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전설로 남은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이야기

아르마니를 이탈리아 패션의 중심이자 신념으로 쌓아 올린 그의 열정을 들여다보다.

프로필 by 서동범 2026.03.07

GIORGIO ARMANI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이탈리아 패션의 중심이자 신념으로 쌓아 올린 하나의 제국이다. 그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신의 운명의 고삐를 놓지 않으며 세월에 닳지 않는 무한한 스타일을 창조했다.


영화 <아메리칸 지골로>의 배우이자 모델 로렌 허튼과 함께 포즈를 취한 조르지오 아르마니, 1980년.

영화 <아메리칸 지골로>의 배우이자 모델 로렌 허튼과 함께 포즈를 취한 조르지오 아르마니, 1980년.

남성에게 아르마니 수트를 소유한다는 욕망은 페라리 테스타로사를 몰 때의 쾌감과도 같다. 마치 자기 자신이 무적이라는 황홀한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밀라노 거리에서 포착한 조르지오 아르마니.

밀라노 거리에서 포착한 조르지오 아르마니.

2025년 9월, 패션계의 거장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타계는 강렬했던 1980년대를 상기시켰다. 당시에는 어떠한 상황에도 “불가능은 없다”고 스스로를 설득할 수 있었고, 젊은이들은 기존의 질서를 뒤집을 수 있다고 믿었다. 또 1970년대의 순응주의와 결별하는 모든 시도들이 마치 축복처럼 찬양을 받았다. 1980년대의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영화 <아메리칸 지골로(American Gigolo)>의 리처드 기어가 보여준 맹수 같은 존재감, 그리고 치명적인 섹시함이 담긴 실루엣의 룩을 선보였다. 값을 매길 수 없는 매력을 파는 남자, 영화 속 줄리앙의 옷은 마치 몸에 맞춰 재단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가 풍기는 확신과 권력, 그리고 거리낌 없는 관능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것은 아르마니의 영화 의상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부분이며, 쿠엔틴 타란티노나 마틴 스코세지 감독의 영화 속 그것보다도 훨씬 앞선 시도였다. <아메리칸 지골로> 이후 형사 드라마 <마이애미 바이스(Miami Vice)>의 배우 돈 존스가 아르마니 수트 속에 티셔츠를 레이어드하며 또 한번 남성 정장 스타일의 규칙을 깨뜨렸다. 3개의 에피소드가 방영된 후에는 모두가 드라마 속 패션 스타일을 따라 했고, 한 시대의 모든 사람들이 아르마니의 실루엣을 갈망했다.

당시 남유럽 지중해에서 조르지오 아르마니를 입는 것은, 니노 체루티(Nino Cerruti) 혹은 지아니 베르사체와 함께 현실을 견뎌내기 위한 일종의 방패이자 스스로를 무장하는 방법이었다. 해변과 클럽, 해안가 이탤리언 레스토랑이 즐비한 그 곳에서 아르마니란 우리의 부모 세대 혹은 그 주변 사람들에게 금욕과 검소함에 대한 도전이자 현실에 맞서는 하나의 ‘보호막’이었다. 그것은 마치 힘을 증폭시켜 주는 영약(靈藥)을 마시는 것과 같았고, 성공과 유혹 앞에는 언제나 아르마니가 있었다. 아르마니를 선택한 여자 혹은 남자들은 언제나 자신의 존재를 당당하게 드러냈다. 그들은 레스토랑에 들어설 때 사람들의 시선 앞에 위축되지 않았고,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또한 지나갈 때마다 공기의 흐름과 무드를 바꾸었다. 브랜드 사업은 자연스레 향수 분야까지 확장되기에 이른다. 특히 로레알과의 향수 협업은 그에게 막대한 수익을 안겨 주었다.

