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키리는 왜 키스를 소재로 작품을 만들었을까?
바자전에서 최초 공개하는 니키 리의 영상 작업, 비하인드 들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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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바자전 «IN-BETWEEN»에서 한껏 예술을 향유했다면, 이제 작가의 세계를 더 깊이 들여다볼 차례. 니키 리, 크리스틴 선 킴, 엠마누엘 한. 경계 너머를 감각해온 세 창작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바자전: IN-BETWEEN» 전시 전경. 니키 리의 16채널 영상 작품 <Scenes>가 상영되고 있다.
니키 리 Nikki S. Lee
하퍼스 바자 <Scenes>는 당신이 미국에서 한국으로 거주지를 옮기고 처음 작업한 영상이고, 한 번도 대중에 공개된 적 없습니다. 이 작품을 바자전에 꺼내기로 결심한 이유가 있나요?
니키 리 말 그대로 미공개작인 만큼 전시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항상 바라왔어요. 하지만 공간도 차지하고, 모니터도 16개나 필요한 만큼 여건이 충족되기 어려웠죠. 마침 바자전을 제안받고, 미술관 크기라면 이 작품을 전시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만약 패션 사진이나 상업 사진을 선보이는 전시였다면 참여하지 않았을 거예요. 바자전은 예술에 진지하게 접근한다고 느꼈고, 지난 2년간 그래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결정할 수 있었어요.
하퍼스 바자 바자전을 준비하면서 <Scenes>를 처음 접했던 날을 기억합니다. 큐레이터의 조그만 노트북 화면이었는데도 숨죽이면서 봤고 이내 슬퍼졌어요. 처음엔 이 감정의 근원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러다가 문득 깨닫게 되었죠. 아, 덧없음이구나.
니키 리 그렇게 느꼈다면 다행입니다. 제 친구는 그 작품을 보고 제 앞에서 울더라고요. 맞아요. 삶은 맹목적이기 때문에 덧없죠. 그래서 슬프고요. 저는 이 작업을 통해 사람들에게 ‘감정’을 전달하고 싶었어요. 우주의 혼돈과 질서, 존재의 연약함과 삶의 유한성, 소멸과 창조, 그리고 모든 슬픔까지. 태어나서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우리를 따라다니는 허무함과 쓸쓸함 그리고 덧없음의 감정이 한꺼번에 몰아치는 지점을 만드는 것. 그게 목표라면 목표였죠.
하퍼스 바자 왜 하필 키스였나요?
니키 리 키스라는 3분의 과정에도 맹목성이 드러나죠. 삶에 시작이 있고 끝이 있듯이 키스에도 시작이 있고 끝이 있으니까요. 절정을 지나 서서히 소멸해가는 과정이죠. 우리는 결국 소멸하기 때문에 맹목적으로 살고, 거기에 동반되는 어쩔 수 없는 쓸쓸함과 허무함이 존재해요. 어찌 보면 예술은 그렇게 ‘사라져가는 걸 창조하면서 사라져가는’ 행위인지도 모르겠어요.
하퍼스 바자 이 작품의 프로토타입을 2019년 VSF LA에서 선보인 적 있다고 알고 있어요.
니키 리 그때는 흰 벽에 프로젝터를 쏘아서 한 화면을 실험 삼아 보여준 거라, 전시로 보지 않아요. 이 작업은 16개의 영상이 한꺼번에 보여져야 해요. 그래야 말이 되죠.
하퍼스 바자 당시엔 이 작품을 <Parts> 연작과 함께 선보였어요. <Parts>는 당신이 연인으로 추정되는 남자들과 친밀함을 나누는 사진에서 상대방의 이미지만 과감하게 잘라낸 사진 연작입니다. 그래서 저도 처음엔 <Scenes>가 <Parts>의 연장선이라고 오해했어요. 어쩌면 사람들은 이 작품을 <Projects> <Parts> <Layers> 같은 정체성에 관한 당신의 사진 작업과 연결지어 생각할지도 모르겠어요.
니키 리 <Scenes>는 그 전의 사진 연작들과 완전히 동떨어진 작품이에요. 이건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에요. 작업 프로세스도 다르죠. 사진 작업을 할 땐 일단 개념을 아주 견고하게 쌓아 올리는 과정이 필요했어요. 그 시대의 철학 사조 같은 레퍼런스를 적극적으로 가져왔죠. <Scenes>는 지금까지의 모든 작업 중에서 저의 연약한 면을 가장 드러내는 작업인 것 같아요. 동시에 아티스트로서 저의 본질에 가장 접근하는 작업이고요. 그래서 참 무서웠어요. 저도 이런 식의 접근은 처음이었으니까요. 머리를 쓰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죠.

Nikki S.Lee, <Scenes2_Bed>, 2013, Single Channel Video.
하퍼스 바자 당신의 마지막 사진 연작 <Layers> 와 <Scenes> 사이에는 10년이라는 공백이 있어요.
