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을 방문할 '패션러버'라면 주목! V&A에서 왕실의 주얼리를 전시한다
20세기 영국 왕실의 격변과 사랑의 서사를 담은 까르띠에 주얼리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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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WELLED BRITANNIA
영국 런던의 빅토리아 앨버트 뮤지엄 (V&A Museum)에서 열리는 까르띠에 전시. 단순히 아름다운 보석이 아니라 20세기 영국 왕실의 격변과 영광, 갈등과 사랑의 서사가 반짝이는 빛으로 되살아났다. 전시는 11월 16일까지.

다이아몬드와 에메랄드, 오닉스를 세팅한 호랑이 모티프 골드 브레이슬릿은 윈저(Windsor) 공작부인이 주문 제작했던 피스다.

플래티넘에 다이아몬드를 촘촘하게 세팅한 장미 모티프 브로치는 마거릿(Margaret) 공주 소장품.

블랙 에나멜을 새긴 골드 소재 호랑이 모티프 로르네트.

윈저 공작과 그가 비밀 메시지를 담아 선물한 십자가 참 브레이슬릿을 착용하고 있는 공작부인.
“왕들의 보석상, 보석상의 왕.” 사랑과 상실, 갈등과 화해, 그 모든 왕실의 기억이 이 반짝이는 피스들을 통해 다시 살아난다.
“왕들의 보석상, 보석상의 왕.” 에드워드 7세(영국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의 장남)가 프랑스 주얼러 까르띠에에 남긴 이 찬사는 과장이 아니었다. 그가 1904년 최초로 왕실 인증을 부여한 메종이니까. 120여 년이 지난 지금 그의 부모 이름을 딴, 세계 최초이자 최대의 장식예술 박물관인 빅토리아 앨버트(V&A) 박물관에서 까르띠에와 영국 왕실 사이의 특별한 관계를 조명하는 전시를 연다. 이번 전시는 왕실이 소장했던 역사적 보석들을 대거 공개한다. 사랑과 상실, 갈등과 화해, 그 모든 왕실의 기억이 이 반짝이는 피스들을 통해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루이(Louis), 피에르(Pierre), 자크(Jacques) 까르띠에 형제가 보여준 비전과 야망이 이번 전시에서 조명되듯, 윈저 왕가 또한 하나의 패밀리 기업(family concern)이다. 조지 6세는 1930년대 후반, 왕실을 자칭 ‘더 펌(The Firm)’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을 정도다.
까르띠에가 왕실과 인연을 맺은 건 1901년 에드워드 7세가 즉위한 직후였다. 그는 왕세자 시절부터 단골이었던 까르띠에에게 자신의 대관식에 맞춰 런던 부티크를 오픈하기를 권했고, 메종은 메이페어에 매장을 열었다. 전시 큐레이터 레이첼 개러헌(Rachel Garrahan)은 “당시 영국 왕실은 패션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그들의 선택은 곧 유행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듬해 왕과 왕비의 대관식에 까르띠에 티아라를 쓴 하객이 27명이나 있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왕실의 선택은 단순히 유행을 따르지 않았다. 인물의 취향과 성격이 각자 고른 보석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에드워드 7세의 두 손자, 웨일스 공 에드워드(훗날 에드워드 8세)와 그보다 겨우 18개월 어린 요크 공 조지(조지 6세)의 선택은 특히 대조적이다. 유년 시절엔 가깝게 지냈지만 형제는 사랑과 보석에서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에드워드 왕세자는 변덕스럽고 몽상적이었고, 조지는 성실하고 책임감이 있는 인물. 서로를 싫어하는 지경까지 간 이들의 불화는 형의 아내 월리스 심프슨(Wallis Simpson)과 동생의 아내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Elizabeth Bowes-Lyon)의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월리스는 엘리자베스를 “촌스러운 공작부인”이라며 뚱뚱하다고 조롱했고, 엘리자베스는 월리스의 이름조차 입에 올리기를 꺼리며 ‘그 여자’ 또는 ‘어떤 사람’이라고 부르곤 했다.
