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제주에서 만든 요이의 예술이 베니스에 당도하기 까지

2026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 젊은 작가 요이가 선정되었다. 작가의 연대를 좇으며 완성한 인터뷰.

프로필 by 손안나 2026.05.10

A Chronicle of Water


잠영하던 요이의 이름은 수면 위로 튀어 오르듯 호명되었다. 제주에 살며 물을 바탕으로 세대와 몸을 넘나드는 작업을 하는 작가의 연대(連帶)와 연대(年代)를 좇았다.


Yo-E Ryou, <Why I Swim>, 2026, Video still, Courtesy of the artist.

Yo-E Ryou, <Why I Swim>, 2026, Video still, Courtesy of the artist.

요이는 미국에서 오래 머물렀다. 한국에서 대학 생활을 보내다 여름방학 때 우연히 미국을 찾았고 처음으로 누군가가 자신의 생각을 묻고 서로 다른 관점으로 대화를 나누는 경험을 했다. 다양한 담론과 커뮤니티가 살아 있는 환경이 인상 깊어 그에 속했다.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것들이 사실은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경험,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속에서 살아가며 ‘아시아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더 강하게 인식하게 되는 순간들. 다름 속에서 스스로의 위치를 계속 질문하는 시간을 보냈다. “미술관이나 대형 미술관 기관에서 작가와 관계를 이어주는 관점의 일을 오래 했어요.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지 중재하는 역할도 했고요. 대학원에 가면서부터 스스로 묻고 답하는 시간이 생겼지만 비자 문제와 생계를 해결하고 문서로 증명할 수 있는 일들이 우선적이었습니다.” 삶을 행하는 속도와 걸음걸이가 어떤 것이었는지 점점 잊어버리고 있다는 마음속의 웅성거림은 팬데믹 시기에 더욱 분명하게 소리를 높였다. 몸의 리듬을 되돌릴 다른 속도를 찾던 그는 제주에 다다른다. 섬에 당도해 가장 먼저 헤엄치는 법을 배웠다. 지난 30년 동안 그 흔하디흔한 물에 몸을 담가 나아가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헤엄치는 법을 배우며 몸으로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새로 습득했다. 옆집 해녀 삼춘 물마중을 나가고 해녀 학교에 다니며 잠수하는 법을 터득하는 동안 물 밖에서 호흡하던 요이의 숨은 어느새 물속으로 점점 스며들었다.


Yo-E Ryou, <Why I Swim>, 2026, Video still, Courtesy of the artist.

Yo-E Ryou, <Why I Swim>, 2026, Video still, Courtesy of the artist.

“물과 공명하는 순간은 물을 정복하거나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물의 리듬을 몸으로 느끼고 그 흐름에 맞추어 함께 호흡하는 상태에 가까워요. 해녀분들을 보면서도 그런 감각을 많이 배웠죠. 바다의 조건을 거스르기보다 그날의 물살과 날씨에 몸을 맞추며 일하는 방식에는 자연에 대한 애정과 존경, 그리고 두려움이 함께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물속에서는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몸의 반응에 더 귀 기울이게 되거든요. 숨을 참고, 압력을 느끼고, 다시 올라와 숨을 내쉬는 그 리듬 속에서 몸이 조금씩 다른 감각을 배우게 됩니다.” 물속에서 배운 것을 물 밖으로 옮겨오며 다른 형식과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일. 비로소 온전한 작업이 시작되었다. 뭍에서 보낸 지난 시간 동안 관계와 소통, 번역의 영역에 몸담으며 체득한 것들이 물을 만난 것이다. 잠시 머무를 줄 알았던 제주에 정주해 고이화 해녀 생가에 ‘언러닝스페이스’라는 참여적 예술 공간을 열었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을 다시 질문하고 새롭게 접근해 보려는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한 실천이자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생활하는 공간과 작업실의 연장선에서 이웃 해녀들과 시간을 보내고 예술가와 연구자들과 함께하는 워크숍을 진행했다. 이 과정은 자연스럽게 하이드로페미니즘이라는 관점과도 연결된다. “하이드로페미니즘은 물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입니다. 우리 몸의 대부분이 물로 이루어져 있고 물은 끊임없이 흐르며 서로 다른 존재를 연결하죠. 그래서 물은 고정된 경계보다 관계와 연결을 떠올리게 해요. 내 몸을 돌보듯 세계를 돌보는 감각, 그리고 서로 연결된 존재로서의 책임을 생각하게 하고요.” 해녀들이 물속에서 호흡하는 건 생리적 행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 숨은 공동체를 생존하게 하고 돌봄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다. 동시에 세대와 바다를 건너 전해지는 감각의 아카이브이기도 하다. 작가는 <말하는 물, 쓰는 몸>이라는 드로잉 연작에서 “문제는 우리가 ‘우리’라고 했을 때 그 ‘우리’가 누구인지 몰랐다는 것이다”라는 문구를 소환했다. “시인이자 페미니스트 비평가 에이드리엔 리치의 말인데요. 제주에 와서 가장 많이 생각하게 된 질문이 바로 ‘우리’라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이 섬에서 항상 외지인이자 육지 사람으로 남을 수밖에 없지만 동시에 공동체 안으로 깊이 들어가는 경험을 하기도 해요. 그런 위치 속에서 늘 안과 밖 사이에 서 있다고 느끼게 됩니다. ‘우리’라는 말을 쉽게 사용하지만 그 안에 포함되지 않는 존재들도 많잖아요. 그래서 ‘우리’라는 범위를 인간을 넘어선 존재들까지 넓혀 다시 생각해 보려고 하는 거죠.” 전시와 워크숍을 통해 엘렌 식수를 비롯해 조앤 디디온, 주디스 버틀러, 클라리시 리스펙트로 같은 작가들의 말을 곱씹고 다양한 방법의 여성적 글쓰기를 제안하며 축적한 이론은 요이의 작품 속에 물들어 있다. 제주로 이주한 이후 헤엄치는 법을 터득해가는 과정을 바다 건너편의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구성한 <내가 헤엄치는 이유>, 조수의 리듬, 물속 지형의 흐름, 그리고 호흡과 청각 기관의 순환 구조 등을 선과 흔적으로 추적한 <말하는 물, 쓰는 몸>은 <숨 오케스트라>라는 현재진행형 시리즈로 이어진다. “해녀 문화에는 ‘물벗’이라는 말이 있어요.” 위험한 바다에 함께 들어가 서로의 숨을 확인하고 살피는 짝을 의미한다. 이들은 물질하는 동안 경쟁하기도 하지만 동료이며 동시에 서로를 의지할 수밖에 없는 관계다. <숨 오케스트라>는 여러 사람의 호흡을 모으고 그 구조를 담는다. 해녀가 아닌 열 살 언저리의 동네 꼬마들, 한강에 모인 안무가, 연기자와 같은 표현을 일삼는 사람들. “해녀와 그들의 삶이 제 작업의 출발점이긴 하지만 강인하거나 고단하다는 정형화되고 상징적인 이미지에 갇힌 면이 있어요. 그런 생각이 들 즈음부터 다큐멘터리적인 이미지 말고 감각에 충실한 얘기를 해보고 싶어 퍼포먼스나 사운드 작업을 시작했어요. 동네에 사는 어린 여자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더군요. 해녀분들이 항상 얘기하셨어요. 남자아이들은 학교 갈 나이에 학교에 갔지만 우리 같은 여자아이들은 학교 대신 바다를 일터 삼아 다니기 시작했다고. 아쉬움과 자부심이 뒤섞인 시대의 감각을 지금 비슷한 나이대의 아이들에게 공유하고 관계를 맺으며 결과물을 만들어냈어요.”


