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비대칭 스커트가 다시 유행? 2026 런웨이에 돌아온 하이로 헴라인

디올, 샤넬, 알라이아부터 젠데이아까지. 짧고 긴 실루엣이 공존하는 하이로 헴라인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

프로필 by 서동범 2026.08.12

A TALE OF TWO HEMLINES


이번 시즌에 등장한 다채로운 비대칭 실루엣 스커트와 드레스는 현재 패션의 흐름이 어느 한 방향으로 완전히 기울지 않은 채 갈림길에 서 있음을 시사한다. 마치 자유로움과 보수성, 격식 없음과 우아함 그리고 환상과 실용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듯.


알라이아 2026 W/S.

알라이아 2026 W/S.

폴리마켓(Polymarket, 미국 뉴욕 맨해튼에 본사를 둔 글로벌 암호화폐 기반 예측 시장)이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사람들은 치마 길이에서 미래를 읽으려 했다. 바로 ‘헴라인 지수(Hemline Index)’ 때문. 헴라인 지수란 경제가 호황일 때 치마 길이가 짧아지고, 불황일 때는 길어진다는 이론을 말한다. 물론 이는 실제 경제 지표라기보다는 문화적 현상에 더 가깝다는 것이 이미 밝혀진 바 있다.

그렇다면 최근 레드 카펫과 런웨이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기묘한 비대칭 헴라인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미국 가수 애디슨 레이(Addison Rae)는 지난 2월 그래미 시상식에 독특한 흰색 드레스를 입고 등장했다. 네크라인은 배꼽 가까이까지 깊게 파여 있었고, 풍성한 스커트는 양쪽 골반에서 부풀어 오른 뒤 다리 사이 부분으로 갈수록 길게 늘어졌다. 레이는 카메라 플래시 세례 속에서 포즈를 취하다가 몸을 돌렸고, 그 순간 완전히 다른 실루엣이 드러났다. 뒤쪽 스커트는 속옷이 보일 정도로 짧았던 것. 이 의상은 피터 뮐리에가 알라이아를 위해 제작한 마지막 컬렉션 중 하나였다. 디자인의 일부는 매릴린 먼로가 그 유명한 지하철 환풍구 위에 서 있던 장면에서 영감을 받았다. 레이의 스타일리스트 다라(Dara)는 이 비대칭 헴라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어린 시절 제가 상상하던 멋진 드레스와 조금 닮아 있는 것 같아요. 충분히 짧아서 섹시하지만, 동시에 충분히 길어서 극적이죠.” 그녀는 이어 설명한다. “마치 화려함에 균열이 생긴 듯한 느낌이에요. 무언가가 살짝 어긋난 것처럼 보이죠. 촌스러운 취향이나 의상 사고를 떠올리게도 하는데요, 오히려 그런 점이 아름다움과 우아함에 접근하는 현대적인 방식처럼 느껴집니다. 미스터리하면서도 동시에 드러남이 있는, 두 가지가 공존하는 모습이죠.” 그 다음 달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배우 미아 고스(Mia Goth)는 얇고 투명한 화이트 레이스 소재의 디올 드레스를 입고 등장했다. 드레스 앞쪽은 두 개의 패널이 갈라지며 다리를 과감하게 드러냈고, 뒤쪽으로는 긴 스커트 자락이 바닥 위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이후 <베니티 페어>의 오스카 애프터 파티에서는 또 다른 룩을 선보였다. 앞에서 보면 발목을 살짝 스칠 정도 길이의 우아한 블랙 스트랩리스 드레스처럼 보이지만, 뒤쪽에는 여러 겹의 튤(tulle)로 만든 짧은 화이트 스커트가 달려 있었다. 같은 행사에서 트레이시 엘리스 로스(Tracee Ellis Ross)는 마린 세르의 드레스를 입었다. 심플한 블랙 보디스에 풍성한 화이트 스커트가 더해진 디자인이었는데, 스커트 양옆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위로 걷어 올려져 있어 독특한 실루엣을 만들어냈다.

<베니티 페어> 오스카 애프터 파티에서 디올을 착용한 배우 미아 고스. 그래미 시상식에서 알라이아 룩의 애디슨 레이. 샤넬 드레스 셔츠에 하이로 스커트를 매치한 틸다 스윈튼.

