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코르셋 이야기

유혹의 도구이자 비밀의 갑옷으로 여겨진 코르셋의 속사정

프로필 by 서동범 2026.04.07
딜라라 핀디코글루 2026 S/S 쇼의 코르셋 드레스.

딜라라 핀디코글루 2026 S/S 쇼의 코르셋 드레스.

“속옷은 에로틱할 뿐 아니라 모든 것을 통제하는 거대한 힘을 지닌다.” 미국의 시인 로렌스 펄링게티(Lawrence Ferlinghetti)는 시집 <Starting from San Francisco>(1961)에서 이와 같이 표현했다. 16세기 프랑스에서 처음 등장한 코르셋부터 뷔스티에, 엉덩이 볼륨 패드를 뜻하는 포퀴(faux-cul) 등 오랜 시간 역사의 옷장 속에 갇혀 있던 클래식한 보정 속옷이 런웨이 중심에 등장했다. 코르셋, 허리를 조이는 속옷인 게피에르(guepiere), 크리놀린 등은 잘록한 허리를 강조하는 칵테일 드레스로 존재감을 드러냈고, 섬세하고 가벼운 란제리는 톱과 드레스로 변주되어 일상과 삶 속에 스며들었다. 속옷을 겉옷으로 드러내는 방식은 1956년 디자이너 피에르 발망이 영화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Et Dieu… créa la femme)>의 주인공 브리지트 바르도를 위한 부두아르(Boudoir)풍의 웨딩드레스를 디자인하며 시작됐다. 이탈리아의 의상 디자이너 피에로 토시(Piero Tosi)는 란제리 하나로 시대의 아이코닉한 장면을 남겼는데, 1963년작 영화 <어제, 오늘, 내일(Ieri, Oggi, Domani)> 속 소피아 로렌이 착용한 전설적인 브라톱이 바로 그의 작품이다. <이탈리아식 결혼(Matrimonio all’italiana>(1964)에서 여배우가 입은 도발적인 슬립 역시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심지어 두 개의 거미 자수로 유두를 가린 시어한 소재의 네글리제 드레스를 입은 영화 속 장면은 ‘우리 시대의 얼굴(The Face of Our Time)’이라는 표제와 함께 1966년 <라이프>지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1 뮈글러 2025 S/S. 2 로베르토 카발리 2025 리조트.

1 뮈글러 2025 S/S. 2 로베르토 카발리 2025 리조트.

이후 1970년대 발생한 펑크 운동은 오랫동안 여성 억압의 상징으로 여겨온 코르셋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어 1980년대 후반 영국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에 의해 성적 반항과 권력의 이미지로 대두되었다. 하지만 코르셋을 아이코닉하게 만든 결정적 장면은 1990년, 패션계의 앙팡테리블 장 폴 고티에가 디자인한 살굿빛 새틴 소재의 원추형 브라를 입은 마돈나가 블론드 앰비션(Blond Ambition) 월드 투어에 등장한 순간이다. 이는 속옷과 겉옷의 전도였을 뿐만 아니라 전위적이며 새로운 여성성을 보여주는 획기적인 디자인이었다. 이와 함께 디자이너 티에리 뮈글러가 전설적인 코르셋 아티스트 미스터 펄(Mr. Pearl)과 협업하며 플렉시글라스와 금속, 광택 가죽 등의 다채로운 소재로 변주한 글래머러스한 코르셋 디자인으로 주목을 받았다.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세기말의 허무주의와 그런지 무드로 인해 성적인 부분보다는 속옷이 주는 순수함과 연약함이 부각됐다. 디자이너 후세인 샬라얀은 상처와 기형의 불편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외과적’ 바디 실루엣을, 벨기에 듀오 A.F. 반데보르스트는 마치 병원과 성물(聖物) 보관실에서 볼 법한 컬렉션을 선보인다. 그것은 속옷에 담긴 유혹적 에로티시즘보다는 의학적인 도상학(圖像學)과 독일 작가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의 작업 방식 또는 군복 등의 요소와 병치해 몸의 실험과 시의 영역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이후 2000년대 초반 톰 포드는 구찌 쇼를 위한 매혹적인 드레스를 구상하며 마치 조각한 듯 섬세한 드레이프 장식의 코르셋 디자인으로 관능미를 더했다. 그리고 20년 뒤, 디올의 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프랑스 작가 에바 조스팽(Eva Jospin)과 협업한 런웨이 위에 동화에 등장할 법한 게피에르와 크리놀린 피스를 가볍고 우아한 방식으로 변주해 주목을 받았다.