사실 조지와 엘리자베스의 결혼은 1923년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다. 신부가 왕족이 아닌 스코틀랜드 귀족 가문의 딸이었기 때문. 이전 왕들은 모두 왕족 여성과 결혼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결혼은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고, 이후 태어난 엘리자베스 2세와 마거릿 로즈(Margaret Rose) 공주는 안정적이고 도덕적인 왕실의 상징이 됐다. 조지는 아내와 딸들을 위해 까르띠에 보석을 구입하곤 했다. 다이아몬드 티아라, 꽃 모양 브로치, 파스텔빛 아콰마린·사파이어 팔찌 등. 그중 1928년과 1935년에 아내에게 선물한 브로치 두 점은 이번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특히 1935년의 아콰마린 브로치는 그녀가 즐겨 입던 연푸른 드레스와 완벽하게 어우러졌다고 전해진다.
이 브로치를 받은 1935년은 엘리자베스가 왕가 숙녀들의 사랑을 받던 패션 디자이너 노먼 하트넬(Norman Hartnell)의 메이페어 살롱을 처음 찾은 해이기도 하다. 하트넬은 당시 그녀의 딸들을 위한 들러리 드레스를 디자인했고, 곧 엘리자베스의 주요 의상 대부분을 맡게 된다. 하트넬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이렇게 회상했다. “요크 공작부인은 은회색 드레스에 옅은 회색 폭스 퍼를 걸치고 있었다. 그녀의 보석은 이슬처럼 빛나는 다이아몬드와 아콰마린이었다. 또 그녀가 두 딸의 손을 잡고 걸을 때, 양옆에 선 어린 공주들은 은색 단추가 달린 작은 하늘색 재킷과 푸른 꽃 장식을 두른 회색 모자를 쓰고 있었다. 은빛과 하늘빛이 어우러진 하나의 교향곡 같았다.” 이후 하트넬은 이 스타일을 더욱 정제해나갔고, 버킹엄 궁전의 화가 프란츠 크사버 빈터할터(Franz Xaver Winterhalter)가 19세기 왕실 인물을 그린 초상화를 연상케 하는 신고전주의 빅토리아풍 크리놀린 드레스로 완성됐다. 두 공주는 성인이 돼서도 어머니의 세련된 감각을 따랐다. 우아한 은빛 새틴 소재의 하트넬 이브닝드레스에 까르띠에의 정교한 플로럴 주얼리를 매치한 것. 엘리자베스 2세는 핑크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꽃잎 브로치를, 마거릿은 장미 모양 브로치를 착용했다. 이 두 피스 역시 이번 전시에 자리한다.
이처럼 안정과 품위를 상징하던 조지 6세 부부와는 달리, 에드워드 8세와 월리스 심프슨의 이야기는 전혀 다른 색채를 띠고 있었다. 월리스는 이미 두 번이나 결혼 경력이 있는 미국인이자, 재치 넘치는 입담으로 유명한 여성이었다. 1934년 에드워드와 관계를 시작했을 당시에도 두 번째 남편과 함께 살고 있었다. 이듬해, 에드워드가 월리스에게 아낌없이 쏟아부은 값비싼 보석들은 런던 사교계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기 시작했고, 이들의 부적절한 관계는 그의 부모인 조지 5세 국왕과 메리(Mary of Teck) 왕비에게 깊은 우려를 안겼다. 1935년, 왕은 아들이 월리스의 보석에 11만 파운드(오늘날 가치로 700만여 파운드, 한화 약 129억원대)를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왕위의 미래에 절망했다. 그는 당시 총리였던 스탠리 볼드윈(Stanley Baldwin)에게 “내가 죽은 후 1년 안에 저 아이는 스스로를 망칠 것”이라고 말했고, 스코틀랜드 성공회 고위 성직자 코스모 랭(Cosmo Lang)에게는 “내 아들이 왕실을 실망하게 하리란 것을 알고 있다”고 털어놓기까지 했다고.
