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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조각비엔날레 유람기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디 돌무더기라도 있으면 하나 얹고 싶어졌다.

프로필 by 손안나 2026.10.26

SCENES (2)


카메라를 들고서 세 개의 도시, 세 개의 축제를 떠돌기. 불현듯 포착한 장면이 된 풍경들.


2026 창원조각비엔날레 «공명장» 포스터 위에 앉은 파리.

2026 창원조각비엔날레 «공명장» 포스터 위에 앉은 파리.


한요한 & 박가인의 <창원을 봄>을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

한요한 & 박가인의 <창원을 봄>을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


창원에서 다시 만난 백정기의 <능동적인 조각>. 김성복의 연작 <신화(Myth)>의 오방색 수호상. 마날 알도와얀의 황금 입술 <내 말을 들어줘> 앞에서. 한요한 & 박가인의 <창원을 봄>에서 창원시 재사용 쓰레기 종량제 봉투를 들고 있는 여인상.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디 돌무더기라도 있으면 하나 얹고 싶어졌다.


산에 가본 사람이라면 떠올릴 수 있다. 등산로 어귀 돌무더기 앞에서 괜히 납작한 돌 하나를 주워 얹고, 손을 한번 모으고, 탑이 무너질까 봐 뒷걸음으로 살금살금 물러나던 기억을. 그때 우리는 조각을 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조각’ 이전의 조각을. 아이가 태어나면 대문에 금줄을 묶었고, 빈 항아리는 오종종히 뒷마당에 자리했다. 마을 입구의 장승은 땅에 박혀 있고, 솟대는 하늘을 보고 섰다. 무언가를 깎고 쌓고 비우고 묶는 일은 소원을 빌고, 공동체를 지키고, 집안의 경조사를 알리는 일이었다. 지금 우리가 쓰는 ‘조각’이란 단어는 근대 서구의 ‘sculpture’를 옮기며 자리 잡은 번역어다. 그 전에도 우리는 줄곧 뭔가를 조각해왔는데, 부를 이름만 없었던 거다. 말하자면 “조각은 언제나 삶의 일부였다.”

10월 5일. 간만에 도래한 공휴일이었고 뉴욕 출장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남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2026 창원조각비엔날레가 열리는 곳으로. 취재는 핑계일 뿐 낯선 곳에서 시한부 방랑객이 되고 싶었던 걸까. 대여섯 번째 들르는 뉴욕보다 처음 가보는 창원이 더 궁금한 것도 사실이었다. 경남 사람들은 이 동네를 ‘마창진’이라 부른다. 조선시대 마산포는 창원부에 속한 포구였고,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마산에서 장을 보고 창원 공단으로 출근하고 봄이면 진해로 벚꽃을 보러 다녔다. 2010년 행정 통합은 이미 한 생활권이던 곳에 문패 하나를 새로 단 일에 가까웠다. 그전에 마산은 수출자유구역의 시간을, 진해는 군항과 철도의 시간을, 창원은 기계공업기지와 계획도시의 시간을 지났다. 남들이 몇 세대에 걸쳐 치른 근대화를 이 동네는 한 세기 안에 몰아서 해치웠고, 그 와중에 돌 하나 얹고 손 모으던 느긋함은 가장 먼저 뒷전으로 밀려났을지 모른다. 이런 생각에 빠진 채 나도 근대의 속도로 내려갔다. 이른 아침부터 기차를 탄다고 수선을 떨었는데, 정오를 조금 넘겨 창원중앙역에 내렸다. 어쩔 수 없이 근처 옛날백년짬뽕에서 간짜장부터 비볐다. 그 옛날 브레히트 선생님도 말하지 않았나. 먼저 먹고, 도덕은 그다음이라고. 아일릿 원희의 단골집이라는 소문을 듣고 들어간 곳인데, 그럴 만했다. 양반처럼 배를 두드리며 느긋하게 5분만 걸으면 비엔날레의 중심, 성산아트홀이 나온다. 이 건물의 이력이 계획도시 창원을 똑 닮았다. 1985년 설계 공모, 2000년 4월 개관. 공장과 아파트부터 지은 도시가 15년을 들여 문화회관 하나를 세웠다. 참고로 이 도시가 ‘조각 도시’를 자처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김종영, 문신, 박석원, 김영원이 다 이 동네 출신이다. 창원조각비엔날레도 마산이 키운 조각가 문신을 기리던 국제조각심포지엄에서 출발했다.