1 돌체앤가바나 2025 S/S, 2026 S/S. 2 A.F. 반데보르스트 2018 S/S 오트 쿠튀르.

1 돌체앤가바나 2025 S/S, 2026 S/S. 2 A.F. 반데보르스트 2018 S/S 오트 쿠튀르.

한편 디자이너 루도빅 드 생 세르냉(Ludovic de Saint Sernin)은 장 폴 고티에의 2025 S/S 오트 쿠튀르를 위해 메종의 전설적인 코르셋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장 폴 고티에의 1997년 런웨이에 등장한 배 모티프의 헤드피스에서 시작되어 ‘난파선(Le Naufrage)’이라 명명한 이 컬렉션은 코르셋을 센슈얼하고 모던하게 재해석하며 시선을 모았다. 그렇다면 1990년대 장 폴 고티에와 함께 마돈나의 투어 의상을 맡았던 돌체앤가바나는? 플래티넘 가발에 슬립 드레스, 불릿 브라를 착용한 메릴린 먼로와 모니카 비티, 혹은 마돈나의 형상들이 런웨이에 등장한 전 시즌부터 홈웨어가 다채롭게 변주된 2026 S/S 시즌까지, 란제리는 언제나 듀오의 영감의 원천이었다. 또한 뮈글러의 케이시 캐드월라더(Casey Cadwallader)는 1998년 티에리 뮈글러 쇼에서 영감을 받아 꽃의 해부학적 실루엣이 담긴 살굿빛 미니 바디수트로 눈길을 끌었다. 최근 코르셋을 가장 전위적으로 해석한 스키아파렐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다니엘 로즈베리는 컬렉션의 핵심으로 코르셋을 선택하며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룩을 완성했다. 특히 켄들 제너가 런웨이에 입고 등장한 룩은 마치 장인의 손에 의해 빚어진 아르누보 작품을 연상케 했다. 또한 로베르토 카발리의 파우스토 푸글리시(Fausto Puglisi)가 2024년 S/S 쇼를 위해 선보인 식물 문양과 크리스털 가루가 더해진 검은 레이스의 트롱프뢰유 드레스와 2025년 리조트 컬렉션의 지브러 패턴 미니 드레스는 갈비뼈를 따라 흐르는 관능적인 엑스레이 형상으로 시선을 모았다.

1 1990년 마돈나가 블론드 앰비션 월드 투어에서 착용한 장 폴 고티에의 코르셋. 2 사라 버튼의 지방시 2025 F/W.

1 1990년 마돈나가 블론드 앰비션 월드 투어에서 착용한 장 폴 고티에의 코르셋. 2 사라 버튼의 지방시 2025 F/W.

패션의 역사는 결국 몸에 대한 이야기다. 단순한 유행을 넘어 사회현상과 예술의 영역까지, 코르셋은 수세기에 걸친 여성들의 이야기와 드라마가 담겨 있다. 그리고 이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과 집착은 겉으로 드러나든 드러나지 않든 여성들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확립해온 유혹의 한 도구로서 진화하며 우리 삶 속에 계속 남아 있다.

1 루도빅 드 생 세르냉이 참여한 장 폴 고티에 2025 S/S 오트 쿠튀르. 2 돌체앤가바나 2025 S/S, 2026 S/S.

1 루도빅 드 생 세르냉이 참여한 장 폴 고티에 2025 S/S 오트 쿠튀르. 2 돌체앤가바나 2025 S/S, 2026 S/S.

Credit

  • 글/ Silvia Vacirca
  • 번역/ 정다희(밀라노 통신원)
  • 사진/ ⓒ Getty Images,Launchmetrics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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