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2026 FW 트렌드" 스타일링이 패션의 가장 개인적 창작이 된 순간!

이번 시즌, 패션계 질문이 ‘무엇을 입을까’에서 ‘어떻게 입을까’로 옮겨갔다.

프로필 by 윤혜연 2026.10.08

LAYER UP, STAND OUT


이번 시즌, 패션계의 질문이 ‘무엇을 입을까’에서 ‘어떻게 입을까’로 옮겨갔다. 스타일링이 패션의 가장 개인적인 창작이 된 순간.


레드 머플러를 휘날리며 한 모델이 런웨이를 걷고 사라진다. 잠시 후 다시 나타난다. 이번에는 재킷이 없다. 또 다시 등장했을 때는 처음 봤던 드레스의 실루엣마저 달라져 있다. 프라다의 2026 F/W 쇼에서는 모델 15명이 옷을 입고, 벗고, 다시 겹쳐 입으며 총 60개 룩을 선보였다. 새로운 옷을 계속 보여주는 대신 같은 옷을 다르게 조합하고 해체하며 쇼를 완성한 것이다. 프라다가 이번 컬렉션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은 바로 레이어링이었다. 컬렉션 노트에는 이를 “하루 동안 옷을 통해 변화하는 과정(the process of layering, of transforming through the day, through your clothes)”으로 설명했다. 하나의 룩 안에서 ‘무수한 가능성’을 발견하겠다는 의미다. 테일러링과 스포츠웨어, 자수 새틴 드레스처럼 서로 다른 장르가 위계 없이 섞였다. 옷을 입는다는 아주 일상적 행위가 런웨이의 언어가 된 순간이다. 라프 시몬스가 이번 컬렉션을 설명하며 던진 질문 역시 단순하다. “무엇과 무엇을 함께 입을 것인가. 또 다른 방식으로 입을 수 있는가.”

왜 지금일까. 작금의 소비 환경에서도 그 배경을 짐작할 단서가 보인다. 비즈니스 오브 패션(Business of Fashion, BoF)과 맥킨지(McKinsey)가 공동 발행한 보고서 ‘The State of Fashion 2026’에 따르면, 패션 업계가 낮은 성장세와 높아진 비용에 직면한 가운데 소비자 역시 가치에 민감해지고 있다고. 조사에서는 70%가 패션 지출을 줄일 계획이라고 답했고 80%는 세일을 기다리거나 다른 판매처의 가격을 비교하는 등 가치 추구 행동을 한다고 했다. 물론 소비자가 패션에서 완전히 멀어지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무엇에 지갑을 열 것인지 까다롭게 고르는 쪽에 가깝다는 의미다. 보고서 역시 소비자가 패션에서 웰빙 등 다른 영역으로 지출을 옮기는 동시에 패션에서는 품질과 창의성, 개성을 따져 특별한 제품에 지출하는 양상이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Prada

Prada

여기에 AI라는 새로운 변수도 등장했다. 알고리즘이 취향을 분석하고, 무엇을 살지 추천하고, 이제는 무엇을 입을지까지 제안하는 시대다. 앞서 언급한 보고서는 생성형 AI를 검색에 활용한 미국 소비자 53%가 쇼핑에도 AI를 사용한다고 했다. 다만 이와 동시에 브랜드들은 소비자와 인간적으로 연결됨과 동시에 스토리텔링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술 연구에서도 비슷한 주장이 잇따른다. 2025년에 발표된 논문 <소비자 시장 지향성이 패션 분야의 알고리즘 수용과 회피에 미치는 영향(How consumer market orientations shape algorithmic appreciation and avoidance in fashion)>에 따르면, 패션 소비자는 SNS 알고리즘 추천을 무조건 따르기보다 이를 자신의 정체성과 지위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활용하거나 때로는 의도적으로 거리를 둔다. 또 올해 국제 소매・유통 관리 학술지(International Journal of Retail & Distribution Management)가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AI와 인간이 생산한 정보에 대한 소비자 평가를 비교했을 때 특히 창의성이 중요한 패션 정보에서는 인간이 만든 콘텐츠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두드러졌다. 알고리즘이 취향을 읽고 조합을 제안하는 시대일수록 오히려 ‘나는 이것을 어떻게 다르게 해석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중요해진다. 개성의 경쟁이 제품에서 스타일링으로 옮겨가는 셈이다.

결국 이번 시즌의 레이어링 트렌드를 ‘절약’만을 위해서라고 결론짓기는 어렵다. 오히려 정반대에 가깝다. 덜 사기 위해 옷을 겹쳐 입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조합으로 옷을 입는 즐거움을 확장하는 것. 프라다가 말하는 레이어링 역시 실용적인 착장법에 그치지 않는다. 변화하는 옷을 통해 한 사람 안에 존재하는 여러 면을 드러내고, 서로 다른 의복을 위계 없이 섞으며 새로운 가능성을 만든다. 프라다는 이를 자기 결정과 주체성의 표현으로 설명한다. 결국 레이어링은 옷을 많이 입는 방법이 아니라, 옷을 통해 나를 구성하는 방법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입을 것인가. 답은 무작정 여러 겹을 더하는 데 있지 않다. 서로 다른 아이템을 어떻게 연결하고 충돌시키느냐에 있다. 레이어링은 한 벌의 룩 안에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그 조합에 따라 전혀 다른 실루엣과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장치니까. 셔츠는 셔츠로 끝나지 않는다. 보테가 베네타처럼 니트 아래로 넣어 칼라와 소매를 드러내거나, 셀린처럼 재킷 아래에 또 다른 레이어를 더해 실루엣에 변화를 줄 수 있다. 디젤은 서로 다른 길이와 소재의 아이템을 겹쳐 하나의 룩 안에 여러 레이어를 만들었고, 마르니는 레더와 테크니컬 소재에 오간자와 새틴을 충돌시켜 상반된 질감을 한데 묶었다. 시어한 소재를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미우미우는 투명한 소재 아래의 아이템을 적극적으로 드러냈고, 돌체앤가바나는 레이스와 시어 소재를 겹쳐 무엇을 보여주고 감출지까지 스타일링의 일부로 만들었다.

중요한 것은 ‘몇 겹을 입느냐’가 아니다. 무엇과 무엇을 만나게 하느냐다. 같은 옷이라도 누구와 짝을 이루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갖게 된다. 스타일링이 흥미로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새로운 아이템을 발견하는 일보다 익숙한 아이템 사이에서 예상치 못한 모습을 창조하는 일. 정해진 트렌드를 따라가는 대신 같은 옷으로 서로 다른 답을 만들어내는 것. AI가 수많은 선택지와 조합을 제시하는 시대일수록 패션의 재미는 정답을 찾는 데 있지 않다.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조합을 먼저 발견하는 것. 익숙한 옷에도 자신만의 답을 부여하는 것. 결국 동시대에 있어 스타일링의 힘은 옷을 새롭게 만드는 데 있지 않고, 이미 존재하는 것들 사이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이끌어내는 데 있다. ‘옷을 입는다’는 오래된 행위가 다시금 가장 창의적인 일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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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사진/ Launchmetrics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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