노왕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1936년 1월 20일 조지 5세가 서거하자 새 국왕이 된 에드워드 8세는 월리스에게 더욱 깊이 빠져들었다. 사교계 인사들은 그녀가 과시하는 까르띠에 주얼리를 통해 둘 사이의 애정 전선을 짐작하곤 했다. 그해 여름 이들이 배우이자 귀족이었던 다이애나 쿠퍼(Diana Cooper), 더프(Duff Cooper) 부부와 함께 지중해 유람에 동행했을 때의 일화가 그 예다. 다이애나는 월리스의 손목에 눈부신 까르띠에 팔찌가 채워져 있었고, 그 팔찌에 달린 십자가 참마다 에드워드가 전한 비밀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고 회고한 것. 에드워드 또한 같은 디자인의 십자가 두 개를 목걸이로 걸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둘만의 상징이 된 액세서리인 것. 이 여행은 해외 언론의 대대적인 보도를 불러왔고, 영국 언론은 오히려 침묵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월리스가 결국 에드워드의 간청을 받아들여 남편과의 이혼을 결심하자 그는 그녀를 왕비로 맞이하겠다는 뜻을 더욱 굳혔다. 이외에도 1936년 11월, 국회의원이자 사교계 인사였던 헨리 채넌(Henry Channon)은 만찬에서 월리스 옆자리에 앉았고, 그녀가 또 다른 보석을 착용하고 있었다고 일기에 남겼다. “왕이 그녀에게 매일 새로운 보석을 주는 게 분명하다.” 그는 까르띠에 내부 관계자의 말도

플라밍고 브로치를 착용하고 있는 윈저 공작부인과 공작.
“사람은 절대 너무 부유하거나 너무 마를 수 없다”는 자신의 유명한 격언처럼, 월리스는 <하퍼스 바자>가 ‘하드 시크(hard chic)’라 칭한 스타일의 상징이 됐다.
“왕들의 보석상, 보석상의 왕.” 에드워드 7세(영국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의 장남)가 프랑스 주얼러 까르띠에에 남긴 이 찬사는 과장이 아니었다. 그가 1904년 최초로 왕실 인증을 부여한 메종이니까. 120여 년이 지난 지금 그의 부모 이름을 딴, 세계 최초이자 최대의 장식예술 박물관인 빅토리아 앨버트(V&A) 박물관에서 까르띠에와 영국 왕실 사이의 특별한 관계를 조명하는 전시를 연다. 이번 전시는 왕실이 소장했던 역사적 보석들을 대거 공개한다. 사랑과 상실, 갈등과 화해, 그 모든 왕실의 기억이 이 반짝이는 피스들을 통해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루이(Louis), 피에르(Pierre), 자크(Jacques) 까르띠에 형제가 보여준 비전과 야망이 이번 전시에서 조명되듯, 윈저 왕가 또한 하나의 패밀리 기업(family concern)이다. 조지 6세는 1930년대 후반, 왕실을 자칭 ‘더 펌(The Firm)’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을 정도다.
까르띠에가 왕실과 인연을 맺은 건 1901년 에드워드 7세가 즉위한 직후였다. 그는 왕세자 시절부터 단골이었던 까르띠에에게 자신의 대관식에 맞춰 런던 부티크를 오픈하기를 권했고, 메종은 메이페어에 매장을 열었다. 전시 큐레이터 레이첼 개러헌(Rachel Garrahan)은 “당시 영국 왕실은 패션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그들의 선택은 곧 유행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듬해 왕과 왕비의 대관식에 까르띠에 티아라를 쓴 하객이 27명이나 있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왕실의 선택은 단순히 유행을 따르지 않았다. 인물의 취향과 성격이 각자 고른 보석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에드워드 7세의 두 손자, 웨일스 공 에드워드(훗날 에드워드 8세)와 그보다 겨우 18개월 어린 요크 공 조지(조지 6세)의 선택은 특히 대조적이다. 유년 시절엔 가깝게 지냈지만 형제는 사랑과 보석에서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에드워드 왕세자는 변덕스럽고 몽상적이었고, 조지는 성실하고 책임감이 있는 인물. 서로를 싫어하는 지경까지 간 이들의 불화는 형의 아내 월리스 심프슨(Wallis Simpson)과 동생의 아내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Elizabeth Bowes-Lyon)의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월리스는 엘리자베스를 “촌스러운 공작부인”이라며 뚱뚱하다고 조롱했고, 엘리자베스는 월리스의 이름조차 입에 올리기를 꺼리며 ‘그 여자’ 또는 ‘어떤 사람’이라고 부르곤 했다.
