오브락 고원의 하늘과 땅 사이에서 프랑스 미식의 규범을 새로 쓴 미셸 브라스, 그리고 자연에 뿌리를 둔 미식을 추구하는 툴루즈의 미슐랭 스타 셰프 실뱅 조프르가 맡았다. 선상에서 뒤마는 이렇게 말했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만지고, 맛보십시오.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면서도 우리를 부르는 그 광대함에 마음을 여십시오. 이것이 1837년 이래 에르메스가 지켜온 미지를 향한 부름입니다.” 파두 가수 카르미뉴와 재즈 밴드 더 재즈 비크레이버스의 연주가 뒤를 이으며 하룻밤이 그 자체로 지평선 너머를 향한 항해가 되었다.

패션은 어쩌면 가장 빠르게 시간을 타는 예술이다. 그러나 에르메스가 매년 하나의 문장을 세우고 그 아래 가죽과 실크, 무용과 운하까지 불러 모으는 방식은 한 시즌의 이미지를 만드는 일과는 조금 다르다. 하나의 관념을 물성과 움직임, 공간과 경험으로 거듭 번역하며 한 해의 시간을 축적하는 일에 가깝다. 그렇게 해마다 반복된 작업이 30여 년의 시간을 지나 쌓이는 동안, 에르메스가 만들어온 것은 유행의 목록이라기보다 하나의 세계에 가까워졌다. 어쩌면 그들이 매년 새로운 테마를 이야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새로움을 좇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래 남을 것을 계속해서 새롭게 말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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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사진/ © Hermès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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