작가 요이의 모습. Courtesy of the artist

작가 요이의 모습. Courtesy of the artist

드로잉과 사운드, 퍼포먼스 등 적재적소의 매체를 찾아가는 여정 동안 질문의 형태 역시 조금씩 모양을 바꾸었다. 영상 연작 <Ellipses>는 ‘말줄임표’를 뜻하는 제목처럼 생략과 여백 속에 머무는 시간을 탐구한다. 물속에서의 경험을 직접 설명하지 않고 물 밖의 시간에 집중되어 있다.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는 지금까지 언급한 작품들이 신작과 함께 놓인다. 서로 연관되어 있지만 한자리에서 만난 적 없는 작품들이 마주하며 긴 시간에 걸쳐 이어온 리서치가 하나의 구조 안에서 다시 호흡하는 시간을 만든다. 베니스 비엔날레 사상 첫 흑인 여성 예술감독인 코요 쿠오는 전시에 ‘In Minor Keys’라는 제목을 붙였다. 큐레이터 시절 젠더와 정체성, 권력 구조 등을 조명하던 감독은 안타까운 죽음 전 사회·정치와 뗄 수 없는 주제를 섬세하게 예술의 언어로 발화할 수 있는 예술가들을 지정하였다. 그 안에 요이는 하나의 ‘작은 음(minor key)’이 되었다. “우선 애도를 표하는 마음뿐입니다. 감독님은 ‘로 머티리얼 컴퍼니(Raw Material Company)’라는 정말 중요한 커뮤니티를 운영했어요. 커뮤니티 중심에 있던 빛과 에너지가 사라진 것에 대해 슬픔과 아쉬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요이는 지금 파리다. 아침 일찍 일어나 나눈 이 인터뷰를 마치면 케브랑리 박물관으로 가 전시 설치를 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복잡한 상황에서 책임감을 무겁게 느끼는 부분도 있고 그 안에서 예술이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요. 여러 고민을 해봐도 역시 진심이 담긴 작업을 공유하는 것뿐이에요. 정말 작은 스케일로라도 그 마음이 닿았으면 좋겠어요.” 해외에서 연이은 의미 있는 전시를 앞두고 있지만 물의 순환처럼 얼마 후면 그는 다시 제주다. “여전히 늦게까지 작업하고 온라인 미팅을 할 거예요. 그래도 점심 시간에 잠깐 바다에 다녀오거나 오름을 걸을 수 있겠죠. 물은 곧 섬이고 그 안에서 제가 헤엄치는 이유는 언어와 노동, 의식과 저항 등 많은 것을 담고 있어요. 이 흐름이 계속되어 작업이 될 것이고 그렇게 계속 더 깊어지길 바랄 뿐입니다.”


박의령은 <바자 아트>의 컨트리뷰팅 에디터다. 아직 헤엄을 못 치지만 개인에서 시작하여 물을 통해 확장되는 관계와 흐름을 따라가며 묘한 평온함을 느꼈다.

Credit

  • 글/ 박의령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n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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