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X'로 다시 달궈진 K-메디컬
천재 의사와 사이다는 잇고, 서사와 '주어'는 비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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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금토드라마 <닥터X : 하얀 마피아의 시대> 스틸
SBS 금토드라마 <닥터X : 하얀 마피아의 시대>의 기세가 매섭다. 방송 2주 차에 전국 시청률 18.5%(닐슨코리아 기준)까지 치솟았다. 김지원의 <눈물의 여왕> 이후 2년 만의 복귀작이자 10년간 7개 시즌을 이어간 일본 메가 히트작의 리메이크라는 점을 감안해도 이례적인 화력이다. SBS로서는 <낭만닥터 김사부3> 이후 약 3년 만에 꺼낸 의학 드라마이고, <모범택시>와 <열혈사제>로 다져온 'SBS 사이다 유니버스'가 병원으로 무대를 넓힌 첫 시도이기도 하다. 전공의 파업 사태라는 현실의 파고 앞에서 잠시 멈춰 섰던 K-메디컬은 <중증외상센터>가 먼저 열어젖힌 문을 지나 이 자리까지 왔다. 그렇다면 <닥터X>는 그 공식을 어떻게 비틀었을까.
"하지 않습니다"가 울린 카타르시스
SBS 금토드라마 <닥터X : 하얀 마피아의 시대> 스틸
SBS 금토드라마 <닥터X : 하얀 마피아의 시대> 스틸
주인공 계수정(김지원)은 병원 조직의 일원이 아니다. 의사용역소개소 소속의 파견 외과의로, 의료 파업으로 공백이 생긴 구서대학교병원에 투입되자마자 병원장의 무리한 수술 강행에 제동을 건다. 그의 근무 수칙은 간결하다. 회진, 회식, 교수 논문 대필, 원치 않는 야근처럼 의사 면허와 무관한 일은 모조리 "하지 않습니다". 오후 6시면 가방을 챙겨 퇴근하는 이 의사는 대신 수술대 위에서 "실패도 하지 않습니다"라는 선언을 결과로 증명한다. 위계에 순응하는 대신 실력으로 부조리에 맞서는 이 태도가 시청자의 가슴을 파고든 데는 이유가 있다. 일본 원작 위에 수술실 CCTV 법제화, 의대 증원 반대 파업 같은 최근 의료계 이슈를 덧입힌 현지화가 주효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의료 파업 이후 쌓인 답답함을 계수정의 목소리가 시원하게 긁어준다는 평가도 있다. '하얀 마피아의 시대'라는 부제와 '메디컬 누아르'라는 장르 표방은 그 현실의 피로감을 정면에 세우겠다는 선택이다.
<중증외상센터>의 직진, <닥터X>의 선 긋기
넷플릭스 시리즈 <중증외상센터> 스틸
넷플릭스 시리즈 <중증외상센터> 스틸
이 통쾌함의 문법은 지난해 1월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중증외상센터>에서 먼저 검증됐다. 전장의 경험을 안고 돌아온 천재 외과의 백강혁(주지훈)은 병원의 정치와 적자 논리를 정면으로 돌파하며 히어로 활극의 쾌감을 안겼다. 메디컬 장르가 가라앉아 있던 시기에 시청자의 답답함을 가장 먼저 풀어준 이 작품은 올 10월 시즌2와 시즌3 동시 촬영에 들어간다. 천재 곁에 선 새내기 의사라는 뼈대도 닮았다. 백강혁 곁에 양재원(추영우)이 있었다면, 계수정 곁에는 감시하라는 지시를 받고도 오히려 그를 챙기게 되는 외과 인턴 박태경(김우석)이 있다.
SBS 금토드라마 <닥터X : 하얀 마피아의 시대> 스틸
물론 같은 사이다라도 향하는 곳은 다르다. 백강혁이 조직 안에서 사람을 모아 외상센터라는 시스템을 세우는 '건설의 서사'라면, 계수정은 조직 밖의 이방인으로 남아 "하지 않습니다"로 선을 긋는 '거절의 서사'다. 백강혁의 곁을 단단한 팀이 지킨다면 계수정에게는 '고독한 늑대'라는 수식이 따라붙는다. 전자가 활극의 속도감으로 시스템을 돌파했다면, 후자는 누아르의 긴장감으로 병원 권력의 어둠을 응시한다.
인정받는 의사→인정이 필요 없는 의사…바뀐 사이다의 '주어'
SBS 금토드라마 <닥터X : 하얀 마피아의 시대> 스틸
가장 큰 변주는 주인공이다. 의료계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서 천재 의사의 자리는 대체로 남성의 몫이었다. 여성 의사가 비중 있게 등장한 작품들도 서사의 상당 부분을 능력을 '인정받기 위한' 분투에 할애했다. 반면 계수정은 이미 독보적인 실력자로 등장해 타인의 평가나 조직의 인정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 그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외과의들 앞에서도 실력 하나로 제 갈 길을 간다. 사이다의 계보에 여성 의사가 합류한 것이 아니라, 사이다를 뿜어내는 '주어' 자체가 바뀐 셈이다.
스릴러와 공감, 그리고 누아르로 뻗은 외연
디즈니+ 시리즈 <하이퍼 나이프> 스틸
tvN 토일드라마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 스틸
사이다만이 K-메디컬의 길은 아니었다. 지난해 장르는 두 갈래로 더 뻗어 나갔다. 하나는 디즈니+ 최초의 오리지널 메디컬 스릴러 <하이퍼 나이프>(2025)다. 17세에 의대에 수석 입학한 천재이자 사이코패스인 정세옥(박은빈)과 그를 나락으로 내몬 스승 최덕희(설경구)의 대립 속에서, 생명을 살리는 메스 뒤에 도사린 잔혹한 본성을 스릴러로 엮어냈다. 다른 하나는 tvN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2025)의 따뜻한 공감이다. 종로 율제병원 산부인과 1년 차 레지던트들(고윤정·신시아·강유석·한예지)의 서툰 성장을 그린 이 작품은 전공의 파업 사태로 약 1년간 편성이 미뤄진 끝에야 안방을 찾았다. 스릴러와 청춘 성장극으로 갈래를 넓힌 K-메디컬 위에, <닥터X>는 누아르라는 또 다른 색을 얹었다.
통쾌함의 끝에서 기다리는 질문
SBS 금토드라마 <닥터X : 하얀 마피아의 시대> 스틸
12부작 가운데 이제 막 4회가 지났다. <닥터X>가 선사한 쾌감은 분명하지만, 통쾌함은 그 자체로 종착지가 되기 어렵다. 관행을 부수는 실력자의 대리만족은 강렬한 만큼, 반복되는 순간 빠르게 휘발되는 장르적 조미료이기도 하다. 현실의 답답함을 긁어주는 판타지가 유효기간을 늘리려면 통쾌함의 외피 아래 웅크린 인물의 내면이 열려야 한다. 스스로를 '고독한 늑대'로 내몬 과거의 상흔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하얀 마피아의 민낯이 노골화될 때, 과연 그는 끝까지 '이방인'으로 남아 승리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거절의 메스'는 그가 겨눈 권력뿐 아니라 그 자신의 상처까지 도려낼 수 있을까. <중증외상센터>의 직진 활극을 비틀어 누아르의 서늘함을 채워 넣은 <닥터X>의 진짜 관전 포인트는 이 질문에 답하는 순간부터 시작될 것이다.
Credit
- 사진 / SBS·넷플릭스·디즈니+·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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