니키 리 <Layers>는 미국에서 막 결혼을 하고 마지막으로 했던 작업이에요. 그 뒤로 한국으로 이사했고, 본격적으로 결혼생활을 시작하면서 공백기가 생겼죠. 원래 <Layers>가 끝나고 한동안 아무것도 안 할 작정이었어요. 사진으로 할 건 다 했다고, 사진으로 무얼 한들 <Parts>나 <Layers>를 뛰어넘을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죠. 완전히 소진된 기분. 매너리즘도 있었고요. 사실 그때 멈춘다는 게 멍청한 짓일 수도 있어요. 제 커리어에서 가장 화려한 시기였으니까요. 미술계는 ‘거기’까지 올라가기가 힘들지, 일단 ‘거기’에 안착하면 그다음부턴 계속 무언가를 해나갈 수 있는 구조이기도 하고요.
하퍼스 바자 저도 당신의 커리어에서 그 점이 가장 신기했어요. 솔직히 말하면, 저는 미술이 영화나 음악 등 대중성을 담보하는 다른 예술 영역보다 명성이 오래 지속되는 업계라고 생각해요.
니키 리 저는 그 궤도에 겨우 진입해 놓고 갑자기 멈춘 거죠. 그런데 커리어를 위한 작업을 하고 싶진 않았어요. 솔직히 말하면, 여기서 내 커리어가 뭉개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아티스트는 그런 게 아니에요. 말하자면, 직업인으로서의 아티스트를 버린 거죠.(웃음) 저는 제가 진정으로 재미있을 때만 작업하고 싶어요. 아까 말했듯 인생은 소멸을 향해 가는 과정인데 그 순간마다 무의미한 것,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살기엔 제 인생이 너무 아까워요. 작업을 하지 않는 순간도 사실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런 시간이 쌓이면 결국 작업으로 나타난다고 믿어요. 작업을 하지 않아도 삶 자체를 아티스트로 산다면 뭐가 문제겠어요? 커리어가 그렇게 중요한가요? 물론 먹고사는 문제도 중요하죠. 하지만 말 그대로 어떻게든 먹고는 살 수 있다면 이 유한한 삶 속에서 제 행복을 찾아야죠. 인생이 좀 힘들어질 순 있겠죠. 하지만 그건 그냥 어쩔 수 없이 내야 하는 세금 같은 거예요.
하퍼스 바자 글쎄요, 많은 아티스트가 먹고사는 문제보다도 인정 욕구가 작업의 원천이자 동력이라고 말해요.
니키 리 전 인정 욕구 없어요. 남들이 저를 어떻게 인정해주는지는 관심 없어요. 저 스스로의 과욕은 있어요. 하고 싶으면 죽어도 해야 한다는, 안 하고 못 배기는 과욕. 이 못된 성격이 저에게 동력이에요.(웃음)
하퍼스 바자 그러면 완전히 소진된 당신에게 어떻게 다시 작업을, 그것도 새로운 매체로의 작업을 하고 싶다는 ‘과욕’이 생긴 건가요?
니키 리 그때가 한창 배우 유태오를 서포트하던 시기인데, 제 것도 하고 싶다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사실 10년의 공백 동안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에요. 결과물로 나타나지 않았을 뿐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시나리오를 엄청 썼죠. 현재는 그 과욕이 회화와 영화로 관심이 옮겨온 상태예요.
하퍼스 바자 16개의 영상에 16명의 익명의 남성이 등장합니다. 누구죠?
니키 리 오디션을 따로 본 건 아니고요. 주변 친구들에게 부탁도 하고, 건너건너 소개받아 구하기도 하고 각양각색이에요. 어느 장소엔 마더 미디어의 김성욱 대표도 등장해요. 마더가 이 작품을 촬영했거든요. 배우를 구할 수 없어서 난항을 겪고 있으니 옆에서 지켜보다가 아내분이 쿨하게 허락해주신 거예요. 작품에 참여하는 것에 의의를 두고요. 출연자들 중에는 2013년에 작업해 놓고 오랫동안 공개를 못해서 연락이 끊긴 분들도 있어요. 이 인터뷰를 보고 꼭 미술관에 찾아오셨으면 좋겠어요.
하퍼스 바자 <Scenes>는 몰입감이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흑백 화면에 무성 영화인데도요. 촬영이 한몫했을 텐데, 특별한 연출 방향이 있었나요?
니키 리 제작 단계부터 아주 큰 화면으로 보는 걸 상상했고, 영상 자체를 최대한 하이 퀄리티로 찍고 싶었어요. 말씀하신 대로 몰입감이 중요했기 때문에 화면이 좋지 않으면 보는 사람도 집중이 어려울 거라 생각했죠. 이를 위해 마더에도 돈 한 푼 받지 않고 물심양면 애써주셨어요. 예술에 대한 존중으로요. 당시엔 태오도 무명이었고 저도 돈이 없었을 때라 이 작품은 정말이지 모두의 선의로 가능했어요. 다시 한 번 이 지면을 빌려 감사를 전하고 싶어요.
하퍼스 바자 16개의 장소는요? 테라스, 침대, 주차장, 루프톱, 모텔, 노래방, 다리 위, 돌담길 등등 의미를 두고 선정했나요?