사실 조지와 엘리자베스의 결혼은 1923년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다. 신부가 왕족이 아닌 스코틀랜드 귀족 가문의 딸이었기 때문. 이전 왕들은 모두 왕족 여성과 결혼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결혼은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고, 이후 태어난 엘리자베스 2세와 마거릿 로즈(Margaret Rose) 공주는 안정적이고 도덕적인 왕실의 상징이 됐다. 조지는 아내와 딸들을 위해 까르띠에 보석을 구입하곤 했다. 다이아몬드 티아라, 꽃 모양 브로치, 파스텔빛 아콰마린·사파이어 팔찌 등. 그중 1928년과 1935년에 아내에게 선물한 브로치 두 점은 이번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특히 1935년의 아콰마린 브로치는 그녀가 즐겨 입던 연푸른 드레스와 완벽하게 어우러졌다고 전해진다.
이 브로치를 받은 1935년은 엘리자베스가 왕가 숙녀들의 사랑을 받던 패션 디자이너 노먼 하트넬(Norman Hartnell)의 메이페어 살롱을 처음 찾은 해이기도 하다. 하트넬은 당시 그녀의 딸들을 위한 들러리 드레스를 디자인했고, 곧 엘리자베스의 주요 의상 대부분을 맡게 된다. 하트넬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이렇게 회상했다. “요크 공작부인은 은회색 드레스에 옅은 회색 폭스 퍼를 걸치고 있었다. 그녀의 보석은 이슬처럼 빛나는 다이아몬드와 아콰마린이었다. 또 그녀가 두 딸의 손을 잡고 걸을 때, 양옆에 선 어린 공주들은 은색 단추가 달린 작은 하늘색 재킷과 푸른 꽃 장식을 두른 회색 모자를 쓰고 있었다. 은빛과 하늘빛이 어우러진 하나의 교향곡 같았다.” 이후 하트넬은 이 스타일을 더욱 정제해나갔고, 버킹엄 궁전의 화가 프란츠 크사버 빈터할터(Franz Xaver Winterhalter)가 19세기 왕실 인물을 그린 초상화를 연상케 하는 신고전주의 빅토리아풍 크리놀린 드레스로 완성됐다. 두 공주는 성인이 돼서도 어머니의 세련된 감각을 따랐다. 우아한 은빛 새틴 소재의 하트넬 이브닝드레스에 까르띠에의 정교한 플로럴 주얼리를 매치한 것. 엘리자베스 2세는 핑크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꽃잎 브로치를, 마거릿은 장미 모양 브로치를 착용했다. 이 두 피스 역시 이번 전시에 자리한다.
이처럼 안정과 품위를 상징하던 조지 6세 부부와는 달리, 에드워드 8세와 월리스 심프슨의 이야기는 전혀 다른 색채를 띠고 있었다. 월리스는 이미 두 번이나 결혼 경력이 있는 미국인이자, 재치 넘치는 입담으로 유명한 여성이었다. 1934년 에드워드와 관계를 시작했을 당시에도 두 번째 남편과 함께 살고 있었다. 이듬해, 에드워드가 월리스에게 아낌없이 쏟아부은 값비싼 보석들은 런던 사교계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기 시작했고, 이들의 부적절한 관계는 그의 부모인 조지 5세 국왕과 메리(Mary of Teck) 왕비에게 깊은 우려를 안겼다. 1935년, 왕은 아들이 월리스의 보석에 11만 파운드(오늘날 가치로 700만여 파운드, 한화 약 129억원대)를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왕위의 미래에 절망했다. 그는 당시 총리였던 스탠리 볼드윈(Stanley Baldwin)에게 “내가 죽은 후 1년 안에 저 아이는 스스로를 망칠 것”이라고 말했고, 스코틀랜드 성공회 고위 성직자 코스모 랭(Cosmo Lang)에게는 “내 아들이 왕실을 실망하게 하리란 것을 알고 있다”고 털어놓기까지 했다고.