남성에게 아르마니 수트를 소유한다는 욕망은 페라리 테스타로사를 몰 때의 쾌감과도 같다. 마치 자기 자신이 무적이라는 황홀한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사회적인 상황은 다르지만 2010년대 카이로, 탕헤르, 베이루트 또는 다마스쿠스의 변두리에서 마주한 사람들, 시장에서 1달러에 산 가짜 아르마니 로고 티셔츠를 입은 이들 역시 자신을 신화화한 무적을 꿈꾸고 있었다. “내 인생은 바닥을 치고 있지만, 여기서만큼은 나는 무적이다”라고. 시장에서 1달러에 팔리는 가짜 티셔츠는 한때 아르마니 수트가 상징했던 권력과도 같았다. 물론 쿠튀르적 관점에서 봤을 때 스포츠 티셔츠 수백만 장에 아르마니 로고가 프린트되는 현상은 결코 미학적으로 아름답지 않다. 그러나 시각을 달리하면 그것은 성공이 모두에게 열려 있다는 믿음과 희망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애초에 ‘아르마니’라는 이름은 무엇을 의미했을까? 한때 그가 ‘미니멀리즘’을 정의했다는 사실을 되새겨보면, 아르마니는 장식과 군더더기가 없는 패션을 추구했다. 각진 어깨선, 정교한 실루엣, 자로 그은 듯 정확한 패턴. 그러면서도 유연성을 추구했고 일종의 해체에 가까운 스타일을 선보였다. 그리고 그의 수트에 담긴 메시지에는 새로운 여성상이 담겨 있었다. 권력의 세계로 당당하게 진입하며 힘의 구도를 뒤집는 여성 경영인을 위한 옷을 선보인 것이다. 한편 남성들에게는 또 다른 서사를 부여했다. 헬스클럽과 클럽 문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시기, 피트니스로 단련된 탄탄한 몸을 전제로 한 그의 옷은 자기애를 가진 남성들을 부끄러움에서 해방시켰다. 쉽게 말해 유혹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시대의 유니폼이 된 것이다. 1991년 출간된 브렛 이스턴 엘리스의 소설 <아메리칸 사이코(American Psycho)>만큼 아르마니 시대를 잘 표현하는 작품은 없다. 그의 소설 속 폭력적인 묘사 사이사이에 등장하는 뉴욕의 여피들은 오직 자신이 입는 브랜드와 명함의 종이 질, 인쇄 상태로만 사람들을 정의하며 물질주의가 만연한 사회를 해부한다. 그리고 레이건 대통령의 시대를 관통해, 갑작스레 만개한 남성적 나르시시즘의 의미를 얼마나 정확히 포착했는지를 보여준다.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스케치에는 한 시대가 품은 모든 가능성이 응축되어 있었다.

아르마니의 시작점으로 돌아가보자. 그와 니노 체루티의 첫만남은 1961년경, 아르마니가 디스플레이를 맡고 있던 한 부티크에서였다. 체루티가 먼저 이 젊은 판매원의 우아함에 매료되었고, 그에게 매장에 걸린 옷들 중 가장 혁신적이라 생각되는 것을 고르게 했다. 아르마니는 정확히 체루티 마음에 드는 피스를 선택했고, 넥타이 하나까지 두 사람의 취향은 완벽하게 일치했다. 새로운 미학의 탄생이 예고된 순간이었다. 이후 1970년대 초 아르마니는 체루티를 떠나 자신의 이름으로 비상하게 된다. 뒤이어 1980년대에 영화 <아메리칸 지골로>가 개봉하며 큰 성공을 거두지만 당시에는 에이즈에 대한 공포가 만연했고, 1985년 그가 가장 사랑하던 파트너이자 건축가인 세르지오 갈레오티가 에이즈로 세상을 떠났다.

내가 이탈리아 기업의 파리 지사에서 5년간 근무했을 당시 1년에 두 번, 밀라노에서 ‘블루 수트의 남자’들이 다녀갔다. 그들은 감사원이 아니라 그 자체로 권위의 구현이었다. 관자놀이에 성글게 내려온 희끗한 머리칼, 무심하게 입은 페트롤 블루 컬러의 수트 그리고 몸짓 하나에도 자연스러운 우월감이 풍겼다. 장부를 펼쳐 들고, 책상에 걸터앉거나 의자 위에 한쪽 발을 올려도 그들의 ‘이탈리아식 우아함’은 결코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들 몸에 두르고 있던 자신감이 너무 강렬해서 즉흥적인 파리지앵들을 순식간에 초라한 존재로 만들었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 우리는 마치 마틴 스코세지 감독의 블랙코미디 영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속 엑스트라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언제나 이탤리언의 수트는 흔들림 없는, 반박 불가능한 블루였다. 그리고 그들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벽한 아르마니를 입고 있었다.


피터 린드버그가 포착한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1992 F/W 컬렉션. 뉴욕 자택에서. 파올로 로베르시가 촬영한 조르지오 아르마니1998 S/S 캠페인 속 샬롬 할로와 1997 F/W 시즌 캠페인의 스텔라 테넌트. 파올로 로베르시가 촬영한 조르지오 아르마니1998 S/S 캠페인 속 샬롬 할로와 1997 F/W 시즌 캠페인의 스텔라 테넌트. 노르웨이 패션 사진작가이자 감독 솔베 선즈보(Sølve Sundsbø)가 포착한 2016년 서머 룩. 2013년 아르마니가 뉴욕 마천루를 배경으로 모델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있다. 1990년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아르마니 수트를 입은 줄리아 로버츠.

Credit

  • 글/ Philippe Azoury
  • 번역/ 이승연
  • 사진/ © Giorgio Armani, Getty Images, Fairchild Archive / Penske Media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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