이 성산아트홀의 개관과 함께 들인 작품이 백남준의 <창원의 봄>이다. 3층으로 쌓아 올린 비디오 조각으로, 선생은 이 작품에 창원이 문화 중심지로 자라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26년 뒤, 1층 중앙계단에 한요한과 박가인의 <창원을 봄>이 들어섰다. 제목부터 말장난이다. 백남준이 텔레비전과 테크놀로지를 꽃처럼 피워 올린 양지의 봄을 그렸다면, 이쪽은 그 봄의 아래를 들춰본다. 금빛 당초무늬가 빼곡한 붉은 카펫 위로 마네킹과 중고 가전, LED 전광판, 20리터 창원시 종량제 봉투를 든 여인상이 늘어서 있다. 작품 설명을 빌리면 ‘일부러 조악하고 과장된 무도회장’. 실제로 들어서면 1990년대 카바레 개업식에 잘못 초대받은 기분이 든다. 압권은 사운드. 귀에 익은 동방신기 노래가 흘러나오는데 이게 트로트인지 창인지 AI 목소리인지 끝까지 분간이 안 된다. 성공과 소비, 유흥과 환대. 공업도시가 반세기 동안 품어온 욕망의 이미지들이 번쩍이는 조명 아래 요란한 스텝을 밟는다. 나는 이 기기묘묘한 소란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웃으며 입장했다가 어딘가 머쓱해져서 나왔다.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는 «공명장»이다. 공동예술감독 조혜정이 말하는 공명은 다 같이 한 목소리를 내는 합창이 아니라, 각자 제 결을 지닌 채 만나서 상대 때문에 조금씩 달라지는 일이다. 안쪽 전시실도 그랬다. 정다의 <생리적 반응 3: 창원 프로젝트>가 마산과 진해, 창원 세 곳에 센서를 달아 실시간으로 잰 바람을 소리로 바꿔 흘려보낸다. 한 변이 50센티미터인 검은 종이 상자들이 방 안에 층층이 쌓여 있고, 상자 속 컴퓨터 냉각 팬들이 풍향과 풍속 데이터에 맞춰 빨라졌다 느려졌다 하며 웅웅거린다. 사무실 책상 밑에서나 듣던 팬 소리가 여기선 바람 소리 노릇을 한다. 마창진의 바람이 동시에 분다. 로비에는 멕시코 작가 페드로 레이예스의 거대한 공기 주입식 버섯구름 <핵무기 제로 I>이 천장까지 부풀어 있다. 높이 9미터짜리 천 풍선이다. 작가가 국제핵무기폐기운동(ICAN)과 함께 벌여온 ‘아티스츠 어게인스트 더 밤’ 프로젝트의 일부로, 표면에는 핵무기를 없애자는 문구가 여러 나라 말로 적혀 있고 곁에는 ‘지구 종말 시계’가 함께 걸렸다. 금방이라도 풍선처럼 출렁일 것 같은데 꼼짝 않고 버티고 선 모양새가 오히려 서늘하다.

두 번째 공명장은 창원의집과 창원역사민속관. 반듯반듯한 신도시 블록 사이에 기와집 한 채가 시치미를 뚝 떼고 앉아 있다. 약 200년 전 순흥 안씨 집안의 퇴은 안두철이 살던 집이다. 공단과 신도시가 들어서며 이 일대 한옥이 하나둘 헐려 나가자, 시가 이 집을 사들여 고치고 1985년 ‘창원의집’으로 문을 열었다. 마당에는 딩이의 <성수비(星宿碑)>가 비석처럼 길게 누워 있다. 상하이의 추상화가 딩이는 1980년대 말부터 ‘十’ 자 하나를 반복해 그려왔는데, 이번엔 그 십자 무늬를 길이 2.4미터의 화강석 비석에 새겼다. 성수는 ‘하늘의 별자리’라는 뜻. 별자리를 새긴 비석을 세우지 않고 마당에 눕혀 놓으니, 매끈한 표면에 구름과 나뭇가지가 일렁이다가 그걸 들여다보는 내 얼굴이 끼어든다. 한편, 고택 구석구석에선 호랑이인듯 해태인듯 김성복의 연작 <신화>의 작은 수호상들이 울긋불긋 오방색을 두르고 집을 지킨다. 장승이 하던 일을 물려 받은 아이들. 덩치는 작고 표정은 익살맞아서 무섭다기보다 정겹다. 집주인의 호를 딴 누각 퇴은정에는 마날 알도와얀의 <내 말을 들어줘>가 있다. 어른 키만 한 황동 입술 세 개가 누각에 나란히 섰다. 세 개의 입술은 각각 ‘이’, ‘스’, ‘마니’라고 말한다. ‘이스마니’는 아랍어로 ‘내 말을 들어줘’라는 뜻.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오래 다뤄온 작가는 한국의 징에서 형태를 빌려왔고, 공동예술감독 장쥔은 창원 3·15의거와 최근의 미투 운동을 함께 떠올리며 이 작품을 읽어보길 권한다. 말하지 못한 입, 그리고 말하기 시작한 입. 속이 텅 비어 있는 입술을 두드렸더니 우웅 하고 몸 전체에서 우는 소리가 났다.