노왕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1936년 1월 20일 조지 5세가 서거하자 새 국왕이 된 에드워드 8세는 월리스에게 더욱 깊이 빠져들었다. 사교계 인사들은 그녀가 과시하는 까르띠에 주얼리를 통해 둘 사이의 애정 전선을 짐작하곤 했다. 그해 여름 이들이 배우이자 귀족이었던 다이애나 쿠퍼(Diana Cooper), 더프(Duff Cooper) 부부와 함께 지중해 유람에 동행했을 때의 일화가 그 예다. 다이애나는 월리스의 손목에 눈부신 까르띠에 팔찌가 채워져 있었고, 그 팔찌에 달린 십자가 참마다 에드워드가 전한 비밀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고 회고한 것. 에드워드 또한 같은 디자인의 십자가 두 개를 목걸이로 걸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둘만의 상징이 된 액세서리인 것. 이 여행은 해외 언론의 대대적인 보도를 불러왔고, 영국 언론은 오히려 침묵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월리스가 결국 에드워드의 간청을 받아들여 남편과의 이혼을 결심하자 그는 그녀를 왕비로 맞이하겠다는 뜻을 더욱 굳혔다. 이외에도 1936년 11월, 국회의원이자 사교계 인사였던 헨리 채넌(Henry Channon)은 만찬에서 월리스 옆자리에 앉았고, 그녀가 또 다른 보석을 착용하고 있었다고 일기에 남겼다. “왕이 그녀에게 매일 새로운 보석을 주는 게 분명하다.” 그는 까르띠에 내부 관계자의 말도 인용했다. “우리는 월리스를 위해 굉장하고도 환상적인 보석을 리세팅하고 있어요. 그녀가 왕비가 될 게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 때문이겠어요?” 월리스의 까르띠에 주얼리 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피스는 그녀가 이혼 소송에 출석한 후 에드워드가 선물한 에메랄드 반지였다. 이 피스에는 ‘1936년 10월 27일’이라는 날짜와 함께 ‘우리는 이제 우리의 것’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에드워드는 까르띠에에서 이 흠 하나 없는 에메랄드를 1만 파운드에 구입했다.
그들의 관계는 점점 돌이킬 수 없는 국면으로 치달았다. 왕이 이혼녀 월리스와 결혼하려 한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이는 국교회 수장으로서의 지위와 정면충돌했고, 그의 짧은 통치권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1936년 12월 10일, 결국 공식적으로 퇴위한 에드워드는 ‘윈저 공작’이라는 새로운 작위를 받았고, 내성적이고 소극적이었던 그의 남동생이 조지 6세로 즉위했다. 새로운 국왕과 왕비의 대관식은 이듬해 5월에 열렸다. 그러면서 조지 6세는 왕비 엘리자베스를 위해 아콰마린·다이아몬드를 세팅한 티아라를 구입했다. ‘파인플라워(Pineflower)’ 티아라로 알려진 이 주얼리는 1973년 ‘퀸 마더’ 엘리자베스 왕비가 유일한 손녀 앤(Anne) 공주에게 주는 결혼 선물이었으며, 이 역시 V&A 전시에서 볼 수 있다.(조지 6세가 형의 퇴위 직전에 아내를 위해 마련한 또 하나의 중요한 보석인 까르띠에 ‘헤일로(Halo)’ 티아라는 이번 전시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2011년 웨일스 공비 캐서린이 결혼식에서 착용하며 대중에 널리 알려졌다.)
