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와 '들쥐'...왜 우리는 타인의 삶을 탐하는가?
빼앗긴 자의 실존적 공포 vs 훔쳐 입은 자의 위태로운 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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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로 살아갈 수 있다면 어떨까. 누구나 한 번쯤 떠올렸을 법한 이 상상은 오랫동안 섬뜩하면서도 매혹적인 서스펜스의 원천이 되어왔다. 지난 8월 28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들쥐>가 단숨에 시리즈 1위를 차지하고, 쿠팡플레이의 수작 <안나>가 MBC 특별 편성으로 다시금 화제를 모으는 지금, K-콘텐츠는 또 한 번 '타인의 삶'이라는 뒤틀린 욕망의 거울을 우리 앞에 들이밀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두 작품이 같은 테마를 공유하면서도 완전히 정반대의 시선에서 인간의 결핍과 불안을 집요하게 해부한다는 사실이다.
<들쥐>
"내가 진짜다"...삶을 도둑맞은 자의 실존적 추격극
넷플릭스 시리즈 <들쥐> 스틸
‘쥐가 손톱을 먹으면 사람이 된다’는 설화에서 출발해 현대적인 하드보일드 스릴러로 탄생한 <들쥐>는 '빼앗긴 자'의 시선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은둔 소설가 제문재(류준열)는 어느 날 자신의 이름과 얼굴, 주민등록번호, 심지어 그동안 쌓아온 삶의 궤적마저 완벽히 훔쳐 간 정체불명의 존재 '들쥐'와 마주한다. 손톱을 먹은 쥐가 진짜 행세를 하듯, 가짜가 진짜 행세를 하는 세상에서 문재는 자신이 진짜라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해야만 하는 상황에 내몰린다.
<들쥐>가 건네는 공포는 단순한 물리적 위협을 넘어선다. 데이터와 서류, 디지털 신분으로 인간의 존재 가치가 증명되는 현대 사회에서, 내 고유의 정체성이 타인에 의해 손쉽게 대체될 수 있다는 실존적 공포를 정조준하기 때문이다. 진짜가 가짜로 전락하고 가짜가 진짜의 권리를 누리는 전복된 세계 속에서, 잃어버린 삶을 되찾으려는 추격전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시종일관 숨 막히는 긴장감을 자아낸다.
<안나>
"가짜일지라도 빛나고 싶었다"...결핍이 빚어낸 위태로운 낙원
쿠팡플레이 시리즈 <안나> 스틸
쿠팡플레이 시리즈 <안나> 스틸
<들쥐>가 빼앗긴 자의 분노와 공포를 쫓는다면, <안나>는 반대로 '타인의 삶을 훔쳐 입은 자'의 내밀한 심리와 파국을 그린다. 가난한 유미(수지)는 사소한 거짓말을 시작으로, 타고난 배경과 화려함을 지닌 옛 상사 현주(정은채)의 이름 '안나'를 훔쳐 그 인생을 통째로 덧입는다. 진짜 안나의 껍데기를 쓴 유미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상류층의 낙원에 안착하지만, 그 눈부신 화려함의 이면에는 '언제 들통날지 모른다'는 지독한 강박과 불안이 똬리를 튼다.
<안나>는 거짓으로 지어 올린 완벽한 성이 어떻게 주인공 스스로의 숨통을 조여오는지 서늘하게 포착한다. 결핍과 인정 욕망, 계급 상승을 향한 갈망이 빚어낸 가짜 인생은, 진짜를 흉내 내기 위해 더 큰 거짓과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위태로운 줄타기로 이어진다. 타인의 삶을 훔친 자가 누리는 영광은 결국 모래성처럼 부서질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처연한 비극이다.
<화차>에서 <레이디 두아>까지...왜 우리는 여전히 타인을 탐하나?
영화 <화차> 스틸
넷플릭스 시리즈 <레이디 두아> 스틸
타인의 신분을 훔치거나 위장하는 서사는 한국 장르물에서 오랫동안 강력한 힘을 발휘해 왔다. 벼랑 끝 사채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타인의 가죽을 뒤집어써야만 했던 여성의 비극을 그린 영화 <화차>(2012)가 사회 구조적 모순이 낳은 처절한 생존의 기록이었다면, 상반기 화제작 <레이디 두아>는 자본주의와 과시적 욕망이 결합해 탄생한 현대적 변주에 가깝다.
넷플릭스 시리즈 <들쥐> 스틸
쿠팡플레이 시리즈 <안나> 스틸
삶을 송두리째 도둑맞은 자(<들쥐>)와 스스로 가짜 인생을 덧입은 자(<안나>)의 이야기는 결국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 질문 앞에 멈춰 선다. 타인의 시선과 화려한 껍데기로 존재를 포장하려는 욕망이 깊어질수록, '진짜 나'는 지워지고 고립된다. 이 서늘한 장르물들이 단순한 허구의 스릴러로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 바로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타인을 향한 선망과 불안이 그 안에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Credit
- 사진 / 넷플릭스·쿠팡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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