해가 기울 무렵 마산어시장에 닿았다. 이 시장의 뿌리는 1760년 영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남 여러 고을의 세곡을 모아 배로 한양에 보내던 조창 마산창이 이 포구에 들어섰고, 사람과 물산이 모이는 곳엔 으레 장이 섰다. 1970년 수출자유지역 지정을 거치며 마산은 한때 부산과 견줄 만큼 북적였다. 지금도 새벽마다 경매가 열리고 골목은 호객 소리로 시끌시끌하다. 건어물 가게 사이 ‘충무상사’ 안에 유수진의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가 들어섰다. 창원에 사는 외국인 주민의 국적별 비율대로 통조림 약 1천 개를 쌓아 섬을 만들었는데, 관객이 통조림을 가져가고 또 채워 넣으면서 섬 모양이 수시로 바뀐다. 어쩌면 돌탑 같다. 남의 돌 위에 내 돌을 얹으면 탑 모양이 달라지듯. 고개를 돌리니 시장 전체가 조각 공방이다. 스티로폼 상자를 탑처럼 쌓는 손, 그물코를 묶는 손, 칼 한 자루로 생선을 단숨에 손질하는 손, 장사가 끝나면 좌판을 비우는 손.

마지막으로 김수자의 신작이 있다는 진해역에 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아침엔 기차를 타고 내려왔는데 하루를 끝낸 곳은 기차가 서지 않는 역이다. 일제는 1910년대 진해를 해군 기지로 쓰려고 도시를 방사형으로 설계했고, 1926년 11월 진해선이 개통하며 이 역이 문을 열었다. 군수 물자와 사람이 오가던 역은 2005년 국가등록문화유산이 됐고, 승객이 줄어 2015년 여객 영업을 멈췄다. 역 플랫폼에 김수자의 <연역적 오브제-더 그리드>가 놓였다. 어른 키를 훌쩍 넘는 벽돌 덩어리 여섯 개가 철길을 따라 띄엄띄엄 서 있다. 회색 벽돌을 차곡차곡 쌓았는데 그 배열이 날실과 씨실이 엇갈리는 직조의 원리를 따른다. 천을 묶어 보따리를 만들던 작가가 이번엔 벽돌로 옷감을 짠 셈이다. 벽돌 사이를 걷다 서다 하다 보면 어느새 한 걸음이 벽돌의 격자와 착착 맞아떨어진다. 작은 역사 안에는 심문섭의 <반추>가 있다. 나전칠기로 이름난 통영 출신의 원로 조각가가 고향의 공예를 끌어왔다. 높이 2미터가 넘는, 나무를 길게 깎아 만든 선체 위로 자개장 한 짝이 돛 대신 솟아 있다. 조개껍데기에 수백 번의 옻칠을 덧칠하듯 1백 년 동안 이 역에서 떠나고 돌아오던 사람들의 삶도 겹겹이리라.

산업도시의 뒤죽박죽 노래, 고택 누각의 황동 울림, 어시장의 깡통 섬, 철길 옆 벽돌 사이의 발소리. 마창진이 그렇듯 하나로 뭉개지지 않고 각자 제 소리로 공명한다. 돌아가는 길, 어디 돌무더기라도 있으면 나도 하나 얹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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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사진/ 정진우
  • 디자인/ 한상영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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