니키 리 돈 안 들이고 잘 찍을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 하다가 제가 살던 빌딩 옥상으로 갔어요. 당시에 충무로 쪽에 살았거든요. 그 동네의 뒷골목, 육교 위, 한강변, 성곽… 다닐 수 있는 곳은 다 다닌 것 같네요. 모두 그 당시 제 주변의 장소들이었어요.
하퍼스 바자 의도가 아닐 테지만, 16개의 영상 속 니키가 전부 다른 시공간 속 여자처럼 보이기도 해요.
니키 리 역시 워낙 관록이….(웃음) <Projects>의 경험이 배어 나왔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같은 사람이든 다른 사람이든 삶의 맹목성 측면에선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죠.
하퍼스 바자 남편인 배우 유태오 씨가 당신의 작품 중 <Scenes>를 제일 좋아한다고요.
니키 리 태오도 삶의 덧없음과 허무를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이 작품이 감정적으로 다가갔던 것 같아요. 이번에 <Scenes>가 세상에 보여진다고 하니 너무 기뻐했어요. 캐나다에서 촬영을 하고 있어서 바자전 오프닝 파티는 참석 못해도 8월 중순쯤 귀국하면 전시는 꼭 본다고 해요.

Nikki S.Lee, <Scenes2_Bridge>, 2013, Single Channel Video.
하퍼스 바자 최근에 임지은 작가와 공동 출간한 <애정행각>에 이런 내용이 있더라고요. “인간의 삶이 유한하고, 그렇게 감정이 생겨나고 전부 거기서 오는 거지. 예술의 본질이 삶과 죽음을 다룬다는 건 그 점에서 변하지 않는 거지.” 어쩌면 이 작품을 해석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겠다 싶었어요.
니키 리 네, 맞아요. <애정행각>은 대담집의 형태로 예술에 대한 제 생각이나 제가 작업을 해나가는 방향, 예술가로서 살아가는 동기를 말한 책이에요. 읽어보신다면, <Scenes>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하퍼스 바자 무엇보다 저는 이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좋은 아트는 다 에너지가 축축하거나 기가 엄청 세. Shit이야 Shit. 에너지가 샤방샤방 좋을 수만은 없어.” “아티스트들이 얼마나 괴롭냐, 그거 다 캔버스 위에 구토한 건데.” 만약 세상에 두 가지 종류의 예술만 있다면 <Scenes>는 축축한 아트가 아닐까 싶어요.
니키 리 작업 자체가 힘들진 않아요. 내가 예민하게 느끼는 감각들, 그걸 평생 가지고 사는 게 힘든 거죠. 아마도 아티스트는 다 그럴 거예요. 그래서 성격 더럽다는 얘기도 듣겠지만.(웃음) 어떤 면에선 그렇기 때문에 취약한 내면을 드러낼 수 있는 거겠죠. 배우도 마찬가지이고 소설가도 마찬가지죠. 창조적 행위 안에서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약한 면이 전제되어야 해요. 그래야 자기 이야기가 나오고 자기 작업이 되니까요. 취약함은 아티스트가 어쩔 수 없이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하는 짐 같은 거예요.
하퍼스 바자 요즘에는 매니큐어로 회화 작업을 하고 있다고요.
니키 리 <애정행각>의 표지가 제가 매니큐어로 그린 그림이에요. 저는 페미닌한 사람이고, 스무 살 이후로 손톱에 매니큐어를 바르지 않은 적이 없어요. 저는 늘 매니큐어 색깔을 마주하고, 언젠가 이런 색으로 내가 원하는 걸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싶더군요. 그림과 나 자신과 연결될 수 있도록요.
하퍼스 바자 상당히 까다로운 도구로 그림을 그리고 있군요.
니키 리 냄새 때문에 마스크를 끼고 작업해야 하고 환기도 필수예요. 또 매니큐어 붓이 정말 작잖아요. 환장할 노릇이죠.(웃음) 생각보다 수행에 가까운 작업이에요. 게다가 저는 성격 때문인지, 그림도 크게 그리는 게 좋거든요. 작품 하나 완성하는 데 한 달은 넘게 걸려요. 이런!(웃음)
하퍼스 바자 작업실에서 손톱만 한 붓으로 ‘수행’을 계속하는 당신을 상상해봤어요. 우리는 오늘 삶의 덧없음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때로는 이런 예술 활동이 다 무슨 소용인가, 느끼진 않나요?
니키 리 오히려 예술 활동만 의미가 있고 다른 게 다 무슨 소용인가, 라는 생각이 들 때는 있어요.(웃음) 생각하면 한도 끝도 없고 나중엔 ‘나라는 존재는 무슨 소용인가’까지 갈 수 있겠죠. 그런 건 20대 때나 하는 생각이에요. 예술을 회의하기에 이제 전 나이가 너무 많아요.(웃음) 저는 어제보다 오늘 더 죽음에 가까워져가고 있고 모든 건 찰나니까요.
Credit
- 사진/ 유동군(전경), 아티스트 제공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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