봄 시즌, 런웨이의 헴라인은 더욱 과감하게 변주되었다. 지방시는 앞부분만 끌어올린 스커트와 드레스를 선보였고, 샤넬의 마티유 블라지는 짧기도 하고 길기도 하며, 그 중간 정도의 스커트 길이를 통해 포멀 웨어의 기존 규칙을 흐려 놓았다. 알라이아는 한쪽 골반에서 시작해 반대편 발목까지 물결치듯 이어지는 스커트를, 잭 맥컬로와 라자로 에르난데스의 로에베 데뷔 컬렉션에서는 모델들의 몸 주변으로 비대칭적으로 흘러내리는 드레스가 대거 등장했다. 이처럼 서로 상반된 특성들 사이에 극적으로 걸쳐 있는 이 모순적인 실루엣에는 지금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무언가가 있다. 이것은 포멀한 스타일일까, 아니면 캐주얼한 스타일일까? 보수적인가, 아니면 대담한가? 아마도 바로 이런 긴장감이 패션계의 가장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들을 매료시키는 이유일 것이다. 치마 길이에는 언제나 다양한 상징성이 담겨 있고, 디자이너들은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대칭 헴라인 자체는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패션 역사학자 엠마 매클렌던(Emma McClendon)에 따르면, 노출과 은폐를 동시에 담고 있는 스커트는 중세 시대 의상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녀는 “비대칭은 대개 균형을 맞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큰 대비와 혼란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녀가 보기에 현재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흐름은 1920년대와 가장 닮아 있다. 당시의 플래퍼(flappers) 드레스는 코르셋 없이 느슨하게 떨어지는 실루엣과 높아진 헴라인으로 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무려 발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앞쪽이 더 짧은 비대칭 길이는 움직임을 더욱 자유롭게 만들었고, 찰스턴(charleston, 192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사교춤)을 추기에도 훨씬 편했다. 동시에 이는 짧은 치마에 대한 당시 사회의 망설임과 불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요소이기도 하다. 마들렌 비오네, 폴 푸아레, 가브리엘 샤넬 같은 디자이너들 역시 이러한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이 헴라인들은 경제적 불안의 징후라기보다는 전반적인 방향 감각 상실을 보여주는 예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혼란의 시대다. 그리고 패션 역시 예외는 아니다. 섹시함은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오늘날의 ‘섹시함’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복장 규범은 과거보다 훨씬 느슨해졌고, 그 결과 창의성은 커졌지만 동시에 혼란도 함께 늘어났다. ‘조용한 럭셔리(Quiet Luxury)’는 기본 아이템으로 구성된 캡슐 워드로브를 만들라고 말했지만, 새로운 마이크로 트렌드는 거의 매일 그 논리를 흔들어 놓는다. 옷을 입는다는 행위는 수없이 많은 질문을 던진다. 그렇기에 이러한 불확실성이 런웨이까지 스며들게 된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1997 봄 지방시 오트 쿠튀르 컬렉션.

1997 봄 지방시 오트 쿠튀르 컬렉션.

마들렌 비오네의 1925 컬렉션 피스.

마들렌 비오네의 1925 컬렉션 피스.

우리는 이제서야 하이로(high-low) 헴라인이 마지막으로 전성기를 누렸던 21세기 초반의 패션을 제대로 분석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거리를 확보하기 시작했다. 매클렌던은 2008년부터 2013년 사이를 하이로 헴라인의 황금기로 꼽는다. 당시 이 스타일은 드레스와 스커트를 넘어 재킷, 셔츠, 페플럼 디자인에까지 확장되었다. “2000년대 패션은 제게 그야말로 혼돈이었어요. 기존의 복장 규범을 완전히 뒤엎었으니까요. 2010년대 후반에 이르면 우리는 미니멀리즘의 시대로 들어서게 됩니다. 매우 정제되고 깔끔한 취향이 지배하던 시기였죠.” 매클렌던의 말이다. 하이로 헴라인은 이 두 흐름의 요소를 모두 담고 있을 뿐 아니라, 형태적으로도 두 개의 서로 다른 실루엣 사이에 놓여 있는 존재다. 일부 디자이너들은 이 시기를 매우 직접적으로, 거의 노골적일 정도로 다시 끌어오고 있다. 블루마린에서 Y2K 감성 디자인으로 잘 알려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니콜라 브로냐노는 데님 브랜드 세븐 포 올 맨카이드를 런웨이 스타일로 재해석하며, 하이로 스커트가 포함된 2026 가을 컬렉션을 통해 이 브랜드를 처음으로 뉴욕 패션위크 무대에 올렸다. 그는 이 의상들을 “극단과 극단 사이의 대비(a contrast between extremes)”라고 설명한다.