조지 6세의 대관식이 끝난 다음 달, 윈저 공작은 프랑스의 한 성에서 월리스와 결혼식을 올렸으나 왕실 가족 전원이 불참했다. 그들은 월리스와의 만남은 물론 왕실 칭호인 ‘전하(Her Royal Highness)’ 부여도 거부했다. 망명 이후 실망과 억울함을 보상이라도 하듯 윈저 공과 공작부인은 까르띠에에서의 쇼핑을 이어갔다. 특히 파리 매장에 자주 모습을 드러냈는데, 왕위와 함께 포기했던 왕실 보석에 맞먹을 만큼 화려한 컬렉션을 수집했다. “사람은 절대 너무 부유하거나 너무 마를 수 없다”는 자신의 유명한 격언처럼, 월리스는 <하퍼스 바자>가 ‘하드 시크(hard chic)’라 칭한 스타일의 상징이 됐다. 각진 실루엣의 그녀는 아방가르드한 스키아파렐리, 미국 쿠튀리에 메인 보셰의 드레스를 입고 언제나 가장 대담하고 눈부신 주얼리를 걸쳤다.
V&A 전시는 윈저 공작부인의 상징적인 주얼리를 대거 소개한다. 그중에는 왕실이 ‘포식적’이라 여겼던 그녀의 태도를 그대로 드러내는 ‘빅 캣(Big Cat)’ 디자인도 포함한다. 특히 1949년 윈저 공작이 직접 파리 까르띠에에 의뢰한 팬더 모티프 클립 브로치가 주목할 만하다. 152캐럿에 달하는 거대한 카보숑 컷 사파이어 위로 다이아몬드로 형상화한 표범이 당장이라도 몸을 날릴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외에도 블랙 에나멜을 새긴 골드 소재 호랑이 로르네트(Lorgnette, 접이식 안경), 오닉스·에메랄드·다이아몬드로 완성한 호랑이 브레이슬릿과 브로치가 그녀의 야성적 취향을 증명한다. 동물 모티프 주얼리에는 까르띠에 아트 디렉터였던 잔 투상(Jeanne Toussaint)과 월리스의 친분도 스며 있다. 루이 까르띠에(Louis Cartier)의 연인이기도 했던 투상은 강렬하고 어두운 이미지와 동물 프린트, 야성적 보석을 좋아했던 성향 때문에 ‘라 팡테르(La Panthere, 암표범)’라는 별명을 갖고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1940년, 윈저 공작은 아내의 44번째 생일을 위해 또 하나의 걸작을 투상에게 의뢰한다. 바로 플라밍고 브로치다. 파리에 보관된 까르띠에 장부에 따르면 공작은 같은 해 3월 루비 42개, 사파이어 42개, 에메랄드 42개, 다이아몬드 102개를 제공했다. 이 다채로운 보석은 플라밍고의 무지갯빛 깃털, 부리, 눈, 움직일 수 있는 다리로 재탄생했다. 한편 5월 말 공작이 완성품을 수령했을 무렵, 독일군이 프랑스를 침공해 파리로 진격하는 중이었다. 런던에서는 멀어진 동생 국왕 조지 6세가 영국 정보기관의 보고를 받았는데, 그 보고서에는 윈저 부부가 친나치 성향을 가졌으며 독일이 영국을 침공할 경우 왕위에 복귀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윈저 부부는 영국 총리로 지냈던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에 의해 유럽에서 멀리 떨어진 카브리 제도 바하마로 파견된다. 공작은 총독으로 임명됐고, 공작부인은 열대의 땅에 걸맞은 플라밍고 브로치를 착용했다. 85년이 지난 지금, 이 화려한 새는 여왕들과 공주들이 착용했던 보석과 함께 전시회에서 대중에게 공개된다.
이 같은 갈등의 이면에는 화해의 상징도 존재한다. 1953년 메리 왕비가 서거 전 아들에게 남긴 것으로 전해지는 까르띠에 진주 목걸이가 그 예다. 월리스는 이 목걸이를 1972년 남편의 장례식에 착용했으며, 그녀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버킹엄궁에 초대받았던 날이었다. 그날 월리스는 예전의 숙적 퀸 마더와 남편의 조카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함께 무덤까지 걸어갔고, 세 여성은 모두 검은 옷과 진주를 걸쳤다. 글/ Justine Picardie 번역/ 박태원 에디터/ 윤혜연



Credit
- 글/ Justine Picardie
- 번역/ 박태원
- 사진/ Archives Cartier Paris © Cartier, Bridgeman Images
- 사진/ Collection Cartier © Cartier, Getty images, Louis Tirilly © Cartier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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