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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랜드'에서 '실낙원'까지, AI로 이별을 유예한 사람들

상실을 대체하는 기술은 인간의 마음에 무엇을 남기는가

프로필 by 박현민 2026.09.20

과거 SF가 상상한 인공지능의 위협은 대개 기계의 지배나 인류 말살 같은 파멸이었다. 반면 최근 스크린과 시리즈가 AI를 비추는 방식은 훨씬 사적이고 내밀하다. 기술이 두려운 이유는 인간을 지배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의 고통을 너무나 손쉽게 덜어주기 때문이다. 결핍을 지우려 기술에 기대는 순간, 인간의 마음은 어떻게 흔들리는가.



이별을 유예하는 기술


영화 <원더랜드> 스틸

영화 <원더랜드> 스틸

티빙 시리즈 <욘더> 포스터

티빙 시리즈 <욘더> 포스터

김태용 감독의 <원더랜드>는 떠난 사람을 AI로 복원해 영상통화로 만나는 세계를 다룬다. 화면 속 인물은 언제나 온전한 얼굴로 대답하지만, 기술이 대신해 주는 것은 치유가 아니라 기다림이다. 이별을 선언하지 못한 채 슬픔의 시점만 뒤로 밀린다. 이준익 감독의 <욘더>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죽은 아내의 기억이 설계한 가상세계로 남자를 들여보낸다. 가상이 정교할수록 남자가 현실로 돌아올 이유는 사라진다. 두 작품이 응시하는 것은 기술의 가능성이 아니라 이별을 인정하지 못하는 인간의 나약함이다.



기억과 얼굴이 같다면



영화 <상자 속의 양> 스틸 영화 <상자 속의 양> 스틸 영화 <상자 속의 양> 스틸 영화 <상자 속의 양> 스틸 영화 <상자 속의 양> 스틸

질문의 방향을 바꾼 작품들도 있다. MBC·웨이브 'SF8' 프로젝트의 한 편으로 선보였던 김의석 감독의 <인간증명>은 뇌 결합 AI로 되살린 아들이 진짜 내 아이인지 의심하는 어머니의 혼란을 그렸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상자 속의 양>은 일곱 살에 죽은 아들 대신 휴머노이드를 집에 들인 가족을 통해, 기계가 피붙이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여기서 핵심은 기술적 완성도가 아니다. 겉모습과 데이터가 같다고 해서 같은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느냐는 물음이다.



연상호의 변주, 가짜가 메운 자리에 돌아온 '진짜'


영화 <실낙원> 스틸

영화 <실낙원> 스틸

영화 <실낙원> 스틸

영화 <실낙원> 스틸

앞선 작품들이 '가짜를 진짜로 믿을 수 있는가'를 물었다면, 오는 10월 21일 개봉하는 연상호 감독의 <실낙원>은 그 전제를 깬다. 9년 전 캠핑스쿨 버스 실종 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소영(김현주)은 AI 프로그램 '낙원의 아이들'로 어린 시절의 아들을 만나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그런 소영 앞에 죽은 줄 알았던 아들 선우(배현성)가 흉터투성이의 몸으로 9년 만에 돌아온다.

영화 <실낙원> 스틸

영화 <실낙원> 스틸

이때부터 영화는 기묘하고 불편한 동거를 시작한다. 화면 속 아이는 자라지 않고 부모를 실망시키지 않지만, 현실의 아들은 9년의 시간을 지나 소영이 기억하던 모습과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곱게 보존된 기억과 상처투성이의 현실이 한 공간에 놓일 때, 소영은 어느 쪽을 아들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애도는 상대가 곁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 상실 위에서 삶을 다시 짓는 과정이다. 고통을 대신 덜어주는 기술은 그 과정을 건너뛰게 한다. 유예된 슬픔은 사라지지 않고 고여 있다가 예상치 못한 얼굴로 되돌아온다. <실낙원>은 그 얼굴을 '살아 돌아온 아들'로 설계해, 기술이 인간의 가장 연약한 틈을 메울 때 생기는 균열을 날카롭게 겨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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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사진 / MBC·넷플릭스·티빙·CJ ENM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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