“제게 하이로 헴라인은 이미 끝난 유행이나 다름없어요.” 스타일리스트 디온 데이비스(Dione Davis)는 2010년대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하이로는 오히려 꽤 세련되어 보인다고 생각해요.” 조나단 앤더슨은 디올의 가을 컬렉션에서 하이로 헴라인을 활용해 복장 규범과 현대사회의 ‘차려입기’ 개념에 대한 논평을 시도했다. 첫 번째 룩을 입고 등장한 모델은 디올의 상징적인 바(Bar) 재킷을 회색 질감의 카디건처럼 축소·재해석한 디자인에 작은 스캘럽 장식 튀튀 스커트를 매치했고, 뒤로는 긴 트레인이 늘어져 있었다. 크리놀린을 연상시키도록 여러 겹을 촘촘하게 쌓은 드레스와 스커트들은 앞부분이 옆면보다 훨씬 짧게 재단되어 있었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알투자라와 샤넬의 가을 컬렉션에서도 비슷하게 탐구되었다.

매클렌던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금 여성의 몸이 사회에서 어떻게 이야기되고, 또 어떻게 보여지는가를 둘러싸고 매우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더 큰 문화적 흐름의 중심에 있는 현상이죠.” 잘 알려져 있듯 미니스커트는 1960년대 여성해방의 상징이었다. 그 이전에는 1940년대 후반과 1950년대를 지배했던 크리스찬 디올의 보수적인 전후 ‘뉴룩(New Look)’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미니스커트는 여전히 해방의 상징일까? 아니면 오히려 여성을 단순화하는 것일까? 어느 쪽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녀는 이어 말한다. “이 헴라인이 흥미로운 이유는 동시에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기 때문이에요. 노출적이면서도 노출적이지 않고, 보수적이면서도 보수적이지 않죠. 결국 어느 각도에서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렇게까지 깊은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블루밍데일스(Bloomingdale’s)의 패션 디렉터 마리사 갈란테 프랭크(Marissa Galante Frank)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헴라인은 상징성보다는 개인의 스타일에 관한 문제입니다. 긴 스커트도 힘을 뺀 자연스러운 스타일링을 하면 놀라울 만큼 캐주얼하게 느껴질 수 있고, 반대로 짧은 스커트도 소재와 비율에 따라 충분히 세련되고 단정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라고 설명한다.

드리스 반 노튼 2026 S/S 프라다 2026 S/S 루아르 2026 S/S 콜리나 스트라다 2026 Fall 리(Lii) 2026 S/S 샤넬 2026 S/S 지방시 2026 S/S 로에베 2026 S/S 7 포 올 맨 카인드 2026 Fall 디올 2026 Fall

수많은 스타일 아이콘들이 이미 이 트렌드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젠데이아는 2026 가을 루이 비통 쇼에 참석하며 2010년대의 두 가지 트렌드를 결합한 룩을 선택했다. 하이로 버블 헴라인이 적용된 화이트 셔츠 드레스다. 틸다 스윈튼과 제시 버클리 역시 단정하게 넣어 입지 않고 살짝 흐트러뜨린 드레스 셔츠에 하이로 스커트를 매치한 샤넬 룩을 선보였다. 하지만 과연 여성들은 이러한 새로운 실루엣을 실제로 구매하게 될까? “어디에나 어울리는 스커트라면, 그건 꼭 필요한 스커트죠”라고 데이비스가 말한다. 이 스타일은 수많은 범주를 가로지르며, 이론적으로는 각 범주의 소비자 모두에게 어필할 수 있다. 그녀가 덧붙인다. “마치 ‘이번 시즌의 대표 실루엣이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같아요. 우리는 지금 ‘이것 아니면 저것’이 아니라, ‘이것도, 그리고 저것도’인 시대에 살고 있어요.”

결국 우리 모두는 하나의 모습으로만 설명될 수 없는 존재들이다. 자신만의 기묘하면서도 매력적인 세계관으로 유명한 콜리나 스트라다의 디자이너 힐러리 테이머(Hillary Taymour)는 “제가 비대칭 헴라인에 끌리는 이유 중 하나는 원래 대칭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에요”라고 말한다. 그녀의 2026 가을 컬렉션은 플라워 차일드풍의 여성성, 뱀파이어 같은 어두운 분위기, 그리고 과장된 비율 놀이 사이의 대화를 담고 있었으며, 그 정점에는 앞은 짧고 뒤는 긴 체크무늬 스커트와 드레스들이 있었다. “훌륭한 드레스에는 약간의 흐트러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번 컬렉션은 보수적인 요소와 장난기 있는 요소가 섞여 있는데, 그것이 지금의 더 큰 문화적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고 봅니다.” 어쩌면 진정한 해방이란 하나의 실루엣과 또 다른 실루엣 사이에서 반드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아닌지도 모른다. 하이로 헴라인을 입으면 두 가지를 모두 가질 수 있다. 말하자면 패션이라는 케이크를 가지면서 동시에 먹을 수도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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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글/ Camille Freestone
  • 번역/ 채원식
  • 사진/ ©️ Getty Images, Launchmetrics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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